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정쟁(政爭)의 `품격`

등록일 2015-11-03 02:01 게재일 2015-11-03 19면
스크랩버튼
▲ 안재휘 서울본부장
▲ 안재휘 서울본부장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한때 여성의 참정권을 극력 반대했다. 영국 의회사상 첫 여성의원이 된 낸시 에스터(Nancy Aster)는 참다 못해 처칠에게 막말을 퍼붓는다. “당신이 만일 내 남편이라면 당신의 커피 잔에 독을 넣고 말겠어요.” 그러나 처칠은 태연하게 맞받아친다. “그래요. 만일 당신이 내 아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 커피를 마셔버리겠소.” 처칠의 한 마디에 좌중은 폭소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정쟁의 도마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펼치고 있는 정치권에는 어김없이 `막말 배틀(Battle)`이 벌어지고 있다. 친박좌장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서청원 최고위원은 새정연을 향해 “야당이 화적떼는 아니지 않는가”라고 힐난했다. 새정연 이종걸 원내대표는 서 최고위원 등을 지칭해 “친박이 아닌 친박 실성파”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새정연 문재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는 `국정교과서가 집필도 안 됐는데 무슨 친일 독재 미화냐`라고 말한다”며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가”라고 금기시된 용어를 동원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야당의 반대는)적화통일이 될 때를 대비해 어린이들에게 미리 그런 교육을 시키겠다는 불순한 의도”라며 막말 퍼레이드 화염에 기름을 부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일부 의원은 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기 전에 두뇌 정상화가 정말로 시급해 보인다”고 비아냥댔다. 막말정치인 반열의 단골손님인 새정연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행 국사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검정 책임을 거론하며 “대통령과 교육부 장관은 명백한 종북 빨갱이로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처벌돼야 한다”고 어깃장을 놓았다.

정치권의 저급한 언어문화에 대해 제아무리 여러 사람이 떠들고 지적해도 그들의 막가파식 습성은 변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그럴까? 많은 전문가들은 습관적으로 상소리를 해대는 정치인들의 행위를 `노이즈 마케팅`으로 해석한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적 위상이 떨어지거나 지지율이 처질 때 어김없이 나서서 저질 마케팅에 나선다는 것이다.

한 나라의 정치수준은 그 국민의 수준을 넘지 못한다는 말이 `진실`이라면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의 자화상은 참 씁쓸하다. 정치인들이 시시때때로 상대방을 향해 욕지거리를 퍼부어야 위상을 유지하는 나라. 유권자의 존재가치를 한껏 업신여기는 정치인들의 그런 음험한 속셈에 무력하게 반응하며 번번이 권력을 상납하는 국민들의 수준이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작금 여야 정치인들이 쏟아놓는 험담에는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진심`도, 공감을 폭발시키는 촌철살인의 `재치`도 없다. 그 살벌한 언어 속에는 상대방을 악랄하게 자극하고, 자파 지지자들을 광분시키고자 하는 유치한 욕심만 가득하다. 상대방의 흥분과 역공에 대한 계산조차 안 보인다. 그야말로 아무런 비전이 없는 허망한 제로섬(Zero-sum) 게임인 것이다.

험악한 단어를 찾아 상대방을 모욕할 궁리에나 빠진 정치권의 `막말 전투`를 근본적으로 단절할 힘은 오롯이 유권자들만이 갖고 있다. 정치인들의 험구는 국민들을 향한 못된 악다구니에 다름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선거 때만 되면 그들의 감언이설에 깜박 넘어가 권력의 꽃다발을 덥석 안겨주는 어리석음을 지속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정치에도 윈스턴 처칠이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이 그랬던 것처럼, 품격 있는 유머정치가 펼쳐질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링컨은 미국 상원의원 후보 자리를 두고 대결할 때 정적 스티븐 더글라스(Stephen Douglas)로부터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는 맹렬한 인신공격을 당했다. 링컨의 대응은 침착했다. “만일 제게 또 다른 (잘 생긴)얼굴이 있다면 이 (못난)얼굴을 드러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청중은 폭소했고 상대방은 초토화됐다.

안재휘 정치시평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