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채진원 교수는 `무엇이 우리 정치를 위협하는가`라는 저서에서 우리 정치의 핵심 문제점을 `중도의 부재`에서 찾는다. 그는 “국민들의 이념 성향은 중도로 수렴되는 추세가 나타나는 반면, 국회의원들은 이념적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고 진단한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승인(勝因) 역시 야당 몫이었던 `경제민주화`과 `복지`정책을 선점해 중도확대를 도모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20대 국회가 개원식을 갖고 정식 출범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개원연설에서 “국민이 20대 국회에 바라는 것은 화합과 협치”라며 “앞으로 3당 대표와의 회담을 정례화하고 국정운영의 동반자로서 국회를 존중하며 국민과 함께 선진 대한민국으로 가는 길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개원연설 직후 가진 신임 국회의장단, 여야 3당 지도부와 환담에서도 “앞으로 국회와 더욱 많이 대화하고 소통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어떤 실천으로 뒷받침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화합`과 `협치`, `국회 존중`, `소통` 등 꼭 필요한 단어들이 다 포함된 박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새로운 기대를 갖게 한다. 다만, 3권 분립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국가에서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의 `국회를 존중하고 소통하겠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언어들이 대서특필되는 우리 언론을 외신들이 어떻게 볼까 걱정이다.
20대 성년 국회가 출범한 이 시점에, 우리 유권자들이 가장 신경을 써야할 부분은 입법부의 `생산성`이다. 아시아개발은행이 지난 2014년에 조사 발표한 창조생산성지수(CPI)에 따르면 한국은 투입(Input)과 결과물(Output) 모두에서 일본, 핀란드에 이어 최상위권인 3위에 랭크됐다. 따져볼 방법은 없으나, 영일 없이 밥그릇싸움만을 일삼는 우리 국회의 생산성은 세계 몇 번째 자리에 놓여 있을까 궁금하다.
가성비(價性比)를 무기로 세계경제를 시나브로 삼켜가고 있는 중국의 예만 보더라도, 우리 정치의 생산성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여전히 `다스림`은 사라지고 `다툼`만 남아있는 정치 환경 속에서 생산성을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그래서 이제는 국민들이 들메끈 동여매고 나서야 한다. 특권 속에서 비리관행만 대물림하는 정치생태계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 부조리가 가능한 구조를 송두리째 뜯어고쳐야 한다.
어찌 됐든, 정국의 가장 큰 불안요인은 내년 말 대통령선거다. 정치인들은 미래권력을 움켜쥐려는 세력다툼을 계속할 것이고 크고 작은 파열음을 내며 이합집산을 모색할 것이다. 민생문제는 뭇 정치인들의 정쟁(政爭) 속에서 여전히 이리저리 치일 공산이 커지고 있다. 정치꾼들은 밤낮없이 계산기를 두드려대며, 어떻게 해야 남는 장사가 될 것인가에나 골몰할 게 번연하다.
걱정스러운 것은 국민들로부터 `협치`라는 엄중한 명령을 받은 20대국회가 성실하게 의무를 다할 가능성이 아직 그리 높지 않다는 현실이다. 국민들을 보수-진보로 패싸움 붙여놓고 집토끼부터 잡아 우리에 가둬놓는 꼼수에 익숙해진 게 정치판 아니던가. `중도` 영역에서 심사숙고하는 산토끼들을 현혹하는데 성공하는 쪽이 선거에서 이길 확률이 높은 것은 우리 정치사의 어두운 공식 중 하나다.
채진원 교수는 앞서 언급한 저서에서 보수ㆍ진보의 이념을 과잉 동원하는 편향성 선동전략에서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방안으로 `중도적 실용노선`을 제시한다. 선거공약으로 유권자를 홀린 다음 나중에는 흐지부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사탕발림이 아닌, 신실한 정책으로서의 `중도실용`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하지만, 진정한 `중도실용`의 생활정치 구현에 미래가 걸려있다는 인식에는 공감이 간다. 국민 삶을 정말로 바꿔줄 제대로 된 `정치(政治)`는 과연 언제쯤 볼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