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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폴리스 라인(Police Line)

▲ 안재휘 서울본부장“폭력시위를 막기 위해서는 복면을 한 채 폴리스 라인(Police Line)을 넘는 행위를 엄단해야 합니다. 모자와 마스크를 끼는 행위가 익명의 만용을 부추겨 과격행동을 유발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신분노출을 피해야 하는 시위자들도 있습니다. 이러다가 `마스크착용 금지법`까지 나와서 무고한 행인들 마구 잡아들이는 것 아닙니까? 황사 때문에 마스크를 끼었다고도 하잖아요.”폭력시위 이슈를 다루는 TV방송 심야 토론프로그램을 보고 듣자니 억장이 막힌다. 제 아무리 반대를 위한 교졸한 궤변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됐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싶다. 전직 의경의 고발영상을 비롯해서 `세상을 뒤엎자`며 서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든 시위현장을 온 국민이 생생하게 목격한 끝이다. 그런데도 쇠몽둥이 폭력시위를 두둔하는, 저질 코미디만도 못한 괴상한 발언들이 여전히 넘쳐난다. 도대체 폭력시위 영상을 본 어느 국민이, 경찰을 향해 마구잡이로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경찰버스를 밧줄로 묶어 끌고 다니며 때려 부수는 과격 시위자들의 복면착용을 `황사 때문`이라고 양해할 것인가. 스스로를 `아버지`라고 외치며 경찰버스 위로 몰린 의경들을 향해 마구잡이 돌팔매질을 하고, 그도 모자라 사다리 끝으로 찔러댄 행위를 어느 누가 `부정(父情)의 발로`라고 인정해줄 것인가.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복면시위 금지`관련 집시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놓고 정치권이 시끌시끌하다. 입법을 반대하는 야당의 주장은 국민기본권 침해 우려에 맞닿아 있다. 그러나 야당의 논박에도 포퓰리즘적 궤변과 엉터리 희화농락이 여지없이 끼어든다. 새정연 유승희 최고위원은 소설가 이외수의 상상언어를 차용해 `복면시위 금지법`을 `복면가왕 폐지법`이라며 비아냥거린다.지난달 14일 서울 도심을 마비시켰던 시위에서 증거가 확보된 폭력시위대 594명 중 93%가 마스크와 두건, 물안경 등으로 얼굴을 가렸던 것으로 집계됐다. 채증자료 분석결과 441명(74%)은 복면으로 얼굴을 숨겨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판에 야권이 `복면시위 금지법`을 온 국민의 일상생활을 제한하는 `복면금지법`으로 몰아가는 것은 국민들의 이성을 모독하는 저질 선동이다.폭력시위를 두둔하는 인사들의 변론은 “오죽하면 폭력을 동원하겠느냐”는 하소연을 동원한다. 어쩌다가 세상을 `을(乙)`로 살아야 하는 민중들이 처하기 십상인 억울함이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아무리 일리가 있다해도 의사표출 행동은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미국처럼 청와대 앞에서도 자유롭게 시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면 된다는 강변도 있다. 하지만, 수천수만 명의 시위대가 복면에 쇠파이프를 든 과격분자들을 앞세워 백악관 앞으로 몰려갔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 있는가. 백악관 근처에서 `폴리스 라인`을 넘어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과격 시위대에 미국경찰이 수백 명씩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를 본 적은 또 있는가.시위의 자유는 절대적 자유가 아니다. 실정법상 `폴리스 라인`을 넘는 자는 무조건 범법자로 분류돼야 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3조1항(질서유지선의 설정)와 벌칙 제24조에는 `폴리스 라인`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있다. 복면을 하고, 무기류를 들고 `폴리스 라인`을 넘은 자에게는 가혹한 가중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맞다. 그 엄정함이야말로, 국가의 으뜸 존재이유다.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절해야 할 관행들이 있다. 이렇게 무질서한 선진국은 지구상에 있지 않다. 평화시위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국민만이 `시위의 자유`를 말할 자격이 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담배꽁초가 나뒹구는 거리에서, 무자비한 폭력시위 현장을 목격하고는 이 나라가 `후진국`임을 확신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2015-12-01

`개작두` 트라우마

▲ 안재휘 서울본부장이명박, 노무현, 김무성, 서청원, 이인제, 손학규, 이재오, 김문수, 맹형규, 김기춘, 정병국…. 오래도록 정치뉴스를 장식해온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의 이름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YS(김영삼 前 대통령)에 의해 정계의 문을 열거나 길을 닦은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YS는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쓰는 용인술(用人術)의 달인이었다. 반세기 넘도록 한국정치를 움직였던 거산(巨山) YS가 영면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의 치열한 물밑전쟁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겉으로는 온갖 명분을 내놓고 있으나, 내용은 공천권을 놓고 벌이는 뜨거운 `밥그릇싸움`이다. 여당에서 잠복상태에 놓인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이슈가 야당에서 설설 끓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수십 명 의원들 요구에 의해 `오픈프라이머리` 정책의총을 연데 이어 격론을 거듭하고 있다. 혁신위의 `현역 20% 공천배제` 규정이 암초다.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내놓은 `공천관리위원회` 조기구성안에 대해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크게 반발해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는 충돌을 빚었다.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 두 사람은 `공천룰 특별기구` 구성에 공감했지만, 인선문제를 비롯해 합을 맞춰야 할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치권 안팎에는, 공천권을 둘러싼 친박(親박근혜계)과 비박(非박근혜계)의 대전(大戰)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진작부터 나돈다.한국정치에는 집권계파가 공천권의 칼자루를 휘둘러 당내 정적을 무참히 잘라내는 `공천학살`의 역사들이 존재한다. 노골화되고 있는 공천전쟁 이면에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학살 트라우마`에서 발원된 공포가 있다. 새누리당에서 공천문제를 다투고 있는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은 함께 공천학살을 당한 쓰라린 이력을 공유하고 있다. 새정연에도 집권계파에 의해 중진을 포함해 다수의 정치인들이 모개로 `작두질`당한 기록이 있다.`오픈프라이머리`는 특정 계파에 의해 당내 정치인들이 집중적으로 공천배제를 당해온 뼈아픈 경험 끝에 나온 차선책(次善策)이다. 정당정치를 퇴보시키고 기득권자에게 유리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오픈프라이머리`가 꾸준히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정치권에서 토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천권을 무기로 특정 정파를 무참히 끊어 내거나, 더러운 거래에 악용하는 추태를 숱하게 목격해왔기 때문이다.날마다 비상(非常)이었을 권위주의정권 치하에서 훌륭한 인물을 찾아서 정확하게 역할을 찾아 맡기는 일에 뛰어났던 YS의 직관은 놀라운 재능이었다. 엄혹한 환경에서 투쟁을 해야 했던 시대에 YS식 인재발탁과 `전략공천`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가 크게 진전된 시절에도 케케묵은 `보스정치`의 인재등용 관행을 지속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한 정당 안에서 분파하여 밥그릇 놓고 죽고살기로 싸우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오픈프라이머리`의 가치를 존중하는 여론 저변에는 `정치사유화(政治私有化)`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민주주의에 대한 만만찮은 자부심이 있다. 민심은 지금, 굳이 `오픈프라이머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당이 상향식 공천을 실현하는지를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다.`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에 자기사람 심는 공천은 시대에 맞지 않는 `사천(私薦)`에 불과하다.1994년 대만에서 만든 `포청천`이라는 TV드라마에서 중국 송나라 명판관 포증(包拯)은 황족까지도 사악한 범죄를 찾아내어 용(龍)작두·호(虎)작두·개(犬)작두로 가차없이 처단해, 온갖 모순 속에 사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들이 억울하게 `개작두질`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갇혀 있다. 포증은 결코, 명백한 범죄자가 아닌 정적을 향해 “작두를 열라”고 명하지 않았다. `화합`과 `통합`을 당부한 YS의 유지를 되새긴다.

2015-11-24

`금지된 장난` 빗장 풀리나

▲ 안재휘 서울본부장“다음 대선에 가까워지면 개헌 논의를 하기 어렵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개헌 논의 봇물을 막을 길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각제는 부침이 있고 진영대립이 심해 정·부통령제를 선호했는데,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도를 검토해봐야 한다. …`중립지대`를 허용해 연정으로 가는 게 사회를 안정시킬 수 있다”(2014.10.16일 김무성) “(개헌은) 앞으로 같이 고민해야 될 부분 아니겠나. 지금까지 5년 단임 정부에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지속성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다”(2015.11.4일 최경환) “5년 단임제 대통령제는 이미 죽은 제도가 됐다. 외치(外治)를 하는 대통령과 내치(內治)를 하는 총리로 이원집정부제를 하는 게 훨씬 더 정책의 일관성이 있다”(2015.11.12일 홍문종)발언자의 이름을 의식하지 않고 읽으면 마치 한 사람의 발언으로 이해될 만한 `개헌` 발언들이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모델은 1년여 전 이른바 `상하이 개헌발언`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발언에서 언급됐다. 대통령이 외교ㆍ국방 등 외치를, 국무총리가 행정수반으로 내치를 분할 관장하는 권력구조를 말한다.김 대표는 2014년 정기국회 이후에 `개헌론`이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으로 예측했으나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당시 여야 개헌론자들은 `상하이 개헌발언`을 일제히 반겼으나, 청와대와 친박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결국 김 대표는 “대통령께 죄송하다”면서 `불찰`을 자인하고 물러섰다. 발언내용 자체가 아니라, 집권 3년차 국정동력을 소진시킬 `정치혼란`우려에 대한 공감대가 작동됐다.꼭 1년여가 지난 지금 친박계 핵심인 최경환 부총리가 `5년 단임 정부의 한계`를 언급하며 개헌논의의 뚜껑을 건드렸고, 또 다른 핵심인 홍문종 의원이 `이원집정부제`라는 구체적인 대안까지 적시하며 `개헌 불가피성`을 직토했다. 홍 의원은 지난해 김무성 대표에게 `(개헌론은) 당분간 자제했으면 좋겠다`는 박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한 당사자라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당분간`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지난해 박 대통령의 금언령(禁言令) 메시지와 최근 홍문종 의원의 발언을 종합하면, `이제 개헌론을 이야기해도 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웬일인지 홍 의원의 발언을 제압하고 나선 사람들은 친박 일색이다. “친박 내에서 한 번도 논의된 적이 없다”는 손사래질도 나온다. 청와대까지 나서서 김무성 대표에게 무관(無關)을 해명했다는 후문도 있다.이상한 일은 또 있다. 개헌론이 들썩일 때마다 내남없이 나서서 한 마디씩 거들던 인사들도 대개 눈치만 보고 있다. 한 차례 뜨거운 맛(?)을 본 탓인지, 김무성 대표는 견해를 묻는 기자에게 “당사자(홍문종 의원)에게 물어보라”는 식으로 시큰둥하고, 비박계 일부는 `김무성 대표를 옥죄기 위한 간보기` 정도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심각한 의심을 야기하는 대목은,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대통령을 맡고 친박 인사가 총리가 되는 이원집정부제 구성에 대해 “가능성 있는 이야기”라고 한 홍문종 의원의 말이다. 야권에서는 홍 의원의 발언을 `김무성도 잡고 야당도 잡아 영구집권하려는 친박의 음모가 드러난 것`이라는 난해한 심층분석까지 나돈다. 물론, 진위를 예단할 당장의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개헌`문제가 당리당략의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는 모습은 안쓰럽다. `개헌론`이 수년 간 정치권 안팎에서 들썩거린 것으로 보아서는 이 문제를 공론화할 시점이 시나브로 다가오고 있는 것만큼은 사실인 듯하다. `개헌`은 국운을 가르는 역사적 과업이다.그 어떤 주장도, 어떤 시도도 당쟁의 영역에 머물지 않아야 한다. 하찮은 생명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서 교회 십자가를 훔치는 일이 온당한 것인지 아닌지 누가 알 것인가. 저 난마처럼 얽힌 `금지된 장난`의 빗장 비밀번호는 과연 무엇인가.

2015-11-17

고장난 `민주주의`

▲ 안재휘 서울본부장역사는 `다수(多數)와 정의(正義)는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입증한다. 어떤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의 많고 적음을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으로 정하는 것은 본질적인 모순을 품는다. 우리가 대의민주정치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핵심 작동원칙으로 삼고 있는 `다수결(多數決)`은 그렇게 기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다수결` 이외에 불합리를 극복할 수 있는 다른 의사결정방식을 발견하거나 고안해내지 못했다. 레닌은 공산주의의 제1단계를 `사회주의`라고 규정하고,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정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습 왕조국가로 돌연변이한 북한은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몰락을 부른 결정적인 허점이 `다수결을 가장한 소수독재`였다는 사실을 실증한다. 한때 온 세상을 현혹했던 레닌의 공산주의는 첫 단계에서 `소수독재`의 흉악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이렇듯, `다수결`은 그 자체가 안고 있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 고수해야 할 소중한 원칙임을 부정하기 어렵다.지난 2012년 5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국회선진화법`이 정치권에서 또 다시 갑론을박의 소재가 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수십 년 멱살잡이·몸싸움 등 유치한 물리적 충돌을 거듭해온 국회의 추태를 개선하겠다는 취지에서 단행된 혁신대책이다. `선진화법`이라는 작명이 뜻하듯이, 이 법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선진화된 정치풍토가 전제돼야 한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은 고상한(?) 입법취지에도 불구하고 불과 몇 해만에 후진적 정치구조 안에서 치명적인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이 법은 우선 국회의사당 안에서 과반수를 의결조건으로 하는 절대다수결(Absolute majority)을 실종시켰다.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원천봉쇄하고, 쟁점법안을 해결하기 위해 운영하는 안건조정위원회의 의결정족수를 재적위원의 2/3로, 안건신속처리제도의 안건결정도 재적위원의 2/3로 정하고 있다. 또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푸는 데는 재적의원 3/5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는 등 제한다수결(Qualified majority)을 채택하고 있다.어느 정당도 2/3나 3/5을 차지하지 못하는 정당구조 현실에다가, 당론이 모든 의사결정을 강제하는 환경 속에서 `국회선진화법`은 실질적으로 `만장일치법`이나 마찬가지다. `국회선진화법`의 폐해는 대의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법은 `소수`로 하여금 “어디, 우리의 동의를 받지 않고 뭐든 할 수 있나 봐라!”하는 몽니의식을 잔뜩 키운다. 국회 안에서 실력행사를 전혀 하지 않고도 `소수`가 `다수`의 손발을 꽁꽁 묶는 위력을 발휘한다.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 선거는 투표를 통해서 다수당과 소수당을 가리는 일이다. `소수`가 용인하지 않는 한 `다수`가 아무것도 못하는 정체체제 아래에서 도대체 한 표라도 많은 쪽이 승리하는 단순다수결(Simple majority) 방식의 각종 선거가 무슨 의미를 가질 것인가. `다수`가 된다 해도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뜻대로 할 수 없는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선거`마저 가치를 송두리째 상실해가는 이 기막힌 부조리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소수 독재`가 `다수의 횡포`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것은 수십 년 현대정치사의 뼈아픈 교훈이다. `고양이 피하려다가 호랑이 만난 격`으로, 매번 드잡이판으로 번지는 국회의 추태를 잡으려고 만든 `국회선진화법`은 천만뜻밖으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망가뜨리고 있다. 야당 국회의원들은 `일을 안 하고 반대만 해도 되는` 정치인으로, 여당 국회의원들은 `일을 못 해도 핑계 댈 게 있는` 정치인으로 길들여져가고 있다. 서둘러 고쳐야 한다. 무조건 고쳐야 한다. `국회선진화법`이 살아있는 한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위험하다.

2015-11-10

정쟁(政爭)의 `품격`

▲ 안재휘 서울본부장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한때 여성의 참정권을 극력 반대했다. 영국 의회사상 첫 여성의원이 된 낸시 에스터(Nancy Aster)는 참다 못해 처칠에게 막말을 퍼붓는다. “당신이 만일 내 남편이라면 당신의 커피 잔에 독을 넣고 말겠어요.” 그러나 처칠은 태연하게 맞받아친다. “그래요. 만일 당신이 내 아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커피를 마셔버리겠소.” 처칠의 한 마디에 좌중은 폭소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정쟁의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펼치고 있는 정치권에는 어김없이 `막말 배틀(Battle)`이 벌어지고 있다. 친박좌장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새정연을 향해 “야당이 화적떼는 아니지 않는가”라고 힐난했다. 새정연 이종걸 원내대표는 서 최고위원 등을 지칭해 “친박이 아닌 친박 실성파”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새정연 문재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국정교과서가 집필도 안 됐는데 무슨 친일 독재 미화냐`라고 말한다”며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가”라고 금기시된 용어를 동원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야당의 반대는)적화통일이 될 때를 대비해 어린이들에게 미리 그런 교육을 시키겠다는 불순한 의도”라며 막말 퍼레이드 화염에 기름을 부었다.이종걸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일부 의원은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기 전에 두뇌 정상화가 정말로 시급해 보인다”고 비아냥댔다. 막말정치인 반열의 단골손님인 새정연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행 국사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검정 책임을 거론하며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은 명백한 종북 빨갱이로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돼야 한다”고 어깃장을 놓았다.정치권의 저급한 언어문화에 대해 제아무리 여러 사람이 떠들고 지적해도 그들의 막가파식 습성은 변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많은 전문가들은 습관적으로 상소리를 해대는 정치인들의 행위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이 떨어지거나 지지율이 처질 때 어김없이 나서서 저질 마케팅에 나선다는 것이다.한 나라의 정치수준은 그 국민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자화상은 참 씁쓸하다. 정치인들이 시시때때로 상대방을 향해 욕지거리를 퍼부어야 위상을 유지하는 나라. 유권자의 존재가치를 한껏 업신여기는 정치인들의 그런 음험한 속셈에 무력하게 반응하며 번번이 권력을 상납하는 국민들의 수준이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작금 여야 정치인들이 쏟아놓는 험담에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진심`도, 공감을 폭발시키는 촌철살인의 `재치`도 없다. 그 살벌한 언어 속에는 상대방을 악랄하게 자극하고, 자파 지지자들을 광분시키고자 하는 유치한 욕심만 가득하다. 상대방의 흥분과 역공에 대한 계산조차 안 보인다. 그야말로 아무런 비전이 없는 허망한 제로섬(Zero-sum) 게임인 것이다.험악한 단어를 찾아 상대방을 모욕할 궁리에나 빠진 정치권의 `막말 전투`를 근본적으로 단절할 힘은 오롯이 유권자들만이 갖고 있다. 정치인들의 험구는 국민들을 향한 못된 악다구니에 다름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그들의 감언이설에 깜박 넘어가 권력의 꽃다발을 덥석 안겨주는 어리석음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대한민국 정치에도 윈스턴 처칠이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그랬던 것처럼, 품격 있는 유머정치가 펼쳐질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링컨은 미국 상원의원 후보 자리를 두고 대결할 때 정적 스티븐 더글라스(Stephen Douglas)로부터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는 맹렬한 인신공격을 당했다. 링컨의 대응은 침착했다. “만일 제게 또 다른 (잘 생긴)얼굴이 있다면 이 (못난)얼굴을 드러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청중은 폭소했고 상대방은 초토화됐다.

2015-11-03

독도 단체, 네트워크 구축 시급하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우애라곤 찾아볼 수 없도록 앙앙불락하는 자녀들의 모습을 안타까이 여긴 어떤 아버지가 어느 날 아이들을 불러 우선 싸리나무 가지를 한 개씩 나눠주고 꺾어보라고 한다. 자녀들은 싸리나무를 쉽게 꺾는다. 아버지는 다시 싸리나무 한 다발을 아이들에게 차례로 주어 한꺼번에 꺾어보라고 한다. …자녀들에게 화목과 단결의 효용을 깨우친 잘 알려진 고전 예화다. `독도`는 일본을 이웃나라로 둔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그 끝을 기약하기 힘든 분노서린 고통이다. 고약한 이웃나라의 변함없는 야욕과 방자한 도발 앞에서 우리는 참으로 힘겨운 조바심을 지속하며 살고 있다. 독도가 대한민국 땅임을 역사기록이 제아무리 명명백백 입증해도, 일본의 고지도와 증거자료에서 독도가 자기네 영토가 아님이 누누이 증명돼도 일본의 탐욕은 식을 줄 모른다.조상들이 저지른 세계사적 과오 때문에 평생을 손가락질 받으며 `반성하라`는 외침을 듣고 살아야 하는 일본국민들의 답답한 가슴을 아주 모를 바는 아니다. 지난날의 어두운 기록들을 들춰내는 일에 주저하는 마음까지도 한편으로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남의 땅 독도를 놓고 자기네 영토라고 우기는 행태는 전혀 다른 얘기다.일본이 교과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넣는 일은 부끄러운 역사를 감춰보려는 어지빠른 심사를 훌쩍 뛰어넘는다. `독도 도발`은 삼천리강산이 초토화됐던 처참한 임진왜란을 비롯해 대대로 침탈을 거듭했던 저들의 피 속에 `침략근성`이 녹아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일본의 `독도 침탈` 기도를 터럭만큼도 용인해서는 안 된다.그런데, 과연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민들이 일본의 음험한 술책을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는지를 되짚어보면 한숨이 절로 난다. 무엇보다도 일본과 아주 척지고 살 수는 없는, 국제사회의 여건과 기울어진 국력의 한계가 아프다. 일본 극우정권이 정치적 이득을 위해 그릇된 애국심을 움켜쥐고 도발의 불꽃놀이를 거듭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가 속수무책 언저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란 그렇게 속절없는 것이다.정말 안타까운 것은 수많은 우리 독도운동 민간단체들의 활동이 여전히 `중구난방`이라는 사실이다. 경상북도 독도재단의 조사에 따르면 전국의 독도운동 단체는 대학교연구소가 경북대 외 12개 학교, 독도사랑국민운동본부 등 민간단체가 102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92개(8개 활성화) 등 적지 않은 수에 이른다.문제는 이들 단체들 대다수가 따로따로 각개전투하듯 운영되면서, 일과성 연례행사 일변도의 차원 낮은 활동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그 참여인사들의 뜨거운 열정이 무색하도록, 독도운동 민간단체들의 활약은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대개의 단체들이 설립 초기의 의욕을 살려내지 못하고 유명무실(有名無實)에 머물러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구슬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고귀한 가치를 지닌 독도운동 단체들의 `네트워크 구축`과 정보시스템 운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정부 차원의 대응이 갖고 있는 한계를 보완하는 일은 독도운동 민간단체의 네트워크 구축이 정답이다. 제대로 되기만 하면 그 시너지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하다.둔갑술을 거듭하며 파고드는 일본의 교활한 음모를 철두철미하게 막아낼 새로운 지혜가 필요하다. 민간 학술 연구단체, 시민단체, 사이버 조직들이 뭉쳐 역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최상의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무엇보다도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자세가 절실한 시점이다. 중구난방으로 나서서 습관처럼 궐기대회나 열고 사진이나 찍는 일에 열중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지금처럼 민간 독도단체들이 시시때때로 나서서 제각각 싸리나무 가지 하나씩을 부러뜨리는 방식만으로는, `독도수호 운동`은 결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2015-10-27

`예단(豫斷)`과 `과장(誇張)`의 망령

▲ 안재휘 서울본부장`탕평채(蕩平菜)`는 녹두묵에 고기볶음·미나리·김 등을 섞어 만든 묵무침이다. 봄·가을철에 입맛을 돋워주는 음식으로, 두견화전·화면·진달래 화채·향애단(쑥경단)과 함께 삼짇날에 먹는 절식이기도 하다. 극심한 당파싸움에 전전긍긍하던 조선 21대왕 영조(英祖)는 1762년 소론과 가깝던 사도세자를 뒤주에 직접 가두어 죽이는 전대미문의 참극을 빚어낸다. `탕평채`는 영조가 당쟁을 바로잡으려고 당파를 고루 등용하겠다는 탕평책을 내놓는 자리에 내놓았던 음식으로 유명하다.친박과 비박, 친노와 비노라는 낯선 이름으로 갈려 싸우고 있는 오늘날 정치판은 조선시대 나라를 끝내 망쳐먹은 사색당파(四色黨派) 싸움과 똑 닮아 있다. 사색당파는 처음 동인·서인·남인·북인을, 나중에는 노론·소론·남인·북인의 4대 당파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예나 지금이나 서로 `다르다`고 우기지만, 그 사소한 차이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허접한 논리가 필요하고, 추악한 이전투구를 변명하자면 창피스러운 구실부터 앞선다. 정치판에 드리운 `국사 교과서` 논쟁 먹구름이 날이 갈수록 험악한 빛깔로 치닫고 있다. 내년도 나라 살림살이를 놓고 세세히 뜯어보아 깎고 붙이는 일만으로도 시간이 태부족할 정기국회 기간에 여야 정치권은 두 패로 쫙 갈려 치열한 멱살잡이에 빠져들고 있다. 새누리당은 현행 국사 교과서의 편향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연일 홍보하고 있다. `국사학자들 90%가 좌파로 전환했다`는 통계도 끄집어내놓았다.좌파권력 주도권을 놓고 쟁탈전을 벌이던 야권은 문재인-심상정-천정배 3인이 만나 정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공동 대응하겠다며 손을 맞잡았다. 문재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를 싸잡아 `부친들의 친일-독재 미화 의도`라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야권은 국사 교과서 문제를 내년도 예산안 처리와 연계하려는 움직임마저 얼비친다. 얼개조차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 만들어질 교과서에 `유신 미화` 또는 `독재합리화`딱지를 붙이는 것은 명백한 `비논리`다.그런 주장들은 오로지 `선동`을 위한 `프레임`음모로 읽혀진다. 야권은 민주-반민주, 독재-반독재 프레임의 투쟁에서 성과를 거두었던 경험에 묶여서 번번이 그 유사한 전선(戰線)을 구축하려고 드는 독특한 관성을 갖고 있다.이글이글 타오르는 `국사 교과서` 개편 논쟁을 놓고 `신(神)의 한 수`로 해석하는 정치권의 촌평이 있다. 균열 기미를 드러낸 새누리당의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키는 동시에, 허청거리던 문재인 대표를 벌떡 일으켜 세운 묘수라는 것이다. 정부여당이 하나로 뭉치고, 야권이 `교과서`를 빌미로 머리를 맞대기 시작한 것을 보면 그런 분석이 무리는 아니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그런 정치공학 속에 `국민`이 전혀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정치인들이 명분을 모아서 정당을 꾸리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다.하지만 정치인들이 국리민복을 우선하는 `대의`가 아닌, 친소관계나 사리(私利)를 기준으로 이합집산하여 구차한 논리로 유치한 멱살잡이에 열중하는 짓은 예나 지금이나 나라말아 먹을 망발에 불과하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운위되고 있는 또 다른 이 `사색당파` 논란은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 영조는 유생들의 당론 관련 상소를 금지시키고, 성균관 입구에 `탕평비`를 세웠다. 왕위를 물려받은 정조는 거실을 `탕탕평평실(蕩蕩平平室)`이라 명명하고, 서얼(庶孼)까지도 글 잘하는 사람을 등용했다. 하지만, 한번 형성된 고질적 사색당파 정쟁의 폐해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았다. 친박·비박·친노·비노… 그 덧없는 구분과 정쟁이 역사에 어떤 폐단을 남길 것인지 걱정스럽다. 저 어지빠른 예단(豫斷)과 과장(誇張)의 망령, 정치꾼들의 꼼수와 음험한 정쟁 모략들을 단념시킬 감동적인 탕평채는 정녕 없는 것인가.

2015-10-20

`국사 교과서` 전쟁

▲ 안재휘 서울본부장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의 시발은 198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이듬해에 사용될 일본 초·중·고교 역사 교과서에서 한국의 고대사·근대사·현대사 등을 모두 왜곡 기술해 경악을 샀다. 특히 현대사 부분에서 한국 `침략`을 `진출`, 외교권 박탈을 `접수`, 조선어 말살정책을 `공용어 사용`, 신사참배 강요를 `신사참배 장려`등으로 호도했다. 그리고 2012년부터는 일본 고교 사회과 교과서 85종 총 39종에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싣기에 이르렀다. 역사교과서 논쟁은 주로 `사실` 여부와, `경중(輕重)` 판단, `견해`의 다양성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다투어진다.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이 `사실`인가 아닌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기술했는가,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간다.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문제는 시비를 가리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념이 개입되기 시작하는 `경중` 판단에서부터 난해해지고, `견해`부분은 아예 타협의 여지가 없다. 결국 역사에 대한 `견해`를 놓고 곡직을 따지는 일은 허망하기 십상이다.오랫동안 수면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던 한국사 교과서 개정 논란이 드디어 임계점을 넘어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그 어떤 이슈가 떠올라도 좌-우 이념대결의 천박한 정쟁으로 치닫는 고질적 습성 그대로, 이 문제 역시 삽시간에 사생결단 드잡이의 소재로 떠올랐다. 10년 진보정권 기간에 추진된 교과서 개편방향의 정당성이나 그 내용의 적절성 여부를 시시콜콜 따지는 일은 시간낭비일 지 모른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는 문제가 많다는 사실이다. 교과서를 `검인정` 체제로 바꾸는 과정에서의 그 하염없던 설전이 무참하도록, 학생들 앞에 놓인 한국사 교과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특히 `현대정치사`부분에 담긴 `경중`판단과 `견해`들은 구석구석 섣부르다. 필경 정권을 거머쥔 현실권력이 직접 개입했거나 해바라기들이 의도를 갖고 욱대겨냈을 허술한 구석이 적잖이 감지된다.아이들을 가르치는 역사책에 기성세대들의 외눈박이 `견해`가 과도하게 투영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검인정 교과서 체제로 전환되면서 벌어진 사달의 요체는 성마른 학자들이 `편견`일 개연성이 높은 해석을 끈덕지게 담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부적합성이 충분히 지적됐고, 바로잡아야 될 명분 또한 켜켜이 축적된 것은 주지의 사실 아니던가. 절대로 손대서는 안 될 완벽한 교과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인정한다면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해야 한다. `현대정치사`가 역사 교과서에 적극적으로 기술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에 백번 공감한다. 특히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고, 엇갈리는 `견해`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함부로 `해석`을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다. 중요도가 제아무리 높다고 해도 `해석`은 후대에게 남기고 일단 `사실`만 정리해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다.정치권에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국사 교과서` 논쟁은 그 방향에서부터 잘못돼 있다. `국정`이냐, `검인정`이냐 하는 형식 문제부터 대척점에 세워놓고 갈등을 확대하고 적대감을 키우는 것은 무망한 소모전이다. 양 쪽으로 편갈라 벌이는 이 험악한 청백전은 백해무익한 굿판이다. 문제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부실한 내용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다투는 것이 순서다.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고치고 `국사 교과서`를 바꾸는 나라가 어찌 정상적인 나라일 것인가. 역사 교과서에 담긴 `사실`이나 `경중` 판단이 아닌, `견해`에 대한 다툼은 결단코 `정답`을 도출할 수 없다. 명명백백한 역사적 `사실`마저도 뻔뻔스럽게 왜곡해대는 저 후안무치한 일본 앞에서, 우리가 이렇게 추한 모습으로 `국사(國史)`를 놓고 자꾸만 쌈박질을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

2015-10-13

선거구 논란… 한심한 `강 건너 불구경`

▲ 안재휘 서울본부장`도농 간에 나타나고 있는 경제력의 현저한 차이나 인구격차는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어, 지역이익이 대표되어야 할 이유는 여전히 있다.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은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된 현 시점에서도 투표가치의 평등 못지않게 여전히 중요하다.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일원화되어 있는 의회에서 지역이익도 함께 대표될 수 있어야 하므로 국회의원 선출시 지역대표성을 감안한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지난 해 10월 30일 헌법재판소의 사건번호 2012헌마190 판결문에 적시된 박한철·이정미·서기석 재판관의 소수 반대의견 요지다. 헌재는 이 재판에서 `인구편차의 허용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견해를 다수의견으로 도출, 현행 선거법상 인구편차가 1/3을 넘어서는 경우를 `위헌`으로 판시해 큰 충격을 던졌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시지역은 인구가 늘고, 농어촌지역은 격감하는 시대에, 그렇잖아도 피폐해지고 있는 지역정치권에 먹구름이 덮친 판결이었다. 선거구 획정안 제출 법정시한을 며칠 앞두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이해당사자인 일부 농어촌지역 여야 국회의원들이 `집단 농성`을 벌이는 등 정치권도 시끌시끌하다. 이른바 선거구 간 `인구등가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헌재의 판단과 지역균형발전의 가치를 위해 `지역대표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명분이 충돌하면서 논란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애타는 농어촌지역의 국회의원들은 “국회정문 앞에서 의원 25명, 지역민 2천여 명이 참여하는 `농어촌 지방선거구 사수`상경집회를 연다”는 급보까지 돌리고 있다. 자기 이해관계에 함몰돼 사는 국회의원들의 냉정하고 옹졸한 활동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농어촌선거구 축소` 국면에 대응하는 모습은 중대한 패착을 드러내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 현상으로 날이 갈수록 불리한 환경에 빠져들고 있는 낙후지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킬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에 있다. 잘라 말해서, 대한민국의 발전은 `참다운 지역균형발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이 발전해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명제는 지역이기주의의 벽을 훨씬 뛰어넘는다. 지역이 고루 잘 사는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야말로 선진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핵심 전략요소다. `인구등가성`의 가치만을 중심에 세워놓고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온전치 못한 `협애한 논리`라는 전문가들의 비판에는 공감할 바가 많다. 그러나 정말 한심한 것은 이 과제를 다루고 있는 정치인들의 대응자세다. 발등에 불 떨어진 몇몇을 빼고는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는 다수의 국회의원들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문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지역의 정치적 힘이 더욱 커지는 반면, 농어촌지역의 정치적 입지가 쪼그라드는 심각한 사태다. 농어촌 출신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위기감을 느껴야 할 중대사안임에도 발바닥 뜨겁고 코 시린 몇몇 사람들만, 그것도 헌재결정 1년이 다 되도록 미적거리다가 뒤늦게 나서서 동동거리는 `늑장`대응 모습은 딱하기 그지없다.`도농 간의 현저한 격차`, `지방자치 시대의 지역대표성 가치`, `단원제의 한계` 등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뭔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1년 전 헌법재판소 일부 재판관들의 소수의견 속에 해결논리가 암시돼 있다.곪아터질 때가 돼서야 허둥지둥 `벼락공부`하듯 나서는 선량들의 이 모양새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나랏일을 하라고 뽑아놓은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아니라고 뚝 떨어져서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는 이 노릇을 국민들은 또 어떻게 읽을까. `입법활동`을 통해서 올바른 나라발전 방안을 마련하라고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주저앉은 초라한 농성장 풍경이 애처롭다.

2015-10-06

낙하산 정치의 퇴영

▲ 안재휘 서울본부장`한 잔의 물을 마루의 패인 곳에 엎지르면 풀잎은 떠서 배가 되지만 거기에 잔을 놓으면 바닥에 닿는다.(覆杯水於拗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謬)` 장자(莊子) 내편에 나오는 이 어록은 오늘날 많은 교훈과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물의 깊이를 생각지 않고 무작정 큰 배를 띄우려는 어리석음과, 배의 크기를 감안치 않고 물의 깊이를 설정하는 경솔을 함께 경계한다. 추석을 지나면서 민심의 요동이 깊어지고 있다. 한가위 명절에 동서남북으로 오간 정치담론들이 파동을 일으키고 있다. 그 흐름들을 세세히 분석해보면 민심의 물줄기를 충동했던 논란들이 품고 있는 여파나 폭발력은 사뭇 다르다. 외견상 여유로운 듯 운위된 영남권 논란의 테마들은 퇴행적인 이미지를 넘어서지 못한다. 반면에 호남의 격론들은 비록 혼란스러웠지만,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잔영을 남긴다.전국의 여론밥상을 휘저으며 입줄에 오르내린 논쟁의 중심축은 단연 내년 4월 `제20대 총선`이었다. 대구·경북(TK)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노여움에 가득 차 언급했던 `배신`에 대한 실체와 그 여파에 대한 갑론을박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박 대통령에 힘입어 입문한 지역정치인들의 역할에 대한 평론들이 꽤 나온 모양이다.박 대통령이 곤경에 처했을 때, 이를 막아내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희생에 나선 지역정치인들이 드물었다는 비판에는 공감할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작금 회자되고 있는 설계도 그대로 박 대통령의 서운함이 정말로 `TK 물갈이`로 이어진다고 상상해보자. 그래서 청와대 안팎의 친박 요인(要人)들이 낙하산타고 내려와 기존 정치인들을 `배은망덕` 딱지 붙여 모두 밀어내고 안착했다고 치자.그런 결과에 “TK정치가 한 걸음 진화했다”고 해석할 여지가 과연 얼마나 남게 될까. 그렇게, 지역 유권자들이 몰표로 정치지도자의 언짢음을 풀어주는 일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참다운 진전일 것인가. 추석을 전후로 정치권에 흐르기 시작한 기류를 살펴보면 그게 그렇게 간단할 것 같지는 않다. TK 유권자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청와대 총선 관여`에 대한 찬반 여론조사에서 47.8%가 반대하고 36.6%가 찬성했다는 한 조사결과는 미묘한 해석을 부른다.정말 긴장감을 가져야 할 대목은 지난 22~24일 전국 성인 1천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다. `정권심판론`에 대한 긍정여론이 42%, `정권 안정론` 지지가 36%로 나타난 이 조사결과는 민심이 어느 방향으로 미동하고 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극단적인 분열상을 다스리지 못해 `죽을 쑤고 있는` 야당에 대해서 민심은 아직 기대를 접지 않고, 그 진통이 일궈낼 새로운 감동을 여전히 고대하고 있음을 시사한다.새누리당은 지금 이렇게, 미래권력의 향방이 걸린 `공천`문제를 놓고 내홍을 키워갈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국민들은 진일보된 새로운 공천문화를 통해 아직도 `3류` 취급을 받고 있는 정치가 한 발짝 선진화되기를 소망한다. `낙하산` 정치가 정치혁신을 일궈낸다고 믿는 사람은 이제 아무도 없다. 참다운 민주주의를 향한 민초들의 꺼지지 않는 갈망은 존중돼야 한다. 김무성 대표의 “단 한 명도 전략공천하지 않겠다”는 공언은 그래서 신선하게 들린다.`낙하산` 은전(恩典)을 입은 정치인들은 철새·풍향계(風向鷄)정객이 될 개연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최근의 작위정치(作爲政治) 조짐 전후좌우를 찬찬히 음미해보면 더욱 그렇다. 도도한 민심의 바다를 함부로 가늠하는 자 누구인가. 망망대해에 작은 배를 마구 띄우는 일은 위험천만하다. 비록 잠잠하다 해도, 바다가 어디 섣부른 돌팔매질을 쉬이 허용하던가. 지금이야말로 `물의 깊이`와 `배의 크기`를 정확하게 가늠해야 할 때다. TK가 더 이상 케케묵은 `낙하산 정치` 시험장이 돼서는 안 된다.

2015-09-30

“7초만엔 답변 못해”

▲ 안재휘 서울본부장해마다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국회출입기자들의 E-메일과 휴대폰 문자 통은 불이 난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장에서 질문할 내용들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제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비판`이 제1의 존재이유인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정보를 입수하는데 훨씬 더 유리한 국회의원들이 만들어내는 기삿거리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때로는 정부의 반론권 보장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자료에 꺼림칙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국정감사 현장에서 나타난다. `3권 분립`을 통해 권력의 균형을 추구하는 민주국가에서 국회의원이 행정부에 대해 엄격한 감시를 들이대는 일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지는 질문-답변의 형식을 보면, 비정상적인 행태가 적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갑질`재미에 빠져 우쭐해지고, 피감기관들은 시쳇말로 `쫄`수 밖에 없는 판이지만, 납득 안 되는 장면이 많다. 정치인들은 국정감사든 청문회든 질문자석에 앉기만 하면 누구나 `원맨쇼`에 몰두한다. 더욱이 TV생방송이나 녹화가 진행될 경우, 카메라가 돌아가는 단 1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제 말`만 늘어놓는다. 때로는 다짜고짜 호통부터 치고, 피감자가 답변을 하려고 하면 “이따가 대답하라”면서 묵살한다. 결국 샅바싸움까지 해가면서 가까스로 불러놓은 증인들마저도 변명도 해명도 못해보고 애먼 `꾸지람(?)`만 듣다가 일어서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여당 의원들은 야당 측 발언이 적절치 못하다며 타박하고, 야당 의원들은 여당 측이 터무니없이 역성을 든다며 볼멘소리를 내놓는다. 때로는 삿대질 욕설이 오가기도 한다. 16년간 사라졌던 국감제도가 부활된 지 27년이 지났는데도 풍경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해마다 똑같은 `무용론(無用論)`이 폭포처럼 쏟아져도 요지부동이다. 왜 그럴까? 힘센 권력가, 돈 많은 재벌 잔뜩 불러 망신을 주려고 혈안이 되는 그 이해관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국감을 통해서 한번 붕 떠보려는 심사는 여야를 막론하고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 뿌리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청문회스타` `국감스타`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얻어 권력을 폭발적으로 확대재생산한 정치인들에 대한 선망이다. 청문회나, 국감 판이 열리면 뭇 정치인들은 마치 마약에 취한 것처럼 `한탕주의`에 젖어 돌변하곤 한다.얼마 전 열린 기획재정부 국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야당 위원들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작심한 듯 인신공격까지 섞어가며 비판을 쏟아냈다. 3선의원에다가 장관직만 벌써 두 번째로서 평소에도 좀처럼 소신발언을 굽히지 않는 강골 최 부총리는 야당의 `원맨쇼` 행태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7분 질문시간 중 6분 53초 동안을 쪼아대던 새정연 홍종학 의원이 답변을 하라고 하자 “7초 만엔 답변을 할 수가 없다. 답변하지 않겠다”고 되받아쳤다.두 시간여의 정회 끝에 기재위는 위원들에게 7분을 모두 질의에 쓸 수 있게 하고 답변은 시간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충분히 질문할 시간이 확보되자 야당 의원들부터 목소리를 낮춰 정책질의를 시작했고, 최 부총리와 기재부 관계자들도 만족스러워했다. 바쁜 증인·기관장들을 불러놓고도 `10초 답변``7초 사과`만 듣기 일쑤였던 불량국감 문화가 달라지는 순간이었던 것이다.올해도 여지없이 `망신주기`·`면죄부 주기`식 국감행태가 지속되고 있다. 국정감사권의 성격은 고유권한을 효과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보조적 권한이라는 것이 정론이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에게 `수퍼 갑(甲)질`이나 하라고 열어주는 저질 굿판이 결코 아니다. `제 말`만하고 `호통`이나 치는 국회를 끝내고, `듣고 또 들음`으로써 나라발전의 지혜를 찾아나가는 국회로 가야 한다. 그래야만 `저질 국감` 오명을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

2015-09-22

`오픈프라이머리` 삼국지

▲ 안재휘 서울본부장중국 명나라 초기 나관중이 원작자로 되어 있는 `삼국지(三國志)`는 기묘한 무용(武勇)과 지모(智謀)로 이어지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전투전략기술로 화려하다. 이야기의 전개가 적당한 템포로 진행되고, 독자의 흥미를 이끌어가는 수법이 매우 뛰어나 중국의 많은 역사소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인정받는 영원한 베스트셀러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공천전쟁에 돌입했다. `정치생명`까지 내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작심에는 막강한 결기가 실려 있어 보이지만, 결코 앞길이 순탄치 않다. 새누리당이 `오픈프라이머리`를 당론으로 만들어놓은 지금도 당내에서는 회의적인 견해가 적지 않다. 벌써부터 7(일반여론)대3(당원투표)이니, 8대2니 하는 대안들이 범람한다.새정치민주연합의 사정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4·29 재·보궐선거 참패 후 퇴진압박에 몰린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당 혁신위원회를 꾸려 `당 개혁`을 맡기는 형태로 탈출구를 모색해왔다. 하지만 당 혁신위가 만들어 내놓은 개혁안은 당내 비주류들의 비토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안철수 의원은 공개서한을 통해 혁신위가 제시한 공천개혁안을 정면 반대하고, 대안으로 `오픈프라이머리`도입을 주창했다.정당민주주의가 이상적으로 구현되려면, 정당이 합리적인 공천시스템을 작동시켜 정상적으로 공천하고 분명하게 책임을 지는 것이 옳다. 불행하게도 우리 공천역사는 밀실공천, 공천장사, 야합정치, 나눠먹기 공천…등의 부끄러운 이름들이 장식해왔다. 그 모든 흑역사를 종식시킬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오픈프라이머리`다.제아무리 의미가 있다고 해도, 우리의 기형적 정치환경에 접목해보면 불안정한 요소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당내 역학관계의 변이와 예상 궤적을 짚어보면 도무지 간단한 문제일 수가 없다. `오픈프라이머리`성취를 위해 김무성 대표가 반드시 넘어야 할 친박(청와대)과 야당의 장벽은 결코 만만한 장애물이 아니다.`오픈프라이머리`를 막아서고 있는 핵심요소는 이러쿵저러쿵 덧붙이는 명분 뒤에 숨어있는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의 `낙하산 공천` 여지다. 퇴로를 안전하게 지켜줄 든든한 호위무사가 더 필요한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 역설을 어떻게 읽고 있을지는 불문가지다. 당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고 강진(强震)속에 휘둘리고 있는 문재인 대표가 내놓는 `공천혁신`방안은 반대파들에게 무조건 `학살음모`로 낭독된다.대권을 꿈꾸는 김무성 대표는 20대 총선에서 공천권을 친박에게 온전히 내줄 수 없는 입장에 서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임기 이후까지 친박 정치인들이 여의도에 든든히 스크럼을 짜고 있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야당 문재인 대표 역시 그 자신의 대권가도를 책임질 친노 동패들이 국회에서 주춧돌과 기둥역할을 해야 할 까닭이 다분한 형편이다. 그야말로 복잡다단한 정치역학 속에서 주요 정치인들의 사천(私薦) 욕망은 그 뿌리가 깊고도 깊을 수밖에 없다.현역들은 `국민공천`에 대해서 거부감이 높지 않다. `오픈프라이머리` 깃발이 오르고 나서 지역정가에 지망생들이 늘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면 정치신인들도 `한 번 해보자`는 심리가 발동되는 모양이다. 정치개혁의 본질이 `아래로부터의 공천`이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이런 저런 부정론은 권력 눈치를 보는 `구실`일 수밖에 없다는 느낌이다. 명현현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끝내 좋은 약을 못 먹고 고질병을 이대로 악화시킬 것인가. `오픈프라이머리`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보완해볼 생각은 아예 접고, OX갈등에나 빠지는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20대총선 공천전쟁에서, 누가 유비가 되고 누가 조조역할을 하고 누가 제갈량이 될 것인지 아직 우리는 모른다.

2015-09-15

`사대주의`와 `균형외교`

▲ 안재휘 서울본부장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도무지 `외교`의 가치를 모르는 왕과 조정의 `우물 안 개구리식` 국정운영이 빚어낸 참담하고 수치스러운 역사다. 조선의 통치철학을 뒷받침한 주자학이 갖는 철학적 가치는 논외로 치더라도 대국(大國)을 섬기는데 있어서 효(孝)의 개념에 근거한 충성을 미덕으로 삼았다는 것은 돌아보면 치욕스럽다. 어엿한 `국가`로서 존재한 조선이 왜 그렇게 무참히 외세에 굴종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많은 논점을 남긴다. 통신사 일행으로 왜국(倭國)의 정정(政情)을 살피고 돌아온 신료들이 당파싸움에 찌들어 정반대의 보고를 각각 올려 갈팡질팡하다가 당한 임진왜란의 참극은 흔히 아는 비통의 역사다. 그런 호된 참화를 겪고도 조선은 병자호란을 피하지 못했다. 대륙의 정세를 제대로 읽어내기는 커녕 친명(親明)과 친청(親淸)으로 갈려 어느 나라를 `어버이 나라`로 섬길 것인가 창피스런 논쟁에 골몰했던 지도층의 갈등은 되돌아볼수록 어이가 없다.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항일전쟁 승리 70주년 기념행사 참석을 두고 `사대주의` 운운한 산케이신문의 보도는 일본이 얼마나 배알이 꼴려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산케이신문 노구치 히로유키(野口裕之)라는 기자는 `미중(美中) 양다리 한국이 끊지 못하는 민족의 나쁜 유산`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노구치는 이 글에서 박 대통령의 전승절 열병식 참관에 대해 “사대주의 DNA를 계승해 발휘하는 것”이라고 비꼬았다.이어지는 노구치의 글은 패악스럽기 그지없다. `민비`라는 비하조의 고유명사를 동원해 명성황후가 겪은 비운을 자세히 서술하면서 박 대통령의 불운을 암시하는 무례하고 야비한 논리를 펼쳤다. 박 대통령의 선친인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기 전 `민족의 나쁜 유산`으로 제일 먼저 사대주의를 거론하며 개혁을 모색했다고 상기하면서 박 대통령이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간다는 투로 비아냥대기도 했다. 산케이신문 내에서도 대표적인 강경 우익보수로 꼽히는 기자로 알려져 있는 노구치는 주로 한국과 중국 등 과거사 문제로 대립하는 국가에 대해 뒤틀린 논조의 칼럼을 자주 싣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노구치의 망발을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결코 간단치 않다. 일본이라는 이웃나라에 노구치의 궤변에 공감하는 다수의 독자가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언론이 불행한 역사를 끄집어내며 희롱하는 논설을 펼치는 행위는 치가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의 망발 망언 뒤에는 분명히 어떤 불순한 이유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좀 더 정확하게 알고 분석할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가 참패해 전범국으로 전락한 일본이야말로 미국을 향한 철두철미한 `사대주의`적 굴종으로 국가를 부흥시키지 않았던가.지정학적인 이유, 제대로 된 개화의 길을 가지 못해 겪어야 했던 약소국으로서의 비애,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또다시 삼천리강산이 초토화되는 비운…이 모든 것을 딛고 자랑스럽게 일어선 우리가 끝까지 살아남아 번창하기 위한 정치외교의 방향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성찰해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멀리하고 대한민국을 가까이하려는 그 이유는 노구치의 망상처럼 또 다시 부모나라가 되고 싶어서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런 변화는 어디까지나, 달라진 한국의 국력과 국제적 위상에 근거한다.우리는 더욱 더 철저한 `균형외교`, `실리외교`의 길을 가야 한다. 그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개의치 말고 한반도에 영원한 평화를 보장받을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모색해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강대국들을 업고 벌이는 소아병적인 `사대주의`는 없어야 한다. 당쟁의 연장선상에서 반미(反美)나 반중(反中)의식을 민족주의로 포장해 반목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2015-09-08

쩨쩨한 티뜯기가 `통일` 망친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미국 조지아주 에모리대학의 사라 브로스넌 박사가 꼬리감는원숭이(Capuchin monkey)를 대상으로 실시한 차별적 보상에 반응하는 행동 관찰결과는 흥미롭다. 열두 마리의 원숭이를 두 그룹으로 나눠 인접한 우리에 가두고 일정한 일을 똑같이 시키면서 차별적으로 보상하자, 차별당한 쪽이 격하게 흥분하는 반응을 보였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속설이 유인원 세계에서도 통용된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북한의 DMZ 지뢰도발로 촉발돼 끝 모르게 팽창되던 남북 간의 일촉즉발 위기상황이 남측 김관진·홍용표-북측 황병서·김양건 협상대표들이 무박4일 마라톤협상 끝에 합의를 도출함에 따라 극적으로 잦아들었다.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남·북한이 급속히 대화무드로 접어들면서 한반도에 드리웠던 먹구름이 일시에 걷혔다. `남북이산가족상봉`첫 단추를 풀어내는 작업도 순조로운 것 같고, 예정된 고위급회담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위태로운 시험대 난간에 몰렸던 박근혜정부가 임기반환점을 돌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불과 1주일사이에 15%나 급등하면서 50%를 육박하는 수준으로 치솟았다.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박 대통령이 중심에 버티고 서서 `원칙`을 굳게 지킴으로써 북측의 억지를 꺾어낸 성과에 힘입었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도자가 실천해야 할 `확고부동`의 전범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다.갈등이 극으로 치닫던 시기에 여당대표는 `가차 없는 응징`을 주창하고, 야당대표는 `대화 해결`을 주문한 약간의 엇박자가 아주 의미 없는 대응은 아니었다. 내부이견이 많을수록 지도자의 협상력이 높아진다는 `양면게임(Two-level game)`논리가 정말 작동했는지는 물론 알 수 없다. 문제는 남북합의 이후에 펼쳐지는 쩨쩨한 논쟁들이다. 소탐대실의 위험성을 아주 모르는 바도 아니련만, 이 나라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야릇한 티뜯기가 빈발하고 있다.협상타결 이후 김관진 국가안보실장은 “북한이 지뢰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북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북한방송에 나와 목함지뢰 폭발사건을 `날조`로 몰면서 “남조선 당국이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되었을 것”이라고 떠들었다. 상반된 언행을 놓고 이런저런 비판이 제기된다. `비정상적인 사태`라는 합의 문구를 놓고 끈질긴 불평을 늘어놓는 언급은 볼썽사납다.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합의문과 다른 발표를 한 것”이라면서 “상대에 대한 신뢰를 해치는 일일 수도 있다”고 아예 대내용으로 분석되는 황병서의 평양 발언에 힘을 실었다. 발목지뢰로 부상당한 병사와의 인터뷰에서 `전투의지`는 빼고 굳이 `평화기원`부분만 발췌 보도하던 진보언론들은 청와대에 초청된 여당의원의 `불평`을 쥐어짜내며 갈등을 후벼 팠다. 인터넷을 떠도는 `박 대통령-김정은 위기 합작설`음모론은 더욱 기가 막힌다. 모두가 `배 아픈 건 못 참는` 천박한 본성을 드러낸 추태로 읽힌다. 청와대는 “남북대화는 이제 시작”이라며 신중한 접근을 희망하고 있다. 그럼에도 `배 아픈` 사람들이 앞 다퉈서 8.25합의내용을 꼬투리잡고, 섣불리 `5.24조치 해제`를 외치거나 `남북정상회담`을 촉새처럼 언급하는 모습은 한심스럽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인과 언론이 못할 말이야 없겠지만, `국익`을 헤아리는 지혜가 아쉬운 대목이 많다. 정권의 성격에 따라 포장 바꿔가며 냉탕과 온탕을 반복해온 통일정책을 다시 점검해야 할 때다. 민족의 명운이 걸린 참된 `통일`을 위해, 내남 없이 함께 들어설 한 길 설계도를 준비해야 한다. `통 큰 전략`으로 성큼성큼 나아가야 한다. 쩨쩨한 티뜯기가 `평화통일`을 망친다.

2015-09-01

현대판 `음서제(蔭敍制)` 논란

▲ 안재휘 서울본부장마르크스의 `자본론`보다 약 100년 앞서 1753년에 나온 장 자크 루소(Rousseau)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부(富)의 불평등에서 시작, 힘의 불평등을 거쳐 `최강자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역사과정을 명쾌하게 논증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성공작이지만 `상대적 평등`에 대한 고질적 약점이 있다. 공산주의가 치명적인 오류를 드러내며 지구상에서 소멸돼가는 시점에서도 이 `불평등` 약점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천부인권(天賦人權)적 `절대적 평등` 사상은 불평등의 급류에 찌들어 살던 인류를 크게 각성했다. 그러나 절대적 평등 이론은 머지않아 개인능력의 차이와 사회적 격차가 빚어내는 상대적 불평등의 문제점을 노정한다.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동등한 조건을 창출해줌으로써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균등한 지위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 평등`의 가치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는 이유는 충분하다.여야 국회의원들이 자녀취업 특혜 의혹에 휩싸이면서 `현대판 음서제(蔭敍制)` 논란이 일고 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딴 국회의원 자녀들이 아버지의 `후광`으로 원하는 자리를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새정치연합 윤후덕 의원은 딸이 LG디스플레이 변호사 채용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대표이사에게 청탁했다는 것이고,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은 아들의 정부법무공단 변호사 취업이 특혜였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이 논란은 2017년 폐지 예정인 사법시험 존치 논란으로 번지면서 사법연수원 출신 기성 법조인들과 로스쿨 간의 `진영 싸움`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스쿨이 `음서제`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난 만큼 사법시험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다. 이에 대해 전국 25개 로스쿨 학생들과 관계자들은 “(음서제 논란은) 로스쿨과 아무 관계가 없다. 철저하게 개인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한다.지역균형발전과 법률서비스의 전국 확대, 다양한 전공·경험을 통한 법률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로스쿨제도의 취지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한 해 등록금이 웬만하면 2천만 원이 훌쩍 넘는 엄청난 학비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살아있다. 입학단계부터 판사와 검사 선발에 이르기까지 그 기준과 방식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도 문제다. 로스쿨 입학에 실패한 사람들도, 판검사 임용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구조적 `불평등` 개연성을 높이고 있는 `불투명`을 분노하고 있다.졸업까지 최하 4천여만 원에서 최고 7천여만 원의 학비를 조달할 경제적 능력이 안 되는 인재들은 근접조차 못하는 현 로스쿨제도는 기본적으로 `평등`의 틀을 벗어난다. 게다가 입학은 물론 판·검사 선발시험의 성적마저 비공개로 처리한다 하니 권력층 아버지를 둔 졸업생들은 매운 눈을 피하기 어렵게 돼있다. 국가차원에서 충분한 장학금을 지원해 누구든 실력 있는 인재들의 입학과 수학을 보장하는 한편, 학사 및 성적관리를 사법고시 수준만큼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관대작들이 그들의 지위를 자자손손 세습하려는 욕구 충족의 편법적 장치인 음서제는 조선의 또 하나 음습한 망조(亡兆)였다. 조선 후기 공신 혹은 현직 당상관의 자제로 과거에 응하지 않고 등용된 음관을 기록한 음보(蔭譜)에 무려 1천235명이나 등장하는 걸 보면 당시 잘 난 조상을 둔 덕에 벼슬살이를 한 사람이 얼마나 흔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평등한 세상이란, 격차가 기회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환경 아래에서는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네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주눅이 들어 꿈을 접어야 하는 젊은이들이 존재하는 나라를 더 이상 대물림할 수는 없지 않은가.

2015-08-25

`4대 개혁`의 성공열쇠

▲ 안재휘 서울본부장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점진적 개혁이론`은 사회발전에 대한 대표적인 보수주의 이론으로 유명하다. 포퍼는 “플라톤이나 마르크스의 `궁극적 설명`은 무서운 도그마(독단) 또는 전체주의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통한 점진적 개혁`으로 가야 한다”고 명쾌하게 설파했다. 그의 이론은, `사회변화`는 함부로 실험해서는 안 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시행착오 수정을 통한 점진적인 진화가 바람직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혁명과 개혁을 구분하는 설명 가운데, 미식축구 전술용어 `패스 플레이(Pass play)`와 `러닝 플레이(Running play)` 비유만큼 절묘한 것은 없다. 패스 플레이(혁명)는 쿼터백이 전방 자기편 선수에게 길게 패스하여 공격하는 방법이다. 한 번에 많은 거리를 전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성공할 확률이 적고 역습의 위험이 높다. 반면, 러닝 플레이(개혁)는 러닝백에게 패스를 해 상대진영으로 뛰는 방식이다. 한 번에 긴 거리를 가기는 어렵지만, 공격 실패의 위험성이 적다.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25일)을 앞두고 연일 경제 활성화와 노동·공공·교육·금융 등 4대 부문 개혁을 위한 내치(內治)강화에 정책중심을 싣고 있다. 지난 6일의 `대국민 담화`에 이어 광복 70주년 메시지를 통해 개혁의지를 다시 한 번 강하게 피력했다. 박 대통령은 “반드시 `4대 개혁`을 완수해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희망의 대한민국을 물려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난했던 전반기 국정운영의 온갖 혼돈을 떨쳐내고 비로소 박근혜정부가 본궤도를 찾아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박근혜정부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내건 `4대 부문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뛰어넘어야 할 고비는 국민들로부터의 불신이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서 한국 국민의 정부신뢰도가 34%로 발표된 것은 비보(悲報)다. 2007년보다는 10%포인트 올랐지만 OECD 평균 41.8%에 크게 못 미치면서, 조사 대상 41개 국가 중 겨우 26위였다.전문가들은 4대 개혁 각 분야의 개혁이 상호연계 추진돼야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것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세부 과제별로 이행 로드맵을 마련하고,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치와 실행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고도 주문한다. 각 분야별 사업 추진체계의 역할·권한·책임을 명확히 하는 한편, 구조개혁 추진 주체 간 상호 협력체계를 확보해야 한다는 충고도 나온다.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연일 `희생과 양보`를 호소하며 개혁의 절박함을 토로하지만 이것만으로 효과를 거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호소`차원을 넘어서는 더 큰 해법이 요구된다. 스타플레이어의 존재가 요긴한 `패스 플레이`와 달리 `러닝 플레이`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전술이다. 모든 장애요소를 극복하고 개혁의 문을 여는 `마스터키(Master key)`는 다름 아닌 `소통`에 있다. 대통령이 직접 쌍방향 소통에 나서야 한다.집권 이래 줄곧 지적받고 있는 대통령의 `불통`이미지를 혁신하는 것이 4대 개혁을 성공하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대통령과 국민들이 소통하고 있다는 평가가 정치권과 저잣거리 각계각층에 나돌아야 한다. `개혁(Reform)`이란 용어가 혁명 세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서 탄생됐지만, 그 과정이 훨씬 더 어렵다는 역사적 교훈은 아직 유효하다. 단언컨대, 만약 박근혜정부가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4대 부문 개혁`에 올인하여 성취하기만 한다면, 역대 어느 정부 못지않은 `성공한 정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2015-08-18

`찌든 감정`만으로는 일본 못 이긴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우리가 위안부 여사님들을 더 잘 챙기지 않고 자꾸 일본만 타박하는 뉴스만 나간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한국 정부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해 문제 삼는 것은) `내정간섭`이라고 생각한다. 혈손이 어떻게 부모를, 자신의 선조를 참배하지 않겠느냐. ..일본 역대 총리와 천황폐하가 계속된 사과를 했는데도 자꾸 사과를 요청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창피한 일이다”광복 70주년을 앞두고 나온 박근혜 대통령 동생 박근령 씨의 일본 동영상사이트 니코니코와의 인터뷰가 세간에 뜨거운 논쟁거리로 등장했다. 박근령 씨의 인터뷰 내용에 대해 국민 79.9%가 `부적절하다`고 응답했다는 여론조사를 보면 `망언`이라는 비난이 과하지 않은 듯하다. 다수여론이 그러하니 해프닝 정도로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그녀가 대한민국 대통령의 실매(實妹)라는 자격에 비추어보면 해석이 그리 간단할 수만은 없다.박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도 한일관계는 끊임없이 꼬여왔다. 가장 큰 원인은 일본의 지도자들이 과거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 입힌 막대한 전쟁피해 역사를 지우기 위해 나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헌법까지 바꿔가며 일본을 다시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일본 지도층의 그런 움직임은 그들의 정치적 이득과 맞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상식을 뒤엎는 아베 정권의 망발 뒤에 일본 국민들의 분명한 지지가 있다는 사실이다.그렇다면, 우리의 관심이 `아베 총리`만의 문제에 한정되고 그 한 사람에 대한 분노에 머무는 것은 적절할 수가 없다. 우리는 문제가 불거지면 어김없이 머리띠 두르고 모여들어 삿대질하고 허수아비에 불 질렀다. 분이 안 풀리면 혈서까지 썼다. 그렇게 번번이 한판 굿이나 벌이고는 돌아서서 잊어버리는 오랜 풍조로 우리가 바꿔낸 것이 무엇이던가. 국민감정을 북돋우는 선동에 휘둘려 무한정 적개심을 부풀려내는 구태의연한 풍토로 더 나아갈 미래가 있을까.건드리기만 하면, 와글와글 들고일어나 악을 쓰며 `반성하라` `사죄하라` 외치는 궐기대회 한번 치르고는 순식간에 다 잊어버리는 우리의 해묵은 반응에 일본인들은 이미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른다. 오래 전 일이지만, 일본 현지취재 도중에 만난 한 외교관은 이렇게 털어놓았다. “일본에는 한국전문가가 1만명 쯤 됩니다. 그들은 우리의 모든 분야를 유리알처럼 낱낱이 들여다보며 연구합니다. 지금 이대로 가서는 대한민국이 일본을 이기기란 실로 난망합니다.”`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참된 이웃으로 만드는 일은 `국력신장` 한 길밖에 없다. 미국에서 정부 관리와 플로리다 대학 경제학 교수 등을 지낸 일본출신 로버트 쓰치가네(Robert Tsuchigne)는 저서 `일본인 취급설명서`에서 “일본인은 종종 힘 앞에는 굴복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을 하기 때문에, 힘 있는 자로부터 부당한 일을 당해도 잠자코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자기보다 강한 존재의 말에만 복종하는 것이 일본인들의 근성임을 알아야 한다.박근령 씨는, 천신만고 끝에 대통령직에 올라 악전고투하고 있는 언니의 고뇌를 뚫어줄 작심아래 `소신발언`으로 포장된 억지 자살폭탄이라도 터트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고작 7.6%의 국민밖에 찬성하지 않는 엉뚱한 발언을 해놓고 “대부분의 한국 국민은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욱대긴 대목은 맹랑한 오류다. 하지만, 발언 행간에 숨은 우리의 찌든 `반일감정`에 대한 비판만큼은 되새겨볼 가치가 충분하다.광복 70주년.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 저 오만방자하고 고약한 나라를 좋은 이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감정을 잘 다스리고 냉철한 이성을 풀가동해야 한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은 광복절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혹여 우리 아이들은 광복절을 그저 `노는 날`로만 알고 자라나는 것은 아닌가.

2015-08-11

`여우와 두루미`의 밥상전쟁

▲ 안재휘 서울본부장같은 숲에 사는 여우가 친구인 두루미를 생일상에 초대한다. 여우네 집을 찾아온 두루미는 식탁 앞에서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긴 주둥이를 가진 두루미는 납작한 접시에 담긴 수프를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두루미 역시 자신의 생일에 여우를 초대한다. 여우 역시 쩔쩔 매는 형편에 이른다. 두루미가 호리병에다가 수프를 담아서 내놓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솝이야기 중 `여우와 두루미` 의 줄거리다. 정치권에 이따금씩 등장하던 국회의원 정수 조정 문제를 놓고 여야 정치권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비례대표의 수를 늘리느냐 줄이느냐,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느냐 마느냐가 핵심논란이다. 지난 4월 새정연 문재인 대표가 `400명`안(案)을 꺼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은데 이어, 7월 들어 혁신위원회가 `369명` 의견을 내놓았고, 이종걸 원내대표가 `390명` 견해를 보탰다.새누리당이 `국회의원 증원 불가` 여론 반향을 등에 업고 `증원론`을 공박하는 사이, 새정연이 증원 주장의 진짜 속내를 털어놓았다. 새정연은 다수결 승부를 통해 100% 권력을 장악하는 현 선거제도의 맹점을 개선하자며 `권역별 비례대표제`이슈를 꺼내들었다. 원칙론적 입장에서, 표의 등가성을 높이고 사표(死票)를 줄이기 위한 제도혁신 문제는 `지역대결 구도 타파`의제와 맞물려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하지만, 새정연의 의원정수 증원 견해는 결코 고상한 차원에서 나온 제안이 아니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종갑 입법조사관이 2012년 19대 총선결과를 토대로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을 해본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문재인 대표의 소신대로 `독일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방식을 대입할 때 새누리당의 의석수(172석)는 과반(185석)에 한참 미달하고, 새정연은 영남권에서 21석이 늘어나며(143석), 해산된 통진당은 원내교섭단체(20석)가 되는 등 여소야대(與小野大)로 뒤집히는 것으로 나온다.미국 출장 중이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역구 의원 수가 늘더라도 비례대표를 줄여서 지금의 300석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 당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맞불을 놓았다. 이에 대해 김상곤 새정연 혁신위원장은 “김 대표의 발언은 현재 기득권 구조를 고착화해 장기집권을 획책하기 위한 음모”라고 맹비판하고 나섰다. 꿍꿍이 계산서 숨겨놓고 명분발림만 하던 양 진영이 모름지기 다 까놓고 한 판을 벌일 기세인 것이다. 야당의 `비례대표 증원`견해가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우선 비례대표 제도가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이 먼저 입증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국회의 비례대표 역사는 초라하다. `비례대표` 순번이 공천장사의 `딱지`노릇을 해왔던 참괴한 기록은 생략하더라도,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이 차기 지역구 공천을 목표로 자행해온 온갖 눈꼴 신 행동들을 국민들은 낱낱이 기억한다.19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 52명 중 20대 총선 지역구 출마의사를 밝힌 의원은 75.0%인 39명이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마음이 콩밭에 가 있다 보니 국회 출석률마저 뚝 떨어졌다는 집계도 나돈다. 계층과 직군을 대변하고 전문성을 높인다는 취지는 사라지고, 소속정당의 저격수노릇을 하면서 주야장천 지역구나 노리는 지금까지의 다수 비례대표 의원들의 행태를 그냥 둔 채로 `확대`부터 논하는 것은 결코 혁신이 아니다.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는 상대방의 조건과 처지를 배려하지 않는 언행에 대한 경계(警戒)가 따끔하게 들어있는 명작이다. 현실을 무시한 채 상대방이 먹지 못할 밥상들을 차려놓고 `영양가`가 어쩌고 `맛`이 어쩌고 하는 최근의 정치논쟁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인터넷에 떠도는 우스개처럼, `빨대로 먹으면 되지 않느냐`, `접시를 들어 기울여서 먹으면 되지 않느냐`하는 궤변까지 수두룩 쏟아져 난장판이 될텐데…걱정이다.

2015-08-04

국회의원 수가 모자라서?

▲ 안재휘 서울본부장`묘두현령(猫頭懸鈴)` 또는 `묘항현령(猫項懸鈴)`이라는 속담이 있다.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라는 뜻인 이 속담의 문헌설화는 홍만종의 잡록 순오지(旬五志)에 나온다. 고양이의 공포를 견디다 못한 쥐들의 대책회의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달자”는 좋은 의견이 나와 모두 감탄하고 기뻐했다. 하지만, “누가 고양이 목에다 방울을 달 건가?”라는 물음에 아무도 나서는 쥐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줄거리다.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회가 정치개혁 방안의 하나로 `국회의원 정수 확대`안을 내놓았다. 새정연 혁신위 김상곤 위원장은 이와 관련, “지역구 의원 수 246명을 유지한 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제안한 `2대1(지역구 대 비례)`의 의석 비율을 적용하면 의원 정수가 369석이 돼야 하며, 현행 정수를 유지할 경우 지역구는 46명이 줄고 비례대표는 100명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의원세비 삭감 등을 통한 국회총예산 동결 변명을 덧댔지만 사족이다.새정연 이종걸 원내대표는 한 술 더 떴다. 이 원내대표는 “의원정수를 지역구 260명, 비례대표 130명 등 2대1의 비율로 확대 조정해 모두 390명으로 대폭 늘리자”고 주장했다. 그는 “혁신위의 안을 정치개혁을 주도할 첫 번째 아젠다로 낼 것”이라고 말했지만, 당내에서부터 시끌벅적 논쟁이 일고 있다.`국회의원 수를 늘리자`는 주장은 정치권에서 오랫동안 금기시돼온 의제임에도 새정치연합이 이처럼 용감하게 꺼내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붕당의 속성이 그러하듯, 새정연 혁신위가 국회의원 정수 확대 주장을 들고 나온 것은 노림수가 있어 보인다.일단 혁신을 빙자하여 선거제도를 자기 패거리에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로 읽힌다. 진보 인사들은 오래전부터 비례대표를 늘리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계산법을 갖고 있다.민주국가에서 국민은 국회의원들에게 `국회`라는 이름의 소중한 `정치` 공장을 맡긴 주주들이다. 국회의원들은 국민들이 십시일반 주머니를 털어 제공해준 세금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사용하여 국민들에게 가장 좋은 `정책`들을 생산해내면서 행정부의 `독주`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의무를 지닌다. 하지만 작금 대한민국 국회는 국민들을 만족시켜주는 `정치`공장이 결코 아니다. 거기 종사하는 국회의원들이 한 번도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생산성을 보여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국회의원들은 걸핏하면 잔업 미루고 불법파업에 태업을 일삼고, 틈틈이 사욕에 갇혀 온당치 못한 부조리나 탐하는 엉터리 종업원들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노동생산성 증대는 동일한 양의 노동을 투입하고도 생산량이나 부가가치 산출물을 더 많이 얻거나, 더 적은 양의 노동을 투입하여 동일한 산출물을 얻었을 때 비로소 입증된다.지금처럼 형편없는 생산성은 외면한 채 노동력과 투자를 늘려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낯 두꺼운 생떼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권 일각에서 뜬금없이 `국회의원 정수를 늘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선거구 조정`과 `분열 위기`앞에서 동패세력의 응집력을 높이려는 얕은 꾀로 의심받기 십상이다. 아마도 요즘 정치인들 사이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묘안을 모색하는 꿍꿍이들이 많은 것 같은데, 민심 고양이들의 예민한 감각까지 속여 넘길 묘책들이 정말 있을까.안심하고 방울을 달도록 목을 순순히 내줄 고양이들이 과연 있을까. 잘못하다간 고양이에게 콱 물릴 수도 있다. 국회의원 수(數)가 모자라서 우리 정치가 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동력과 투자를 늘렸을 때 비례하여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확신이 들도록 하기만 한다면, 500명인들 마다할 이유가 왜 있으랴. 그게 민심이다.

2015-07-28

`재량권`의 미학

▲ 안재휘 서울본부장임진왜란이 끝나가던 1597년 정유년에 왜(倭)는 조선을 다시 침범한다. 이때 왜군은 난공불락의 이순신 장군을 제거하기 위해 이중첩자를 동원해 적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대군을 이끌고 건너온다는 역정보를 흘린다. 잘못된 정보를 믿은 선조는 이순신에게 부산포로 출정하여 적장을 생포하라는 어명을 내린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정보임을 간파한 이순신은 끝내 명을 따르지 않는다. 선조는 이순신을 한양으로 압송해오도록 하여 `조정을 기망하고 임금을 업신여긴 죄`, 즉 기망조정 무군지죄(欺罔朝廷 無君之罪)를 비롯한 어마어마한 4가지 죄목을 덧씌워 극형에 처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순신은 우의정 정탁(鄭琢)의 적극적인 변호에 힘입어 가까스로 구명된다. 병법을 모르는 선조임금과 탁상공론에 빠진 조정 신하들이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는지를 알려주는 생생한 교훈이다.박근혜 대통령이 현기환 전 의원을 신임 정무수석에 임명하고, 새누리당이 새 원내지도부의 구도를 완성하는 등 `유승민 파문` 수습을 위한 후속조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단 박 대통령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호형호제`하는 막역한 사이인 현기환 전 의원에게 당-청 가교의 중책을 맡기면서, 그의 역할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여당 원내대표도 계파색이 옅은 원유철 전 정책위의장이 단일후보로 등록, `합의추대`가 사실상 확정되면서 새누리당의 난기류는 신속하게 안정돼갈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박 대통령이 현기환 정무수석에게 어떤 재량권을 얼마나 줄 것인지에 달려있다. 바람직한 정무기능이란 대통령의 의중을 당에 전달하여 관철시키는 일방통행의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재량권`이란 항용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미처 현안들을 다 챙겨볼 여유가 없을 때나, 전문성이 더욱 필요한 문제일 경우에 허용된다. 복잡다단한 정책들이 날마다 산적하는 현대정치에 있어서 재량권의 보장은 협치(協治)의 리더십, 즉 파트너십을 극대화시키는데 필수적인 요소다. 수많은 정치협상에서 이 재량권 문제는 왕왕 가장 큰 변수로 작동한다.민주주의는 정당의 대표들끼리 각자가 대변하는 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정책들을 꺼내놓고, 충분한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협상에 임하는 당사자가 상식을 벗어난 월권을 발동하여 협상을 망치는 경우가 있긴 하다. 그러나 쌍방의 정황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협상대표가 어렵사리 매듭지어온 결론이 퇴짜를 맞아 정국이 어그러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상대가 있는 협의에서 협상에 나서는 대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재량권이다. 당연히, 보다 많은 권한을 가진 쪽이 협상에서 우위에 설 확률이 높다.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협상대표와 왕성하게 소통하여 현장감을 공유하는 것은 필수적이다.우리 국회는 소위 `국회선진화법`이라는 희한한 족쇄에 발목이 잡혀 `다수결의 원칙`이 망가진 희귀한 의사당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취임 1주년 회견에서 `선진화법 개정` 의지를 강하게 피력한 것도 누적된 답답함의 발로일 것이다. 하지만, `선진화법`을 손대는 일이 결코 쉬워보이지는 않는다. “`선진화법` 때문에 `선진화법`은 절대 못 고친다”는 아이러니한 자탄마저 있다.새로 임명된 현기환 정무수석은 물론, 원유철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원내지도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집권세력 전체의 적극적인 파트너십일 것이다. 엄혹하던 군주시대에, 군사들의 생명을 지키고 전쟁을 이기기 위해 임금의 명을 어긴 이순신 장군을 어찌 그르다할 것인가.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장수에게 재량권을 주지 않고 탁상공론 끝에 무조건 진격하라고 명령을 내린, 선조임금과 조정 신하들을 어찌 옳다할 것인가. 역사에 소중한 힌트가 있다.

2015-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