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오래도록 승평(昇平)을 누려 태만함이 날로 더해…. (중략)…. 하찮은 오랑캐가 변경만 침범하여도 온 나라가 이렇게 놀라 술렁이니… (중략)….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어떻게 계책을 쓸 수가 없을 것입니다. 옛말에, 먼저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대비한 다음에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라고 하였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하나도 믿을 만한 것이 없어 적이 오면 반드시 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나기 꼭 9년 전인 1583년 2월 병조판서 율곡 이이(李珥)가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 서두다. 이이는 이 상소문에서 유능한 인재등용과 군민양성 등 개혁정책을 담은 유명한 `시무육조(時務六條)`를 밝힌다. 하지만 그는 당파싸움에 찌든 신료들의 `찍어내기`식 고자질에 하염없이 시달렸다. 그가 `10만양병설`을 주장했느니 안 했느니 말이 많지만, `양병`으로 외침(外侵)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지만은 분명했던 것 같다.
요즘 대한민국의 처지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여전히 강대국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하염없이 불안정했던 반만 년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참혹한 전화(戰禍)에서 가까스로 살아나 번영을 일궈냈으나 지정학적 특성을 어쩌지 못하고, 비극적인 민족분열을 종식시키지 못한 죄로 국민들은 좀처럼 위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상화된 북한의 전쟁위협에다가 일본의 침략근성과 중국의 패권 갑질에 한없이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온 세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핵폭탄`을 들고 세상을 위협하는 북한의 고약한 도발책동은 난제 중의 난제다. 한 민족이면서도 케케묵은 이념의 노예가 되어, 멸망의 `핵무기`를 들이대는 협박놀음에 미쳐있는 저 돌연변이들을 어찌할 방도란 도무지 없는 상태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드 배치` 논란 중에 드러난 중국의 속내는 명확하다. 저들은 미국과의 패권 다툼에 함몰되어 북핵을 스리슬쩍 눈감아주려는 저의를 암시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직접적인 미사일 배치를 수용한 한국의 결정에 대해 반대한다는 주장을 분명히 했다. 역설적으로, 중국은 이제 북한의 도발을 막기 위한 한국의 방위행동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시비하지 못할 입장이 된 셈이다.
중국은 이번 `사드 배치`를 꼬투리삼아, 북한제재를 놓고 벌여온 겉다르고 속다른 이중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무마시킬 속셈이다. 중국 땅에서 잘 나가는 한류열풍에 브레이크를 걸어볼 흑심도 엿보인다. 현존하는 `북핵 위협`은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한국에만 부담이 커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쯤 되면 이 나라 정치권에서 `핵무장론`은 필연적으로 터져나와야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이 나라에는 도무지 보수 `매파(강경파)`의 목소리가 없다. 선진국들은 어김없이 매파와 비둘기파(온건파)가 공존하는 정치로 국내외 정치의 균형을 잡아간다. 국제사회의 역학관계 때문에 정부당국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정치권이 이렇게 무기력해서는 안 된다. 아따금씩 `핵무장`이나 `미국의 전술핵 배치`를 외치는 목소리가 있지만 메아리조차 없는 지경이다. 매파들의 낮잠이 깊어도 너무 깊은 것이다.
제대로 된 정치구조라면, 이 시점에서 `핵무장론`을 외치는 정치집단이 나와야 정상이다. 새누리당 내 대표적인 핵무장론자인 원유철 전 원내대표의 “`핵 트리거 선언`만이 북핵에 대응할 수 있는 획기적인 해결방식”이라는 고독한 외침이 안타깝다. 실현되든 안 되든, 지금쯤 정치권에는 `핵무장론`이 마구 날아다니는 게 맞다.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대비한 다음에 적을 이길 수 있는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율곡 선생의 충언이 새삼 떠오른다. 지금 우리는 `적이 나를 이기지 못하도록` 충분히 준비돼 있는가. 나라와 백성을 지키려는 강고한 기백도 진정한 자부심도 거세돼버린 뭇 정객들의 모습에서 절망의 그림자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