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의 `점진적 개혁이론`은 사회발전에 대한 대표적인 보수주의 이론으로 유명하다. 포퍼는 “플라톤이나 마르크스의 `궁극적 설명`은 무서운 도그마(독단) 또는 전체주의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통한 점진적 개혁`으로 가야 한다”고 명쾌하게 설파했다. 그의 이론은, `사회변화`는 함부로 실험해서는 안 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시행착오 수정을 통한 점진적인 진화가 바람직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혁명과 개혁을 구분하는 설명 가운데, 미식축구 전술용어 `패스 플레이(Pass play)`와 `러닝 플레이(Running play)` 비유만큼 절묘한 것은 없다. 패스 플레이(혁명)는 쿼터백이 전방 자기편 선수에게 길게 패스하여 공격하는 방법이다. 한 번에 많은 거리를 전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성공할 확률이 적고 역습의 위험이 높다. 반면, 러닝 플레이(개혁)는 러닝백에게 패스를 해 상대진영으로 뛰는 방식이다. 한 번에 긴 거리를 가기는 어렵지만, 공격 실패의 위험성이 적다.
박근혜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25일)을 앞두고 연일 경제 활성화와 노동·공공·교육·금융 등 4대 부문 개혁을 위한 내치(內治)강화에 정책중심을 싣고 있다. 지난 6일의 `대국민 담화`에 이어 광복 70주년 메시지를 통해 개혁의지를 다시 한 번 강하게 피력했다. 박 대통령은 “반드시 `4대 개혁`을 완수해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희망의 대한민국을 물려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지난했던 전반기 국정운영의 온갖 혼돈을 떨쳐내고 비로소 박근혜정부가 본궤도를 찾아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모양새다.
박근혜정부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내건 `4대 부문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뛰어넘어야 할 고비는 국민들로부터의 불신이다. 얼마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내놓은 `한눈에 보는 정부 2015` 보고서에서 한국 국민의 정부신뢰도가 34%로 발표된 것은 비보(悲報)다. 2007년보다는 10%포인트 올랐지만 OECD 평균 41.8%에 크게 못 미치면서, 조사 대상 41개 국가 중 겨우 26위였다.
전문가들은 4대 개혁 각 분야의 개혁이 상호연계 추진돼야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것이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세부 과제별로 이행 로드맵을 마련하고,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치와 실행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고도 주문한다. 각 분야별 사업 추진체계의 역할·권한·책임을 명확히 하는 한편, 구조개혁 추진 주체 간 상호 협력체계를 확보해야 한다는 충고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연일 `희생과 양보`를 호소하며 개혁의 절박함을 토로하지만 이것만으로 효과를 거두는 데는 한계가 있다. 특히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호소`차원을 넘어서는 더 큰 해법이 요구된다. 스타플레이어의 존재가 요긴한 `패스 플레이`와 달리 `러닝 플레이`는 팀워크가 가장 중요한 전술이다. 모든 장애요소를 극복하고 개혁의 문을 여는 `마스터키(Master key)`는 다름 아닌 `소통`에 있다. 대통령이 직접 쌍방향 소통에 나서야 한다.
집권 이래 줄곧 지적받고 있는 대통령의 `불통`이미지를 혁신하는 것이 4대 개혁을 성공하는 가장 확실한 해법이 되고 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아이러니다. 보이게, 또는 보이지 않게 대통령과 국민들이 소통하고 있다는 평가가 정치권과 저잣거리 각계각층에 나돌아야 한다. `개혁(Reform)`이란 용어가 혁명 세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안으로서 탄생됐지만, 그 과정이 훨씬 더 어렵다는 역사적 교훈은 아직 유효하다. 단언컨대, 만약 박근혜정부가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고 `4대 부문 개혁`에 올인하여 성취하기만 한다면, 역대 어느 정부 못지않은 `성공한 정부`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