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국회 초반, 국회의원들이 달고 다니는 금배지를 떼어버리자는 제안이 국회 안에서 나왔다.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백재현 의원은 “일제잔재 청산이라는 측면에서도 국회규칙 개정을 통해 금배지를 없애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 백 의원의 제안을 `얄팍한 포퓰리즘`의 소산으로 보는 시니컬한 시각도 있지만 일단 국민여론은 찬성 쪽이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개헌 용광로`를 달구는 외침들이 여기저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개원식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이 신호탄을 쏘아올린 뒤, 유력 정치인들이 앞다퉈 긍정발언들을 쏟아내면서 미상불 정치권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는 중이다. 물론 과거 여러차례 개헌론이 등장했다가 동력을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상황을 겪어본 입장에서 정치인들의 발언을 일과성 `퍼포먼스`로 보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국민들과 국회의원들의 개헌 공감도가 치솟고 있다는 여론조사결과가 이채롭다. CBS의 의뢰로 리얼미터가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중 69.8%가 개헌에 `공감한다`고 답했고, 연합뉴스가 국회의원 300명을 대상으로 전수 조사한 결과 개헌공감 의견은 전체의 83.3%인 250명에 이르고 있다. 작금의 미풍이 회오리바람으로 돌변해 바야흐로 정치권의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개연성이 높아진 상태다.
이 시점에서 기필코 논쟁의 핵심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지켜내야 할 절체절명의 개헌과제가 있다. 바로 `지방분권형 개헌`이다. 이는 지방행정을 감당해온 인사들은 물론이고, 지방자치 발전을 조금이라도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절실히 깨닫고 있는 주제다. 20여 년 지방자치 시행 결과, 헌법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고서는 결코 진정한 지방자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절박한 현실적 깨우침의 결과물이다.
구시대의 완고한 중앙집권적 시스템이 연장되고 있는 국가체제 속에서 중앙집권주의는 난공불락이요, 철옹성이다. 제아무리 자치의식이 투철한 장관이 부처를 장악해도 도무지 움쩍하지 않는 중앙정부의 기득권의식을 허물 수 있는 힘은 `헌법` 밖에 없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는 눈물겨운 투쟁과 시행착오의 산물이지만 지방자치의 실현은 민주화운동 최후의 숙원이요, 미완의 숙제다. 이 땅에서 민주화는 언제나 자유와 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추구돼 왔다. `2대 8`이라는 기울어진 틀 속에서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단단히 옭혀있는 이 구조를 깨부수지 않는 한 온전한 지방자치나 민주화는 공염불이다. 이른바 뜨거운 개헌정국이 도래되고 있는 판에 전국의 지방이 정신을 차려 뭉쳐야 할 때다. 필경 `정략의 목책`에 갇혀서 권력구조 패싸움에 함몰될 정치인들에게 이저리 치여 지방자치가 영원히 표류하는 비극이 펼쳐져서는 안 된다.
`개헌`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청와대의 진취적 자세가 필수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지방분권형 개헌을 목표로 제시하고 뒷받침하는 반전을 기대하는 것은 낭만적 희원에 불과할까. 지방분권형 개헌은 이 나라 최대의 난제인 일자리창출, 출산율, 균형발전…. 나아가 여전히 미진한 민주주의의 완결까지도 성취할 수 있는 첩경이 될 수 있다. 고루 잘 사는 나라를 건설할 수 있는 강력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지역 국회의원들 모두가 지방자치를 위해 뭉쳐 나서서 기어이 역사를 바꿔내는 기적을 꿈꿔본다. 각종 특권을 상징하는 금배지를 떼어버리는 일과 지방정부를 영원히 지배하려는 중앙정부의 갑질근성을 차단하는 일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지방자치란 민주주의의 최상의 학교이며 민주주의 성공의 보증서”라는 영국의 정치학자이자 정치가인 J.브라이스의 명언을 되새긴다. 역사는, 그 어떤 권력도 거저 나눠주는 법이 없음을 교훈으로 남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