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논란의 시발은 198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이듬해에 사용될 일본 초·중·고교 역사 교과서에서 한국의 고대사·근대사·현대사 등을 모두 왜곡 기술해 경악을 샀다. 특히 현대사 부분에서 한국 `침략`을 `진출`, 외교권 박탈을 `접수`, 조선어 말살정책을 `공용어 사용`, 신사참배 강요를 `신사참배 장려`등으로 호도했다. 그리고 2012년부터는 일본 고교 사회과 교과서 85종 총 39종에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싣기에 이르렀다.
역사교과서 논쟁은 주로 `사실` 여부와, `경중(輕重)` 판단, `견해`의 다양성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다투어진다. 교과서에 기술된 내용이 `사실`인가 아닌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기술했는가,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놓고 갑론을박이 오간다.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문제는 시비를 가리기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이념이 개입되기 시작하는 `경중` 판단에서부터 난해해지고, `견해`부분은 아예 타협의 여지가 없다. 결국 역사에 대한 `견해`를 놓고 곡직을 따지는 일은 허망하기 십상이다.
오랫동안 수면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던 한국사 교과서 개정 논란이 드디어 임계점을 넘어 정치권과 시민사회를 벌겋게 달아오르게 하고 있다. 그 어떤 이슈가 떠올라도 좌-우 이념대결의 천박한 정쟁으로 치닫는 고질적 습성 그대로, 이 문제 역시 삽시간에 사생결단 드잡이의 소재로 떠올랐다. 10년 진보정권 기간에 추진된 교과서 개편방향의 정당성이나 그 내용의 적절성 여부를 시시콜콜 따지는 일은 시간낭비일 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는 문제가 많다는 사실이다. 교과서를 `검인정` 체제로 바꾸는 과정에서의 그 하염없던 설전이 무참하도록, 학생들 앞에 놓인 한국사 교과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특히 `현대정치사`부분에 담긴 `경중`판단과 `견해`들은 구석구석 섣부르다. 필경 정권을 거머쥔 현실권력이 직접 개입했거나 해바라기들이 의도를 갖고 욱대겨냈을 허술한 구석이 적잖이 감지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사책에 기성세대들의 외눈박이 `견해`가 과도하게 투영되는 것은 명백한 오류다. 검인정 교과서 체제로 전환되면서 벌어진 사달의 요체는 성마른 학자들이 `편견`일 개연성이 높은 해석을 끈덕지게 담으려고 했다는 점이다. 부적합성이 충분히 지적됐고, 바로잡아야 될 명분 또한 켜켜이 축적된 것은 주지의 사실 아니던가. 절대로 손대서는 안 될 완벽한 교과서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인정한다면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해야 한다. `현대정치사`가 역사 교과서에 적극적으로 기술되는 것은 위험하다는 주장에 백번 공감한다. 특히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들이 아직 살아있고, 엇갈리는 `견해`가 상존하는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함부로 `해석`을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다. 중요도가 제아무리 높다고 해도 `해석`은 후대에게 남기고 일단 `사실`만 정리해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치권에 급속하게 번지고 있는 `국사 교과서` 논쟁은 그 방향에서부터 잘못돼 있다. `국정`이냐, `검인정`이냐 하는 형식 문제부터 대척점에 세워놓고 갈등을 확대하고 적대감을 키우는 것은 무망한 소모전이다. 양 쪽으로 편갈라 벌이는 이 험악한 청백전은 백해무익한 굿판이다. 문제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부실한 내용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를 다투는 것이 순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역사`를 고치고 `국사 교과서`를 바꾸는 나라가 어찌 정상적인 나라일 것인가. 역사 교과서에 담긴 `사실`이나 `경중` 판단이 아닌, `견해`에 대한 다툼은 결단코 `정답`을 도출할 수 없다. 명명백백한 역사적 `사실`마저도 뻔뻔스럽게 왜곡해대는 저 후안무치한 일본 앞에서, 우리가 이렇게 추한 모습으로 `국사(國史)`를 놓고 자꾸만 쌈박질을 해서 어쩌자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