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청어잡이로 융성했던 북유럽 노르웨이의 한 어부는 육지에 도착해서도 항상 살아있는 싱싱한 청어를 팔아 큰돈을 벌곤 해 동료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 어부는 자신만의 비법을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았다. 그 어부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의 배 수조 속에서 메기 한 마리를 발견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청어들이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계속 도망 다니느라고 싱싱하게 살아있었던 것이다.
요 며칠 사이에 새누리당에 때 아닌 신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친박계는 4·13총선 패배에 대한 눈총으로부터 탈출을 이끌어낼 메시아가 나타난 듯이 화색만면이다. 반기문(潘基文) 유엔사무총장이 드디어 차기 대통령선거와 관련해`출마`쪽으로 가닥을 잡아 오랫동안의 국내외 설왕설래에 종지부를 찍었다. 반기문은 이제 차기 대권의 변수가 아니라 상수(常數)로 자리매김을 한 것으로 읽힌다.
반기문을 겪어봐서 좀 안다는 사람들은 그의 냉정함과 침착함, 성실함에 놀랄 때가 많았다는 경험담을 내놓는다.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엄청난 지위를 꿰찬 그를 놓고 정치력이 의심스럽다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번 행보로 총선참패 이후 초상집 꼴이 된 새누리당 하늘에 화려한 무지개를 띄움으로써 그는 이미 탁월한 정치력을 증명했다. 어쨌든 차기 대선 판에서 그를 보게 될 확률은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의 말 한마디에 안색이 오락가락하는 여야 정치인들의 배알 없음은 지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의 보수 주류를 대표하는 집권 여당이 마땅한 대권주자 한 사람 없이 그에게 목을 매는 모습이 착잡하다. `60년 정통야당`을 자랑하는 더민주당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반기문 티 뜯기에 열중하는 것도 안타깝다. 사분오열돼 흔들리는 TK지역이 그를 껴안고 흥분하는 모습은 더욱 당혹스럽다.
정치는 현실이다. 반기문이라는 전대미문의 외교인재가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것이 나쁠 이유는 없다. 더욱이 충청 출신인 그가 유력한 대권후보가 돼서 민족적 숙원인 지역통합과 통일 대업의 튼튼한 주춧돌을 놓게 된다면 축복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가 특정 정치세력이 만들어준 꽃가마를 타고 옹립을 받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은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그가 만약 새누리당을 선택한다면 가장 먼저 증명해 보여줘야 할 대목은 혁신 능력이다. 특정 계파의 분열적·패권적 문화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더라도 `뼈와 살을 모두 바꿔내는`일을 성공해야 한다. 나아가 승리를 위해서라면 편법·탈법 못할 짓이라곤 없는 구태정치에 편승한다면 오히려 처참하게 실패할 공산이 크다. 본인이 체험해온 선진 민주주의국가의 기준에 맞춰 한국정치를 완전히 바꿔내겠다는 결기를 꼿꼿이 세우고, 실천해내는 것만이 성공을 보장하는 확실한 전략일 것이다.
반기문이 안착을 시도할 착륙지가 어디일지 말하는 것은 아직 섣부르다. 그는 결단 발표시점을 유엔 사무총장의 임기 종료 이후로 미루고 떠났다. 새누리당 친박계는 어쩌면 국민들이 반기문 마약에 취해 4·13총선 폐농을 주도한 자신들의 허물을 일순 망각해주기를 바랄지 모른다. 혁신일랑 얼렁뚱땅 유야무야 미봉하고, 하루빨리 푸진 전당대회 한 판 열어 반기문 장사로 당권이나 거머쥘 속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들이 시퍼렇게 눈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간단할까. 반기문이 던져놓고 간 `통합`이라는 화두는 새누리당에 깊이 남긴 숙제다. 새누리당이 그악한 밥그릇싸움으로 오합지졸이 돼 있는 한 동승하기 어렵다는 신호일 수도 있다. 누구든 지금 정치공학적인 시각만으로 반기문을 다루는 것은 패착일 가능성이 높다. 대권주자 반기문이 혼탁한 대한민국 정치 수조 안에서 나태하고 소심하고 이기적인 정치인들을 대오각성하게 하는 강력한 메기와 같은 존재로 역할하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