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농 간에 나타나고 있는 경제력의 현저한 차이나 인구격차는 아직도 해소되지 않고 있어, 지역이익이 대표되어야 할 이유는 여전히 있다.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은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된 현 시점에서도 투표가치의 평등 못지않게 여전히 중요하다.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일원화되어 있는 의회에서 지역이익도 함께 대표될 수 있어야 하므로 국회의원 선출시 지역대표성을 감안한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 지난 해 10월 30일 헌법재판소의 사건번호 2012헌마190 판결문에 적시된 박한철·이정미·서기석 재판관의 소수 반대의견 요지다. 헌재는 이 재판에서 `인구편차의 허용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해야 한다`는 견해를 다수의견으로 도출, 현행 선거법상 인구편차가 1/3을 넘어서는 경우를 `위헌`으로 판시해 큰 충격을 던졌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도시지역은 인구가 늘고, 농어촌지역은 격감하는 시대에, 그렇잖아도 피폐해지고 있는 지역정치권에 먹구름이 덮친 판결이었다. 선거구 획정안 제출 법정시한을 며칠 앞두고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막판 고심에 빠졌다. 이해당사자인 일부 농어촌지역 여야 국회의원들이 `집단 농성`을 벌이는 등 정치권도 시끌시끌하다. 이른바 선거구 간 `인구등가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헌재의 판단과 지역균형발전의 가치를 위해 `지역대표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명분이 충돌하면서 논란이 극에 달하고 있는 것이다. 국회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애타는 농어촌지역의 국회의원들은 “국회정문 앞에서 의원 25명, 지역민 2천여 명이 참여하는 `농어촌 지방선거구 사수`상경집회를 연다”는 급보까지 돌리고 있다. 자기 이해관계에 함몰돼 사는 국회의원들의 냉정하고 옹졸한 활동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농어촌선거구 축소` 국면에 대응하는 모습은 중대한 패착을 드러내고 있다. 급격한 도시화 현상으로 날이 갈수록 불리한 환경에 빠져들고 있는 낙후지역을 균형 있게 발전시킬 책임은 전적으로 국가에 있다. 잘라 말해서, 대한민국의 발전은 `참다운 지역균형발전`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역이 발전해야 나라가 발전한다`는 명제는 지역이기주의의 벽을 훨씬 뛰어넘는다. 지역이 고루 잘 사는 나라를 건설하는 일이야말로 선진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핵심 전략요소다. `인구등가성`의 가치만을 중심에 세워놓고 `위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온전치 못한 `협애한 논리`라는 전문가들의 비판에는 공감할 바가 많다. 그러나 정말 한심한 것은 이 과제를 다루고 있는 정치인들의 대응자세다. 발등에 불 떨어진 몇몇을 빼고는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만 하고 있는 다수의 국회의원들의 태도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문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지역의 정치적 힘이 더욱 커지는 반면, 농어촌지역의 정치적 입지가 쪼그라드는 심각한 사태다.
농어촌 출신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위기감을 느껴야 할 중대사안임에도 발바닥 뜨겁고 코 시린 몇몇 사람들만, 그것도 헌재결정 1년이 다 되도록 미적거리다가 뒤늦게 나서서 동동거리는 `늑장`대응 모습은 딱하기 그지없다.
`도농 간의 현저한 격차`, `지방자치 시대의 지역대표성 가치`, `단원제의 한계` 등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뭔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1년 전 헌법재판소 일부 재판관들의 소수의견 속에 해결논리가 암시돼 있다.
곪아터질 때가 돼서야 허둥지둥 `벼락공부`하듯 나서는 선량들의 이 모양새를 어찌 해석해야 할까. 나랏일을 하라고 뽑아놓은 대다수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 아니라고 뚝 떨어져서 멀거니 바라보기만 하는 이 노릇을 국민들은 또 어떻게 읽을까. `입법활동`을 통해서 올바른 나라발전 방안을 마련하라고 선출한 국회의원들이 주저앉은 초라한 농성장 풍경이 애처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