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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龍)들의 침묵

등록일 2016-09-06 02:01 게재일 2016-09-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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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樹木等到花 謝才能結果 江水流到舍 江才能入海)” 소탐대실의 어리석음을 지적할 때 주로 인용되는 이 구절은 불교 화엄종의 근본경전인 화엄경(華嚴經)에 나온다. 꽃을 버리지 않고는 열매를 맺을 수 없고, 강을 버리지 않고는 바다를 볼 수 없다는 말로 의역된다.

이른바 잠룡(潛龍)이라고 불리는 대통령선거 후보군들이 하나씩 물 위로 뿔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대 대선이 1년여 남아있으니 봉황의 뜻을 품은 인재들의 마음도 바빠지기 시작할 만하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올 적마다 우리는 고민하고 살피지만 안타깝게도 시종여일(始終如一), 처음과 끝이 함께 훈훈한 지도자를 만나기는 여전히 어렵다.

설핏 보이는 대선전 무대는 진풍경이다. 보수 여당은 가문 콩밭 같고, 진보 야당에는 여러 주자들 입줄을 탄다. 새누리당에는 주류 친박계를 중심으로 올 연말 임기가 끝나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데릴사위로 모셔올 궁리가 하나 있다. 그 밖에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도가 거론된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세를 점하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를 필두로 박원순 서울시장, 김부겸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박영선 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주자반열에 올랐다. 국민의당은 안철수 전 대표의 도전의지가 굳건한 가운데,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 영입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하지만 현재의 판도는 의미가 없다. 1년여 대선정국에서 판세가 최소한 100번은 요동치리라는 예언만 옳다.

차기 대선주자들을 놓고 우리 유권자들은 무엇을 침착하게 견줘보아야 할까. 온 국민의 희원을 관통하는 덕목들은 과연 무엇일까. 현 시점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부분은 `안보의지`와 `경제민주화` 두 가지다. 북한의 핵개발로 확연히 기울어진 안보운동장, 급속히 깊어진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의 경제불평등을 바로잡을 용기와 지혜가 그것이다.

안타깝게도,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그 어떤 인재도 이 두 가지 현안에 대해서 뚜렷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북한 핵무기가 실용단계에 들어갔다는데도 보수인사들은 미국을 믿자하고 눈치만 살핀다. 진보인사들은 `북한은 남한을 향해 핵무기를 쓰지 않을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낭만주의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상위소득 데이터베이스(WTID)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2년 기준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로 분석됐다. 전 세계 33개 주요국 가운데 미국(47.8%) 다음으로 높은 수치다. 외환위기 이전 1995년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가 29.2%였던 것을 감안하면 참담한 현상이다.

단언하거니와, 북한 핵에 대한 대응을 놓고 기회주의적 처신을 일삼고, 경제불평등 문제에 대한 해법이 없는 대선주자들은 잠룡(潛龍)이 아니다.`헬(hell)조선` 비명 속에 방치된 젊은 세대에게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는 대선주자들은 토룡(土龍) 별칭마저도 아까운 잡룡(雜龍)에 불과하다.

시대는 국가안보를 담보해낼 과단성과 불평등한 민생을 바꿔낼 경제민주화 마인드를 고루 지닌 대선주자를 갈망한다. 돌연변이 왕조국가로 역행하고 있는 북한을 편드는 외눈박이들의 패악이 두려워 핵무장의 당위성을 외면하는 잔재주로는 안 된다. 자본주의의 금력에 짓눌려 `잘 사는 사람만 점점 더 잘 사는 나라`를 혁파해낼 뚝심이 없는 의지박약으로도 안 된다.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지도자들은 이제 깊은 침묵에서 깨어나야 한다. 이 땅에서 전쟁위협을 몰아내고, 모두가 고루 잘 사는 세상을 일궈내기 위해 `작은 이익을 버리는` 용기부터 입증해야 한다. 꽃을 버리지 못하는 한 열매를 얻을 수 없고, 강을 버리지 못하는 한 바다를 이루지 못하는 이치를 가슴 깊이 깨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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