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의 영웅전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드는 센세이셔널리즘은 무엇일까? 그것은 2016년 10월, 유엔 사무총장의 공로를 인정한 노벨 평화위원회가 반기문에게 노벨 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여세는 제19대 대통령 선거에 강력하게 이어진다.” KBS 아나운서이자 저술가인 이성민 박사는 저서 `반기문 대망론`에서 재미있는 가정(假定)을 내놓는다. 그는 반기문 대망론이 주목을 받고 있는 이유를 `한반도 통일문제가 남북의 국정현안은 물론 세계적인 핫이슈가 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반기문에 대한 국민들의 선망이 식지 않고 있다. 새해 들어 발표된 차기 대권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24.4%~38.7%를 기록하면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잠룡들은 각각 10%를 넘기지 못해 우열(優劣)의 의미를 상실하고 있을 정도다. 지난해 11월 4일 개인성명을 통해 “대선주자 여론조사를 포함한 국내정치 관련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밝힌 바 있는 반 총장은 새해 여론조사결과를 보고받고는 말없이 `씁쓸한 웃음`만 지었다는 전언이다.
여야 정치권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동작동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의례로 을미년 새해를 맞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새해 첫 일정으로 국립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하고 난 후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김 대표는 기자들에게 “올해부터는 우리부터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제일 먼저 참배하게 됐다. 기분이 되게 좋다”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문희상 위원장의 신년 국립묘지 참배는 여느 해와 다르지 않았다. 그는 참배 후 기자들과 만났을 때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까지 참배한 행보와 관련, “난 아직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할) 그런 용기가 없다”고 말했다. 문 위원장은 “모든 역사는 공과와 명암이 같이 있다”며 “이 전 대통령은 분명히 건국의 공이 있지만 10년 독재의 시발(始發) 아니냐. 역사적 평가는 후세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문 위원장의 발언은 변함없는 진보 야당의 협애(狹隘)한 인식을 오롯이 반영한다. 문 위원장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 보아도 그렇다. `역사적 평가는 후세사람들이 하는 것`이라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역사적 평가가 다 끝난 듯 행동하고 있으니 스스로 모순이다. 극성 지지층의 반발이 두려워서 `용기가 없다`고 했을 테지만, 구시대에 갇힌 `속 좁은` 진보정치인들의 한계를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된다.
친박 중진 7명만 초청해 송년 만찬을 가진 박 대통령의 처사에 대한 불만이 해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정부와 연일 각을 세우고 있는 이재오 의원은 청와대에 대해 “환골탈태해 `속 좁은 정치` 그만하라, 당을 시종 부리듯 해서는 안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이 연초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전화를 건 일을 놓고도 정치권에서는 `김무성 견제구`로 해석하는 축들이 있다. 그들은 현재 친박 쪽에 유력한 잠룡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굳이 이성민 박사의 주장이 아니더라도, `통일`을 준비하고 이룩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이 시대에 반기문 카드는 분명히 매력적이다. 그가 만일 `탈이념(脫理念)`의 기치를 높이 들고, `통 큰` 정치행보를 보인다면 그야말로 무적일 것이다. 아니, 지금 잠룡으로 회자되는 그 어느 인사라도 이념의 협곡, 패거리 정치의 뒤웅박을 홀연히 떨쳐 나와 `통 큰` 정치의 감동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레이스 양상은 달라질 것이다. `친박`은 되고 `비박`은 안 되는, `김대중`은 되고 `이승만`은 안 되는 옹졸한 정치의식으로는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