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오 의원은 여전했다.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그는 소탈한 이미지 그대로, 거침없이 소신을 내뱉는 당당한 모습 그대로 과거와 현재의 정치이슈에 대한 생각들을 명쾌하게 토로했다. 개헌의 당위성을 설명할 때는 `전도사`라는 별명답게 선명한 논리로 현행 헌법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콕콕 짚었다. `4대강` 문제에 대해서도 변함없는 논조로 사업 자체의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다만 공사시행 과정에서 부조리가 있었다면 그것을 파헤치는 것에 대해서 시비할 이유는 결코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경제회생 정책드라이브에 걸림돌이 될 것을 저어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한 거부감에 가로막혀 잠시 주춤거리고 있지만, `개헌`은 여전히 활화산이다. 몸에 맞지 않는 낡은 양복처럼, 현행 헌법이 숱한 모순을 품고 있다는 지적은 그르지 않다. 고질적 비효율을 견인하고 있는 권력구조에 대한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옳다. 속속들이 중앙집권적 선입관에 찌든 헌법의 정신 역시 시대흐름에 맞게 지방분권을 명료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혁신돼야 한다.
개헌론을 주창하는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함으로써 폐단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명분을 맨 앞에 내세운다. `승자독식`이 빚어내는 대통령 권한집중이 정치의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비판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의장직속 헌법자문위원회`가 지난 5월 말 내놓은 분권형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부터 그렇다. 155명으로 구성된 개헌추진국회의원모임이나 이재오 의원이 제시하고 있는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 역시 그런 전제를 함유한다.
`청와대의 힘을 빼고 국회의 권력을 늘리는` 쪽으로 디자인된 개헌안들을 살펴보던 국민들의 인식은 문득 `국회의 수준`에 대한 회의(懷疑)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우리 정치는 대통령의 과도한 권력쏠림 못지않게, 갖가지 구태의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여의도 정치에 대한 고민을 함께 안고 있다. 꼴불견 구닥다리 정치문화를 혁신하지 않고 국회의 권력을 대폭 증강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이러다가 혹여 국민들이 `고양이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난` 신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계심이 일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작금 국민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개헌론`이 이상한 부메랑이 되어 `국회 혁신`에 대한 국민들의 촉각을 모아들이고 있는 형국이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반성과 혁신약속`헛구호로 위기국면을 모면해온 정당정치에 대해 민심이 드디어 두 눈을 부릅뜨고 톺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미묘한 시점에, 이준석 전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새바위) 위원장이 현 김문수 보수혁신위원회의 활동과 김무성 대표의 혁신안에 매서운 돌직구를 날려 화제다.
이 전 위원장은 한 언론에서 김문수 위원장의 무노동 무임금, 출판기념회 금지, 세비 동결 등의 혁신안에 대해 “버라이어티식인데 노회찬 (정의당) 의원 표현대로 (뼈를 깎지 않고) `때를 미는 수준`, 이런 게 가능할 것 같다”고 일갈했다. 또 김무성 대표의 `보수 혁신` 방안에 대해서도 “비행기 이코노미석 탑승 등 직접 제시한 안들이 `비누칠`하는 수준”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싫든 좋든, `개헌`을 성공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회의 혁신`이 선행되거나 최소한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기류가 형성돼가고 있다.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에 대한 국민들의 미더움을 키우지 않고 국회의 권력만을 키우는 개헌을 추진하는 것은 불발탄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제 아무리 발버둥 치더라도, 이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이 먼저 나서서 명후공히 환골탈태하는 모습으로 감동을 주지 않는 한, 그 어떤 정치적 어젠다도 신뢰받지 못할 것이다. `때 밀기`나 `비누칠` 정도의 시늉으로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의 분권형 `개헌`을 따르리라고 보는 것은 우매한 착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