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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스 라인(Police Line)

등록일 2015-12-01 02:01 게재일 2015-12-0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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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서울본부장
▲ 안재휘 서울본부장

“폭력시위를 막기 위해서는 복면을 한 채 폴리스 라인(Police Line)을 넘는 행위를 엄단해야 합니다. 모자와 마스크를 끼는 행위가 익명의 만용을 부추겨 과격행동을 유발한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신분노출을 피해야 하는 시위자들도 있습니다. 이러다가 `마스크착용 금지법`까지 나와서 무고한 행인들 마구 잡아들이는 것 아닙니까? 황사 때문에 마스크를 끼었다고도 하잖아요.”

폭력시위 이슈를 다루는 TV방송 심야 토론프로그램을 보고 듣자니 억장이 막힌다. 제 아무리 반대를 위한 교졸한 궤변이 활개 치는 세상이 됐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싶다. 전직 의경의 고발영상을 비롯해서 `세상을 뒤엎자`며 서울 도심을 난장판으로 만든 시위현장을 온 국민이 생생하게 목격한 끝이다. 그런데도 쇠몽둥이 폭력시위를 두둔하는, 저질 코미디만도 못한 괴상한 발언들이 여전히 넘쳐난다. 도대체 폭력시위 영상을 본 어느 국민이, 경찰을 향해 마구잡이로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경찰버스를 밧줄로 묶어 끌고 다니며 때려 부수는 과격 시위자들의 복면착용을 `황사 때문`이라고 양해할 것인가. 스스로를 `아버지`라고 외치며 경찰버스 위로 몰린 의경들을 향해 마구잡이 돌팔매질을 하고, 그도 모자라 사다리 끝으로 찔러댄 행위를 어느 누가 `부정(父情)의 발로`라고 인정해줄 것인가.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복면시위 금지`관련 집시법(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놓고 정치권이 시끌시끌하다. 입법을 반대하는 야당의 주장은 국민기본권 침해 우려에 맞닿아 있다. 그러나 야당의 논박에도 포퓰리즘적 궤변과 엉터리 희화농락이 여지없이 끼어든다. 새정연 유승희 최고위원은 소설가 이외수의 상상언어를 차용해 `복면시위 금지법`을 `복면가왕 폐지법`이라며 비아냥거린다.

지난달 14일 서울 도심을 마비시켰던 시위에서 증거가 확보된 폭력시위대 594명 중 93%가 마스크와 두건, 물안경 등으로 얼굴을 가렸던 것으로 집계됐다. 채증자료 분석결과 441명(74%)은 복면으로 얼굴을 숨겨 신원을 확인할 수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판에 야권이 `복면시위 금지법`을 온 국민의 일상생활을 제한하는 `복면금지법`으로 몰아가는 것은 국민들의 이성을 모독하는 저질 선동이다.

폭력시위를 두둔하는 인사들의 변론은 “오죽하면 폭력을 동원하겠느냐”는 하소연을 동원한다. 어쩌다가 세상을 `을(乙)`로 살아야 하는 민중들이 처하기 십상인 억울함이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들의 주장이 아무리 일리가 있다해도 의사표출 행동은 법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미국처럼 청와대 앞에서도 자유롭게 시위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하면 된다는 강변도 있다. 하지만, 수천수만 명의 시위대가 복면에 쇠파이프를 든 과격분자들을 앞세워 백악관 앞으로 몰려갔다는 뉴스를 들어본 적 있는가. 백악관 근처에서 `폴리스 라인`을 넘어서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과격 시위대에 미국경찰이 수백 명씩 부상을 입었다는 기사를 본 적은 또 있는가.

시위의 자유는 절대적 자유가 아니다. 실정법상 `폴리스 라인`을 넘는 자는 무조건 범법자로 분류돼야 한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3조1항(질서유지선의 설정)와 벌칙 제24조에는 `폴리스 라인`에 대한 엄격한 규정이 있다. 복면을 하고, 무기류를 들고 `폴리스 라인`을 넘은 자에게는 가혹한 가중처벌이 내려지는 것이 맞다. 그 엄정함이야말로, 국가의 으뜸 존재이유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근절해야 할 관행들이 있다. 이렇게 무질서한 선진국은 지구상에 있지 않다. 평화시위를 철저하게 실천하는 국민만이 `시위의 자유`를 말할 자격이 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담배꽁초가 나뒹구는 거리에서, 무자비한 폭력시위 현장을 목격하고는 이 나라가 `후진국`임을 확신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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