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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뺄셈정치`의 몰락

▲ 안재휘 서울본부장“박근혜 정권을 위기에 빠트리고 있는 것은 친박 정치인들이다. 집권 후 곤경에 빠졌던 역대 정권이 대개 그랬던 것처럼, 친박 역시 집권 이후 세력을 확대재생산하기는 커녕 뺄셈정치를 계속하고 있어 위험하다.” 아마도 지난해 12월 초였을 것이다. 만찬자리에서 당시 이슈였던 청와대 문건파동에 대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한 친박 의원의 오만한 답변에 쓴소리를 한마디 던졌다. 그러자 그는 야릇한 목소리로 “내가 바로 친박핵심이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면서도 어떻게 그런 말을 대놓고 하느냐는 힐난으로 들렸다. 새누리당의 원내대표 경선이 선거초반의 우열 판세를 뒤집고 유승민-원유철 조의 압승으로 끝났다. 84대 65. `아무리 표차가 크게 벌어져도 10표를 넘지 않을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직전 예측까지 모두 빗나가게 만든 작지 않은 이변이었다. 내색을 안 해서 그렇지, 소위 스스로를 `친박핵심`이라고 자처해온 정치 인사들은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저러한 이유들을 떠올리며 극심한 배신감에 휩싸였을 수도 있다. 우리가 잘못한 게 뭐가 있느냐는 억하심정에 빠져들어 엉뚱한 아집을 키울 가능성도 없지 않다.예상을 깨부순 여당 사령탑 선거의 결과는 새누리당에 대해 새로운 `희망`을 느끼게 하는 신선한 조짐으로 읽어야 맞다. 집권 만 2년을 채 넘기지 않은 시점에 고질적 `불통`오명 속에 통치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청와대를 변화시킬 저력이 여전히 새누리당에 남아있음을 절박하게 보여준 결과였다. 시린 민심의 바다에서 발을 아주 빼지 않고 국민들의 생각과 말을 신실하게 감지하려고 노력하는 다수 여당의원들의 진심이 노정된 것이다. 적어도, 새누리당에 새로운 `개혁`의 지표를 만들어낼 능력이 아직 남아있음을 증명한 쾌거이기도 하다.유승민-원유철 팀의 압승을 견인해낸 결정적인 정치 환경은 무엇이었을까. 경선 직후 유 의원이 기자들에게 밝힌 대로 그것은 여당 의원들을 엄습해온 `위기의식`이었다.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은 날이 갈수록 꺼져 가는데, 이를 타개할 묘책을 좀처럼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길었다. 청와대는 `문건파동` 같은 추태의 근원지로 추락하고, 참모들과 내각은 손발이 안 맞아 삐걱대는 모습을 거듭 연출한다. 그런 판에 “`쓴소리`가 아닌 `옳은 소리`를 내겠다”면서 끝내 청와대 눈치를 살핀 이주영 의원의 포석은 처음부터 현실적이지 못했다.유승민-원유철 팀이 앞길에 놓인 험로를 어떻게 헤쳐 갈 것인지가 국민적 관심거리로 떠올랐다. 유-원 팀을 선택하지 않은 정치세력들이 우려해온 대로 그들이 당-청관계를 더욱 악화시켜 당을 `콩가루 집안`으로 만들고, 국민들의 등을 아주 돌려세울 것이라고 보는 비관적 전망은 무리다. 당-청이 적당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반드시 나쁠 이유도 없다. 청와대와 여당이 서로 상대의 존재를 의식하면서 민심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 결코 나쁠 이유가 없는 것이다.청와대부터 과감한 인식의 전환을 꾀해야 한다. 어쩌면 대선공약에 발목이 잡혀 변환의 포인트를 만들어내지 못한 갖가지 난제들의 탈출구를 찾는데 새롭게 뽑힌 여당 사령탑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할 지도 모른다. `증세`논란만 해도 그렇다. 유승민-원유철 팀이 민심을 정직하게 담아 `증세 없는 복지 확대론`에 대해 분명하게 다른 목소리를 내온 만큼, 그런 흐름을 슬기롭게 받아 안아 정책의 유연성을 키워가는 것이 옳은 방향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당-청관계의 발전적 미래를 위한 청와대의 역할이 더 중요해진 셈이다. 이 시점에 정말 필요한 것은 `친박핵심`들의 하심(下心)이다. 진정으로 욕심을 덜어내야 한다. `친박핵심`들이 초심을 찾는 일은 박근혜정부 성공의 필수조건이다.

2015-02-03

`유리지갑`의 분노…그 이면(裏面)

▲ 안재휘 서울본부장미국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의 원천은 기부문화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지도층의 모범이 미국사회를 촘촘히 얽어매고 있는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들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총 21조원 규모의 기부금 액수를 기록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 빌 게이츠(Bill Gates) 부부의 기부금은 무려 3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미국의 기부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들 세계적인 갑부들의 놀라운 기부금 기록보다도 일상화된 국민들의 기부정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미국 가구의 약 89%가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고, 이들 개인들에 의한 소액기부금이 전체 기부금의 약 76%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다. 가구당 연평균 기부액은 대략 200만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인들은 자유로운 시장경제 안에서 마음껏 경제활동을 펼치고 그 이익금을 아낌없이 나누는 정신으로 일류국가의 위상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2014년 연말정산 처리기간을 맞아서 또 한번 우리 정치권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 2013년 국회에서 `소득공제`방식에서 `세액공제`방식으로 공제방식을 변경하는 세법을 개정할 때 찬성 245표, 반대 6표였다는 기록이 무색하게도 야당이 여당에게 `꼼수증세`라며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모습은 한심하다. 당초에 세액공제로 전환하면 9천300억원 정도가 더 걷힌다는 시뮬레이션 설계결과가 있었다고 하니 충분히 예고된 논란이 맞다. 그럼에도 여론이 들끓고 정부와 정치권이 허둥대는 건 말이 안 된다.`증세`냐 아니냐를 놓고 벌어지는 공방은 어린아이들 말장난처럼 공허하다. 앞주머니에서 빼 가면 증세고, 뒷주머니에서 빼 가면 증세가 아니다라는 궤변에 동의하라는 설득이 과연 옳은가. 얼마가 드나드는 지 유리알처럼 보이는 샐러리맨들의 유리지갑에서 덧없이 사라져가는 이런저런 명분의 조세를 놓고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마치 고갯길을 가로막아 선 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고 으르는 호랑이를 만난 떡장수 여인의 기분이라는 이 땅 샐러리맨들의 하소연이 실감난다.전래동화 속에서 떡장수 여인은 끝내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고 만다. 호랑이는 악랄하게도, 치마저고리로 변장한 채 오누이 아이들마저 찾아가 문을 열어달라고 현혹한다. 오누이는 혼비백산 뒷문으로 도망쳐 우물가에서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햇님 달님이 되고,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다가 떨어져 수숫대에 찔려 죽는다. 오늘날 샐러리맨들에게 내려줄 튼튼한 동아줄은 누가 갖고 있는 것인가.조세 문제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의 모순에 맞닿아있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증세 없는 복지`의 언어도단을 지적했지만, 앞뒤 안 맞는 민심에 기대거나 어리석은 욕심을 자극하여 여기까지 와 있다. 정치권은 이미 오래 전에 국민들에게 `증세 없는 선택복지를 할 것인가, 아니면 증세를 통한 보편복지로 갈 것인가`를 솔직하게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짜복지`를 유혹하는 진보정치의 `표(票)퓰리즘` 꽁무니를 잡고 보수정치가 질질 끌려왔던 것이다.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 신년 국정연설에서 총 3천200억 달러(약 345조원) 규모의 `부자 증세`를 내걸었다. CNN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중 무려 81%가 대통령의 신년연설에 전폭적 지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도 늦지 않았다. 정치권은 국민들 앞에 `증세를 통한 복지확대`를 정직하게 묻고, 지도층은 사진을 찍어 자랑하는 게 목적이 아닌 올바른 `기부문화`를 가꾸어나가야 한다. 선거가 없는 올해, 지금이 바로 그 적기일 지도 모른다.

2015-01-27

양(羊)들의 `침묵`

▲ 안재휘 서울본부장`웅변은 은(銀)이요 침묵은 금(金)`이라는 말이 있다. 영국의 역사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침묵은 말보다 웅변적`이라고 정의했다. 공자는 `군자는 변설이 번지르르하기보다는 실천에 용감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장자는 `다변불언(多辯不言)`, 즉 `말이 많으면 말하지 않음만 못하다`는 경구를 남겼다. 확실히 다변은 하찮은 요설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선조들은 `과묵`을 선비의 으뜸덕목으로 삼아 `양쪽 귀로 많이 들으며, 입은 세 번 생각하고 열라`고 가르쳤다.이 같은 교훈들은 과연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유용한 가치를 지닐까. 어쩔 수 없이 불평등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경제적 약자들에게 침묵은 언제까지 미덕일 것인가. 폭압적 정치권력에 의해 모두가 시궁창에 빠져 살면서도 굴종 속에서 겨우겨우 삶을 영위하는 북한주민들의 침묵은 어떤 가치를 지닐까. 온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다중의 침묵은 다 괜찮은 것일까. `두려움의 크기와 침묵의 크기가 비례하는`세상의 온갖 부조리구조에 대해서 우리는 참 무심히 살아간다.연초부터 연거푸 불거진 어린이집 아동폭력 사건이 세상을 뒤흔들고 있다. 저출산 현상 타개책의 하나로 아동교육을 나라에서 책임지는 정책이 확대되면서 양질의 교사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런데 정치권의 대안들은 어린이집 교사들을 잠재적 범죄인으로 몰아 때리는 CCTV설치 의무화나, 아동폭력 처벌수위 상향 등 구태의연한 대증요법 방식에 치우치고 있다.지난 연말 여론을 달구었던 `땅콩회항`사건도 궁극적으로 침묵의 가치논쟁에 맞닿는다. 그게 어쩌다가 그렇게 이슈화가 되어서 그랬을 뿐, 거대 기업 대한항공의 내부에서 만연돼온 `을`들의 침묵은 수두룩 존재했을 것이다. 눈치 없이 침묵을 깼다가 `갑`의 무지막지한 권력에 생존을 위협받게 된 `을`을 더 많은 제3의 `을`들은 보았을 것이고, 침묵으로 지켜내는 온존의 대가가 훨씬 더 달콤하다는 교훈을 얻어왔을 것이다.교사들 앞에서 자식을 맡긴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을`이다. 어쩌다 자질이 부족한 교사에게 자식이 맡겨졌을 때도 불안을 함부로 말하지 못한다. 기업에서도 못된 `갑`질에 이골이 난 성품을 가진 오너나 상사들이 있다. 몰상식한 처사들이 비일비재 일어나지만, `을`들의 침묵은 미덕처럼 치부된다. 유사 이래 재력과 권력은 언제나 상관관계가 있었으며, 현대사회는 재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져가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땅콩회항`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때나, 최근 불거진 어린이집 아동폭력 사태를 놓고 전문가연하는 일부 해설자들이 `을`들의 침묵을 비판하는 요설을 늘어놓는 것을 보면 분노가 치민다. `갑`질의 모욕을 견딜 수밖에 없는 절박한 환경을 정말 모르고서 저런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것일까 한심한 생각마저 든다. `갑`질로 피멍드는 `을`들의 현실을 개선하는 사명은 오롯이 정치지도자들의 몫이다. 지금 바꾸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더욱 처참해질 것이다.1991년에 나온 미국영화 `양들의 침묵(The Slience Of The Lambs)`은 오래도록 최고의 명화(名畵) 반열에 올라있다. 도축을 기다리는 양들은 울음소리를 낼 뿐 도망치지 못한다. 그런 모순된 환경 속에서 도망치지 못하는 현상을 도망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관점은 치명적인 오류다.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에게 숙명적인 공포의 울타리로부터 도망치지 못하는 양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정녕 있는가. 권력을 확대하고 연장하는 일에만 정신이 팔린 그들에게 과연 그런 의지가 있긴 있는가. `양들의 침묵`에서 희대의 악당 렉터(앤서니 홉킨스)는 여주인공 스털링(조디포스터)에게 묻는다. “아직도 꿈속에서 양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가?”

2015-01-20

박근혜정부의 `선택과 집중`

▲ 안재휘 서울본부장미국 대통령이 연초에 국가의 전반적인 상황을 분석ㆍ요약하여 기본정책을 설명하고 필요한 입법을 요청하는 것을`연두교서(Annual message)`라고 부른다. 1790년부터 시작된 미 대통령의 연두교서는 1912년까지 연설 대신 서신으로 발표됐지만 1913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 때부터 양원 합동회의에 대통령이 직접 출석, 연설로 연두교서를 밝히는 관행이 정착됐다. 1923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라디오로 처음 중계되었으며,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7년 처음으로 텔레비전 전파를 통해 연설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1964년에 처음 시작한 이래, 1967년까지 네 차례 국회에서 연설하는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1982년부터 1985년까지 국정연설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연두교서를 발표한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국민과의 TV대화`형식을 취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는 방식의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전반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정책방향을 연설로 발표했다.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예견했던 대로, 회견이 끝나자마자 여야 정치권의 반응은 `극찬`과 `맹비판`으로 갈렸다. 청와대 `비선실세` 문건파동과 초유의 항명사태 등으로 얼룩진 위기 한복판에 있었으니, 대통령의 `용단`을 기대하는 국민들도 많았을 것이다. 인적 쇄신에 대한 기대치도 높고, 획기적인 소통 의지도 나오리라 고대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어서 `실망`의 눈초리가 상당하리라 여겨진다.그러나 예년과 달리 기자들의 자유로운 질문에 성실하게 즉답하는 대통령의 자세와 내용에서 묻어나는 일종의 `자중자애`같은 것을 꿰뚫어 본다면, 결코 간단치 않은 대통령의 변화가 감지되는 회견이었다. 바로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드디어 대탐대실(大貪大失)의 유혹에서 확실하게 벗어나 보인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대통령으로서 남기고 싶은 업적으로 “경제활성화와 경제부흥,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들었다.어쩌면 소박해보이기까지 한 박 대통령의 언급은 임기 초 의욕에 넘쳐 너무 많은 의제들을 걸머지고 끙끙거리던 모습을 비로소 훌훌 벗어 던진 이미지여서 흥미롭다. 대개의 대통령들은 임기 5년의 기간을 잘못 계산하여 50년에도 다 못 이룰 거창한 계획들을 세우고 팡파르를 울린다. 그러나 불과 1~2년만 지나면 이런저런 돌발 사태들로 인해 추진동력을 잃고 좌충우돌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연일 터지는 `비리``부정`들을 수습하느라고 허우적거리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이 한 기고문에서 밝힌 “박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인사·통합에서 실패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물론 박 대통령이 인사와 통합에서 성공하지 못한 근원을 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은 `소통의 실패`에 닿는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나름대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야 정치권에도 소통노력을 해왔다면서 “야당으로부터 딱지를 맞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그런 노력들이 여의치 않았음을 토로했다.박 대통령이 새해의 화두, 임기 중 목표를 `경제`와 `통일`로 잡아서 정리한 것은 선택과 집중의 지혜가 읽힌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남은 3년은 그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성공한 정권`을 일궈가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다. 집권초기 과중한 설계도를 만들었다가 불과 10%도 달성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라져간 역대 정권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배종찬 본부장은 기고문 결말에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 “`경제`와 `통일`이 역대 모든 정권에서 공을 들였던 상수라면 박 대통령의 비밀병기는 `반부패`다”

2015-01-13

`통 큰` 정치, `속 좁은` 정치

▲ 안재휘 서울본부장“반기문의 영웅전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드는 센세이셔널리즘은 무엇일까? 그것은 2016년 10월, 유엔 사무총장의 공로를 인정한 노벨 평화위원회가 반기문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세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강력하게 이어진다.” KBS 아나운서이자 저술가인 이성민 박사는 저서 `반기문 대망론`에서 재미있는 가정(假定)을 내놓는다. 그는 반기문 대망론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를 `한반도 통일문제가 남북의 국정현안은 물론 세계적인 핫이슈가 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반기문에 대한 국민들의 선망이 식지 않고 있다. 새해 들어 발표된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24.4%~38.7%를 기록하면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잠룡들은 각각 10%를 넘기지 못해 우열(優劣)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11월 4일 개인성명을 통해 “대선주자 여론조사를 포함한 국내정치 관련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밝힌 바 있는 반 총장은 새해 여론조사결과를 보고받고는 말없이 `씁쓸한 웃음`만 지었다는 전언이다.여야 정치권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의례로 을미년 새해를 맞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새해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하고 난 후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김 대표는 기자들에게 “올해부터는 우리부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제일 먼저 참배하게 됐다. 기분이 되게 좋다”고 말했다.새정치연합 문희상 위원장의 신년 국립묘지 참배는 여느 해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났을 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까지 참배한 행보와 관련, “난 아직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그런 용기가 없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모든 역사는 공과와 명암이 같이 있다”며 “이 전 대통령은 분명히 건국의 공이 있지만 10년 독재의 시발(始發) 아니냐. 역사적 평가는 후세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문 위원장의 발언은 변함없는 진보 야당의 협애(狹隘)한 인식을 오롯이 반영한다. 문 위원장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 보아도 그렇다. `역사적 평가는 후세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다 끝난 듯 행동하고 있으니 스스로 모순이다. 극성 지지층의 반발이 두려워서 `용기가 없다`고 했을 테지만, 구시대에 갇힌 `속 좁은` 진보정치인들의 한계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친박 중진 7명만 초청해 송년 만찬을 가진 박 대통령의 처사에 대한 불만이 해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정부와 연일 각을 세우고 있는 이재오 의원은 청와대에 대해 “환골탈태해 `속 좁은 정치` 그만하라, 당을 시종 부리듯 해서는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연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건 일을 놓고도 정치권에서는 `김무성 견제구`로 해석하는 축들이 있다. 그들은 현재 친박 쪽에 유력한 잠룡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굳이 이성민 박사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통일`을 준비하고 이룩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이 시대에 반기문 카드는 분명히 매력적이다. 그가 만일 `탈이념(脫理念)`의 기치를 높이 들고, `통 큰` 정치행보를 보인다면 그야말로 무적일 것이다. 아니, 지금 잠룡으로 회자되는 그 어느 인사라도 이념의 협곡, 패거리 정치의 뒤웅박을 홀연히 떨쳐 나와 `통 큰` 정치의 감동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레이스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친박`은 되고 `비박`은 안 되는, `김대중`은 되고 `이승만`은 안 되는 옹졸한 정치의식으로는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2015-01-06

링컨의 `포용정치`

▲ 안재휘 서울본부장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은 민주주의의 금언(金言)으로 회자되는 `게티즈버그 명연설`로 주로 기억된다. 링컨이 정치사에 남긴 또 하나의 소중한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투철한 `포용정치`의 실천일 것이다. 그의 정치역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단 한번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을 뿐이고, 상원의원 선거에서 두 번이나 낙선했다. 무명 정치인인 그는 1860년 11월 대통령 선거에 도전해 치열한 4파전 지명전을 거쳐 가까스로 당선된다. 링컨은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지명전에서 그와 뜨겁게 경쟁했던 뉴욕 상원의원 윌리엄 시워드를 국무장관에, 오하이오 주지사 새먼 체이스를 재무장관에, 미조리주 판사 에드워드 베이츠를 법무장관에 임명해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세상을 정말 놀라게 한 일은 자신을 평생 모욕하고 헐뜯던 정적인 민주당 법무장관 스탠턴(Edwin McMasters Stanton)을 전쟁장관(국방장관)에 전격 발탁한 일이었다.링컨이 변호사였던 시절부터 유명 변호사 스탠턴이 뱉어냈던 험구는 상상을 초월한다. 대통령선거 당시에도 스탠턴은 전국을 순회하며 링컨의 이름조차 제대로 부르지 않으며 `깡마르고 무식한 자`라고 놀려댔다. 스탠턴의 지독한 험담 중 “링컨의 고향에 가면 얼마든지 고릴라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대목은 오늘날 되짚어 보아도 정말 악랄한 인신공격이다.2014년 세모(歲暮)에 문득, 정적들을 모두 묶어 `경쟁자의 팀(Team of Rivals)`으로 내각을 꾸려 국론을 모으고, `노예 해방`이라는 전 인류적 가치를 놓고 벌인 남북전쟁을 끝내 승리로 이끌어낸 링컨의 리더십이 생각난 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돌이켜보면 올해도 어김없이 연초에 가졌던 정치적 소망이 잘 이뤄졌다고 보기에는 어림없는 한 해였던 것 같다. 4월 16일 돌연 진도 앞바다에서 날아온 `세월호 참사` 비보로 인해 온 나라가 혼미의 바다에서 허우적댄 한 해였다.`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참으로 많은 담론들을 쏟아냈다. `세월호 이전과 세월호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야 한다`는 주장에 너나 할 것 없이 공감했고, 대통령의 `국가개조`라는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한 해를 다 보낸 지금 우리가 정말 `세월호 이전`과 다른 대한민국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 후진국형 대형 안전사고가 다시 발생할 가능성을 얼마나 낮췄는지에 대해서도 신뢰가 높지 않다.정치권은 시종여일 `아전인수``편견아집``패거리의식``승자독식``배척불통`의 암운 속에 놓여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경청`에서부터 우리 정치권은 여전히 인색하기 짝이 없다. 청와대 신년회 초청자 명단에 이군현 사무총장 대신 `친박`김재원 원내수석부대표가 포함된 것을 확인한 김무성 대표가 청와대를 향해 “천지분간을 못 하는 사람들”이라며 분노했다는 소식은 그저 쓴웃음만 나게 할 따름이다.스탠턴은 전쟁장관이 된 후에도 자기 생각과 다르면 대통령을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며 무례하게 굴었다. 그럼에도 링컨은 “스탠턴은 빈틈이 없는 사람이니 만약 그가 나를 `바보`라 하였다면 내가 진짜 바보일 것”이라며 그를 끝까지 품었다. 링컨은 남북전쟁이 끝난 지 닷새 뒤인 1865년 4월 14일 포드극장 귀빈석에서 당대 유명배우 부스(John Wilkes Booth)의 흉탄에 맞아 쓰러지고 만다. 오랜 정적이었던 국방장관 스탠턴은 쓰러진 링컨을 끌어안고 “이 세계가 지금까지 본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여기에 누워 있구나”라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귀가 두 개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 마지막 날까지 정치적 반대자의 소리를 소통, 설득, 포용의 지도력으로 `세 귀를 열고 들었다`던 링컨의 인품이 부럽다.

2014-12-30

`통진당 해체` 그 후

▲ 안재휘 서울본부장“자기들이 한 일은 늘 옳다고 여기고, 옳지 않다면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라는 식이죠.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북에 대한 비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북을 객관적으로 완전히 아는 것이 불가능한데, 그런 이유 때문에 북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에요.”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녹생당 당원이 된 작가 최희철은 4인 진보정당 평당원들의 대담서적인 `위기의 진보정당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통합진보당의 성향을 이렇게 말한다. 2014년 연말 정치권에서는 참으로 많은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1년여 동안 심리를 계속해온 `통합진보당 해체` 청구소송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어 `인용`결정을 내렸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통진당이 `대한민국을 미국과 외세에 예속된 천민적 자본주의 또는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적시하고, `통진당은 전민항쟁과 저항권 행사 등 폭력에 의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했고, 이는 목적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또박또박 판시했다.예상했던 대로, 헌재 결정 이후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한쪽은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찬사를 보내고, 다른 한쪽은 `민주주의의 사망`이라고 외친다. 검찰이 이정희 전 대표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가운데, 해산된 통합진보당 소속 전 의원 5명은 의원직까지 박탈한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모양이다. 법무부는 통진당 지방의원 38명의 의원직도 박탈할 수 있는지 검토한 뒤 법적 대응을 이어갈 방침이어서 여진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역사 속에서, 한 가지 행동을 놓고 `충역(忠逆)`이 다퉈지는 경우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대체 `민주주의`가 무엇이기에 21세기 대명천지에 똑같은 헌재 판결문을 놓고 한편에서는 `이겼다`고 흥분하고, 다른 한편은 `죽었다`고 악을 쓰는 것인가. 아무래도 교과서에 나오는 직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자유주의적·입헌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적·경제적민주주의 따위의 구분만으로는 판별이 안 되는, 또 다른 기준이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의·주장·편의성에 맞춰서 `민주주의`를 따로따로 정의하고 있음에 틀림없다.국민의 관심은 해산된 통진당 인사들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정책위원을 거쳐 지금은 노동당에 몸담고 있는 진보 칼럼니스트 남종석의 말에 아마도 그 답이 있을 것 같다. 그는 전제한 대담서적에서 이렇게 말한다. “환원적인 것이 자주파의 고질적 특징이에요. 공세적일 때는 항상 북한관련 쟁점이나 반미 같은 자신들의 전략적 과제를 전면에 내세우다가, 당이 대외적으로 공격받거나 사회적 정당성이 훼손되었을 때는 `민생`으로 돌아서는 경향 말입니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건과 분당 사태 때도 그랬고, 이석기 사건 이후에도 그랬어요.”헌법재판소는 우리 대한민국이 아직은 `종북(從北)`을 용인해도 괜찮을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상식을 증명해보였다. 이번 결정은 우리 사회가 그 어떤 사상의 일탈도 소화해낼 만큼 건강해져야 한다는 숙제를 동시에 남겼다. 북한 김정은은 핵무기를 치켜들고 3년 내에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흰소리를 뻥뻥 쳐대는 판국이다. `남한에서 암약하고 있는 남파간첩이나 자생적 종북세력이 수만 명은 족히 될 것`이라는 끔찍한 주장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민생`을 명분삼아 그럴듯한 조직을 만든 다음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또 다른 이석기와 이정희, 황선, 윤기진, 신은미…. 괴물 확신범들을 잉태해갈 그들의 흑심을 놓치지 않고 밝은 눈으로 감시하는 일은 오로지 국민들의 몫이다. `종북`은 절대 안 된다.

2014-12-23

`새정연`의 난센스

▲안재휘 서울본부장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그의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보의 싸가지 문제란,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등이다. 예컨대,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 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 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는 태도, 왜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느냐고 호통치는 듯한 자세, 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에게도 상처를 주고야 마는 행위, 번드르르하게 말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꾸는 태도 등이다.” 연말정국 한 복판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인해 정부여당이 좀처럼 난국돌파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이 새해 2월8일로 예정된 전당대회 레이스 무드로 접어들었다. 출마선언이 잇따르면서 계파가 어떻고, 세력이 어떻고 설왕설래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분당(分黨)사태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치러지는 전당대회인 만큼 아마도 전례 없이 미묘한 당권 쟁탈전이 펼쳐질 전망이다.어쩌면 야권 지도부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여권이 깊숙한 혼미에 빠진 정황을 틈타서 뜨끈뜨끈한 당권경쟁 흥행을 펼침으로써 국민들의 시선을 빼앗아 세력을 확장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새정연 전대 레이스 출발선 앞줄에서 얼쩡거리는 인물들을 톺아보면 국민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펼쳐가기엔 역부족인 상태가 아닌가 싶다. `증오상업주의`로 오래도록 재미 보아온 패거리들이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을 보면 더욱 그렇다.보수의 심장에서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의 몸값이 날로 치솟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이른바 `빅3`(문재인·박지원·정세균)라고 불리는 당권경쟁 구도를 흔들 유력변수로 부상했다는 분석이다. 당권경쟁의 또 다른 `다크호스`로 거론되는 박영선 의원이 “김부겸 전 의원이 나온다면 확실하게 도와드릴 생각이 있다”고 밝힌 대목은 진보세력의 진화에 대한 기대를 조금 더 높이고 있다.국회선진화법에 몰리긴 했어도 지난번 여야가 새해예산안을 법정기간 안에 결의해 낸 것은 분명히 진일보한 정치문화다. 새정연이 새누리당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분명히 있었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으르고 나서자, 자칫하다가는 야당의원들이 발싸심하여 우겨넣은 지역예산이 모두 날아갈 위험성이 있다 보니 뻗대고 나갈 수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예산정국이 막을 내리니 정치무대에는 순식간에 또다시 지독한 불통의 커튼이 내려졌다.최근 새정연의 정치행태 중에서 가장 답답한 부분은 공무원연금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다. `개혁의 절박성` 인식을 정부여당과 공유하면서도 갖가지 핑계를 대며 도무지 대안을 내지 않는 것은 실로 `정당`으로서의 자존심을 내팽개친 딱한 모습이다. 시중에서 새정연에 대해 `댓글 정당`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당정치의 본질은 민심을 신속히 집약하여 해결하는 대의정치 구현에 있다.며칠 전 새정연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코앞에 둔 통진당 해산 문제에 대해서 “정당해산 결정은 선진민주주의국가에서는 그 전례가 없는 것”이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것은 충격이다. 문 위원장의 뜬금없는 발언은 `헌재에 대한 입력`이라는 함의를 넘어서는 심각성이 있다. 바로 새정연이 아직도 `싸가지 없는 진보`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새정연은 여전히, 극좌에 발목을 맡긴 채 중도세력을 홀려낼 시대착오적인 꿍꿍이에 젖어 있음이 분명하다. 강준만의 언어를 빌린다. 그들이 만약 아직도 `타협`을 더럽게 생각하는 고질병, 도덕적 우월감과 독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겁한 변명, 타인과 세상에 대한 `계몽 욕망`에 갇혀 있다면 결코 미래는 없다.

2014-12-16

위험한 `청백전`

▲ 안재휘 서울본부장중국 역사상 최초의 명재상인 주(周)나라 주공(周公)은 무왕이 죽은 후 그의 어린 조카를 대신해서 중앙정치를 다스리느라고 바빠서 봉지인 노()나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 백금(伯禽)을 노나라로 대신 보내면서 이른다. “나는 머리를 감다가도 급한 일이 있으면 감던 머리를 손에 쥔 채 나와서 정사를 처리하고, 또 밥을 먹는 중이라도 누가 찾아오면 입에 있던 밥도 뱉어내고 그 사람을 만난다. 행여 훌륭한 인재를 놓칠까 염려해서다.” 백금은 부친의 말을 명심하고 노나라에 들어가서 어진 정치를 펼쳤다.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박근혜정부가 위기에 몰리고 있다. 청와대는 엉성한 보안관리 속살이 낱낱이 드러난데 대해 곤혹스러운 모습을 감추느라고 전전긍긍이다. 야당과 언론의 공세는 나날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정면 돌파` 의지는 초지일관 굳건해 보인다. 박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 때마다 `정면 돌파`를 통해 극복해오던 모습을 여러 번 보아온 사람들마저도 이번에는 적이 걱정스런 눈빛이다.끈덕진 분열의 예조(豫兆)로 깊은 시름에 빠져있던 야당이 갑자기 신바람이 났다. 저격수들 모두 나서서 딱총 대포 다 동원하여 연일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난타해 예산정국에서 빼앗겼던 정국주도권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의욕을 곧추세우고 있다. 급기야는 `레임 덕`이라는 단어까지 입줄에 올렸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역대 대통령 레임덕은 모두 비선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과감히 읍참마속(泣斬馬謖)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문 위원장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읍참마속`이라는 해법을 내놓기 시작했다. 읍참마속은 과연 해결책이 될까. 제갈량(諸葛亮)은 지시를 어기고 자기의 얕은 생각으로 전투를 하다 참패한 수하 마속(馬謖)의 목을 베고 장병들에게 사과해 군기를 추슬렀다. 이 고사는 목이 잘린 마속이 다름 아닌 제갈량과 문경지교를 맺은 마량(馬良)의 아우였다는 점에서 후세에 조직의 엄정한 규율을 세우기 위해 지도자가 지녀야 할 으뜸 덕목으로 자주 인용돼왔다.그러나 `찌라시`라는 단어를 수차례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박 대통령은 현재 영향력을 과다하게 행사하고 있는 `비선(秘線)`도 존재하지 않고, 권력을 남용하는 `문고리권력`도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결국, 최근 회자되고 있는 측근들 중에는 `지시를 어기고 자기의 얕은 생각으로 전투를 하다 참패를 가져온` 마속 같은 문제인물은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읍참마속`은 당분간 묘책으로 작동하기 어려워 보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동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정윤회 문건` 파동이 현 정권에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다는 사실 한 가지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급락하고, `정윤회 문건`파동을 국정농단으로 인식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어떤 혜안으로 난국을 헤쳐 갈지 알 수 없지만, 결코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여론의 흐름으로 볼 때, `검찰`에 맡기는 것 외에 난마를 단칼에 풀어헤칠 극적인 `정치적` 비법을 찾아내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정치권의 위험한 `청백전`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조마조마하다. 한겨울에 뜬금없이 쏟아지는 천둥 비바람에 다들 정신이 아뜩하다. 경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아우성인데, 여야 정치권은 청와대발 문건파동 하나를 신호탄 삼아 또다시 `진흙탕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편이 어느 쪽인지 하루빨리 가려지길 고대한다. `문고리`가 문제가 아니라, 유리 쪽창 하나 없는 불투명한 `문짝`이 더 문제라는 지적에 자꾸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좋은 사람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입 속에 있던 밥까지 뱉으며 쫓아나갔다는 주나라 제상 `주공`의 지혜가 그립다.

2014-12-09

용(龍)의 `발톱`

▲ 안재휘 서울본부장중국 춘추시대에 월(越)나라는 오(吳)나라를 멸한 뒤로 눈부신 성장을 이룩했다. 그 배경에는 명제상 범려와 대부 문종(文種)이 있었다. 전쟁이 끝난 뒤, 용의 발톱이 지닌 속성을 꿰뚫어본 범려는 월왕 구천(勾踐)의 만류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월나라를 떠나 생존을 도모한다. 뿐만 아니라 범려는 문종에게도 `잡을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화살은 사라지고, 토끼를 다 잡고나면 사냥개는 잡아먹는 법(飛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이라는 내용의 경고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문종은 이를 반신반의하며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월왕 구천으로부터 속루검을 받아 자결하기에 이르고 만다. 노자의 도덕경 제9장에는 `공을 이룬 뒤에는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功遂身退)`라는 말이 나온다. 현대정치사에 있어서도 정치지도자들이 선거가 끝난 뒤에 공신들을 챙겨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측근만을 기용하는 근시안적인 용인술을 탐닉하다가 인사를 망치고 민심을 잃어 정치적 곤경에 처한 사례가 드물지 않다. 이런 현상의 원인을 놓고 전문가들은 `사냥`의 재능과 `정책수행` 능력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12년 만에 새해예산안이 법정시한을 지켜 처리가 된다는 희소식이 번져가는 연말 정국 한가운데 지축을 강타하는 괄목할만한 폭음이 터졌다. 그동안 온갖 풍설과 논란의 핵심에 자리해온 정윤회 씨를 둘러싼 권력다툼 내막이 담긴 청와대 동향보고서 문건이 언론을 통해 폭로된 것이다. 폭로된 문건의 내용이 워낙 강력한 정치적 휘발성을 품고 있다 보니 청와대가 진지하게 설명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지금까지 진행되는 과정들을 살펴볼 때 일단 문건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는 별반 이견이 없는 듯하다. 다만 문건에 드러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보고서 전후좌우를 둘러싼 역학관계가 어찌되는지 등등 석명돼야 할 요소들이 적지 않다. 만약, 폭로된 문건의 내용대로 무관(無官)의 정윤회 씨와 십상시(十常侍)로 명명된 문고리권력의 막강한 인물들이 권력을 지니고 암투의 한복판에 있어왔다면 이는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따지고 보면, 역대 어느 정권도 사적인 인연으로 맺어진 측근 인재들이 가까이에서 문고리권력을 장악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통치기간에 자신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면서 보좌하여 정책을 만들고 상황판단을 도와주는 사람들을 측근들로 구성하는 것이 시빗거리가 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혼신의 노력을 다해도 태부족할 위치에 있으면서, 자기들끼리 이전투구의 권력다툼을 빚으며 본말을 뒤집어왔다면 그것은 결코 문제가 아닐 수 없다.`정윤회 동향보고` 문건 폭로사건은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첫째는 철저해야 할 청와대의 보안 관리에 대한 심각한 우려다. 청와대 내부문건이 유출돼 나돌다가 기자의 손에 들어간 정황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박 대통령의 지적처럼 `국기문란`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둘째는 문건에 적시된 대로 `비선(非線)`이 실세가 되어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암투를 벌였는지 여부다. 이제 대한민국의 정권이 그런 식으로 국정을 끌고 간다는 것은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청와대 안에서 정윤회 계열과 박지만 계열이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맥락없는 풍설이 시나브로 나돌고 있는 현실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차제에 모든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 박근혜정부의 진정한 성공을 위해서는 시대에 맞지 않는 사람, 무능한 측근들 다 물리치고 아예 새 판을 짜는 게 어쩌면 더 좋을 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꽉 막혀있는 듯한 `불통`의 이미지를 훌훌 벗고 사통팔달 `소통`이 만발하는 그런 분위기로 새출발하면 어떨까. `용의 발톱`을 보고 그것을 보았다고 외친 자에게 허물을 덧씌우는 일에만 몰두할 때는 분명 아니다.

2014-12-02

`때 밀기`로는 `개헌` 못 한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이재오 의원은 여전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그는 소탈한 이미지 그대로, 거침없이 소신을 내뱉는 당당한 모습 그대로 과거와 현재의 정치이슈에 대한 생각들을 명쾌하게 토로했다. 개헌의 당위성을 설명할 때는 `전도사`라는 별명답게 선명한 논리로 현행 헌법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콕콕 짚었다. `4대강` 문제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논조로 사업 자체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다만 공사시행 과정에서 부조리가 있었다면 그것을 파헤치는 것에 대해서 시비할 이유는 결코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경제회생 정책드라이브에 걸림돌이 될 것을 저어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거부감에 가로막혀 잠시 주춤거리고 있지만, `개헌`은 여전히 활화산이다. 몸에 맞지 않는 낡은 양복처럼, 현행 헌법이 숱한 모순을 품고 있다는 지적은 그르지 않다. 고질적 비효율을 견인하고 있는 권력구조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옳다. 속속들이 중앙집권적 선입관에 찌든 헌법의 정신 역시 시대흐름에 맞게 지방분권을 명료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혁신돼야 한다.개헌론을 주창하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함으로써 폐단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맨 앞에 내세운다. `승자독식`이 빚어내는 대통령 권한집중이 정치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비판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장직속 헌법자문위원회`가 지난 5월 말 내놓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부터 그렇다. 155명으로 구성된 개헌추진국회의원모임이나 이재오 의원이 제시하고 있는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역시 그런 전제를 함유한다.`청와대의 힘을 빼고 국회의 권력을 늘리는` 쪽으로 디자인된 개헌안들을 살펴보던 국민들의 인식은 문득 `국회의 수준`에 대한 회의(懷疑)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우리 정치는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쏠림 못지않게, 갖가지 구태의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의도 정치에 대한 고민을 함께 안고 있다. 꼴불견 구닥다리 정치문화를 혁신하지 않고 국회의 권력을 대폭 증강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러다가 혹여 국민들이 `고양이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난` 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계심이 일고 있다.아이러니컬하게도, 작금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개헌론`이 이상한 부메랑이 되어 `국회 혁신`에 대한 국민들의 촉각을 모아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반성과 혁신약속`헛구호로 위기국면을 모면해온 정당정치에 대해 민심이 드디어 두 눈을 부릅뜨고 톺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미묘한 시점에, 이준석 전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새바위) 위원장이 현 김문수 보수혁신위원회의 활동과 김무성 대표의 혁신안에 매서운 돌직구를 날려 화제다.이 전 위원장은 한 언론에서 김문수 위원장의 무노동 무임금, 출판기념회 금지, 세비 동결 등의 혁신안에 대해 “버라이어티식인데 노회찬 (정의당) 의원 표현대로 (뼈를 깎지 않고) `때를 미는 수준`, 이런 게 가능할 것 같다”고 일갈했다. 또 김무성 대표의 `보수 혁신` 방안에 대해서도 “비행기 이코노미석 탑승 등 직접 제시한 안들이 `비누칠`하는 수준”이라고 평가절하했다.싫든 좋든, `개헌`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혁신`이 선행되거나 최소한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기류가 형성돼가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미더움을 키우지 않고 국회의 권력만을 키우는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불발탄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제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먼저 나서서 명후공히 환골탈태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지 않는 한, 그 어떤 정치적 어젠다도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 `때 밀기`나 `비누칠` 정도의 시늉으로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의 분권형 `개헌`을 따르리라고 보는 것은 우매한 착각이다.

2014-11-25

`증세 없는 복지`, 그 새빨간 거짓말

▲ 안재휘 서울본부장5년여 전인 2009년 7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하여 방문했던 스웨덴 스톡홀름은 명성 그대로 동화 같은 도시였다. 청정 바다를 끼고 있는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건물과 가로의 풍경은 마치 명화(名畵)처럼 강력한 예술향기를 풍겼다. 스톡홀름은, 국가예산 3분의 1을 사회복지비용으로 지출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들의 삶을 온전히 보장해주는 대표적인 복지국가 스웨덴을 무한정 부럽게 하는 아름다운 수도였다.2014년 정기국회 마무리를 저만큼 앞둔 여의도 정치권이 예산부족으로 위기에 빠진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놓고 격한 논쟁에 빠졌다. 새누리당은 `무상보육`을 지켜내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무상급식`을 옹호하느라고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번에도 영락없이, 지방자치단체들은 `고래싸움에 등 터진 초라한 새우`꼴로 전락하고 있다.`세금인상`은 정치인들이 입줄에 올리기 가장 두려워하는 금기어(禁忌語)가 된지 오래다. 정치인들은 `증세론`을 말하는 순간 정치생명이 끝나리라는 뿌리 깊은 위기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동안 우리 정치권에서 `복지론`이 좀처럼 이슈로 떠오르지 못하게 하는 압력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어느 때부터인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 앞으로 돌려세울 마약처럼 `공짜복지` 카드를 마구 써먹기 시작했다.먼저 시작한 쪽은 진보세력이다. 근년 가장 정치권을 달궜던 복지 문제는 학생들의 `무료급식`이었다. 이 논란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자진사퇴를 불러올 정도로 큰 파장을 낳았다. 결국, 국민정서의 흐름을 간파한 보수세력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슬금슬금 따라갔다. 보수정당 후보는 한술 더 떠서 `무료보육`까지 과감하게 내걸어 승세를 일궈냈다.계산기를 제 아무리 여러 번 두드린들 잔고가 거덜날 게 빤한 날라리 `공짜복지`공약을 들고 뭇 정치인들이 잘도 우려먹은 후폭풍은 영락없이 닥쳐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미 여러 양심인사들이 `공짜`의 위험을 거론했지만, 정치패들의 망국적 선동 앞에 번번이 맥을 추지 못했다. 휘둘리는 국민들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는커녕 군중심리의 맹점을 파고들어 표심을 훔친 정치꾼들의 허물이 백배천배 더 크다.밑 빠진 독처럼 난감해질 곳간을 어찌할 거냐는 물음에 보수정당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못 거둔 세금을 낱낱이 찾아 받아내면 된다고 했다. 진보정당은 오랫동안 유일한 특효약으로 우려먹은 `부자감세 철회`카드를 해법으로 강변했다. 도대체 정치권의 계산기는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판판이 그렇게 엉터리 계산만을 해댔을까. 말도 안 되는 예측 수치에다가 수려한 말솜씨 섞어 얼버무리는 그들의 선동 장난질에 우리 무구한 유권자들만 줄창 놀아난 꼴은 아닐까.`보편적 복지`를 주창하는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을 모델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적인 복지국가들의 국민 담세율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궤변이거나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 스웨덴의 조세수입은 GDP의 45.8%다. 과거 경기 침체가 극심했을 때는 세금 비율이 75%에 육박한 때도 있었다. 스톡홀름의 아름다움과 국민들의 행복은 결코 `공짜복지`의 과실이 아니다.이제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은 `증세 불가피성`을 커밍아웃해야 한다. 더 이상 유권자들을 농락하지 말고 더 이상 거짓말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스웨덴 국회의사당 관계자에게 국민들이 높은 세금을 기꺼이 감당해주는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국민들이 국가재정의 `투명성`과 정치인들의 `청렴성`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스웨덴 국회의장실 크기는 딱 우리나라 도청 국장실 크기만 했다. 아니 그 보다도 더 소박해 보였다.

2014-11-18

독도시설 중단, 정말 `나쁜` 선택

▲ 안재휘 서울본부장광복 67주년을 앞둔 지난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었던 이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거센 논란이 일었다. 통수권자가 자국의 땅을 밟은 일이 나라 안에서 갑론을박되는 부끄러운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 청와대는 “`지방시찰`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행에 대해 적게는 66.8%(리얼미터)에서 많게는 84.7%(한국리서치)가 지지를 나타냈다. `보수`와 `진보`로 쫙 갈려 정치판 흉내를 내고 있는 언론들은 찬반으로 갈려 격론들을 쏟아냈다. 보수언론들은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대해 `잘했다`는 칭찬과 더불어 일본의 반발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을 주문했다. 그러나 진보언론들은 일본의 `분쟁지역화`전략에 놀아났느니, 국면전환을 위한 졸속행보라느니 난도질 치며 비난 퍼붓기에 열중했다. `독도`의 눈물마저, 이념으로 떡칠된 유치한 청백전 마당에 정쟁의 희생물로 내동댕이친 우리의 참상을 교활한 이웃나라 일본은 맘껏 비웃었다.정부가 일본의 거듭된 독도 영유권 주장에 맞서 지난 2008년 내놓은 대책의 하나인 `독도입도지원센터`건립과 관련, 시설공사 입찰공고를 열흘 만에 갑자기 거둬들이는 등 사실상 백지화했다. 일본 관방장관 스가 요시히데(菅義偉)는 기다렸다는 듯이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여러 레벨에서 주장해왔기 때문에 건설계획이 중단된 것”이라고 뽐내듯 말했다.작금 최악의 한일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일본군 성노예, 독도 등 양국 사이에 놓인 현안들에 대한 일본의 후안무치한 도발 때문이다. 극우세력들을 지지기반으로 하고 있는 아베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 문제들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면서 끊임없이 덧나고 악화된 성격의 갈등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 정부의 뜬금없는 선택은 일본이 모종의 중대한 조건을 은밀히 내건 여파가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부른다.아무리 미워도, 일본이 함께 가야할 이웃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랜 냉동기를 맞고 있는 한일관계를 서둘러 해동해내야 할 막중한 책임을 걸머진 박근혜정부의 부담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6년씩이나 기정사실화돼온 입도지원센터 건립을 하루아침에 뒤엎은 결정은 일본에게 `가장 나쁜 신호`를 주었다는 점에서 최악의 정책미스로 읽힌다.이제 우리 정부가 시설공사를 당초계획대로 추진하겠다고 또 뒤집으면, 일본은 그 전보다 훨씬 더 강한 반발을 노골화할 게 분명하다. 기존 계획대로 추진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심각한 외교적 마찰이 일어날 게 빤하여, 그러잖아도 갈팡질팡 외교적 망신을 자청해온 `독도`정책이 아주 만신창이가 될 공산이 크다. 아무리 곱씹어 봐도, 정부의 이번 정책결정은 정말 섣부른 선택이었다.헛김 빠지는 현상은 이번에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진보언론이 사설을 통해 정부의 선택에 모처럼 박수를 치며, `한국 외교의 대참사`·`굴욕 외교`라는 야당의 비판을 거꾸로 씹어댄다.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은 종래의 “`분쟁지역화`전략에 놀아난다”는 논리를 또 다시 동원해 입도지원시설 반대주장을 펼친다.정부의 정책변경이 만일 `천려일실(千慮一失)`의 실수라면 굴욕적 취소를 당장 취소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독도입도지원센터는 우리 영토에서 하는 `국민편의시설 공사`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선언해야 마땅할 것이다.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표현처럼, “독도는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한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현장이며 민족자존의 상징”이다. 불과 며칠 사이, 새로운 이슈에 떠밀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국민들의 관심이 가슴아프다.

2014-11-11

`폭탄 돌리기` 정치의 막장

▲ 안재휘 서울본부장“연금 재정수지 부족액이 현정부 15조, 차기정부 33조, 차차기정부 53조원 등 시간이 흐를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번에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484조원의 연금충당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 1인당 945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개혁을) 못하면 미래세대에 고스란히 떠넘기게 되는 것이다. 싫어도 해야 한다”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의 브리핑엔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절절이 묻어났다. 현재의 상황과 향후 예측들을 세세히 훑다보면 공무원연금개혁 문제의 절박함은 곧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노후보장`이라는 하나의 희망을 위안삼아 온갖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나랏일의 우마지로(牛馬之勞)를 감당해온 공무원들의 애환을 헤아려보면 결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작금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20년 전부터 예견돼오던 암종(癌腫)이 발작할 적마다 소독약이나 대충 바르고 덮어둔 채 살아온 세월의 어리석음에 대한 처절한 업보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한 숱한 정치인들이 미래의 재정건강을 팔아 현재의 영화를 만끽해온 위험한 외상장부인 셈이다. `폭탄 돌리기`를 탐닉한 정치인들의 비겁한 정략들이 새록새록 얄미워진다.물론, 그 동안 공무원연금 개혁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더러 개혁문제를 주물럭거렸지만 늘 미완에 그쳤고, 섣불리 건드려 오히려 암증(癌症)을 악화시킨 사례도 있다. 연금재정이 바닥났던 2000년 정부가 개혁에 나섰으나 조직적인 반발에 실패하면서 도리어 국민의 혈세로 적자를 메워주는 보조금 제도가 도입됐다. 그 뒤로 정부가 공무원연금에 쏟아 부은 보조금은 무려 28조원이다. 2007년과 2009년에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손질한다고 움직였지만 국민연금만 급여율을 60%에서 40%로 낮추는 개혁이 단행됐을 뿐, 공무원노조의 서슬에 가로막혀 기존 공무원연금은 손도 대지 못했다.당분간 선거가 없으니 해묵은 이 과제를 해결하는데 더 없는 적기라는 논리와, 더 이상 수술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반대할 명분은 없을 것이다. 청와대가 제시하고 있는 시한인 연말을 넘어서 내년 봄이 지나도록 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면 2016년 4월 총선을 앞둔 100만 공무원의 정치적 파워에 가로막혀 또다시 망국적 `폭탄 돌리기`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청와대와 여당의 전략은 공무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고취하면서 애국심을 호소하는 것 외에 아직 특별한 내용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여권이 군대식으로 밀어 붙인다”는 비판과 함께 `부담을 늘리고 혜택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주장을 흘리거나, `공무원들과 대화하라`는 하나마나한 충고나 던지고 있다.공무원연금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정략의 재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안을 다 꺼내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방법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일찍이 연금학회는 연금납입액 43% 인상과 수령액 34% 감축안을 제시해놓고 있다. 여당의 안은 이미 나왔고, 안전행정부의 안도 곧 나온다 하니 야당도 `선문답`만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안을 내놓아야 한다.공무원단체들의 `총궐기대회`에 대해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분노를 넘어서 대안을 내놓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감당 못할 연금에 짓눌려 비참을 초래한 그리스와 디트로이트의 망령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든지 모두가 이성적인 접근으로 지금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번번이, 암종 위에다가 눈에 잘 띄는 빨간 머큐로크롬 잔뜩 발라놓고 정치적 이득만 챙긴 정치인들 다 어디 갔나? 제발 다시는 `폭탄 돌리기` 따위는 꿈꾸지 마시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2014-11-04

`나 니들 시러`

▲ 안재휘 서울본부장우리 국민들의 정치염오증(政治厭惡症)은 개선될 가능성이 있을까. 작금 정치인들의 행태를 뜯어보면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다짐은 매번 허언(虛言)으로 끝나고, 볼썽사나운 구닥다리 언동들만 굳은살처럼 고착화되는 모양새다. `개헌`을 추진하는 국회의원들마저 `정치개혁은 않고 권세만 키우려는` 저질정치꾼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짙어져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의정치의 꽃`이라고 불리는 국회의 국정감사는 우여곡절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상 첫 국정감사는 제헌 헌법 제43조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 하며,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과 국회법 제72조, 제73조에 근거, 지난 1949년 12월 2일 제5회 국회 제56차 본회의 의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24년간 실시되던 국정감사는 제8대 국회를 끝으로, 1972년 10·17 유신조치로 국회가 해산되고 제7차 개헌에서 국정감사조항이 삭제되면서 정치사에서 사라진다. 그 이후 제9차 개헌에서 국정감사가 부활된 후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 다시 실시됐다. 16년 만에 되살아난 국정감사는 한동안 국민들로부터 찬사와 박수를 받아온 독특한 정치행위였다.세월호법 협상으로 뒤늦게 시작된 올 국정감사가 27일 12개 상임위별 종합감사를 마지막으로 21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매년 국정감사가 실시될 적마다 거론되는 문제지만, 이번 국감 역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구태`를 청산하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국감장을 한사코 자신의 원맨쇼로 만들어가려는 의원들의 발싸심이 문제였다.가장 눈에 거슬리는 대목은 국민들이 정말 궁금해 하는 정책내용을 소상히 밝혀내려는 신실한 자세와 동떨어진 고압적인 `갑질` 구습이었다. 막무가내로 무더기 채택한 증인들을 일단 `잠재 범법자`로 몰아세우면서 제 말만 쏟아놓는 풍토 역시 변함없었다. 증인들의 답변시간이 평균 3분여에 그쳤다는 한 통계자료는 국회의원들의 `낯내기 식` 국감행태의 실체를 여실히 증명한다.`청문회`와 마찬가지로, `국정감사`에서 가장 답답한 장면은 국회의원들이 도무지 증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장연설로 자기주장만 늘어놓거나, 피감자가 말을 하려고 하면 거칠게 가로막고 나서서 호통을 치는 낡은 풍경이 예사로 펼쳐졌다. 종일을 허비하며 출석한 증인들에게 `시간이 없다`며 벙어리놀음을 강요하는 무참한 일들이 어김없이 일어났다.국정을 고민하는 직분에 들이댄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어설픈 족쇄에도 반론을 펴지 못할 정도로 초라해진 국회의원 군상들. 관행이던 `정치인 출판기념회` 모금의 참괴한 민낯 폭로, 출장을 빙자한 해외유람, 검은 돈을 챙겼다가 쇠고랑을 차는 선량들, 취하여 대리운전기사를 두들겨 패는 일에 연루된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의 추태는 한도 끝도 없이 까발려지고 있다.10월의 마지막 휴일 오후 국회에서는 기상천외한 해프닝이 일어났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 영상학과 대학생 두 명이 본관에 접근해 검은색 래커로 기둥에다 `나 니들 시러`라는 낙서를 했다가 붙잡혔다. `자유로움`을 주제로 한 광고영상 과제물을 수행하기 위해 낙서를 했다는 학생들은 “죄가 되는 줄 몰랐다”고 진술해 허탈감을 던졌다.네티즌들의 반응은 정치를 향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깊게 반영한다. `속 시원합니다`, `다른 기둥에다 낙서하기 전에 빨리 풀어줘라`, `최고의 글귀다. 아름답다` ……. 대학생들은 숙제를 하기 위해 그랬다는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숙제를 하기 위해 어떤 치열한 노력을 하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아니, 국민들은 정작 정치인들이 `정치개혁` 숙제들을 할 생각이 있기나 한 것인지 지금 몹시도 궁금해 하고 있다.

2014-10-28

박 대통령의 `개헌`시계

▲ 안재휘 서울본부장선진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출해낼 `시대정신`인가, 아니면 모든 정치이슈를 삼켜버려 국가발전을 가로막을 `블랙홀`인가. 정치권에서 촉발된 `개헌`논쟁에 연일 새로운 변수가 출몰하면서 광폭의 파고를 예고하고 있다. 개헌안 통과 의결정족수를 넘는 200여명의 국회의원들이 동의하고 있다고도 하고, 국민들의 70%가 개헌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연초에 이어 또 다시 `블랙홀`을 우려하며 반대의사를 재확인했다. 여권 대권주자 으뜸반열에 올라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개헌론`을 놓고 냉탕·온탕을 들락거렸다. 김 대표는 중국 출장 중에 `개헌 봇물론`을 폈다가, 반향에 놀라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다음에 나타난 현상은 더욱 복잡해졌다. 친박계 정치인들은 김 대표의 돌출행동에 부글부글 끓고 있는 반면, `개헌 봇물론`에 쌍수를 들어 환영하던 새정치민주연합 쪽은 발언을 곧바로 접은 김 대표의 처신을 맹폭하고 있다.정치 전문가들 중에는 김무성 대표의 `봇물론` 해프닝을 `실수`가 아닌 정치고수의 `치고 빠지기 식` 술수로 해석하는 측이 다수다. 결코 정치 햇병아리가 아닌 그가 `실수`했을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잠시만 돌아보면 정치권의 `개헌론`은 그 뿌리가 만만찮다. 강창희 전 국회의장은 대통령이 올 연두기자회견에서 개헌 반대 의사를 천명했음에도 신년사를 통해 약속한 `국회의장직속 헌법자문위원회`를 발족해 5월 말 이원집정제(분권형 대통령) 등 1천500쪽짜리 최종 보고서를 발표했다.새누리당 안에서는 `개헌 시기`에서부터 견해가 엇갈린다. 내년에 해야 한다느니, 그 이후로 미뤄야 한다느니 구구각각이다. 통치구조 개편 방향을 두고도 정치권에서는 견해가 맞선다. 이원집정제로 가야한다느니,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가야 한다느니 여야를 넘나드는 설왕설래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잠룡들을 비롯한 유력 정치인들의 다양한 입장 차는 `블랙홀` 우려를 키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일부에서는 박 대통령이 찬물을 끼얹는 바람에 물젖은 장작이 돼버린 `개헌론`에 아무리 불쏘시개를 지핀들 `개헌정국`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헌론`은 날이 갈수록 기세를 키워갈 공산이 크다. 얽히고 설킨 계파갈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는 난국돌파를 위해 `개헌론`보다 더 좋은 호재(好材)가 없다. 여당 내에서도 대통령의 브레이크를 의식해 일단 수위조절에 들어간 `개헌론` 주창자들이 목소리를 아주 죽인 것은 아니다.박근혜 대통령이 `개헌정국`을 두려워하는 것은 일단 개헌론 불길이 번지기 시작하면, 모든 정치의제를 삼켜버려 자신의 국정운영 설계도를 펼쳐갈 공간이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는 걱정 때문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그런 우려는 본의 아니게 `호헌론`으로 오해될 여지를 남긴다. 작금의 국정난제들을 감안한다해도, 같은 이유를 전제한다면 다음 그 어떤 대통령도 `개헌`을 추진할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냉정하게 말해서, 박 대통령이 `개헌론`태풍을 차단하는 일은 이미 버거워진 것 같다. `지금은 아니다`라는 게 `블랙홀`의 논리인 만큼, 오히려 대통령이 분명하게 개헌 스케줄을 밝히고 국정협조를 청하는 것이 현명한 대응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대선기간인 지난 2012년 11월 6일 `4년 중임제`를 언급하면서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개헌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정기국회` 이후가 개헌의 적기가 아니라면 언제가 적기인가? 대다수의 정치인들은 진작부터 박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박 대통령의 `개헌`시계가 어디 쯤 가고 있는지, 어떻게 설정돼 있는지 알고 싶어 한다.

2014-10-21

`남남갈등(南南葛藤)`은 안 된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삐라`는 전단(傳單), 또는 포스터를 뜻하는 영어 `빌(bill)`의 일본어식 발음으로 시작돼 상용어가 됐다. 삐라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위선적 행동을 일삼는 교황을 고발한 그림을 뿌린 것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도 전한다. 6.25전쟁 중 남북 간 치열했던 `삐라전쟁(Leaflet War)`은 종전 후에도 한동안 지속됐다. 많은 중년들이 어린 시절 동네 야산에서 북한체제를 선전하는 조악한 삐라를 주워 파출소에 갖다 주고 포상으로 공책 같은 학용품을 받았던 기억을 갖고 있다. 한반도의 정세기상 변덕은 그야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북한 3거두가 아시안게임 끝물에 별안간 비행기를 타고 내려와 대한민국을 온통 헷갈리게 한 기억이 채 갈무리되기도 전에 저들은 NLL에서 한바탕, 연천에서 또다시 한바탕 분탕질을 쳤다. 헤아려보니 3거두의 방남(訪南) 쇼가 불현듯 고도의 사기행각처럼 느껴져 불쾌해진다. 왠지 저들의 음험한 시나리오에 또 한 번 속절없이 당한 느낌이다.인천 아시안게임 마지막 날에 김정은이 허락했다는 1호기를 타고 인천에 나타난 북한 3거두가 정말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정치인들이 대통령과 북한 3거두와의 면담여부를 놓고 만나라, 말아라 잘 난 소리들을 마구 겨루고 있을 때부터 보수와 진보의 목소리는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북한 3거두는 박근혜 대통령의 면담용의를 전달받고도 상면을 거절하고 그냥 평양으로 올라가버려 청와대와 정치권을 머쓱하게 만들었다.미구에 2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채 여물기도 전에 북한은 서해 NLL을 침범해 양측 군함이 위협사격을 주고받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잇달아 탈북자단체가 북한으로 풍선에 매달아 날려 보내는 삐라를 시비하여 14.5㎜ 고사총을 마구 쏘아대는 도발을 저질렀다.저들 핵심 3인방이 느닷없이 인천으로 내려와 조만간 장관급회담을 다시 열자며 손 내밀어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자고 나선 것은 두문불출 김정은의 `무탈`을 안팎 세상에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해석은 옳은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돌출행보의 노림수가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공갈의 볼륨을 키워가며 한도 끝도 없이 남한사람들의 안위를 겁박하는 해묵은 행태 앞에 우리는 매번 이렇듯 무기력을 느낀다.주린 백성들 나 몰라라 있는 돈 없는 돈 긁어 무기를 사들고 협박을 일삼는 못된 버릇에 우리는 두 가지 대처법을 놓고 긴긴 `남남갈등(南南葛藤)`의 미로에 다시 빠져들었다. 생떼를 들어주면 점점 더 고약해지니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고, 폭력배에게 얻어맞느니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일단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주장도 아주 그르지 않다.이쯤에서 저들의 생떼도 들어주지 않고, 평화도 유지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은 없을까. 공중파 방송을 통해 입에 담지도 못할 용어를 동원해 매번 우리 대통령에게 무참히 쌍욕을 해대는 저들이 탈북자단체들이 보내는 삐라에 광분하는 것을 보면 그 내용이 아프긴 아픈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저희들도 삐라 날리면 될 일을 왜 그렇게 악악거리고 무력까지 동원할까. 저들이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그 모양인지, 왜 그러는지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몰상식한 사람들이란 언제나 이성에 맞게 대응하기가 어렵다. 상대방이 결국 흔들리는 북한민심을 다잡고자 내부용으로 그렇게 음모를 만들고 사고를 치는 줄 뻔히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욱 더 주도면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소나기를 잠시 피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정말 중요한 일은 저들이 노리는 고도의 전략인 `남남갈등 유발` 흉계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되, 유연하게 가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전략적인 사고와 적절한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4-10-14

집요한 일본, 속수무책의 한국

▲ 안재휘 서울본부장“반일감정은 한국인의 정체성이다. 한국사회에서 반일감정을 없애는 게 불가능하다면 서로 거리를 두자. 일본과 한국은 단교하자.”일본에서 `한국인을 죽이자`와 같은 극단 증오발언을 앞세우며 혐한(嫌韓)시위를 끊임없이 주도하고 있는 극우`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재특회)`의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라는 인물이 드디어 한일 간의 `국교단절`을 입에 올렸다. 그는 한국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적, 인종을 특정해 욕을 한다면 한국인들이 더 문제 아닌가? 일본, 일본인을 특정해서 처참하게 일본을 비판하지 않느냐?”면서 이같이 말했다.올해 42세로 알려진 `사쿠라이 마코토`는 일본 후쿠오카 현 기타큐슈 시 야하타니시 구 출신으로서 사실상 나이와 성명부터 불명확한 비밀스러운 인물이다. 성장과정에서는 전혀 혐한운동가로서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 그는 누리꾼 100여명으로 `재특회`를 시작해 7년 만에 전국 33개 지부 1만5천명 규모의 대규모 조직으로 키우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저는 매춘부라고 생각한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사쿠라이 마코토`의 한일단교(韓日斷交) 패악발언이 알려진 것과 엇비슷한 시점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망언이 또 불거졌다. 아베 총리는 지난 3월 중의원 예산위원회 답변에서 “일본이 국가적으로 (여성을) 성노예로 삼았다는 중상(中傷)이 세계에 퍼지고 있다”면서 “(아사히신문의) 오보로 그런 상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전쟁 때 제주도에서 여성을 강제로 끌고 왔다`는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 사망) 씨의 증언을 다룬 1982년 9월자 기사를 올해 8월 초 취소했다.일본의 보수·우익 세력 사이에서는 `아사히신문이 허위 증언을 보도한 탓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집권 자민당은 아사히신문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과거보도 일부를 취소한 것과 관련,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대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요시다 씨의 증언 보도가 일본의 외교정책에 영향을 끼쳤으므로, 정부가 어떻게 일본의 명예회복을 도모할지 검토하겠다는 것이다.일련의 흐름으로 볼 때 일본은 이제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남의 땅을 집어삼키려는 흉계를 행동으로 실천하려는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극우단체는 한국과의 외교단절을 입에 올리고 있고, 정치권은 이미 죽은 사람의 증언기사가 취소된 것을 기화로 `성노예`역사 모두를 뒤집으려는 교묘한 작전에 돌입했다.문제는 기막힌 일을 거듭거듭 당하면서 어느새 굳어져가고 있는 우리의 감각마비 현상과 진퇴양난의 현실이다. 일본의 우익단체가 말썽을 부린 일이 부지기수고, 일본의 정치인들의 망발이 항다반사이다 보니 그야말로 만성이 됐다. 예감컨대, `성노예` 역사를 지우려는 저들의 유치한 움직임이 한바탕 여론을 뒤흔든 뒤에는 반드시 `독도`침탈의 새로운 마각을 드러낼 것이다. `역사를 저희들이 어떻게 바꿔?`하는 믿음으로 콧방귀나 뀌고, `총칼 들고 지키고 앉아있는 우리 땅 독도를 제 놈들이 어쩔 거야?`하고 팔짱끼고 앉아 있기만 하면 무사할 것인가? 정말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갈 것인가?저들의 음모를 막아낼 상상력이 절실한 계절이다. 저들이 어떻게 나오든 역사를, 국토를 굳건히 지켜갈 딴딴한 논리와 증거들을 다져 추호의 훼손도 허하지 않을 무엇인가를 서둘러 구축해가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움직임이 또다시 야릇해진 요즘, 우리는 우리의 주권을 지켜나갈 보다 명료한 기제들을 창안해나가야 한다. 수십 년 째, 일본의 도발을 기다렸다가 반박성명이나 하나 날리고 그냥저냥 견디며 지나가야 하는 속수무책의 현실이 안타깝다.

2014-10-07

`지방분권 개헌` 투쟁 나서야

▲ 안재휘 서울본부장“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 75%가 개헌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국민 대다수의 의견을 따라가는 게 소통이고 국민의 의견에 대해 반대로 하는 것이 불통이다.” `개헌전도사`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개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지난 1월 8일 당 최고중진회의에서 이렇게 작심발언을 한다. 그의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헌은 블랙홀처럼 다 빨아들이는 이슈다. 올해는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에만 집중하겠다”고 말한 지 이틀 밖에 안 된 시점에 나온 대응 형식이어서 논란을 빚었다.친박 좌장인 서청원 의원은 즉각 “개헌 문제보다도 국민이 먹고사는 경제문제에 중점을 둬야 하며, 금년에는 모두 다 같이 박근혜 정부를 팔 걷고 도울 때”라고 반박했다. 김무성 의원도 언론인터뷰에서 “이재오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았다”며 서 의원을 거들었다.같은 날 이재오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작은 충성을 행하면 곧 큰 충성의 적이 된다`는 뜻의 행소충 즉대충지적야(行小忠 則大忠之賊也)라는 한문 구절을 남겨 불편한 심경을 빗댔다. 중국고서 한비자에 나오는 이 글귀는 전쟁터에서 갈증을 느껴 물을 찾는 주인에게 물 대신 술을 바친 충성스러운 하인 때문에 결국 주인이 술에 취해 패전하게 됐다는 고사에서 나왔다.여야 정치인들 사이에서 `개헌론`이 심상찮은 기운을 품고 폭넓게 회자되고 있다. 국회의원 148명이 참여하는 `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이 1일 조찬을 시작으로 8개월 만에 기지개를 켤 모양이다. 이 모임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 포인트 개헌에 초점을 맞추고 `국민직선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골자로 한 조문화 작업까지 진행 중이라고 소문이 나 있다.앞서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는 지난 4월 2일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임기를 6년 단임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의 분권형 대통령제와 국회 양원제를 주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 자문 의견을 발표했다. 이 자문 안은 총리에 대한 국회의 불신임권을 부여하고, 국무총리의 신임요구를 국회가 부결한 경우 `국무총리 제청에 따른 대통령의 국회해산권`도 인정한 점이 눈에 띄었다.`개헌추진 국회의원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인들은 `제왕적 대통령제`에 의해 드러나는 `대통령무책임제`의 폐단을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다는 기본인식을 바탕으로 여야 정치인들 사이에 `개헌론`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되고 있다며 자신만만하다. 이 시점에 우리가 결코 간과하지 말아야 할 시대적 과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방분권 개헌`이다. 20년 지방자치의 역사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이미 `지방자치` 정신을 헌법적 가치의 핵심에 접합하지 않고서는 효과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있다.문제는 우리 정치권이나 지방정부에 `지방분권 개헌`을 추동할 넉넉한 힘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김관용 경북지사는 최근 한 언론인터뷰에서 “지방자치 20년인 지금까지 지방분권의 핵심 요소인 권력이양과 자원배분 모두 제대로 된 게 없다. 돈과 인사 등 지방의 운명을 여전히 중앙정부에서 틀어쥐고 있다. 지방자치는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있는 것과 같다”는 절박한 소회를 토로했다.세상의 그 어떤 권리도 거저 나누어지는 것은 없다는 진실은 동서고금의 역사가 일깨워주는 냉엄한 교훈이다. 아직은 잠룡들이 은인자중하고 있는 선거공백 기간을 적합한 타이밍으로 여기고 정치권에 불기 시작한 작금의 `개헌` 바람을 우리 지방자치의 위상을 크게 진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만들어야 한다. 정치권과 지방정부와 지역언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내고 실천에 나설 때다. `물`을 먹여야 할 위기의 순간에 `술`을 먹여 실패를 자초하는 우를 범해서는 정말 안 되지 않는가 그 말이다.

2014-09-30

`정종섭` 스타일

▲ 안재휘 서울본부장정치연설이나 법정에서의 변론에 효과를 올리기 위한 그리스·로마의 화법(話法) 연구에서 기원한 학문인 레토릭(Rhetoric)은 현대정치에서도 중요한 요소다. 절체절명의 정치적 고비에서 유력정치인의 절묘한 수사(修辭) 하나가 꼬인 정국을 기적처럼 풀어낸 사례들을 우리는 기억한다. 유권자들의 반응이 극도로 예민해지는 선거기간에는 촌철살인(寸鐵殺人)하는 말 한 마디가 표심의 향배를 결정짓는 주요변수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혀(Tongue)정치`에 대한 탐닉이 깊어지다 보면 저질 선동정치에 빠지는 망조(亡兆)로 치닫기 십상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정치가 `선동`인 건 맞지만, 동시에 `선동정치`가 영혼 없는 허접한 말장난으로 변질되면 대중을 속이는 일마저 금기로 여기지 않게 만든다. 역사 속에 등장했던 무수한 정치인들이 이 잔인한 이치를 미처 깨닫지 못해 유성처럼 짧은 명멸(明滅)의 비애를 맞았다. 그래서, 공자님의 `그 말을 좋게 하고 얼굴색을 잘 꾸미는 사람치고 인한 이가 드물다(巧言令色 鮮矣仁)`는 말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명언이다.얼마 전 만난 정종섭 안전행정부 장관은 솔직담백한 학자적 풍모를 잃지 않고 있었다. 장관 취임 두 달을 넘긴 그의 모습에는 개혁에 대한 의욕이 넘쳤고, 소신도 뚜렷했다. 기자들과 막걸리 잔이라도 놓고 앉아 허심탄회하게 교호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갖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막연하지만, 그의 스타일에서 유연하면서도 용이주도한 `소통` 느낌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내 최고 권위의 헌법학자로서 `초강성 개혁주의자`로 통하는 그를 발탁한 깊은 뜻이 설핏 읽혔다.며칠 사이 정 장관이 구설수에 올라 야당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다. 출입기자들과의 자리에서 “국회가 통치불능 상태”라면서 “내각제였다면 국회를 해산해야 할 상황”이라고 말한 것이 빌미가 됐다. 그 자리에서 정 장관은 증세 논란에 대해 “증세 없이 복지혜택을 확충하는 게 이 세상에 가능한가”라고 반문했고,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해서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단지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정 장관의 소신발언을 놓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본인이 아직도 헌법학자인지 착각하고 있다”고 힐난한다. 나아가 “빨리 대학으로 돌아가라”는 막말을 거쳐 “국회 모독 발언을 사과하고 즉시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로 증폭시키고 있다. 박 대통령의 `세비반납`언급과 정 장관의 발언은 시중에 나도는 화법과 일치하고, 내용 또한 국민여론과 합치한다. 이 나라 정치권에는 어쩌다가 대통령이나 장관이 민심을 대변하여 말을 한마디 할라치면 마치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길길이 뛰는 야릇한 풍조가 있다.정종섭 장관의 `국회비판`소동이 능력 있고 신념 뚜렷한 장관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를 향해 `학교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정치인들은 진작 그런 말을 할 자격을 잃었다. 세월호 사고 이후, `국가 개조`의 역사적 사명을 걸머진 핵심 장관으로서 정말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기득권층의 딴죽도 걷어차고 나아가는 옹골진 자신감과 강단이다. 지금 국민들의 진정한 감동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화려한 레토릭을 구사하는 `혀 정치`가 아니다. 비전을 가지고 활발히 소통하면서 꿋꿋이 소신을 지켜내는 `진정성` 하나다.정 장관은 취임이후 안중근 의사의 유묵에서 군(軍) 한 글자를 공(公) 자로 바꾼 `위국헌신공인본분(爲國獻身公人本分)`이라는 글귀를 즐겨 쓰고 있다. `일백 번 고쳐 죽더라도`굽히지 않겠다며 절개를 지켜낸 포은 정몽주 선생의 피를 대물림받은 그가,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도 눈 하나 끔쩍하지 않은 안중근 의사의 추상같은 충의까지 물려받아 소원대로 `대한민국 개조`의 큰 주춧돌을 놓는데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201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