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이 한 일은 늘 옳다고 여기고, 옳지 않다면 객관적으로 `증명`해 보라는 식이죠.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면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비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령 북에 대한 비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북을 객관적으로 완전히 아는 것이 불가능한데, 그런 이유 때문에 북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에요.” 민주노동당을 탈당해 녹생당 당원이 된 작가 최희철은 4인 진보정당 평당원들의 대담서적인 `위기의 진보정당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통합진보당의 성향을 이렇게 말한다.
2014년 연말 정치권에서는 참으로 많은 격변이 일어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1년여 동안 심리를 계속해온 `통합진보당 해체` 청구소송에 대한 선고공판을 열어 `인용`결정을 내렸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은 통진당이 `대한민국을 미국과 외세에 예속된 천민적 자본주의 또는 식민지 반자본주의 사회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적시하고, `통진당은 전민항쟁과 저항권 행사 등 폭력에 의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했고, 이는 목적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고 또박또박 판시했다.
예상했던 대로, 헌재 결정 이후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한쪽은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찬사를 보내고, 다른 한쪽은 `민주주의의 사망`이라고 외친다. 검찰이 이정희 전 대표 등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가운데, 해산된 통합진보당 소속 전 의원 5명은 의원직까지 박탈한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낼 모양이다. 법무부는 통진당 지방의원 38명의 의원직도 박탈할 수 있는지 검토한 뒤 법적 대응을 이어갈 방침이어서 여진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역사 속에서, 한 가지 행동을 놓고 `충역(忠逆)`이 다퉈지는 경우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도대체 `민주주의`가 무엇이기에 21세기 대명천지에 똑같은 헌재 판결문을 놓고 한편에서는 `이겼다`고 흥분하고, 다른 한편은 `죽었다`고 악을 쓰는 것인가. 아무래도 교과서에 나오는 직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자유주의적·입헌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적·경제적민주주의 따위의 구분만으로는 판별이 안 되는, 또 다른 기준이 있는 모양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주의·주장·편의성에 맞춰서 `민주주의`를 따로따로 정의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국민의 관심은 해산된 통진당 인사들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집중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정책위원을 거쳐 지금은 노동당에 몸담고 있는 진보 칼럼니스트 남종석의 말에 아마도 그 답이 있을 것 같다. 그는 전제한 대담서적에서 이렇게 말한다. “환원적인 것이 자주파의 고질적 특징이에요. 공세적일 때는 항상 북한관련 쟁점이나 반미 같은 자신들의 전략적 과제를 전면에 내세우다가, 당이 대외적으로 공격받거나 사회적 정당성이 훼손되었을 때는 `민생`으로 돌아서는 경향 말입니다.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사건과 분당 사태 때도 그랬고, 이석기 사건 이후에도 그랬어요.”
헌법재판소는 우리 대한민국이 아직은 `종북(從北)`을 용인해도 괜찮을 만큼 여유롭지 않다는 상식을 증명해보였다. 이번 결정은 우리 사회가 그 어떤 사상의 일탈도 소화해낼 만큼 건강해져야 한다는 숙제를 동시에 남겼다. 북한 김정은은 핵무기를 치켜들고 3년 내에 적화통일을 하겠다는 흰소리를 뻥뻥 쳐대는 판국이다. `남한에서 암약하고 있는 남파간첩이나 자생적 종북세력이 수만 명은 족히 될 것`이라는 끔찍한 주장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민생`을 명분삼아 그럴듯한 조직을 만든 다음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 또 다른 이석기와 이정희, 황선, 윤기진, 신은미…. 괴물 확신범들을 잉태해갈 그들의 흑심을 놓치지 않고 밝은 눈으로 감시하는 일은 오로지 국민들의 몫이다. `종북`은 절대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