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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친박당(?)`

등록일 2016-06-07 02:01 게재일 2016-06-07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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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T.홉스, N.B.마키아벨리 등이 주장하는 전통적인 권력관(權力觀)인 `권력실체설(勸力實體說)`은 권력이란 인간에 의해서 소유되거나 분할되는 실체라고 여기는 학설이다. 이와 달리 J.로크가 말하듯 개인 또는 집단 사이의 관계 속에서 동의(同意)의 과정을 통해 권력이 성립한다는 생각이 `권력관계설(權力關係說)`이다. 양 설이 뒤얽혀서 권력이 성립하는 것이 통례이지만, 선진 민주주의국가일수록 권력은 권력관계설에 부합한다.

지난 4·13총선 참패 이후 국민들 앞에 연일 만신창이 남우세 꼴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새누리당이 가까스로 혁신비대위를 꾸리고 분위기 반전을 꾀하고 있다. 당의 골조부터 싹 바꿔보려던 정진석 원내대표의 혁신기획안은 친박계의 친위쿠데타성(?) 보이콧 한 방에 치기어린 실험 취급을 받으며 박살이 났다. 결국 정진석-최경환-김무성 3거두의 물밑거래 끝에 만들어진 것이 `김희옥 혁신비상대책위원회`다.

김 위원장은 혁신비대위원장 내정이후 “목적이 정당하면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선출 직후에는 “당명만 빼고는 모두 다 바꿔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면서 “철저하게 반성하지 않으면 다음 대선뿐 아니라 앞으로도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그가 동원하는 용어가 초강경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기대감`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지난 4·13총선 이후 새누리당 친박계를 향해 쏟아지는 언론계의 조롱들은 험악하기 그지없다. `자폐적 속성`, `탄핵이자 사망선고`, `외눈박이 종(種)만 설치는 흉가이거나 갈라파고스`, `권력을 지키려다 국민과 정권에 더 큰 죄업`, `희대의 정치적 오명`…. 총선참패의 원인을 친박계의 오만방자로 단정한 뭇 논객들의 비판은 거의 욕설에 가깝다. 물론, 이런 비난에 대해 친박계는 불만이다.

“왜 우리만의 잘못이냐?”는 친박계의 항변은 일리가 있다. 거대 집권당의 참패를 놓고 특정계파의 과오만을 거론하는 것은 균형 감각을 잃은 진단일 수 있다. 남에게 허물을 뒤집어씌우고 빠져나가려는 불순한 면피심리도 작동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총선과정을 낱낱이 지켜본 국민들 눈에 친박계의 항심(抗心)은 어이가 없다. 그들이 국민 앞에, 아니 지지자들 앞에 신실하게 대죄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는 한 더욱 그렇다.

문제는 친박계의 뻣뻣함이 궁지에 몰린 절박한 상황 때문만이 아니라는데 있다. 친박계는 `우리는 실패하지 않았다`는 정치적 결산서를 들고 있다. 어쨌든 당내 권력분포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에, 적어도 폐족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다. 표정관리만 적당히 하면서 소나기를 피한 뒤, 당권을 장악하면 또다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굳건하다. 국민들은 이미 그런 속내를 다 꿰뚫어보고 있다.

이 나라에서 권력의 속성은 왜 매번 그럴까. 승자독식의 구조 속에서 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만 하면 무한 권력을 휘두르려는 관성을 보인다. 천부권력(天賦權力)이라도 움켜쥔 듯이 구는 그들의 행태 뒤에는 권력실체설에 근거한 시대착오적인 권력관이 존재한다.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마저도 `권력을 장악했다`는 표현을 거침없이 쓰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사회가 유동화하고 복잡해지는 시대에 권력은 필연적으로 다양한 개인·집단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다. 권력은 이제 `거머쥐고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실체`가 아니라는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기초상식이다. 이 시대에는 권력관계설에 근거하여, 이긴 측에게 동의의 과정에서 협의를 주도할 권리를 주는 정도가 `권력`의 옳은 개념이다. 새누리당이 반기문 카드를 유일한 깃발로 앞세워 `도로 친박당`으로 가는 것은 위태로운 길이다. 상생과 소통의 `플러스 정치`를 뿌리치고 굳이 `데릴사위 정치`를 탐닉하는 친박계의 DNA, 그 결벽증의 실체가 난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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