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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의 `선택과 집중`

등록일 2015-01-13 02:01 게재일 2015-01-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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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서울본부장

미국 대통령이 연초에 국가의 전반적인 상황을 분석ㆍ요약하여 기본정책을 설명하고 필요한 입법을 요청하는 것을`연두교서(Annual message)`라고 부른다. 1790년부터 시작된 미 대통령의 연두교서는 1912년까지 연설 대신 서신으로 발표됐지만 1913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 때부터 양원 합동회의에 대통령이 직접 출석, 연설로 연두교서를 밝히는 관행이 정착됐다. 1923년 캘빈 쿨리지 대통령의 연두교서 발표가 라디오로 처음 중계되었으며,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947년 처음으로 텔레비전 전파를 통해 연설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난 1964년에 처음 시작한 이래, 1967년까지 네 차례 국회에서 연설하는 연두교서를 발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1982년부터 1985년까지 국정연설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의 연두교서를 발표한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국민과의 TV대화`형식을 취했고,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춘추관에서 기자들의 질의에 답하는 방식의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전반에 대한 자신의 입장과 정책방향을 연설로 발표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두 번째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예견했던 대로, 회견이 끝나자마자 여야 정치권의 반응은 `극찬`과 `맹비판`으로 갈렸다. 청와대 `비선실세` 문건파동과 초유의 항명사태 등으로 얼룩진 위기 한복판에 있었으니, 대통령의 `용단`을 기대하는 국민들도 많았을 것이다. 인적 쇄신에 대한 기대치도 높고, 획기적인 소통 의지도 나오리라 고대하는 사람들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어서 `실망`의 눈초리가 상당하리라 여겨진다.

그러나 예년과 달리 기자들의 자유로운 질문에 성실하게 즉답하는 대통령의 자세와 내용에서 묻어나는 일종의 `자중자애`같은 것을 꿰뚫어 본다면, 결코 간단치 않은 대통령의 변화가 감지되는 회견이었다. 바로 대통령이 집권 3년차를 맞아 드디어 대탐대실(大貪大失)의 유혹에서 확실하게 벗어나 보인다는 점이다. 박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대통령으로서 남기고 싶은 업적으로 “경제활성화와 경제부흥, 평화통일 기반 구축”을 들었다.

어쩌면 소박해보이기까지 한 박 대통령의 언급은 임기 초 의욕에 넘쳐 너무 많은 의제들을 걸머지고 끙끙거리던 모습을 비로소 훌훌 벗어 던진 이미지여서 흥미롭다. 대개의 대통령들은 임기 5년의 기간을 잘못 계산하여 50년에도 다 못 이룰 거창한 계획들을 세우고 팡파르를 울린다. 그러나 불과 1~2년만 지나면 이런저런 돌발 사태들로 인해 추진동력을 잃고 좌충우돌하기 시작한다. 때로는 연일 터지는 `비리``부정`들을 수습하느라고 허우적거리다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앤리서치 배종찬 본부장이 한 기고문에서 밝힌 “박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인사·통합에서 실패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물론 박 대통령이 인사와 통합에서 성공하지 못한 근원을 더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은 `소통의 실패`에 닿는다. 박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나름대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야 정치권에도 소통노력을 해왔다면서 “야당으로부터 딱지를 맞았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그런 노력들이 여의치 않았음을 토로했다.

박 대통령이 새해의 화두, 임기 중 목표를 `경제`와 `통일`로 잡아서 정리한 것은 선택과 집중의 지혜가 읽힌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남은 3년은 그런 깨달음을 바탕으로 `성공한 정권`을 일궈가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다. 집권초기 과중한 설계도를 만들었다가 불과 10%도 달성하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라져간 역대 정권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배종찬 본부장은 기고문 결말에서 조금 더 욕심을 부린다. “`경제`와 `통일`이 역대 모든 정권에서 공을 들였던 상수라면 박 대통령의 비밀병기는 `반부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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