한 달이 넘도록 주말 군중집회가 지속되고 있다. 6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광장에 몰려든 인파는 주최 측 추산 서울 170만명, 지역 62만1천명 등 전국 232만1천명(연인원)이었단다. 대구에서도 주최 측 추산 5만여 명이 모였고, 포항과 안동에서도 집회가 열렸다.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들이 이토록 점증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다친 자존심`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런 정도의 저질 권력드라마에 속아 살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던 국민들이 어이없음을 견디지 못하고 길거리로 뛰쳐나오고 있다. 청와대 저 구중궁궐 안에서 일어났다는 믿을 수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해괴한 의혹들이 시민들의 평안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대의정치` 기능이 마비되고, 역사책 속에서 잠자고 있던 `광장정치`가 거짓말처럼 되살아나고 있는 현실은 정치가 민심에 정직하게 뿌리 닿아있는 나라가 아니라는 뚜렷한 증좌다.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의 정치인들의 가슴속에는 `애국심`이 아닌 `입신양명`의 시커먼 욕망만 왕성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그게 자신에게 유리한지 불리한지만 더듬으며 그것을 `정치`라고 같잖게 욱대겨왔다.
새누리당의 지리멸렬은 처참하다. 친박(친박근혜)은 폐족이라도 면해 보고자 백방을 암중모색하고 있는 듯하다. 비박(비박근혜)은 어떻게 하면 `해체하라`는 성난 민심의 파도를 잘 넘어 건강한 `보수정당`을 재건할 것인가 노심초사다. 느닷없는 경천동지(驚天動地) 속에서 길을 잃고 전전긍긍하는 집권여당의 모습은 딱하고도 한심하다.
야당의 행태 또한 가관이다. 대안도 없는 `발목잡기` `티 뜯기` `까발리기`만 탐닉해온 관성 속에서 아무 준비도 돼 있지 않은 자기들에게 온 공을 어쩌지 못해 잇달아 헛발질이다. 전권을 갖는 국무총리를 뽑아달라고 해도 국정실패의 덤터기를 쓰게 될까 두려워 어쩌지 못하는 수준의, 통치능력도 용기도 부족하기 짝이 없는 집단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대권주자들마다 각기 다른 셈법들도 혼란스럽다.
여야를 불문하고 문제의 핵심은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다. `최순실 게이트`핵폭탄으로 인해 산산이 흩어진 민심이 어찌 변할까 두려워 거듭 입장이 흔들리고 논리가 꼬인다. 그야말로 빨라도 걱정, 늦어도 걱정인 사욕(私慾)의 발로인 것이다. 국민들이 외치는 `대통령의 즉각 하야` 주장에 대한 복잡한 계산으로 이래저래 갈지자 행보다. 민초들의 걱정은 따로 있다. 과거사가 그러했듯이 갑작스럽게 무너진 정권의 틈바구니에서 엉뚱한 자가 튀어나와 권력을 거머쥐는`죽쒀서 개 주는` 참변이 그것이다. 대통령의 즉각적인 하야가 불러올 `부실대선(不實大選)`이 문제다. 헌법이 정한 `60일 이내 선거` 규정은 필연적으로 미흡을 부르게 돼 있다. 또다시 깜도 안 되는 하자투성이 인사가 대권을 거머쥐는 불행을 경계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길은 명확하다. `국가전복`을 꿈꾸지 않는 한, 합법적인 정권퇴진은 `하야`아니면 `탄핵` 뿐이다. `물러나라`고 외쳐서 안 되면 헌법적 절차를 거치는 수밖에 없다. 제 아무리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간표가 안 나오더라도 지금처럼 이랬다저랬다를 지속하는 것은 정치지도자들의 바른 처신이 아니다. 민심을 정직하게 따르면서 난처한 처지들을 솔직하게 털어놓아야 한다.
어쩌면 국민들은 정치권에 마땅한 대안이 없음을 벌써부터 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권력을 노린 암산만 거듭하는 정치꾼말고는 미더운 존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마음을 추스를 방법을 찾지 못해 매주말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문제들을 앞장서서 풀어나가야 할 사람들은 결국 정치인들이다. 분명한 것은 난제들을 풀어내는 일은 온전히 우리들 몫이라는 사실이다. `메시아(Messiah)`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