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한민국을 통째로 멘붕(멘탈 붕괴상태)에 빠트린 비선실세(秘線實勢)의 폐해는 역사 속에서 심심찮게 나타난다. 정난정(鄭貞)은 조선 13대 왕인 명종 대에 미천한 기생 신분에서 정경부인까지 올라간 불세출의 여인이다. 그녀는 선대왕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에게 접근해 첩실이 되었고, 그 권세를 이용해 많은 부를 축적하며 악행을 저질렀다.
그녀는 1551년(명종 6년) 윤원형의 정실 김씨를 몰아내고 적처(嫡妻)가 됐고, 문정왕후의 신임을 얻어 궁궐을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당시 권력을 탐했던 조신들이 윤원형·정난정 부부의 자녀들과 앞다퉈 혼맥잇기에 혈안이 됐을 만큼 그녀의 위세는 엄청났다. TV드라마의 단골주제인 정난정의 횡포를 다룬 `옥중화`가 MBC에서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조선후기 고종시대에도 비선실세의 위세를 떨친 또 한 여인이 있다. 임오군란(1882년)이 일어났을 때 분노한 군인과 시민들을 피해 한양을 떠나 충주 장호원으로 암행한 명성황후(민비)를 찾아간 무녀가 있었다. 박창렬이라는 이름의 이 무녀는 황후가 어떻게 찾아왔는지를 묻자 “신령님이 꿈에 나타나 중전께서 장호원에 있다고 알려줬다”고 답한다.
명성황후를 밀어내고 권력을 장악했던 흥선대원군은 머지않아 청나라 `위안스카이(袁世凱)`에 의해 북경으로 끌려가는 신세가 된다. 50일 만에 환궁 길에 오른 명성황후의 곁에는 무녀 박창렬이 함께 있었다. 황후는 현안이 생길 때마다 무녀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녀는 이후 왕자 급의 작위인 진령군(眞靈君)에 봉해지기까지 한다.
대한민국의 정치사에도 비선실세가 소란의 중심이 된 흑역사는 즐비하다. 전두환 정권때는 대통령의 동생으로 권세를 남용한 전경환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에는 영부인의 고종사촌 박철언 전 장관이 `6공화국 황태자`로서 실세 노릇을 했다.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김영삼 대통령 때는 차남 김현철씨가 `소통령`으로 일컬어졌다.
김대중 정권도 `홍삼트리오`라고 불린 대통령의 아들 삼형제가 임기 말 권력형 비리로 오점을 남겼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대통령의 친형 `봉하대군` 노건평씨가 논란이 됐다. 이명박정부에서는 `만사형통(萬事兄通)`이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과 `왕차관` 박영준 전 차관에 대한 잡음이 요란했다.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불리는 최악의 국정농단 의혹으로 나라가 온통 혼돈의 도가니에 빠져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4년차 후반에 최악의 난관을 맞아 전전긍긍이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기하급수로 퍼지는 험악한 `카더라 방송`은 차마 입으로 옮기기조차 어려울 만큼 극악하다. 정부여당을 절체절명의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이 소란은 좀처럼 출구가 안 보인다.
여야 정치권은 `거국 중립내각`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논란의 핵심인 최순실씨가 전격 귀국하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 중이다. 청와대도 비서관 개편 등 인적쇄신의 물꼬를 텄다. 몰아치는 폭풍 속에 국민들의 지독한 불신(不信) 먹구름을 걷어낼 방안이 묘연하다.
수렁에 빠진 사람은 성급하게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면 오히려 자꾸만 더 깊이 빠져드는 법이다. 솔직담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잘못이 있다면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민심은 언제나 잘못 그 자체보다도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의 태도에 더 민감하다.
차제에, 정권마다 비선실세가 전횡을 저질러 국정을 비뚜루 가게 하는 권력의 오작동을 영구히 추방할 묘책을 찾아내야 한다. 오늘의 환난이 두고두고 교훈이 되게 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을 찾아내야 한다. 과연, 권력이란 조금만 잘못 다뤄도 자기 옷에 옮겨 붙어 맹렬히 타오르는 치명적인 도깨비불꽃 맞다. 대한민국은 지금, 유언비어(流言蜚語)의 뜨거운 늪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