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회의 건강성을 지키는 가장 큰 힘의 원천은 기부문화다.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지도층의 모범이 미국사회를 촘촘히 얽어매고 있는 합리적인 `제도적 장치`들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Warren Buffett)은 총 21조원 규모의 기부금 액수를 기록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 빌 게이츠(Bill Gates) 부부의 기부금은 무려 3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미국의 기부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들 세계적인 갑부들의 놀라운 기부금 기록보다도 일상화된 국민들의 기부정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미국 가구의 약 89%가 자선단체에 기부를 하고 있고, 이들 개인들에 의한 소액기부금이 전체 기부금의 약 76%를 차지한다는 통계가 있다. 가구당 연평균 기부액은 대략 200만원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인들은 자유로운 시장경제 안에서 마음껏 경제활동을 펼치고 그 이익금을 아낌없이 나누는 정신으로 일류국가의 위상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2014년 연말정산 처리기간을 맞아서 또 한번 우리 정치권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지난 2013년 국회에서 `소득공제`방식에서 `세액공제`방식으로 공제방식을 변경하는 세법을 개정할 때 찬성 245표, 반대 6표였다는 기록이 무색하게도 야당이 여당에게 `꼼수증세`라며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모습은 한심하다. 당초에 세액공제로 전환하면 9천300억원 정도가 더 걷힌다는 시뮬레이션 설계결과가 있었다고 하니 충분히 예고된 논란이 맞다. 그럼에도 여론이 들끓고 정부와 정치권이 허둥대는 건 말이 안 된다.
`증세`냐 아니냐를 놓고 벌어지는 공방은 어린아이들 말장난처럼 공허하다. 앞주머니에서 빼 가면 증세고, 뒷주머니에서 빼 가면 증세가 아니다라는 궤변에 동의하라는 설득이 과연 옳은가. 얼마가 드나드는 지 유리알처럼 보이는 샐러리맨들의 유리지갑에서 덧없이 사라져가는 이런저런 명분의 조세를 놓고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마치 고갯길을 가로막아 선 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하고 으르는 호랑이를 만난 떡장수 여인의 기분이라는 이 땅 샐러리맨들의 하소연이 실감난다.
전래동화 속에서 떡장수 여인은 끝내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고 만다. 호랑이는 악랄하게도, 치마저고리로 변장한 채 오누이 아이들마저 찾아가 문을 열어달라고 현혹한다. 오누이는 혼비백산 뒷문으로 도망쳐 우물가에서 하늘이 내려준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햇님 달님이 되고, 호랑이는 썩은 동아줄을 타고 올라가다가 떨어져 수숫대에 찔려 죽는다. 오늘날 샐러리맨들에게 내려줄 튼튼한 동아줄은 누가 갖고 있는 것인가.
조세 문제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의 모순에 맞닿아있다.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증세 없는 복지`의 언어도단을 지적했지만, 앞뒤 안 맞는 민심에 기대거나 어리석은 욕심을 자극하여 여기까지 와 있다. 정치권은 이미 오래 전에 국민들에게 `증세 없는 선택복지를 할 것인가, 아니면 증세를 통한 보편복지로 갈 것인가`를 솔직하게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공짜복지`를 유혹하는 진보정치의 `표(票)퓰리즘` 꽁무니를 잡고 보수정치가 질질 끌려왔던 것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올 신년 국정연설에서 총 3천200억 달러(약 345조원) 규모의 `부자 증세`를 내걸었다. CNN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중 무려 81%가 대통령의 신년연설에 전폭적 지지를 보이고 있다. 우리도 늦지 않았다. 정치권은 국민들 앞에 `증세를 통한 복지확대`를 정직하게 묻고, 지도층은 사진을 찍어 자랑하는 게 목적이 아닌 올바른 `기부문화`를 가꾸어나가야 한다. 선거가 없는 올해, 지금이 바로 그 적기일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