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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돌리기` 정치의 막장

등록일 2014-11-04 02:01 게재일 2014-11-0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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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서울본부장

“연금 재정수지 부족액이 현정부 15조, 차기정부 33조, 차차기정부 53조원 등 시간이 흐를수록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번에 개혁을 이루지 못하면 484조원의 연금충당부채를 갚기 위해 국민 1인당 945만원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지금 (개혁을) 못하면 미래세대에 고스란히 떠넘기게 되는 것이다. 싫어도 해야 한다”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의 브리핑엔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절절이 묻어났다. 현재의 상황과 향후 예측들을 세세히 훑다보면 공무원연금개혁 문제의 절박함은 곧바로 알 수 있다. 그러나 `노후보장`이라는 하나의 희망을 위안삼아 온갖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나랏일의 우마지로(牛馬之勞)를 감당해온 공무원들의 애환을 헤아려보면 결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작금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20년 전부터 예견돼오던 암종(癌腫)이 발작할 적마다 소독약이나 대충 바르고 덮어둔 채 살아온 세월의 어리석음에 대한 처절한 업보다. 역대 대통령을 비롯한 숱한 정치인들이 미래의 재정건강을 팔아 현재의 영화를 만끽해온 위험한 외상장부인 셈이다. `폭탄 돌리기`를 탐닉한 정치인들의 비겁한 정략들이 새록새록 얄미워진다.

물론, 그 동안 공무원연금 개혁 시도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더러 개혁문제를 주물럭거렸지만 늘 미완에 그쳤고, 섣불리 건드려 오히려 암증(癌症)을 악화시킨 사례도 있다. 연금재정이 바닥났던 2000년 정부가 개혁에 나섰으나 조직적인 반발에 실패하면서 도리어 국민의 혈세로 적자를 메워주는 보조금 제도가 도입됐다. 그 뒤로 정부가 공무원연금에 쏟아 부은 보조금은 무려 28조원이다. 2007년과 2009년에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손질한다고 움직였지만 국민연금만 급여율을 60%에서 40%로 낮추는 개혁이 단행됐을 뿐, 공무원노조의 서슬에 가로막혀 기존 공무원연금은 손도 대지 못했다.

당분간 선거가 없으니 해묵은 이 과제를 해결하는데 더 없는 적기라는 논리와, 더 이상 수술을 미룰 수 없다는 판단에 반대할 명분은 없을 것이다. 청와대가 제시하고 있는 시한인 연말을 넘어서 내년 봄이 지나도록 이 문제를 매듭짓지 못하면 2016년 4월 총선을 앞둔 100만 공무원의 정치적 파워에 가로막혀 또다시 망국적 `폭탄 돌리기` 국면으로 전환될 것이다.

청와대와 여당의 전략은 공무원들에게 위기의식을 고취하면서 애국심을 호소하는 것 외에 아직 특별한 내용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여권이 군대식으로 밀어 붙인다”는 비판과 함께 `부담을 늘리고 혜택도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도깨비방망이 같은 주장을 흘리거나, `공무원들과 대화하라`는 하나마나한 충고나 던지고 있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인들이 이 문제를 정략의 재물로 악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안을 다 꺼내놓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방법으로 해법을 찾아야 한다. 일찍이 연금학회는 연금납입액 43% 인상과 수령액 34% 감축안을 제시해놓고 있다. 여당의 안은 이미 나왔고, 안전행정부의 안도 곧 나온다 하니 야당도 `선문답`만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안을 내놓아야 한다.

공무원단체들의 `총궐기대회`에 대해 돌을 던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분노를 넘어서 대안을 내놓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감당 못할 연금에 짓눌려 비참을 초래한 그리스와 디트로이트의 망령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든지 모두가 이성적인 접근으로 지금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번번이, 암종 위에다가 눈에 잘 띄는 빨간 머큐로크롬 잔뜩 발라놓고 정치적 이득만 챙긴 정치인들 다 어디 갔나? 제발 다시는 `폭탄 돌리기` 따위는 꿈꾸지 마시기를 간곡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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