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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 없는 복지`, 그 새빨간 거짓말

등록일 2014-11-18 02:01 게재일 2014-11-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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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서울본부장

5년여 전인 2009년 7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하여 방문했던 스웨덴 스톡홀름은 명성 그대로 동화 같은 도시였다. 청정 바다를 끼고 있는 자연환경은 물론이고, 건물과 가로의 풍경은 마치 명화(名畵)처럼 강력한 예술향기를 풍겼다. 스톡홀름은, 국가예산 3분의 1을 사회복지비용으로 지출하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민들의 삶을 온전히 보장해주는 대표적인 복지국가 스웨덴을 무한정 부럽게 하는 아름다운 수도였다.

2014년 정기국회 마무리를 저만큼 앞둔 여의도 정치권이 예산부족으로 위기에 빠진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놓고 격한 논쟁에 빠졌다. 새누리당은 `무상보육`을 지켜내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무상급식`을 옹호하느라고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번에도 영락없이, 지방자치단체들은 `고래싸움에 등 터진 초라한 새우`꼴로 전락하고 있다.

`세금인상`은 정치인들이 입줄에 올리기 가장 두려워하는 금기어(禁忌語)가 된지 오래다. 정치인들은 `증세론`을 말하는 순간 정치생명이 끝나리라는 뿌리 깊은 위기감을 갖고 있다.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한동안 우리 정치권에서 `복지론`이 좀처럼 이슈로 떠오르지 못하게 하는 압력수단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어느 때부터인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 앞으로 돌려세울 마약처럼 `공짜복지` 카드를 마구 써먹기 시작했다.

먼저 시작한 쪽은 진보세력이다. 근년 가장 정치권을 달궜던 복지 문제는 학생들의 `무료급식`이었다. 이 논란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자진사퇴를 불러올 정도로 큰 파장을 낳았다. 결국, 국민정서의 흐름을 간파한 보수세력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슬금슬금 따라갔다. 보수정당 후보는 한술 더 떠서 `무료보육`까지 과감하게 내걸어 승세를 일궈냈다.

계산기를 제 아무리 여러 번 두드린들 잔고가 거덜날 게 빤한 날라리 `공짜복지`공약을 들고 뭇 정치인들이 잘도 우려먹은 후폭풍은 영락없이 닥쳐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이미 여러 양심인사들이 `공짜`의 위험을 거론했지만, 정치패들의 망국적 선동 앞에 번번이 맥을 추지 못했다. 휘둘리는 국민들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국민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는커녕 군중심리의 맹점을 파고들어 표심을 훔친 정치꾼들의 허물이 백배천배 더 크다.

밑 빠진 독처럼 난감해질 곳간을 어찌할 거냐는 물음에 보수정당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못 거둔 세금을 낱낱이 찾아 받아내면 된다고 했다. 진보정당은 오랫동안 유일한 특효약으로 우려먹은 `부자감세 철회`카드를 해법으로 강변했다. 도대체 정치권의 계산기는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판판이 그렇게 엉터리 계산만을 해댔을까. 말도 안 되는 예측 수치에다가 수려한 말솜씨 섞어 얼버무리는 그들의 선동 장난질에 우리 무구한 유권자들만 줄창 놀아난 꼴은 아닐까.

`보편적 복지`를 주창하는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을 모델로 제시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적인 복지국가들의 국민 담세율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궤변이거나 새빨간 거짓말에 불과하다. 스웨덴의 조세수입은 GDP의 45.8%다. 과거 경기 침체가 극심했을 때는 세금 비율이 75%에 육박한 때도 있었다. 스톡홀름의 아름다움과 국민들의 행복은 결코 `공짜복지`의 과실이 아니다.

이제 이 나라 정치지도자들은 `증세 불가피성`을 커밍아웃해야 한다. 더 이상 유권자들을 농락하지 말고 더 이상 거짓말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 스웨덴 국회의사당 관계자에게 국민들이 높은 세금을 기꺼이 감당해주는 비결을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국민들이 국가재정의 `투명성`과 정치인들의 `청렴성`을 믿는다는 것이었다. 스웨덴 국회의장실 크기는 딱 우리나라 도청 국장실 크기만 했다. 아니 그 보다도 더 소박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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