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돼지와 개만도 못한 소위 우리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이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고 위협에 겁먹어 머뭇대거나 두려움에 떨며 나라를 팔아먹는 도적이 되기를 감수했다.”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 사설란에 실린 장지연의 유명한 논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의 한 대목이다. 사설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사흘 전에 체결한 을사늑약(을사조약)의 부당성을 알리고, 조약 체결에 가담한 대신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마다 어김없이 국방백서와 교과서 왜곡으로 독도도발을 일삼는 일본의 횡포 그 배경에는 경제대국 일본에게 지역안보예산을 떠넘기려는 미국의 정략이 연계돼 있다. 미일안보조약(美日安保條約)이 강화되는 시점마다 일본의 역사왜국과 독도도발이 더 그악해지는 현상은 그 상관관계를 부정할 수 없게 하는 증거다. 미국의 국익과 일본정권의 이익이 맞아떨어지는 그 그늘 속에 일본의 침탈야욕은 온존한다. 위태로운 것은, 주기적으로 당하는 우리가 어느 틈에 `양치기 소년` 우화 속으로 완전히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2년 8월 10일 작가 이문열·김주영 등과 함께 독도를 방문했을 때, 줏대 없는 윤똑똑이들이 엄청나게 씹어댔던 기억이 생생하다. 정치인들이나 외교전문가들이 전문성을 논하고 장래를 헤아리는 일이 나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토와 국권을 지키는 일 같은 본질적인 사명에는 타협의 여지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 어떤 경우에도 내 나라 내 땅에 정치지도자가 가는 게 문제가 돼선 안 되는 것이다.
포항시남구·울릉도를 지역구로 갖고 있는 박명재 새누리당 사무총장의 `1망언 1사업` 대응방안에 주목한다. 지난 2008년 영유권 강화사업의 일환으로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추진이 결정된 독도입도지원센터·독도방파제·독도해양과학기지 건설사업에 대해 정부가 계속 미적거리는 것은 `국가수호`의 기본을 망각한 비굴한 처사다. `일본이 망언을 한 번씩 할 때마다 독도 실효지배 사업을 한 가지씩 추가하는 것`이야말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반격 아이디어다.
`사드기지`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중국과의 마찰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북핵을 막기 위한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쫀쫀한 시비를 지속하고 있는 중국의 태도에서 참담했던 장구한 세월 굴욕의 역사를 다시 본다. 저 무례한 내정간섭과 오만방자한 으름장은 도대체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대한민국이 아직도 군사기지 하나 건설하는 데까지 일일이 저들의 윤허(?)를 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진짜 심각한 문제는 우리 정치권에 있다. 마치 친미파·친중파·친일파·친북파로 패를 갈라 죽기살기로 사색당파 싸움을 벌이는 듯 사사건건 갈려서 물어뜯는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국가정책을 결정하는데 이런저런 이견과 논쟁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국토와 국민을 지키는 국토방위의 일조차도 번번이 중구난방 사달을 내는 것은 심각한 병폐다. 중국의 주장에 동조하다 못해 끝내 비행기를 탄 야당 의원들이 사뭇 어이없고 야속하다.
`사드배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북한의 전쟁도발 위협에 대한 관점이 다르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절대로 남한을 향하지 않을 것이라는 진보좌파들의 낭만적인 인식은 경악스럽다. 대한제국 멸망의 뿌리는 임진왜란·병자호란으로 나라가 거덜난 뒤에도 사대주의 당파로 갈려 다투면서 쇄국사상에 반상(班常)제도라는 완고한 현대판 인종차별주의를 끈질기게 대물림한 지배층의 오랜 어리석음에 닿아있다.
작금의 정치 상황에서 구한말 제각각 강대국들에 빌붙어 안온만을 획책하던 지도층의 갈팡질팡하는 모습의 데자뷔(deja-vu·기시감)가 느껴진다. 아무리 그래도, 누군가 `시일야방성대곡`을 또다시 써야하는 처절한 역사가 설마 되풀이되지는 않겠지…아직은 그렇게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