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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갈등(南南葛藤)`은 안 된다

등록일 2014-10-14 02:01 게재일 2014-10-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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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서울본부장

`삐라`는 전단(傳單), 또는 포스터를 뜻하는 영어 `빌(bill)`의 일본어식 발음으로 시작돼 상용어가 됐다. 삐라는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위선적 행동을 일삼는 교황을 고발한 그림을 뿌린 것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도 전한다. 6.25전쟁 중 남북 간 치열했던 `삐라전쟁(Leaflet War)`은 종전 후에도 한동안 지속됐다. 많은 중년들이 어린 시절 동네 야산에서 북한체제를 선전하는 조악한 삐라를 주워 파출소에 갖다 주고 포상으로 공책 같은 학용품을 받았던 기억을 갖고 있다.

한반도의 정세기상 변덕은 그야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다.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북한 3거두가 아시안게임 끝물에 별안간 비행기를 타고 내려와 대한민국을 온통 헷갈리게 한 기억이 채 갈무리되기도 전에 저들은 NLL에서 한바탕, 연천에서 또다시 한바탕 분탕질을 쳤다. 헤아려보니 3거두의 방남(訪南) 쇼가 불현듯 고도의 사기행각처럼 느껴져 불쾌해진다. 왠지 저들의 음험한 시나리오에 또 한 번 속절없이 당한 느낌이다.

인천 아시안게임 마지막 날에 김정은이 허락했다는 1호기를 타고 인천에 나타난 북한 3거두가 정말 노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 정치인들이 대통령과 북한 3거두와의 면담여부를 놓고 만나라, 말아라 잘 난 소리들을 마구 겨루고 있을 때부터 보수와 진보의 목소리는 조금씩 달랐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북한 3거두는 박근혜 대통령의 면담용의를 전달받고도 상면을 거절하고 그냥 평양으로 올라가버려 청와대와 정치권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미구에 2차 남북 장관급회담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채 여물기도 전에 북한은 서해 NLL을 침범해 양측 군함이 위협사격을 주고받는 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잇달아 탈북자단체가 북한으로 풍선에 매달아 날려 보내는 삐라를 시비하여 14.5㎜ 고사총을 마구 쏘아대는 도발을 저질렀다.

저들 핵심 3인방이 느닷없이 인천으로 내려와 조만간 장관급회담을 다시 열자며 손 내밀어 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자고 나선 것은 두문불출 김정은의 `무탈`을 안팎 세상에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다는 해석은 옳은 듯하다. 그러나 그들의 돌출행보의 노림수가 과연 그것뿐이었을까. 공갈의 볼륨을 키워가며 한도 끝도 없이 남한사람들의 안위를 겁박하는 해묵은 행태 앞에 우리는 매번 이렇듯 무기력을 느낀다.

주린 백성들 나 몰라라 있는 돈 없는 돈 긁어 무기를 사들고 협박을 일삼는 못된 버릇에 우리는 두 가지 대처법을 놓고 긴긴 `남남갈등(南南葛藤)`의 미로에 다시 빠져들었다. 생떼를 들어주면 점점 더 고약해지니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고, 폭력배에게 얻어맞느니 해달라는 대로 해주고 일단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주장도 아주 그르지 않다.

이쯤에서 저들의 생떼도 들어주지 않고, 평화도 유지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은 없을까. 공중파 방송을 통해 입에 담지도 못할 용어를 동원해 매번 우리 대통령에게 무참히 쌍욕을 해대는 저들이 탈북자단체들이 보내는 삐라에 광분하는 것을 보면 그 내용이 아프긴 아픈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저희들도 삐라 날리면 될 일을 왜 그렇게 악악거리고 무력까지 동원할까. 저들이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그 모양인지, 왜 그러는지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몰상식한 사람들이란 언제나 이성에 맞게 대응하기가 어렵다. 상대방이 결국 흔들리는 북한민심을 다잡고자 내부용으로 그렇게 음모를 만들고 사고를 치는 줄 뻔히 알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더욱 더 주도면밀한 대응책이 필요하다. 소나기를 잠시 피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정말 중요한 일은 저들이 노리는 고도의 전략인 `남남갈등 유발` 흉계에 빠져들지 않는 것이다. 원칙을 지키되, 유연하게 가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전략적인 사고와 적절한 행동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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