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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니들 시러`

등록일 2014-10-28 02:01 게재일 2014-10-2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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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서울본부장

우리 국민들의 정치염오증(政治厭惡症)은 개선될 가능성이 있을까. 작금 정치인들의 행태를 뜯어보면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다짐은 매번 허언(虛言)으로 끝나고, 볼썽사나운 구닥다리 언동들만 굳은살처럼 고착화되는 모양새다. `개헌`을 추진하는 국회의원들마저 `정치개혁은 않고 권세만 키우려는` 저질정치꾼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짙어져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의정치의 꽃`이라고 불리는 국회의 국정감사는 우여곡절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상 첫 국정감사는 제헌 헌법 제43조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류를 제출케 하며, 증인의 출석과 증언 또는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는 조항과 국회법 제72조, 제73조에 근거, 지난 1949년 12월 2일 제5회 국회 제56차 본회의 의결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렇게 24년간 실시되던 국정감사는 제8대 국회를 끝으로, 1972년 10·17 유신조치로 국회가 해산되고 제7차 개헌에서 국정감사조항이 삭제되면서 정치사에서 사라진다. 그 이후 제9차 개헌에서 국정감사가 부활된 후 1988년 제13대 국회에서 다시 실시됐다. 16년 만에 되살아난 국정감사는 한동안 국민들로부터 찬사와 박수를 받아온 독특한 정치행위였다.

세월호법 협상으로 뒤늦게 시작된 올 국정감사가 27일 12개 상임위별 종합감사를 마지막으로 21일간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매년 국정감사가 실시될 적마다 거론되는 문제지만, 이번 국감 역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구태`를 청산하지는 못한 모습이었다. 국감장을 한사코 자신의 원맨쇼로 만들어가려는 의원들의 발싸심이 문제였다.

가장 눈에 거슬리는 대목은 국민들이 정말 궁금해 하는 정책내용을 소상히 밝혀내려는 신실한 자세와 동떨어진 고압적인 `갑질` 구습이었다. 막무가내로 무더기 채택한 증인들을 일단 `잠재 범법자`로 몰아세우면서 제 말만 쏟아놓는 풍토 역시 변함없었다. 증인들의 답변시간이 평균 3분여에 그쳤다는 한 통계자료는 국회의원들의 `낯내기 식` 국감행태의 실체를 여실히 증명한다.

`청문회`와 마찬가지로, `국정감사`에서 가장 답답한 장면은 국회의원들이 도무지 증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장연설로 자기주장만 늘어놓거나, 피감자가 말을 하려고 하면 거칠게 가로막고 나서서 호통을 치는 낡은 풍경이 예사로 펼쳐졌다. 종일을 허비하며 출석한 증인들에게 `시간이 없다`며 벙어리놀음을 강요하는 무참한 일들이 어김없이 일어났다.

국정을 고민하는 직분에 들이댄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어설픈 족쇄에도 반론을 펴지 못할 정도로 초라해진 국회의원 군상들. 관행이던 `정치인 출판기념회` 모금의 참괴한 민낯 폭로, 출장을 빙자한 해외유람, 검은 돈을 챙겼다가 쇠고랑을 차는 선량들, 취하여 대리운전기사를 두들겨 패는 일에 연루된 국회의원에 이르기까지 정치권의 추태는 한도 끝도 없이 까발려지고 있다.

10월의 마지막 휴일 오후 국회에서는 기상천외한 해프닝이 일어났다. 서울의 한 사립대학교 영상학과 대학생 두 명이 본관에 접근해 검은색 래커로 기둥에다 `나 니들 시러`라는 낙서를 했다가 붙잡혔다. `자유로움`을 주제로 한 광고영상 과제물을 수행하기 위해 낙서를 했다는 학생들은 “죄가 되는 줄 몰랐다”고 진술해 허탈감을 던졌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정치를 향한 국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깊게 반영한다. `속 시원합니다`, `다른 기둥에다 낙서하기 전에 빨리 풀어줘라`, `최고의 글귀다. 아름답다` ……. 대학생들은 숙제를 하기 위해 그랬다는데,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숙제를 하기 위해 어떤 치열한 노력을 하는지 되묻고 싶어진다. 아니, 국민들은 정작 정치인들이 `정치개혁` 숙제들을 할 생각이 있기나 한 것인지 지금 몹시도 궁금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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