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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작용-반작용`의 정치학

▲ 안재휘 논설위원“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항상 존재한다. 즉 두 물체가 서로에게 미치는 힘은 항상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Newton)은 움직이는 모든 물체가 운동하는 법칙을 3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가 관성의 법칙, 두 번째가 가속도의 법칙, 세 번째가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다.뉴턴이 내놓은 법칙들은 단지 물체뿐만이 아니라, 인간사에도 곧잘 맞아떨어진다. 그 중에도 `작용-반작용의 법칙`은 인간관계나 정치적 상황에 있어서 꽤 정확하게 나타난다.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이긴 것 같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그 반대인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정치행태들을 보노라면 그 이치가 문득 문득 떠오른다. `순간의 승자`는 인정하되 `영원한 승자`는 그냥 놔두지 않는 것이 역사의 냉혹한 섭리다. 권력의 과욕으로 생성되는 모든 일방적인 공격은 머지않아 부메랑이 되어 반작용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관성에 젖은 정치인들이 이 무서운 법칙을 망각하고 조금만 힘이 생기면 마구 휘둘러댄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정치 지능은 그렇게 더디더디 진화한다.정치가 실종됐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장관 해임건의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회의 소란은 번번이 드잡이판으로 점철되던 이른바 `동물국회`의 몹쓸 추억마저 불러일으킨다. 국민들은 다 아는데, 그들만 모른다. 잔뜩 오그라진 극렬지지자들의 환호성과, 상대편에 대한 반이성적인 혐오가 빚어낸 증오의 드라마는 한 번도 해피엔딩으로 끝난 적이 없다.이 나라가 직면한 상황은 난치병에 걸린 중환자 꼴이다. 만성적인 불경기도, 북핵 위협도, 흔들리는 땅도 마땅한 대책이 안 보인다. 어쨌든 뭐를 좀 해보자고 누군가 치료법을 내놓으면, 이래서 안 되고 저래서 안 된다는 반론과 비난만 무성하게 쏟아진다. `대안`도 없이 `안 된다`고 우기는 돌팔이 윤똑똑이들의 난장(場)이다.여소야대(與小野大)로 형성된 정치구도 안에서, 정부여당은 어쩌자는 심산인지 도무지 타협의 여지를 만들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근육자랑에만 빠져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한 비서관·장관들에 대한 파상공세가 점입가경이다. 새누리당은 도무지 요령부득의 모습이다. 최근에 보여주고 있는 모습으로는 여소야대고 뭐고 끝까지 뻗대면서 피해자 코스프레나 한판 벌여볼 속셈 아닌지 의심스럽다. 야당의 폭주는 더 심각하다. 지난 4·13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에 대한 오독(誤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패거리다툼에 신물이 나서 비토한 표심을 자신들에 대한 절대지지로 착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다.권력을 거머쥐기만 하면 오만방자해지는 정치꾼들의 고질병에는 약도 없는 모양이다. 불통이 만사지액(萬事之厄)이 돼버린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의 회초리질을 아전인수로 해석한 야권의 득의양양은 순간적인 상황반전의 화근이 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 냉엄한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무릅쓰는 어설픈 심사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정국을 헤쳐가기 위해서는 새누리당부터 바뀌어야 한다. 매듭을 푸는 일은 여소야대의 구도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논란, 김재수 장관 해임건의안 통과, 미르·K스포츠재단 의혹까지 삼각파도에 휩쓸린 청와대를 돕는 길은 역성들기 외길에만 있지 않다. 사라진 정치를 복원할 막중한 책임이 정부여당에 있다.내년 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 초점을 딱 맞춰놓고 `반대를 위한 반대` 습성과 포퓰리즘에 쩔어 있는 야권도 민생을 세세히 헤아리는 정치로 패턴을 돌려야 한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골수 지지자들의 박수만 탐닉하다가는 큰 코 다칠 수 있음을 깨우쳐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 삶을 돌아보지 않는 정치에는 미래가 없다. 민심의 바다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2016-09-27

님비(NIMBY)근성, 냄비기질

▲ 안재휘 논설위원레밍(lemming)이라는 이름의 쥐과 동물이 있다. `나그네쥐`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이 동물은 집단을 이루고 살며 우두머리를 따라 직선적으로 이동하다가 모조리 호수나 바다에 빠져 죽는 일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980년 8월 당시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은 “전두환이 곧 한국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면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마치 레밍 떼처럼 그의 뒤에 줄을 서고 그를 추종하고 있다”고 말해 큰 논란이 일었다. `레밍`이 `들쥐`로 번역되는 바람에 더 이상해진 위컴의 발언은 `망언`으로 간주돼 격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재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지식인들이 위컴의 발언은 괘씸하기 짝이 없지만 그의 진단에 타당한 면이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내놓았다. 외국인에게 모욕을 당했다는 감정과 우리 민족의 약점을 들켜버렸다는 수치심이 국민들 가슴에서 쌍곡선을 이루었던 것이다.우리 정치사는 한국인들의 뿌리 깊은`지도자 추종주의`를 여지없이 입증한다. 군소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벌이는 끊임없는 `당쟁` 폐습, `패거리` 문화가 정치사 곳곳에 우여곡절을 자아내고 있다. 전문가들은 `침략과 수용 문화를 동시에 지닌` 중국의 대륙기질이나 `음흉한 침략본성을 지닌` 일본의 섬나라기질과 비교하여 한국인의 특성을 `남의 땅을 넘보지도 않고 들어오는 세력을 쫓아내기만 하는` 다혈질적인 반도기질로 설명하기도 한다.북한의 다섯 번째 핵실험과 사상 최강의 경주 지진사태 등 대형 악재로 민심이 온통 뒤숭숭하다.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땅 속에서 꿈틀거리는 지진 재앙을 동시에 경계하며 살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작금 상황은 전대미문의 `총체적 난국`이다. 그런데 최근의 현상들을 보면 존 위컴 사령관의 말이 반드시 맞는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우선 북한의 가공할 핵미사일에 대비하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려는 정부의 결정에 대해 국민들이 드러내고 있는 반응에는 좋은 의미에서의 `레밍 근성`이 전혀 없다. `사드` 배치에 찬성하면서도 `우리 동네에는 안 된다`는 이율배반적인 반응에는 깊을 대로 깊어진 님비(NIMBY)근성만 여실하다. 경주 강진(强震)은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라는 등식을 완전히 깨부쉈다. 한반도의 지진 발생 빈도수는 2000년을 기점으로 연 19회에서 40회로 뚜렷하게 증가했다. 지진 강도도 규모 2.0 이하에서 3.0~4.0 정도로 강해졌고, 규모 5.0 이상의 지진까지 발생하고 있다. 한반도 육상에서 발생한 지진의 46%가 영남 동부지역에 집중돼 있다는 통계는 끔찍하다. 경주 강진 이후 많은 담론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진에 대한 낯선 역사기록들이 날아다니고, 동해안에 집중된 원전시설의 안전문제를 비롯, 건물의 내진설계와 관련된 다양한 경고들이 난무한다. 하나같이 요긴한 관심들이다. 제기되는 문제점과 대안들은 국민안전을 담보하기 위해서 놓칠 수 없는 테마들이다.그런데 과연 며칠이나 갈까. 장구한 세월 목도해온 우리 국민들의 `냄비기질`이 불현듯 사라지지 않았다면 머지않아 국민들은 또 다른 관심을 좇아 이리저리 흩어질 개연성이 높다. 불행에 대한 망각이 인간 삶의 영속성을 뒷받침하는 지혜인 것은 맞다. 그러나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나 `지진재앙`의 가능성은 그렇게 잊어 넘길 일이 결코 아니다.우리 민족의 `레밍 근성`은 남한에서 경제기적을 일궈낸 반면, 북한에서는 `김씨 왕조`라는 희대의 독재정권을 온존케 만들고 있다. 오늘날 현존하는 위협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먼저 자기중심적 공공정신 결핍 증상이나, 쉬이 뜨거웠다가 금세 싸늘해지는 습성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맞닥트린 시련은 `님비(NIMBY)근성`이나 `냄비기질`을 그냥 두고서는 도무지 극복할 수 있는 난제들이 아니다.

2016-09-20

`외눈박이` 담론으로부터의 도피

▲ 안재휘 논설위원한가위 목전이다. 해마다 `명절`은 민심이 소용돌이치는 소통의 큰 장인 만큼 숱한 담론들이 오가는 계기가 된다. 명절이 다가오면 정당과 정치인들은 긴장한다. 설과 추석은 경향(京鄕)의 여론이 한꺼번에 뒤섞이는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각 정당과 정치인들은 이 시기를 어떻게 선용할 것인가 고심한다. 정치권에서는 각자 유리한 정보가 확산되도록 하기 위해 바삐 움직이기도 한다.친족 친지들끼리 나누는 명절 여론보다 전염성이 강한 경우는 없다. 내 가족, 벗님들의 이야기는 그 누구의 말보다도 신뢰의 무게를 더하기 때문이다. 2016년 한가위에는 민초들 사이에 과연 어떤 정치담론들이 오갈 것인가. 지난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에 대한 갖가지 분석이 나올 것이다. 현안인 북핵문제나, 사드배치에 대한 견해들도 오갈 것이다.되돌아보면, 우리 명절의 정치담론의 흔적에는 지역감정의 노예로 점철된 모순과 비이성적 진영론의 참담한 흔적들이 즐비하다. 모순투성이 지역감정의 엉터리 공식에 대입된 선동에 무참히 적대감을 확대재생산해온 구조도 있었다. 옳고 그름을 가려낼 균형 감각을 마비시키는 온갖 궤변들이 신념의 탈을 쓰고 민심을 어지럽힌 역사도 깊다.소위 `보수`라는 탈을 쓴 외눈박이들이 영남 민심을 현혹했고, `진보`라는 가면을 쓴 외눈박이들이 호남 민심을 왜곡했다. 무구한 민초들에게 색안경을 강요해온 그 세월이 결코 짧지 않았으므로, 오늘날 대한민국은 아직도 그 폐해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널리 확산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그릇된 습성은 난해하기 짝이 없다.국민들의 올 추석밥상 화두에는 필경 차기 대통령선거와 관련된 화제들이 수두룩 올라올 것이다. 대선이 아직 일 년하고도 석 달이나 남았으니 멀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각 정당들이 `대선후보를 빨리 결정한 정당이 이겼다`는 지난 대선 통계에 솔깃한 참이라, 각 정당의 대선후보 결정은 어쩌면 7~8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예상컨대, 추석연휴가 지나면 아마도 대선주자들의 활동이 본격화될 것 같다.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어젠다 전쟁이 벌어질 것이고, 이미지 각인을 위한 화려한 쇼맨십도 만개할 것이다. 한가위 민심의 연장선상에서 우리 국민들은 과연 어떤 인재들이 대통령감인지를 치열하게 가늠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한가위 추석밥상 여론은 매우 중요하다.지난 4·13총선에서 우리 유권자들은 고질적 지역감정의 늪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우선 이번 추석밥상 담론에서 소아병적인 배타적 지역주의를 과감하게 탈피할 것을 주문한다. 색안경을 벗고 맑은 눈으로 정치이야기를, 정치인이야기를 펼쳐주기를 소망한다. 정책을 보고, 인물 됨됨이를 견주는 건강한 토론이 전개되기를 희망한다.대안이 있는 생산적인 비판이 소통되기를 기대한다. 우리 정치논쟁의 치명적인 맹점은 주장과 비난만 있고, 정책대안이 수반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여당은 설득을 생략하고, 야당은 비난만 쏟아낸다. 여당은 맹종을 강요하고, 야당은 험구만 일삼는다. 왕성한 논리적 번민이 선행되지 않은 토론은 늘 위험하다는 진실을 너무 쉽게 망각한다.한가위 보름달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빛을 내린다. 조물주가 우리에게 눈과 귀를 왜 두 개씩 주었는지, 입은 왜 한 개만 주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다른 이야기를 달리 듣고 존중할 수 있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 두 눈과 두 귀로 보고 들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말은 최대한 절제하라는 그 뜻을 실천해야 좋은 세상이 된다.민족 최대의 세시풍속, 한가위를 맞아 오랜만에 만난 가족과 친지들의 대화가 확연히 달라지길 소망한다. `외눈박이` 정치논리로부터, 그 찌질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건강한 담론이 방방곡곡 넘쳐나길 소원한다.

2016-09-13

용(龍)들의 침묵

▲ 안재휘 논설위원“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樹木等到花 謝才能結果 江水流到舍 江才能入海)”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지적할 때 주로 인용되는 이 구절은 불교 화엄종의 근본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 나온다. 꽃을 버리지 않고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강을 버리지 않고는 바다를 볼 수 없다는 말로 의역된다.이른바 잠룡(潛龍)이라고 불리는 대통령선거 후보군들이 하나씩 물 위로 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대 대선이 1년여 남아있으니 봉황의 뜻을 품은 인재들의 마음도 바빠지기 시작할 만하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 적마다 우리는 고민하고 살피지만 안타깝게도 시종여일(始終如一), 처음과 끝이 함께 훈훈한 지도자를 만나기는 여전히 어렵다.설핏 보이는 대선전 무대는 진풍경이다. 보수 여당은 가문 콩밭 같고, 진보 야당에는 여러 주자들 입줄을 탄다. 새누리당에는 주류 친박계를 중심으로 올 연말 임기가 끝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데릴사위로 모셔올 궁리가 하나 있다. 그 밖에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도가 거론된다.더불어민주당은 대세를 점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를 필두로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박영선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주자반열에 올랐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의 도전의지가 굳건한 가운데,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영입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하지만 현재의 판도는 의미가 없다. 1년여 대선정국에서 판세가 최소한 100번은 요동치리라는 예언만 옳다.차기 대선주자들을 놓고 우리 유권자들은 무엇을 침착하게 견줘보아야 할까. 온 국민의 희원을 관통하는 덕목들은 과연 무엇일까. 현 시점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안보의지`와 `경제민주화` 두 가지다. 북한의 핵개발로 확연히 기울어진 안보운동장, 급속히 깊어진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경제불평등을 바로잡을 용기와 지혜가 그것이다.안타깝게도,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그 어떤 인재도 이 두 가지 현안에 대해서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북한 핵무기가 실용단계에 들어갔다는데도 보수인사들은 미국을 믿자하고 눈치만 살핀다. 진보인사들은 `북한은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낭만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상위소득 데이터베이스(WTID)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년 기준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로 분석됐다. 전 세계 33개 주요국 가운데 미국(47.8%)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외환위기 이전 1995년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가 29.2%였던 것을 감안하면 참담한 현상이다.단언하거니와, 북한 핵에 대한 대응을 놓고 기회주의적 처신을 일삼고, 경제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없는 대선주자들은 잠룡(潛龍)이 아니다.`헬(hell)조선` 비명 속에 방치된 젊은 세대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는 대선주자들은 토룡(土龍) 별칭마저도 아까운 잡룡(雜龍)에 불과하다.시대는 국가안보를 담보해낼 과단성과 불평등한 민생을 바꿔낼 경제민주화 마인드를 고루 지닌 대선주자를 갈망한다. 돌연변이 왕조국가로 역행하고 있는 북한을 편드는 외눈박이들의 패악이 두려워 핵무장의 당위성을 외면하는 잔재주로는 안 된다. 자본주의의 금력에 짓눌려 `잘 사는 사람만 점점 더 잘 사는 나라`를 혁파해낼 뚝심이 없는 의지박약으로도 안 된다.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지도자들은 이제 깊은 침묵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 땅에서 전쟁위협을 몰아내고, 모두가 고루 잘 사는 세상을 일궈내기 위해 `작은 이익을 버리는` 용기부터 입증해야 한다. 꽃을 버리지 못하는 한 열매를 얻을 수 없고, 강을 버리지 못하는 한 바다를 이루지 못하는 이치를 가슴 깊이 깨우쳐야 한다.

2016-09-06

`빅 텐트(Big tent)` 전쟁

▲ 안재휘 논설위원미국 `히스토리 뉴스 네트워크`의 설립자이자 편집자인 리처드 솅크먼(Richard Shenkman)은 `우리는 왜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라는 저서에서 `국민은 어리석다`고 용감하게 단정한다. 그는 국민들의 어리석음 첫 번째 특징으로 뉴스에 나오는 주요 사건들을 모르고, 우리 정부가 어떻게 기능하고 누가 책임을 지고 있는지를 모르는 `완전한 무지`를 꼽는다. 두 번째는 중요한 사건에 관한 정보를 찾는 일에 소홀한 `태만`을 지적한다. 세 번째는 사실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는 `우둔함`, 네 번째는 상호 배타적이거나 국가의 장기적 이익에 반하는 공공 정책을 지지하는 `근시안적 사고`를 든다. 다섯 번째는 의미 없는 문구·고정관념·비합리적 편향·희망과 두려움을 이용하는 지나치게 단순화된 진단과 해법 등에 쉽게 흔들리는 `멍청함`을 언급한다. 미국 이야기라지만, 우리에게도 너무 아프게 와 닿는 대목이다.새누리당에서 호남출신 대표가 뽑힌데 이어,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영남출신의 여성 대표가 탄생했다. 이같은 결과가 `영남은 보수` `호남은 진보`라는 해묵은 한계가 극복되는 계기로 작동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그러나 이런 반전에서 우리 유권자들의 판단 출발점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다는 조짐을 읽는 데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내년 말 대선을 앞두고 출렁거릴 정치판에 주요한 변인(變因)이 생긴 것은 맞다.이런 가운데 정치권 안팎에서는 `중도 빅 텐트(Big tent)`설(說)이 확산일로에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를 친박계(친 박근혜계)가 장악한 데 이어 더민주당 지도부 역시 친문계(친 문재인계)가 싹쓸이함으로써 외견상 양대 정당의 이념좌표는 양극화의 길로 뻗어갈 개연성이 높아진 상황이다. 거대 정당들의 비주류가 함께 위축된 구도에서 `중도 빅 텐트` 탄생 예측은 일단 무리한 상상이 아니다.국민의당이 바빠졌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광폭의 행보를 보이면서 외연확대에 주력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광주 무등산에서 차기 대통령 선거 출사표를 던졌다.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대선후보로 옹립할 가능성이 높고,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문재인 대망론을 잠재울 변수가 전무하다. 여타 대권잠룡들에게 거대 정당들이 일찌감치 문을 닫아 걸어버린 형국이다.아이러니컬하게도,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양당의 전당대회 결과가 `중도 빅 텐트`의 가능성을 높여주는 요인이 됐다. 이제 영남에서 보수정당만 바라보지 않아도, 호남에서 진보정당만 밀어주지 않아도 되는 정치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때마침 지난 총선에서 호남민심을 석권한 국민의당이 있다. 거기에다가 장구한 세월 양극화 정치 파열음에 신물이 난 국민들도 크게 늘어나 있다.하지만 정치는 고도의 종합예술이다. `빅 텐트` 전략은 결코 특정 정치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새누리당이나 더민주당도 선거를 앞두고 `빅 텐트`전략을 맹렬히 구사할 것이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갈구하는 중도 유권자들을 향해 끈질기게 구애의 손길을 뻗칠 것이 분명하다. `중도 빅 텐트`를 꿈꾸는 제3정치세력의 성패여부는 이를 극복해내느냐 마느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국민들이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진정한 자존심을 지켜낼 것인가 아닌가가 핵심변수다. 일찍이 존 듀이(John Dewey)는 “영화관에 가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드라이브를 하면서 저녁 시간을 보내는 국민들은 정치에 점점 흥미를 잃을 것이고, 그 결과 국민들은 점점 더 조종하기 쉬운 대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개헌론`이라는 불쏘시개까지 어질더분하게 굴러다니는 정치판에서 `빅 텐트` 전쟁은 바야흐로 본격화할 것이다. 리처드 솅크먼의 `국민은 어리석다`는 단언이 부디 우리 정치에서는 완전한 오판이 되기를 소원한다.

2016-08-30

`슈퍼스타K` 경선의 명암

▲ 안재휘 논설위원`2016 리우 올림픽`이 폐막됐다. 유례없는 폭염 속에 국민들은 우리 선수들의 선전에 많은 감동을 받았다. 전 종목 금메달을 휩쓴 양궁선수들, 깜짝 금메달을 일궈낸 남자펜싱의 박상영 선수, 112년 만에 부활된 여자 골프에서 금메달을 따내 세계 골프여제의 위엄을 입증한 박인비 선수 등이 인상적이었다. 올림픽에서 수고한 모든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가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를 `슈퍼스타K` 방식으로 뽑을 것이라는 뜻을 거듭 표명하고 있다. 이 대표의 견해는 일단 가장 공정한 경선방법을 선택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는 측면에서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슈퍼스타K` 방식이 대선후보 선출이라는 콘셉트에 맞는 것일까. 나아가 과연 악성 패거리다툼 막장드라마를 종식시킬 묘안으로 작동할 것인가.`슈퍼스타K`는 케이블 방송의 한계를 뚫고 기적적인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서바이블(Survival) 방식의 경쟁을 유행시킨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유사 프로그램을 양산시키는 등 방송계에 열풍을 일으켰고, 방송 포맷이 중국으로 수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로 하여금 보다 투명한 경쟁방식을 추구하게 하는 등 사회적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노래 잘하는 가수를 뽑는 것과 정치지도자를 선출하는 것은 성격상 같을 수가 없다. 가수를 뽑는 콩쿠르는 순간의 재주를 가리는 감동경쟁 게임이다. 인기투표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경연 순간 온·오프라인 청중들에게 누가 강렬하게 어필하느냐가 관건이다. `슈퍼스타K`의 성공비결은 매회 탈락자가 나오는 숨 막히는 서바이블 방식이라는 특성에 있다. 경연에 참가자들과 청중들이 함께 매번 극도의 긴장 속에 던져진다.갈수록 인기투표 성격이 짙어지는 요즘 정치선거 행태에 비춰보면 `슈퍼스타K` 방식은 흥행에 더 없이 좋은 수단일 수 있다. 후보가 매주 한 명씩 아웃되는 방식의 경선이라면 얼마나 흥미진진할 것인가. 그러나 `슈퍼스타K` 방식은 막판 역전드라마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만일 서바이블 방식이었다면 절대로 성공하지 못했을 거물 정치인들은 얼마든지 있다.인기몰이 경선이 불러올 `포퓰리즘`의 극대화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쟁적인 퍼주기 공약 홍수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판이다. 후보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오만 인기공약들을 마구발방 쏟아낼 게 뻔하다. 정치인들은 공약을 꼭 지켜야 한다는 의식이 엷다. 지키지 못할 형편이 되면 수십 가지 상황변경 논리로 빠져나간다. 공약이행 성적을 따져서 투표하는 유권자들 또한 드물다.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공정성` 확보 여부다. 공정성에 대한 굳건한 공감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슈퍼스타K` 경선은 곧바로 걷잡을 수 없는 폭탄으로 작동할 개연성이 높다. 이정현 대표의 연이은 주장이 지명도와 인기도가 높은 특정인을 염두에 둔 발상이라는 갸우뚱한 해석이 벌써 나돌고 있다. 이미 우리 정치에는 불공정 경선의 흑역사가 즐비하다.리우 올림픽에서 전 종목을 석권한 한국양궁 이야기는 많은 것을 되짚게 한다. 28년 동안 왕좌를 지킨 여자양궁 선수들은 무려 6개월간 다양한 경기방식과 상황 아래에서 선수 1인당 무려 4천여발의 화살을 겨루는 냉혹한 자유경쟁을 펼쳤다. 선수선발을 오직 표적지에 맡겨온 그 궁극의 공정경쟁이 세계정상의 실력을 담보한 셈이다.`슈퍼스타K` 방식의 경선으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가리겠다는 이 대표의 생각은 신선한 아이디어다. 그 뜻은 높이 사되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약점들은 `대통령 선거`라는 특성에 맡게 철두철미하게 보완돼야 한다. 차기 대통령으로서의 덕목이 새누리당 후보의 덕목과 다를 이유는 전혀 없다. 아예 현란한 가면에 음성변조까지 걸어놓고 벌이는 `복면가왕` 방식은 어떨까 하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2016-08-23

`매파`들의 낮잠

▲ 안재휘 논설위원“우리나라가 오래도록 승평(昇平)을 누려 태만함이 날로 더해…. (중략)…. 하찮은 오랑캐가 변경만 침범하여도 온 나라가 이렇게 놀라 술렁이니… (중략)….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어떻게 계책을 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옛말에, 먼저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대비한 다음에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어 적이 오면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습니다.”임진왜란이 나기 꼭 9년 전인 1583년 2월 병조판서 율곡 이이(李珥)가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 서두다. 이이는 이 상소문에서 유능한 인재등용과 군민양성 등 개혁정책을 담은 유명한 `시무육조(時務六條)`를 밝힌다. 하지만 그는 당파싸움에 찌든 신료들의 `찍어내기`식 고자질에 하염없이 시달렸다. 그가 `10만양병설`을 주장했느니 안 했느니 말이 많지만, `양병`으로 외침(外侵)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지만은 분명했던 것 같다.요즘 대한민국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전히 강대국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하염없이 불안정했던 반만 년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참혹한 전화(戰禍)에서 가까스로 살아나 번영을 일궈냈으나 지정학적 특성을 어쩌지 못하고, 비극적인 민족분열을 종식시키지 못한 죄로 국민들은 좀처럼 위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상화된 북한의 전쟁위협에다가 일본의 침략근성과 중국의 패권 갑질에 한없이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온 세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핵폭탄`을 들고 세상을 위협하는 북한의 고약한 도발책동은 난제 중의 난제다. 한 민족이면서도 케케묵은 이념의 노예가 되어, 멸망의 `핵무기`를 들이대는 협박놀음에 미쳐있는 저 돌연변이들을 어찌할 방도란 도무지 없는 상태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이번 `사드 배치` 논란 중에 드러난 중국의 속내는 명확하다. 저들은 미국과의 패권 다툼에 함몰되어 북핵을 스리슬쩍 눈감아주려는 저의를 암시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직접적인 미사일 배치를 수용한 한국의 결정에 대해 반대한다는 주장을 분명히 했다. 역설적으로, 중국은 이제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한 한국의 방위행동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시비하지 못할 입장이 된 셈이다.중국은 이번 `사드 배치`를 꼬투리삼아, 북한제재를 놓고 벌여온 겉다르고 속다른 이중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무마시킬 속셈이다. 중국 땅에서 잘 나가는 한류열풍에 브레이크를 걸어볼 흑심도 엿보인다. 현존하는 `북핵 위협`은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한국에만 부담이 커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이 나라 정치권에서 `핵무장론`은 필연적으로 터져나와야 한다.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 나라에는 도무지 보수 `매파(강경파)`의 목소리가 없다. 선진국들은 어김없이 매파와 비둘기파(온건파)가 공존하는 정치로 국내외 정치의 균형을 잡아간다. 국제사회의 역학관계 때문에 정부당국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치권이 이렇게 무기력해서는 안 된다. 아따금씩 `핵무장`이나 `미국의 전술핵 배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있지만 메아리조차 없는 지경이다. 매파들의 낮잠이 깊어도 너무 깊은 것이다.제대로 된 정치구조라면, 이 시점에서 `핵무장론`을 외치는 정치집단이 나와야 정상이다. 새누리당 내 대표적인 핵무장론자인 원유철 전 원내대표의 “`핵 트리거 선언`만이 북핵에 대응할 수 있는 획기적인 해결방식”이라는 고독한 외침이 안타깝다. 실현되든 안 되든, 지금쯤 정치권에는 `핵무장론`이 마구 날아다니는 게 맞다.“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대비한 다음에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율곡 선생의 충언이 새삼 떠오른다. 지금 우리는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충분히 준비돼 있는가. 나라와 백성을 지키려는 강고한 기백도 진정한 자부심도 거세돼버린 뭇 정객들의 모습에서 절망의 그림자를 본다.

2016-08-16

구한말(舊韓末) 데자뷔

▲ 안재휘 논설위원“저 돼지와 개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이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고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두려움에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다.”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 사설란에 실린 장지연의 유명한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의 한 대목이다. 사설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사흘 전에 체결한 을사늑약(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고, 조약 체결에 가담한 대신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해마다 어김없이 국방백서와 교과서 왜곡으로 독도도발을 일삼는 일본의 횡포 그 배경에는 경제대국 일본에게 지역안보예산을 떠넘기려는 미국의 정략이 연계돼 있다. 미일안보조약(美日安保條約)이 강화되는 시점마다 일본의 역사왜국과 독도도발이 더 그악해지는 현상은 그 상관관계를 부정할 수 없게 하는 증거다. 미국의 국익과 일본정권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그 그늘 속에 일본의 침탈야욕은 온존한다. 위태로운 것은, 주기적으로 당하는 우리가 어느 틈에 `양치기 소년` 우화 속으로 완전히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다.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2년 8월 10일 작가 이문열·김주영 등과 함께 독도를 방문했을 때, 줏대 없는 윤똑똑이들이 엄청나게 씹어댔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치인들이나 외교전문가들이 전문성을 논하고 장래를 헤아리는 일이 나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토와 국권을 지키는 일 같은 본질적인 사명에는 타협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내 나라 내 땅에 정치지도자가 가는 게 문제가 돼선 안 되는 것이다.포항시남구·울릉도를 지역구로 갖고 있는 박명재 새누리당 사무총장의 `1망언 1사업` 대응방안에 주목한다. 지난 2008년 영유권 강화사업의 일환으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추진이 결정된 독도입도지원센터·독도방파제·독도해양과학기지 건설사업에 대해 정부가 계속 미적거리는 것은 `국가수호`의 기본을 망각한 비굴한 처사다. `일본이 망언을 한 번씩 할 때마다 독도 실효지배 사업을 한 가지씩 추가하는 것`이야말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반격 아이디어다.`사드기지`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중국과의 마찰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북핵을 막기 위한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쫀쫀한 시비를 지속하고 있는 중국의 태도에서 참담했던 장구한 세월 굴욕의 역사를 다시 본다. 저 무례한 내정간섭과 오만방자한 으름장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대한민국이 아직도 군사기지 하나 건설하는 데까지 일일이 저들의 윤허(?)를 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진짜 심각한 문제는 우리 정치권에 있다. 마치 친미파·친중파·친일파·친북파로 패를 갈라 죽기살기로 사색당파 싸움을 벌이는 듯 사사건건 갈려서 물어뜯는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국가정책을 결정하는데 이런저런 이견과 논쟁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토와 국민을 지키는 국토방위의 일조차도 번번이 중구난방 사달을 내는 것은 심각한 병폐다. 중국의 주장에 동조하다 못해 끝내 비행기를 탄 야당 의원들이 사뭇 어이없고 야속하다.`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전쟁도발 위협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절대로 남한을 향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보좌파들의 낭만적인 인식은 경악스럽다. 대한제국 멸망의 뿌리는 임진왜란·병자호란으로 나라가 거덜난 뒤에도 사대주의 당파로 갈려 다투면서 쇄국사상에 반상(班常)제도라는 완고한 현대판 인종차별주의를 끈질기게 대물림한 지배층의 오랜 어리석음에 닿아있다.작금의 정치 상황에서 구한말 제각각 강대국들에 빌붙어 안온만을 획책하던 지도층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의 데자뷔(deja-vu·기시감)가 느껴진다.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 `시일야방성대곡`을 또다시 써야하는 처절한 역사가 설마 되풀이되지는 않겠지…아직은 그렇게 믿고 싶다.

2016-08-09

개헌론, 그 수상한 `돌림노래`

▲ 안재휘 논설위원윤창(輪唱)이라고도 부르는 `돌림노래`는 일정한 규칙을 지켜서 어느 가락 전체를 그대로 모방하는 음악형식인 카논(Canon)의 일종이다. 음정 간격에 따라 같은 음으로 모방하면 1도 카논, 2도 간격으로 모방하는 방식을 2도 카논이라고 한다. 3가지 성부(聲部)로 노래하면서 같은 음으로 모방하는 돌림노래는 3성부 1도 카논이다. 많은 사람들이 초등학생 때 배운 `동네 한 바퀴`라는 이름의 `돌림노래`를 추억한다. `개헌론`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20대 국회 개원사에서 언급하면서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정 의장은 대표적 개헌론자인 우윤근 전 의원을 국회 사무총장에 임명하면서 개헌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최근 `개헌`은 약방의 감초처럼 유력 정치인들의 견해표명의 주요 화두로 빠짐없이 등장한다. `개헌론`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윤창처럼 번지면서 폭발력을 서서히 키워가는 느낌이다.한때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했던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는 얼마 전 당 대표 당선 2주년 기념만찬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꿔야 한다”면서 “정치적 안정을 위해 여야 연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김원기·박관용·임채정·정의화 등 전직 국회의장과 총리 등 각계 원로 20여명은 국회에 모여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분권형으로 바꾸자는 의견과 함께 국회 개헌특위 설치를 제안했다.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에 분산시키는 방안이 포함된 개헌론을 표방한 바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유승민 의원은 강력하고 안정적 리더십을 추구하기 위한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앞세운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일단 “분권형 개헌론에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안철수 전 대표는 “`87년 체제`를 탈피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동조하지만,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다.남경필 경기도지사는 “권력구조는 독일형도, 미국형도 아닌 `한국형`으로 가야 한다”면서 “대통령 4년 중임제로 가면서 내각은 각 정당의 의석 비율에 따라 장관들을 추천받아 임명하는 독특한 우리만의 방식”이라고 설명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며칠 전 중견지역언론인모임인 세종포럼 초청토론회에서 “만약 개헌을 한다면 당연히 지방자치를 강화하는 `준연방제`에 가까운 개헌을 해야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헌법기관 집단인 국회에서도 `개헌`에 대해 동의하는 의원이 3분의2 이상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럼에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백가쟁명(百家爭鳴)이 불가피할 개헌의 `타임스케줄` 합의는 여전히 난망의 늪이다. 올 연말까지 마치자는 의견에다가, 내년 4원 재보궐선거 때 처리하자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추세대로라면 `개헌이슈`는 내년 대선전에서 비로소 가장 뜨겁게 달아오를 공산이 크다.걱정스러운 것은 두 가지다. `개헌`이 대통령선거 이슈로 몰리면 천박한 표(票)퓰리즘의 작동으로 자칫 역사적인 개헌이 아닌 `부실 헌법`이 나올 가능성이 없지 않다. 과거의 경우처럼, 대통령당선자가 `개헌` 공약을 갖가지 핑계로 묵살하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개헌`이 너무 쉬운 것도 안 되지만, 시대변화를 좇지 못하는 낡은 헌법을 맹신하여 미래를 그르치는 우매함 또한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개헌론`에 적극적인 정치인들이 대략 여야의 비주류라는 공통점 때문에, 이 이슈를 정계개편의 돌발변수로 보는 분석에 설득력이 실린다. 경우에 따라서는 `개헌이슈`가 권력재편의 새로운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비주류들에게는 `개헌론`만한 권력투쟁 소재가 없는 게 현실인 까닭에 새 헌법 권력구조에 대한 선호에 따라 자연스럽게 정치인들의 이합집산이 유도될 수 있다는 예측은 점점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돼가고 있다. 전에 없이 끈덕지게 이어지고 있는 작금의 `개헌론` 돌림노래가 날이 갈수록 조금씩 수상하게 들린다.

2016-08-02

`목민심서(牧民心書)`의 눈물

▲ 안재휘 논설위원`청렴은 목민관의 본질적인 의무다. 만 가지 선의 근원이고 덕의 뿌리이다. 청렴하지 않고는 목민관을 잘할 수 없다.(廉者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 공직자의 본질은 `청렴`이라고 설파한다. 200년 전에 쓴 이 책은 치국안민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한 희귀한 저서로서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훌륭한 유산이다. 진경준 검사장의 독직비리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에 대한 잇단 의혹제기를 계기로 공직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눈총이 따갑다. 민초들은 드러난 일들이 필경 빙산일각에 불과할 것이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키워가고 있다. 역사적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돈과 권력은 달콤해서 반드시 썩는다`는 진리를 넉넉히 체득해왔다. 도대체 이 나라 공직자 비리의 끝은 어디이고, 해결책은 무엇인가. 근본적으로 발본색원할 비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오는 9월28일 시행을 앞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 법)`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문제가 정치권 논란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김영란법에서 관심을 끄는 대목은 크게 3가지다. 언론인·사립교원을 적용대상에 넣은 조항의 과잉금지 원칙 위배 여부, 낮게 책정된 수수 허용액으로 인한 농어촌 피해 문제, 국회의원들을 적용대상에서 제외시킨 제5조 제2항 3의 적절성 여부 등이다.특히 농어촌과 중소기업들을 중심으로 연 11조원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경제적 손실 문제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28일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계기로 법의 내용을 명확하게 해서 법 시행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다. 제아무리 효과가 좋은 항암제라고 하더라도 정상세포를 함께 망가뜨리는 신약은 결코 좋은 치료제가 아니다.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어리석음은 피해야 한다.공수처 신설 문제는 해묵은 과제다. 지난 1998년 국민의 정부에서 `공직비리수사처`를 추진하다가 검찰의 반발로 무산된 이래, 참여정부 들어서도 `공직자부패수사처`신설이 좌절된 바 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비대위원장이 공수처 추진 공조에 합의했다. 더민주당은 공수처 수사범위에 판검사·국회의원·차관급 이상 고위공직자를 포함하는 쪽으로 얼개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물론 새누리당은 반대다. 새누리당은 “정치권의 입맛에 따라 국가수사시스템을 2년 만에 또 바꿀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진석 원내대표는 25일 혁신비대위 전체회의에서 “공수처 신설은 위헌성, 옥상옥 논란 등의 문제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면서도 “검찰 스스로 개혁이 지지부진할 경우 공수처 신설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확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작금의 여론 향배를 의식하고 있음을 드러냈다.세종 대에 좌의정을 지낸 청백리 맹사성(孟思誠)은 비가 새는 누옥에서 살았다. 한 선비가 이를 딱하게 여기자, 그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런 말 마오. 이런 집조차 갖지 못한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오? 국록을 먹는 사람으로서 부끄러울 따름이오” 맹사성이 만약 오늘날 고위공직자로 살았다면 동료들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아마도 등신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지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지나친 비관일까.청렴에 대한 정약용의 사상은 추상같다. `목민심서` 율기 편에서 그는 `오직 선비의 청렴은 여자의 정조와 같다. 털끝 하나라도 더러워지면 죽을 때까지 결점이 된다.(惟士之廉 猶女之潔 苟一毫之點汚 爲終身之?缺)`고 말한다. 청탁(淸濁)은 사람 마음이 하는 일이다. 정약용의 정신에 비춰보면 김영란법이고, 공수처고 다 무슨 소용이랴 싶다. 나라에서 공무원들에게 `목민심서`를 백날 눈으로만 읽히면 무얼 하나. `목민심서`를 가슴으로 읽는 공직자들이 많아야 공직사회가 바뀌고 나라가 달라진다.

2016-07-26

`신뢰상실`의 저주

▲ 안재휘 논설위원중국 진나라 효공(孝公) 시대의 명재상 상앙은 법을 제정해놓고 공포를 미뤘다. 나라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상앙은 3장(약 9m) 높이의 나무를 남문 저잣거리에 세우고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십금(十)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상앙은 다시 “오십금을 주겠다”고 상금을 올렸다.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즉시 오십 금을 주어 백성들의 불신을 씻어냈다. 중요한 것은 다음 대목이다. 새로운 법이 공포되고 1년이 지나자, 그 부당함을 호소하는 자가 1천 명이 넘었다. 이때 태자가 법을 위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상앙은 법에 따라 태자를 가르치는 대부(大傅)를 처형했다. 다음날부터 백성들은 법을 철저하게 준수했다. 10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법에 매우 만족했고 나라의 질서가 바로잡혔으며 천하통일의 기반이 다져졌다. 잘 알려진 사목지신(徙木之信)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예상했던 대로다. 지난 15일 성주군청 앞에서 총리와 국방장관이 해괴한 봉변을 당한 불상사 한가운데에 헌재 결정으로 해산된 통진당 인사들이 참여한 민중연합당 조직원이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자파로 인해 주민들은 암에 걸리고, 여성은 불임이 되고, 기형아가 태어나고, 꿀벌이 사라져 참외가 수정되지 않고…` 무단히 번져나간 괴담의 진원지도 불문가지다.국민들의 정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소통의 행정으로 나랏일을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정부를 애써 두둔할 생각은 없다. 매사를 온 나라가 들썩거리도록 시끄럽게 밀고 가는 서투름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성주군청 앞의 불상사 그 안에 일부 불순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될 수도 없다. 정말 건강한 행정이라면 결코 그런 극소수의 불온세력이란 발붙일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그러나 병증을 올바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선입관이 일체 배제된 맑은 눈이 필요하다. 적군과 무력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장비를 배치하는데 지역민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억지주장이 통용되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있나. `바른 말`을 삼키고만 있는 지역정치인들의 처세는 `선도 기능`을 상실한 한국정치의 참상을 대변한다. 제아무리 여론에 따라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는 형편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싶다.건듯하면 국사(國事)를 놓고 선동정치가 발동하고 국민들이 휘둘리는 이유를 정확하게 짚어내야 한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이 대표적인 전례다. 불순세력의 못된 괴담장난질에 놀아난 한 방송사의 헛발질로 증폭된 광우병 파동은 내용부터 허무맹랑했다. 그 얼마전에 치러진 18대 대선에 대한 불복심리의 발로였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간악한 도전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그 어불성설의 장난질을 끝까지 냉엄하게 단죄하지 않은 데에 있다.광우병 사태의 중심에서 민심현혹의 지렛대 역할로 천문학적 국력낭비를 주도했던 선동전문가들은 그 이후에도 득의양양했다.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사례가 전무함에도 완장 갈고 명찰 바꿔가며 제주해군기지 반대, 밀양 송전탑 반대 소용돌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궤변장사를 해왔다. 정부는 물론 이 땅의 지식인들 모두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선동가들에게 터무니없이 너그럽다.사드배치를 놓고 일어나는 모든 불협화음은 `신뢰상실`의 부메랑이요, `불신`의 저주다. 소통을 확대하고 약속을 지키며 자신의 허물이 드러났을 때는 가차없이 스스로 종아리를 치는 것 외에 다른 해법은 없다. 상앙의 지혜로 위정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질서가 잡힌 진나라의 풍경을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길에 떨어진 물건은 줍지 않았고, 산에는 도적이 없었다. 또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였다. 나라를 위한 싸움에는 용감하였으며, 개인의 싸움에는 겁을 먹었다`

2016-07-19

사드(THAAD), 민심을 요격하다

▲ 안재휘 논설위원가족회의에서, 성능 좋은 총을 지닌 불한당의 위협으로부터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몽둥이라도 하나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그러나 가족구성원 중 일부가 몽둥이로는 총을 못 막을 뿐만 아니라 동조세력들까지 자극할 수 있다며 극력 반대한다. 그럼에도 가장이 `미흡하지만 몽둥이를 준비하겠다`고 결정하자, 이번엔 너도 나도 자기는 몽둥이를 들 수 없다고 아우성친다. 무기를 든 사람이 위험해진다는 것이 그 이유다.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가 결정되면서 다시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지난해 봄 열띤 논란 이후 1년여 만이다. 여당은 `찬성`입장을 밝히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뜻을 밝힌 반면, 야3당은 `반대` 한 목소리다. 사드 배치 후보지로 거론된 지역의 민심마저 무한정 들끓고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사드가 배치도 되기 훨씬 전에 대한민국 민심부터 앞질러 요격해버린 꼴이다. `사드`라는 이름의 요격 미사일의 배치문제는 알려진 정보만 가지고도 많은 의문점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반대론의 주요 논거 중 하나는 효용성이다. 명중률이 높다고는 하지만, 이미 배치 운용되고 있는 패트리어트(PAC) 시스템에 미사일 몇 발 더 보탠다고 1천여 발에 달한다는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막아내는데 무슨 큰 소용이 있을 것이냐는 반론이다. 한마디로 `새 발의 피(鳥足之血)` 아니냐 이거다.다음은 사드 배치를 둘러싼 외교적 마찰 문제다. 중국 외교부는 8일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 발표 직후 `외교부 성명`을 통해 “강렬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백두산 지역에 사드 레이더의 2배 이상 탐지거리를 가진 장거리 레이더를 배치해 한반도는 물론 괌(Guam) 기지까지 감시하고 있는 중국이나, 극동에 장거리 레이더와 미사일 방어체계를 운용하고 있는 러시아의 반대는 그야말로 적반하장이요 철면피 행각이다. 사드 한국 배치가 북한 지도부에 호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은 뼈아프다.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더 긴밀하게 유지해나가면서 노골적으로 경제적 지원을 요청할 명분이 될 지도 모른다는 예측마저 나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중국이 유엔의 북한제재 대열에서 슬쩍 이탈할 수도 있다는 대목은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주변국의 민감한 반응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정부의 비상한 외교력이 필요한 시점이다.사드 포대 배치의 후보지로 떠오른 지역의 반발과 거부감은 난해하다. 국가를 방위해야 한다는 대의명분과 지역발전의 걸림돌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현실적 고민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지역민들의 감정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정치인들의 입장은 한없이 곤혹스럽다. `사드의 특성인 기동성을 고려, 몇 개의 기지를 만들어 수시 이동배치가 가능하도록 하자`는 경북대 이정태 교수의 견해에 눈길이 간다.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효용성이나 중국의 반발을 중심으로 무한 증폭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치명적인 오류다. 한반도 사드 배치는 어디까지나 전 세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북한의 전쟁위협에 대비하려는 목적으로 추진되는 고육지책이다. 북한의 핵위협을 제어할 다른 현실적인 묘책이 뒷받침되지 않는 모든 정치적 반대논리는 포퓰리즘의 산물이거나 반대를 위한 궤변에 불과하다.신무기 배치를 둘러싸고 정치권은 찬반 정쟁의 도가니로 빠져들고, 국민들은 님비(NIMBY) 열풍에 휘말렸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영육과 재물을 모두 던져내신 선조들의 의기에 정녕 부끄럽지 않은가. 사드는 갈증해소에 태부족한 한 방울의 물이지만 절박한 자구책이다. 총을 든 강도가 위협할 때는, 몽둥이라도 들고 맞서는 것이 옳다. 저 강도에게서 총을 빼앗을 용빼는 재주가 따로 있지 않다면, 무턱대고 반대하면서 뜬구름 잡는 평화 타령만 일삼는 그 입들일랑 당장 다무는 게 맞다.

2016-07-12

`낡은 완장` 잔혹사

▲ 안재휘 논설위원칠월칠석으로 날을 잡아 우물곁에 포장이 쳐진다. 깊은 우물 속으로 마을 장정과 물동이와 삽 따위의 도구들이 차례로 밧줄을 타고 내려간다. 이윽고 1년 내내 우물 안에 쌓인 오물과 흙탕물이 물동이에 담겨 올라와 버려진다. 포장에서는 이웃들이 국수도 삶고 막걸리도 마시며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옛날, 온 동네가 우물 하나를 식수로 쓰던 시절의 `우물 청소하는 날` 정경이다. 국회의원들이 한 묶음으로 싸잡혀 `세금도둑`으로 몰리고 있다.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는 악덕 기업가의 목불인견(目不忍見) 갑질 행패마저 닮아있다. 비서관·보좌관을 친인척으로 채우는가 하면, 일부 보좌진들에게는 `꺾기` 형식으로 봉급을 잘라 바치게 했단다. 200여 가지 국회의원들의 갖가지 특권들도 일일이 입줄에 오르고 있다.`친인척 보좌진 채용 금지` 의견에 각 정당들은 한 목소리다. 회기 중에는 체포되지 않는 불체포 특권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는 주장에도 동의를 보태고 있다. 국회에서 한 발언에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한 면책특권에 대해서는 소신발언이 원천봉쇄돼 국회기능이 마비될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하는 분위기다.최근 정치권 현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대중의 `우상파괴` 심리를 읽어야 한다.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의 경제불균형 현상이 가팔라지면서 사람들은 `평등` 문제에 점점 더 관심을 키워가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무던히 견뎠던 불평등에 대해서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참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지난 2013년 남양유업의 대리점 갑질 사건과 2014년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이 시작이다. 몽고식품 김만식 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대림산업 이해욱 부회장·MPK그룹 정우현 회장·현대 비앤지스틸 정일선 사장의 갑질 행태 폭로 등이 잇따랐다. 전자통신의 발달로 인해 지도층의 그 어떤 일상도 완전히 숨길 수 없게 된 세태의 여파다. 모다깃매를 맞고 고개를 숙인 더민주당 서영교 의원 역시 스스로를 희생양으로 여기고 억울해한다. 이 나라에서 적발된 범죄에 대해 당사자나 주변사람들 모두 `잘못했다`는 생각보다는 `재수 없다`고 여기는 일은 이미 오래된 기현상이다. `낡은 완장`을 차고 휘두르다가 개망신을 당하는 잔혹사는 좀 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 3당 원내대표의 의장직속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자문기구 설치 합의는 진일보다. 그러나 이 정도로 정치권이 정말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난센스다. 미국은 보좌관 채용법에 `족벌주의(Nepotism)`라는 항목이 있어 친·인척의 보좌진 고용과 보좌진의 선거운동 업무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영국은 지난 2009년 기저귀 값 전용에까지 뻗친 국회의원들의 엄청난 수당 남용이 폭로된 `의회지출 사건`으로 142명의 현역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권까지 바뀌는 소용돌이를 겪었다. 의회·정부·정당으로부터 완전히 독립적인 영국의 `독립의회윤리기관(IPSA)`은 웹사이트를 통해 모든 의원들의 수당신청 내역을 시시콜콜 다 공개하고 있다.국회개혁의 초점은 독립성을 가진 윤리기관의 설치 여부다. 국회 내의 윤리기구는 그 어떤 정치인 부조리도 제대로 척결한 역사가 없다. 왜 그럴까? 한 마디로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격`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정치권에서 운위되고 있는 그 어떤 혁신안도 `완전히 독립적인 윤리기관` 설치로 귀결되지 않는 한 위기국면 타개를 위한 `꼼수`에 불과할 것이다.정치인들은 이제 `낡은 완장`을 힘차게 벗어던져야 한다. 태풍은 지나가리라 하고 복지뇌동(伏地腦動)하면서 대형이슈가 `특권` 논란을 잡아먹길 기다리는 것은 비겁한 짓이다. 지금 `우물 청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 공동체의 건강이 정말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미국도 하고 영국도 하는데 우리라고 왜 못할 것인가.

2016-07-05

`공약(空約)` 불감증 증후군

▲ 안재휘 논설위원여러 명의 정치인들을 태운 버스가 절벽에서 굴러 한 농부의 밭에 떨어졌다. 생존자가 아무도 없었다. 사고현장을 처음 목격한 농부에게 기자가 물었다. “정말 생존자가 아무도 없었나요?” 농부가 대답했다. “처음엔 몇 명이 살아있다고 외치더군요.” 기자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안 구했나요?” 그러자 농부가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정치인들 말을 어떻게 믿어요? 다 뻥인데.”시중에 나도는 정치유머의 하나다. 과장되고 끔찍하지만, 한편으로는 정치인들이 얼마나 식언(食言)을 잘하는지에 대한 극단적인 여론을 풍자하고 있다. 10년넘게 끌어온 영남권신공항 건설추진이 또다시 무산됐다. 영남권은 영락없이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개 신세가 됐다. `신공항` 신기루를 놓고 천지가 시끄럽도록 멱살잡고 다투다가 한순간에 모개로 헛물을 켠 무참한 꼴이 되고 말았다.영남권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사이에 옛날 `신행정수도` 논란으로 나라를 들썩거리게 했던 세종시가 다시 정치이슈의 핵심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당 소속인 남경필 경기지사가 “개헌을 해서라도 국회와 청와대를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 시작이다. 세종시를 지역구로 둔 무소속 이해찬 의원도 최근 국회분원의 세종시 설치를 내용으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유권자들을 홀리기 위한 정치인들의 공약(空約) 습성은 억세고 드세다. 국민들 역시 정치인들이 마구발방 내던지는 수상한 약속에 손쉽게 휘둘린다. 이 같은 모순현상은 소아병적인 지역이기주의와 맞물려 한없이 증폭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내년 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가 개헌 정국 기류에 뒤섞이면서 기상천외한 가설들이 공약(公約)이라는 이름으로 민심을 뒤흔들 개연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지난 4·13 총선에 출마한 지역구 후보자들이 내건 공약을 이행하는데 필요한 예산은 무려 1천조 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20대 총선 후보자들로부터 공약 예산표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다. `우선 당선되고 보자`는 심산으로 허황한 공약, 국가의 형편을 고려치 않은 선심성 정책약속들을 마구 쏟아내는 우리 정치판의 진짜 문제점은 그런 후보에 쉬이 놀아나는 유권자들에게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진실로 요긴한 것은 정치인들의 공약을 제대로 검증해내어 표심에 올바로 연결시킬 선진적 가치판단 구조다. 무엇보다도 빠르고 정확하고 강력한 공약검증 장치를 발전시켜야 한다. 나라 말아먹을 선심성 공약을 일삼는 후보자들을 가려내는 정밀한 시스템을 하루빨리 개발해야 한다. 몰염치한 정치인들이 거듭 당선되곤 하는 후진적 선거메커니즘을 확실하게 단절해내야 한다.유권자들의 어리석음을 신랄하게 비꼰,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너도 나도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공약이 범람하던 시절, 강(江)도 없는 지역에서 같은 공약을 내놓은 후보에게 “강이 없는데 어디에다 다리를 놓느냐”고 묻자 “강을 만들어 다리를 놓으면 된다”라고 큰소리를 쳤다던가. 그런데 그렇게 황당한 공약을 내건 후보가 결국 당선됐다는 유머의 후렴은 더 배꼽을 잡게 한다. 국민들의 `공약(空約)` 불감증 증후군은 깊고도 깊다.말도 안 되는 `달콤한 독`을 써서 당선된 정치인들의 무책임을 끝까지 징치할 수 있는 엄정한 정치시스템을 만들어낼 수는 없는 것일까. 달달한 유혹에 솔깃해 나라의 미래를 망치지 않도록 유권자의 의식을 새뜻하게 일깨워낼 묘책은 정녕 없는 것인가. 국민들은 망국적 `표(票)퓰리즘`에 마구 휘둘리고, 정치인은 공약이 물거품이 돼도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대한민국을 이대로 둘 수는 정말 없는 노릇이다. 정치인들이 진심으로 존경받는 나라는 언제쯤이나 이룩될 것인가. 김해공항 증설을 한사코 `신공항 건설`이라고 욱대길 수밖에 없는 작금 청와대의 처지가 안쓰럽다.

2016-06-28

민주화, 그 마지막 숙제

▲ 안재휘 논설위원20대국회 초반, 국회의원들이 달고 다니는 금배지를 떼어버리자는 제안이 국회 안에서 나왔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측면에서도 국회규칙 개정을 통해 금배지를 없애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 백 의원의 제안을 `얄팍한 포퓰리즘`의 소산으로 보는 시니컬한 시각도 있지만 일단 국민여론은 찬성 쪽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개헌 용광로`를 달구는 외침들이 여기저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개원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신호탄을 쏘아올린 뒤, 유력 정치인들이 앞다퉈 긍정발언들을 쏟아내면서 미상불 정치권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는 중이다. 물론 과거 여러차례 개헌론이 등장했다가 동력을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상황을 겪어본 입장에서 정치인들의 발언을 일과성 `퍼포먼스`로 보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하지만 국민들과 국회의원들의 개헌 공감도가 치솟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가 이채롭다. CBS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중 69.8%가 개헌에 `공감한다`고 답했고, 연합뉴스가 국회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결과 개헌공감 의견은 전체의 83.3%인 250명에 이르고 있다. 작금의 미풍이 회오리바람으로 돌변해 바야흐로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개연성이 높아진 상태다.이 시점에서 기필코 논쟁의 핵심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지켜내야 할 절체절명의 개헌과제가 있다. 바로 `지방분권형 개헌`이다. 이는 지방행정을 감당해온 인사들은 물론이고, 지방자치 발전을 조금이라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실히 깨닫고 있는 주제다. 20여 년 지방자치 시행 결과, 헌법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결코 진정한 지방자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적 깨우침의 결과물이다.구시대의 완고한 중앙집권적 시스템이 연장되고 있는 국가체제 속에서 중앙집권주의는 난공불락이요, 철옹성이다. 제아무리 자치의식이 투철한 장관이 부처를 장악해도 도무지 움쩍하지 않는 중앙정부의 기득권의식을 허물 수 있는 힘은 `헌법` 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눈물겨운 투쟁과 시행착오의 산물이지만 지방자치의 실현은 민주화운동 최후의 숙원이요, 미완의 숙제다. 이 땅에서 민주화는 언제나 자유와 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구돼 왔다. `2대 8`이라는 기울어진 틀 속에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단단히 옭혀있는 이 구조를 깨부수지 않는 한 온전한 지방자치나 민주화는 공염불이다. 이른바 뜨거운 개헌정국이 도래되고 있는 판에 전국의 지방이 정신을 차려 뭉쳐야 할 때다. 필경 `정략의 목책`에 갇혀서 권력구조 패싸움에 함몰될 정치인들에게 이저리 치여 지방자치가 영원히 표류하는 비극이 펼쳐져서는 안 된다.`개헌`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청와대의 진취적 자세가 필수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지방분권형 개헌을 목표로 제시하고 뒷받침하는 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 희원에 불과할까. 지방분권형 개헌은 이 나라 최대의 난제인 일자리창출, 출산율, 균형발전…. 나아가 여전히 미진한 민주주의의 완결까지도 성취할 수 있는 첩경이 될 수 있다. 고루 잘 사는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강력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여야를 막론하고, 지역 국회의원들 모두가 지방자치를 위해 뭉쳐 나서서 기어이 역사를 바꿔내는 기적을 꿈꿔본다. 각종 특권을 상징하는 금배지를 떼어버리는 일과 지방정부를 영원히 지배하려는 중앙정부의 갑질근성을 차단하는 일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지방자치란 민주주의의 최상의 학교이며 민주주의 성공의 보증서”라는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정치가인 J.브라이스의 명언을 되새긴다. 역사는, 그 어떤 권력도 거저 나눠주는 법이 없음을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

2016-06-21

`정치(政治)`와 정쟁(政爭)` 사이

▲ 안재휘 논설위원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채진원 교수는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우리 정치의 핵심 문제점을 `중도의 부재`에서 찾는다. 그는 “국민들의 이념 성향은 중도로 수렴되는 추세가 나타나는 반면, 국회의원들은 이념적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진단한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승인(勝因) 역시 야당 몫이었던 `경제민주화`과 `복지`정책을 선점해 중도확대를 도모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20대 국회가 개원식을 갖고 정식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원연설에서 “국민이 20대 국회에 바라는 것은 화합과 협치”라며 “앞으로 3당 대표와의 회담을 정례화하고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하며 국민과 함께 선진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개원연설 직후 가진 신임 국회의장단, 여야 3당 지도부와 환담에서도 “앞으로 국회와 더욱 많이 대화하고 소통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어떤 실천으로 뒷받침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화합`과 `협치`, `국회 존중`, `소통` 등 꼭 필요한 단어들이 다 포함된 박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한다. 다만, 3권 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국가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국회를 존중하고 소통하겠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언어들이 대서특필되는 우리 언론을 외신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이다.20대 성년 국회가 출범한 이 시점에, 우리 유권자들이 가장 신경을 써야할 부분은 입법부의 `생산성`이다. 아시아개발은행이 지난 2014년에 조사 발표한 창조생산성지수(CPI)에 따르면 한국은 투입(Input)과 결과물(Output) 모두에서 일본, 핀란드에 이어 최상위권인 3위에 랭크됐다. 따져볼 방법은 없으나, 영일 없이 밥그릇싸움만을 일삼는 우리 국회의 생산성은 세계 몇 번째 자리에 놓여 있을까 궁금하다.가성비(價性比)를 무기로 세계경제를 시나브로 삼켜가고 있는 중국의 예만 보더라도, 우리 정치의 생산성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여전히 `다스림`은 사라지고 `다툼`만 남아있는 정치 환경 속에서 생산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국민들이 들메끈 동여매고 나서야 한다. 특권 속에서 비리관행만 대물림하는 정치생태계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 부조리가 가능한 구조를 송두리째 뜯어고쳐야 한다.어찌 됐든, 정국의 가장 큰 불안요인은 내년 말 대통령선거다. 정치인들은 미래권력을 움켜쥐려는 세력다툼을 계속할 것이고 크고 작은 파열음을 내며 이합집산을 모색할 것이다. 민생문제는 뭇 정치인들의 정쟁(政爭) 속에서 여전히 이리저리 치일 공산이 커지고 있다. 정치꾼들은 밤낮없이 계산기를 두드려대며, 어떻게 해야 남는 장사가 될 것인가에나 골몰할 게 번연하다.걱정스러운 것은 국민들로부터 `협치`라는 엄중한 명령을 받은 20대국회가 성실하게 의무를 다할 가능성이 아직 그리 높지 않다는 현실이다. 국민들을 보수-진보로 패싸움 붙여놓고 집토끼부터 잡아 우리에 가둬놓는 꼼수에 익숙해진 게 정치판 아니던가. `중도` 영역에서 심사숙고하는 산토끼들을 현혹하는데 성공하는 쪽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것은 우리 정치사의 어두운 공식 중 하나다.채진원 교수는 앞서 언급한 저서에서 보수ㆍ진보의 이념을 과잉 동원하는 편향성 선동전략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방안으로 `중도적 실용노선`을 제시한다. 선거공약으로 유권자를 홀린 다음 나중에는 흐지부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사탕발림이 아닌, 신실한 정책으로서의 `중도실용`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하지만, 진정한 `중도실용`의 생활정치 구현에 미래가 걸려있다는 인식에는 공감이 간다. 국민 삶을 정말로 바꿔줄 제대로 된 `정치(政治)`는 과연 언제쯤 볼 수 있을 것인가.

2016-06-14

`도로 친박당(?)`

▲ 안재휘 논설위원T.홉스, N.B.마키아벨리 등이 주장하는 전통적인 권력관(權力觀)인 `권력실체설(勸力實體說)`은 권력이란 인간에 의해서 소유되거나 분할되는 실체라고 여기는 학설이다. 이와 달리 J.로크가 말하듯 개인 또는 집단 사이의 관계 속에서 동의(同意)의 과정을 통해 권력이 성립한다는 생각이 `권력관계설(權力關係說)`이다. 양 설이 뒤얽혀서 권력이 성립하는 것이 통례이지만, 선진 민주주의국가일수록 권력은 권력관계설에 부합한다. 지난 4·13총선 참패 이후 국민들 앞에 연일 만신창이 남우세 꼴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가까스로 혁신비대위를 꾸리고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다. 당의 골조부터 싹 바꿔보려던 정진석 원내대표의 혁신기획안은 친박계의 친위쿠데타성(?) 보이콧 한 방에 치기어린 실험 취급을 받으며 박살이 났다. 결국 정진석-최경환-김무성 3거두의 물밑거래 끝에 만들어진 것이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회`다.김 위원장은 혁신비대위원장 내정이후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선출 직후에는 “당명만 빼고는 모두 다 바꿔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면서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다음 대선뿐 아니라 앞으로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그가 동원하는 용어가 초강경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기대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지난 4·13총선 이후 새누리당 친박계를 향해 쏟아지는 언론계의 조롱들은 험악하기 그지없다. `자폐적 속성`, `탄핵이자 사망선고`, `외눈박이 종(種)만 설치는 흉가이거나 갈라파고스`, `권력을 지키려다 국민과 정권에 더 큰 죄업`, `희대의 정치적 오명`…. 총선참패의 원인을 친박계의 오만방자로 단정한 뭇 논객들의 비판은 거의 욕설에 가깝다. 물론, 이런 비난에 대해 친박계는 불만이다.“왜 우리만의 잘못이냐?”는 친박계의 항변은 일리가 있다. 거대 집권당의 참패를 놓고 특정계파의 과오만을 거론하는 것은 균형 감각을 잃은 진단일 수 있다. 남에게 허물을 뒤집어씌우고 빠져나가려는 불순한 면피심리도 작동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총선과정을 낱낱이 지켜본 국민들 눈에 친박계의 항심(抗心)은 어이가 없다. 그들이 국민 앞에, 아니 지지자들 앞에 신실하게 대죄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한 더욱 그렇다.문제는 친박계의 뻣뻣함이 궁지에 몰린 절박한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친박계는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는 정치적 결산서를 들고 있다. 어쨌든 당내 권력분포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적어도 폐족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표정관리만 적당히 하면서 소나기를 피한 뒤, 당권을 장악하면 또다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굳건하다. 국민들은 이미 그런 속내를 다 꿰뚫어보고 있다.이 나라에서 권력의 속성은 왜 매번 그럴까. 승자독식의 구조 속에서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무한 권력을 휘두르려는 관성을 보인다. 천부권력(天賦權力)이라도 움켜쥔 듯이 구는 그들의 행태 뒤에는 권력실체설에 근거한 시대착오적인 권력관이 존재한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마저도 `권력을 장악했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사회가 유동화하고 복잡해지는 시대에 권력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개인·집단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다. 권력은 이제 `거머쥐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기초상식이다. 이 시대에는 권력관계설에 근거하여, 이긴 측에게 동의의 과정에서 협의를 주도할 권리를 주는 정도가 `권력`의 옳은 개념이다. 새누리당이 반기문 카드를 유일한 깃발로 앞세워 `도로 친박당`으로 가는 것은 위태로운 길이다. 상생과 소통의 `플러스 정치`를 뿌리치고 굳이 `데릴사위 정치`를 탐닉하는 친박계의 DNA, 그 결벽증의 실체가 난해하다.

2016-06-07

반기문 메기론(論)

▲ 안재휘 논설위원한때 청어잡이로 융성했던 북유럽 노르웨이의 한 어부는 육지에 도착해서도 항상 살아있는 싱싱한 청어를 팔아 큰돈을 벌곤 해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 어부는 자신만의 비법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 어부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의 배 수조 속에서 메기 한 마리를 발견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청어들이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 다니느라고 싱싱하게 살아있었던 것이다.요 며칠 사이에 새누리당에 때 아닌 신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친박계는 4·13총선 패배에 대한 눈총으로부터 탈출을 이끌어낼 메시아가 나타난 듯이 화색만면이다. 반기문(潘基文) 유엔사무총장이 드디어 차기 대통령선거와 관련해`출마`쪽으로 가닥을 잡아 오랫동안의 국내외 설왕설래에 종지부를 찍었다. 반기문은 이제 차기 대권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常數)로 자리매김을 한 것으로 읽힌다.반기문을 겪어봐서 좀 안다는 사람들은 그의 냉정함과 침착함, 성실함에 놀랄 때가 많았다는 경험담을 내놓는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엄청난 지위를 꿰찬 그를 놓고 정치력이 의심스럽다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번 행보로 총선참패 이후 초상집 꼴이 된 새누리당 하늘에 화려한 무지개를 띄움으로써 그는 이미 탁월한 정치력을 증명했다. 어쨌든 차기 대선 판에서 그를 보게 될 확률은 한층 높아졌다.그러나 이 시점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말 한마디에 안색이 오락가락하는 여야 정치인들의 배알 없음은 지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보수 주류를 대표하는 집권 여당이 마땅한 대권주자 한 사람 없이 그에게 목을 매는 모습이 착잡하다. `60년 정통야당`을 자랑하는 더민주당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반기문 티 뜯기에 열중하는 것도 안타깝다. 사분오열돼 흔들리는 TK지역이 그를 껴안고 흥분하는 모습은 더욱 당혹스럽다.정치는 현실이다. 반기문이라는 전대미문의 외교인재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것이 나쁠 이유는 없다. 더욱이 충청 출신인 그가 유력한 대권후보가 돼서 민족적 숙원인 지역통합과 통일 대업의 튼튼한 주춧돌을 놓게 된다면 축복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가 특정 정치세력이 만들어준 꽃가마를 타고 옹립을 받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그가 만약 새누리당을 선택한다면 가장 먼저 증명해 보여줘야 할 대목은 혁신 능력이다. 특정 계파의 분열적·패권적 문화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더라도 `뼈와 살을 모두 바꿔내는`일을 성공해야 한다. 나아가 승리를 위해서라면 편법·탈법 못할 짓이라곤 없는 구태정치에 편승한다면 오히려 처참하게 실패할 공산이 크다. 본인이 체험해온 선진 민주주의국가의 기준에 맞춰 한국정치를 완전히 바꿔내겠다는 결기를 꼿꼿이 세우고, 실천해내는 것만이 성공을 보장하는 확실한 전략일 것이다.반기문이 안착을 시도할 착륙지가 어디일지 말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 그는 결단 발표시점을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 종료 이후로 미루고 떠났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어쩌면 국민들이 반기문 마약에 취해 4·13총선 폐농을 주도한 자신들의 허물을 일순 망각해주기를 바랄지 모른다. 혁신일랑 얼렁뚱땅 유야무야 미봉하고, 하루빨리 푸진 전당대회 한 판 열어 반기문 장사로 당권이나 거머쥘 속셈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국민들이 시퍼렇게 눈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할까. 반기문이 던져놓고 간 `통합`이라는 화두는 새누리당에 깊이 남긴 숙제다. 새누리당이 그악한 밥그릇싸움으로 오합지졸이 돼 있는 한 동승하기 어렵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누구든 지금 정치공학적인 시각만으로 반기문을 다루는 것은 패착일 가능성이 높다. 대권주자 반기문이 혼탁한 대한민국 정치 수조 안에서 나태하고 소심하고 이기적인 정치인들을 대오각성하게 하는 강력한 메기와 같은 존재로 역할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2016-05-31

스펙트럼 전쟁

▲ 안재휘 논설위원인식이나 사물은 정반합(正反合)의 3단계를 거쳐서 전개된다는 것이 철학자 헤겔이 확장시킨 변증법이론이다. 정(正)은 그 자신 속에 모순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모순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단계이며, 반(反)은 그 모순이 자각되어 밖으로 드러나는 단계이다. 이 같은 모순에 부딪침으로써 제3의 합(合) 단계로 전개해 나간다는 이론이 곧 변증법이다. 요즘 정치권을 들여다보노라면 반(反)의 단계 깊숙한 곳에 다다른 느낌이다. 정치권 기류가 끝 모를 혼란 속으로 몰려가고 있다. 새누리당은 친박계가 선거패배의 책임을 거부한 채 정진석 새 원내대표의 개혁 설계도를 뒤집어엎은 친위쿠데타로 엉망이 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은인자중하는 모습을 이어가던 손학규 전 상임고문이 정계개편을 시사하는 발언을 함으로써 뒤숭숭해졌다. 임기를 마무리하는 정의화 의장은 오는 10월경 신당 창당가능성을 언급해 갖가지 풍설의 진원지를 자처했다.19대 국회가 문을 닫기 직전 박근혜 대통령에게 마지막 선물로 안긴 `상시 청문회법`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국회를 통과한 `상시 청문회법`은 국회 상임위원회가 중요 안건의 심사와 현안 조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할 경우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여소야대 구도의 20대 국회에서는 새누리당이 반대를 하더라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만 손을 잡으면 언제든 청문회 개최가 가능해진다.관심의 초점은 과연 박 대통령이 이 법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할 것인가에 쏠려 있다. `상시 청문회법`은 박 대통령에게 안과 밖이 따로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존재로 떠올랐다. 받아들이자니 연중 내내 행정부가 입법부에 시달리기 십상이고, 거부하자니 여소야대 구조의 정치지형을 헤쳐 나갈 방도가 없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국회가 이 장치를 선용(善用)할 가망이 있어 보이지 않는 것이다.행정부의 우려는 일리가 있다. 장·차관을 비롯한 고위 공무원들을 무차별적으로 부르는 현재 국회의 관행상 통제 없는 권력행사로 이어질 개연성이 있다. 임기 말 공직사회의 `레임덕`현상과 맞물려 행정부 공무원들에게 좋지 않은 신호를 보내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부채질하면서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떨어질 염려도 무시하기 어렵다. 입법취지와 달리 정치적 공세의 장으로 변질될 가능성도 높은 게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이 지금 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바른 선택이 아니다. 행정부가 국회의 나쁜 관행을 직접적으로 끊어낼 수 있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있지 않다. 국회의 으뜸기능이 행정부 감시에 있는 한, 국회가 행정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는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이번 기회에 국회가 성숙한 감시기능을 자율적으로 배양할 수 있도록 공을 던져주는 것이 맞다. 청문회 구태에 대한 감시는 이제 국민에 맡길 때가 됐다.어쨌거나 정치권에는 서서히, 내년 말 대통령선거를 종착지로 놓고 복잡한 이합집산(離合集散) 와류가 형성되고 있다. 유력한 대권주자조차 없는 집권당 새누리당의 사분오열이 위태롭다. 4·13총선 참패에 대한 패인분석조차도 하지 않고 있는 새누리당은 끝내 반성도 개혁도 생략할 모양이다. 친박계는 비박계가 스스로 몰살을 감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총선에서 집권여당이 패배했다는 해괴한 판단을 갖고 있음이 분명하다.우리 정치권은 이제 친박이니 비박이니, 친노니 비노니 하는 천박하기 짝이 없는 패 가름에서 놓여나야 한다. 국민의 삶을 위한 논쟁이라곤 완전히 배제된 그들의 추잡한 밥그릇다툼을 겨눈 민심의 분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너른 가슴으로 이념을 확대재생산하지 못하는 정치세력에는 미래가 없다. 그것이 4·13 총선의 교훈이요, 헤겔의 변증법 3단계인 합(合)이 부르는 오늘날의 시대정신이다. 바야흐로 치열한 `스펙트럼 전쟁`이 시작됐다.

2016-05-24

새누리당의 `퍼즐 게임`

▲ 안재휘 논설위원1984년 소련의 과학자 알렉세이 파지트노프(Alexey L. Pajitnov)가 퍼즐 완구 `펜토미노`에서 영감을 얻어 개발해 세상에 내놓은 `테트리스`는 퍼즐 게임의 혁명을 일으킨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5세 아동부터 100세 할머니까지 누구든 즐길 수 있을 만큼 룰이 단순하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벽돌을 회전 이동시켜 한 줄을 가득 채우면 그 줄은 소멸하고, 다음 벽돌을 쌓을 공간이 생긴다. 해외에서는 침팬지에게 테트리스를 가르친 사례마저 존재한다.지난 4·13 총선 이후 캄캄한 미로(迷路)를 헤매던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서서히 혼란을 추슬러가는 모습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언론계와 여야 정치권 인사들을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 일부개편을 단행했다. 새누리당은 비상대책위원회와 혁신위원회의 시동을 걸어 분위기 반전을 시도하고 있다. 아직 어떤 성과를 거둘 지 예단할 수는 없지만 일단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결기는 드러내고 있는 모습이다.하지만, 여권(與圈)이 국민들로부터 환골탈태했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고비가 첩첩하다. 잠복기에 들어가긴 했으나 새누리당 안에서 친박-비박 패싸움정치는 여전히 심각한 폭발성을 은닉한다. 친박계는 시간이 흘러 국민들의 노여움이 잦아들 즈음에 당권을 틀어쥘 꿍심에 빠져있고, 그런 의중을 다 읽고 있는 비박계는 팽팽한 경계심으로 판세를 분석 중이다.친박계가 문제다. 모두가 4·13총선 참패의 책임집단이라고 생각하는 그들은 아직 제대로 된 답변서를 쓰지 않았다. 어이없는 이유로 대구의 유승민과 주호영을 링 밖으로 밀어낸 잘못에 대한 반성도 내놓지 않고 있다. 진박(眞朴)·월박·신박·짤박…. 입줄에 올리기조차 민망한 `박타령`에 분노한 민심에 대한 명시적 참회도 없었다. 잘못했다고는 하면서도 뭘 잘못했는지 말하지 않고, 원상태로 돌려놓지도 않는 꼴이다. 많은 정치전문가들이 `친박`의 이름으로 추진하는 새누리당의 정권재창출 프로그램의 무망(無望)을 단언한다. 친박계가 또다시 당권을 틀어쥐고 뺄셈정치를 재연할 경우, 새누리당은 분당(分黨)사태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험악한 예측조차 나돈다. 지지층이 반토막 나고도 정신을 못 차린 채 민심을 바르게 읽지 못하고 권력쟁패를 위한 사리사욕만 탐닉한다면 보수정치의 미래는 암담할 따름이다.김용태 혁신위원장을 국면전환용 피에로쯤으로 악용할 흑심도 얼비친다. 김 위원장을 기용한 정진석 원내대표의 행보를 놓고 친박계 안에서 `먹튀`라는 볼멘소리마저 나오고 있단다. 혁신위원회를 앞세워서 새누리당이 완전히 탈바꿈할 것처럼 온 국민들을 현혹시킨 뒤 김용태 혁신안을 폐기처분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상도 있다. 친박계의 정치행태에 보수정치의 장래가 걸려 있는 딱한 양상인 것이다.새누리당은 어디로 가야할까. 어떤 쇼를 벌여서 국민들을 홀릴 것인지 잔꾀만 궁리하는 듯한 작금의 모습으로는 떠난 민심을 다시 얻을 수 없다. 극우 지지층에 발목을 내맡긴 채 `수구꼴통`의 이미지에 갇혀 있어서는 결코 민초들의 신망을 되찾을 수가 없다. 신념을 갖고 긴 세월 각고의 노력으로 험지에서 끝내 진정성을 인정받은 김부겸과 홍의락, 이정현과 정운천에게 교훈이 있다. 시대정신을 담아 `개혁적 보수`로 이념지평을 넓혀가야 한다.테트리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처럼, 새누리당은 민심을 다시 얻는 일이 쉽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테트리스 게임은 하면 할수록 벽돌이 내려오는 속도가 빨라지고, 없애기 어려운 장애물 블록이 등장하는 등 난이도가 점차 더해져 쉽게 따라갈 수 없을 정도가 된다. 30년이 지난 오늘날도 퍼즐게임 개발의 교과서로 불리는 테트리스식 레벨 디자인처럼 새누리당이 부디 세월이 흘러도 국민들의 변함없는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정식을 찾아내길 바란다.

2016-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