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강준만 교수는 그의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이렇게 말한다. “진보의 싸가지 문제란,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 불일치`등이다. 예컨대,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 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 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는 태도, 왜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느냐고 호통치는 듯한 자세, 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에게도 상처를 주고야 마는 행위, 번드르르하게 말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입장을 바꾸는 태도 등이다.”
연말정국 한 복판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인해 정부여당이 좀처럼 난국돌파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이 새해 2월8일로 예정된 전당대회 레이스 무드로 접어들었다. 출마선언이 잇따르면서 계파가 어떻고, 세력이 어떻고 설왕설래가 무르익기 시작했다. 여차하면 분당(分黨)사태가 닥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 치러지는 전당대회인 만큼 아마도 전례 없이 미묘한 당권 쟁탈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어쩌면 야권 지도부는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여권이 깊숙한 혼미에 빠진 정황을 틈타서 뜨끈뜨끈한 당권경쟁 흥행을 펼침으로써 국민들의 시선을 빼앗아 세력을 확장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새정연 전대 레이스 출발선 앞줄에서 얼쩡거리는 인물들을 톺아보면 국민들에게 새로운 감동을 펼쳐가기엔 역부족인 상태가 아닌가 싶다. `증오상업주의`로 오래도록 재미 보아온 패거리들이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분석을 보면 더욱 그렇다.
보수의 심장에서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부겸 전 의원의 몸값이 날로 치솟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이른바 `빅3`(문재인·박지원·정세균)라고 불리는 당권경쟁 구도를 흔들 유력변수로 부상했다는 분석이다. 당권경쟁의 또 다른 `다크호스`로 거론되는 박영선 의원이 “김부겸 전 의원이 나온다면 확실하게 도와드릴 생각이 있다”고 밝힌 대목은 진보세력의 진화에 대한 기대를 조금 더 높이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몰리긴 했어도 지난번 여야가 새해예산안을 법정기간 안에 결의해 낸 것은 분명히 진일보한 정치문화다. 새정연이 새누리당에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분명히 있었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으르고 나서자, 자칫하다가는 야당의원들이 발싸심하여 우겨넣은 지역예산이 모두 날아갈 위험성이 있다 보니 뻗대고 나갈 수가 없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예산정국이 막을 내리니 정치무대에는 순식간에 또다시 지독한 불통의 커튼이 내려졌다.
최근 새정연의 정치행태 중에서 가장 답답한 부분은 공무원연금에 대한 이중적인 태도다. `개혁의 절박성` 인식을 정부여당과 공유하면서도 갖가지 핑계를 대며 도무지 대안을 내지 않는 것은 실로 `정당`으로서의 자존심을 내팽개친 딱한 모습이다. 시중에서 새정연에 대해 `댓글 정당`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당정치의 본질은 민심을 신속히 집약하여 해결하는 대의정치 구현에 있다.
며칠 전 새정연 문희상 비대위원장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코앞에 둔 통진당 해산 문제에 대해서 “정당해산 결정은 선진민주주의국가에서는 그 전례가 없는 것”이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하게 밝힌 것은 충격이다. 문 위원장의 뜬금없는 발언은 `헌재에 대한 입력`이라는 함의를 넘어서는 심각성이 있다. 바로 새정연이 아직도 `싸가지 없는 진보`의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가 드러난 것이다. 새정연은 여전히, 극좌에 발목을 맡긴 채 중도세력을 홀려낼 시대착오적인 꿍꿍이에 젖어 있음이 분명하다. 강준만의 언어를 빌린다. 그들이 만약 아직도 `타협`을 더럽게 생각하는 고질병, 도덕적 우월감과 독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겁한 변명, 타인과 세상에 대한 `계몽 욕망`에 갇혀 있다면 결코 미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