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최초의 명재상인 주(周)나라 주공(周公)은 무왕이 죽은 후 그의 어린 조카를 대신해서 중앙정치를 다스리느라고 바빠서 봉지인 노()나라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아들 백금(伯禽)을 노나라로 대신 보내면서 이른다. “나는 머리를 감다가도 급한 일이 있으면 감던 머리를 손에 쥔 채 나와서 정사를 처리하고, 또 밥을 먹는 중이라도 누가 찾아오면 입에 있던 밥도 뱉어내고 그 사람을 만난다. 행여 훌륭한 인재를 놓칠까 염려해서다.” 백금은 부친의 말을 명심하고 노나라에 들어가서 어진 정치를 펼쳤다.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박근혜정부가 위기에 몰리고 있다. 청와대는 엉성한 보안관리 속살이 낱낱이 드러난데 대해 곤혹스러운 모습을 감추느라고 전전긍긍이다. 야당과 언론의 공세는 나날이 강도를 더해가고 있지만, 박 대통령의 `정면 돌파` 의지는 초지일관 굳건해 보인다. 박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 때마다 `정면 돌파`를 통해 극복해오던 모습을 여러 번 보아온 사람들마저도 이번에는 적이 걱정스런 눈빛이다.
끈덕진 분열의 예조(豫兆)로 깊은 시름에 빠져있던 야당이 갑자기 신바람이 났다. 저격수들 모두 나서서 딱총 대포 다 동원하여 연일 박 대통령과 청와대를 난타해 예산정국에서 빼앗겼던 정국주도권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의욕을 곧추세우고 있다. 급기야는 `레임 덕`이라는 단어까지 입줄에 올렸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역대 대통령 레임덕은 모두 비선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과감히 읍참마속(泣斬馬謖)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위원장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읍참마속`이라는 해법을 내놓기 시작했다. 읍참마속은 과연 해결책이 될까. 제갈량(諸葛亮)은 지시를 어기고 자기의 얕은 생각으로 전투를 하다 참패한 수하 마속(馬謖)의 목을 베고 장병들에게 사과해 군기를 추슬렀다. 이 고사는 목이 잘린 마속이 다름 아닌 제갈량과 문경지교를 맺은 마량(馬良)의 아우였다는 점에서 후세에 조직의 엄정한 규율을 세우기 위해 지도자가 지녀야 할 으뜸 덕목으로 자주 인용돼왔다.
그러나 `찌라시`라는 단어를 수차례 사용하는 것으로 볼 때, 박 대통령은 현재 영향력을 과다하게 행사하고 있는 `비선(秘線)`도 존재하지 않고, 권력을 남용하는 `문고리권력`도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듯하다. 결국, 최근 회자되고 있는 측근들 중에는 `지시를 어기고 자기의 얕은 생각으로 전투를 하다 참패를 가져온` 마속 같은 문제인물은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읍참마속`은 당분간 묘책으로 작동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동치고 있는 여론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정윤회 문건` 파동이 현 정권에 심각한 내상을 입고 있다는 사실 한 가지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급락하고, `정윤회 문건`파동을 국정농단으로 인식하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어떤 혜안으로 난국을 헤쳐 갈지 알 수 없지만, 결코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여론의 흐름으로 볼 때, `검찰`에 맡기는 것 외에 난마를 단칼에 풀어헤칠 극적인 `정치적` 비법을 찾아내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정치권의 위험한 `청백전`을 바라보면서 국민들은 조마조마하다. 한겨울에 뜬금없이 쏟아지는 천둥 비바람에 다들 정신이 아뜩하다. 경제는 점점 더 나빠지고 있다고 아우성인데, 여야 정치권은 청와대발 문건파동 하나를 신호탄 삼아 또다시 `진흙탕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편이 어느 쪽인지 하루빨리 가려지길 고대한다. `문고리`가 문제가 아니라, 유리 쪽창 하나 없는 불투명한 `문짝`이 더 문제라는 지적에 자꾸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좋은 사람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입 속에 있던 밥까지 뱉으며 쫓아나갔다는 주나라 제상 `주공`의 지혜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