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국회출입기자들의 E-메일과 휴대폰 문자 통은 불이 난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국정감사장에서 질문할 내용들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제보들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비판`이 제1의 존재이유인 기자들의 입장에서는 정보를 입수하는데 훨씬 더 유리한 국회의원들이 만들어내는 기삿거리가 반갑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때로는 정부의 반론권 보장이 부실할 수밖에 없는 자료에 꺼림칙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정말 심각한 문제는 국정감사 현장에서 나타난다. `3권 분립`을 통해 권력의 균형을 추구하는 민주국가에서 국회의원이 행정부에 대해 엄격한 감시를 들이대는 일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지는 질문-답변의 형식을 보면, 비정상적인 행태가 적지 않다. 국회의원들은 `갑질`재미에 빠져 우쭐해지고, 피감기관들은 시쳇말로 `쫄`수 밖에 없는 판이지만, 납득 안 되는 장면이 많다.
정치인들은 국정감사든 청문회든 질문자석에 앉기만 하면 누구나 `원맨쇼`에 몰두한다. 더욱이 TV생방송이나 녹화가 진행될 경우, 카메라가 돌아가는 단 1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제 말`만 늘어놓는다. 때로는 다짜고짜 호통부터 치고, 피감자가 답변을 하려고 하면 “이따가 대답하라”면서 묵살한다. 결국 샅바싸움까지 해가면서 가까스로 불러놓은 증인들마저도 변명도 해명도 못해보고 애먼 `꾸지람(?)`만 듣다가 일어서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여당 의원들은 야당 측 발언이 적절치 못하다며 타박하고, 야당 의원들은 여당 측이 터무니없이 역성을 든다며 볼멘소리를 내놓는다. 때로는 삿대질 욕설이 오가기도 한다. 16년간 사라졌던 국감제도가 부활된 지 27년이 지났는데도 풍경은 좀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 해마다 똑같은 `무용론(無用論)`이 폭포처럼 쏟아져도 요지부동이다. 왜 그럴까? 힘센 권력가, 돈 많은 재벌 잔뜩 불러 망신을 주려고 혈안이 되는 그 이해관계를 다 알 수는 없지만, 국감을 통해서 한번 붕 떠보려는 심사는 여야를 막론하고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 뿌리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청문회스타` `국감스타`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얻어 권력을 폭발적으로 확대재생산한 정치인들에 대한 선망이다. 청문회나, 국감 판이 열리면 뭇 정치인들은 마치 마약에 취한 것처럼 `한탕주의`에 젖어 돌변하곤 한다.
얼마 전 열린 기획재정부 국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연출됐다. 야당 위원들은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향해 작심한 듯 인신공격까지 섞어가며 비판을 쏟아냈다. 3선의원에다가 장관직만 벌써 두 번째로서 평소에도 좀처럼 소신발언을 굽히지 않는 강골 최 부총리는 야당의 `원맨쇼` 행태를 그냥 넘기지 않았다. 7분 질문시간 중 6분 53초 동안을 쪼아대던 새정연 홍종학 의원이 답변을 하라고 하자 “7초 만엔 답변을 할 수가 없다. 답변하지 않겠다”고 되받아쳤다.
두 시간여의 정회 끝에 기재위는 위원들에게 7분을 모두 질의에 쓸 수 있게 하고 답변은 시간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충분히 질문할 시간이 확보되자 야당 의원들부터 목소리를 낮춰 정책질의를 시작했고, 최 부총리와 기재부 관계자들도 만족스러워했다. 바쁜 증인·기관장들을 불러놓고도 `10초 답변``7초 사과`만 듣기 일쑤였던 불량국감 문화가 달라지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올해도 여지없이 `망신주기`·`면죄부 주기`식 국감행태가 지속되고 있다. 국정감사권의 성격은 고유권한을 효과적으로 행사하기 위한 보조적 권한이라는 것이 정론이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에게 `수퍼 갑(甲)질`이나 하라고 열어주는 저질 굿판이 결코 아니다. `제 말`만하고 `호통`이나 치는 국회를 끝내고, `듣고 또 들음`으로써 나라발전의 지혜를 찾아나가는 국회로 가야 한다. 그래야만 `저질 국감` 오명을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