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토사민팽(兎死民烹)` 읽기

▲ 안재휘 논설위원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로이 J. 레위키(Roy J. Lewicki) 등 전문가 5명의 공저 `최고의 협상`은 투쟁적 협상상황에서 갈등을 줄일 수 있는 전략을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첫째 적대감 완화, 둘째 소통강화, 셋째 쟁점의 수와 규모 축소, 넷째 합의근거를 찾기 위한 공통점 확립, 다섯째 바람직한 옵션과 대안 강화 등이다. 사시사철 멱살잡이에 빠져 생산성 빵점짜리 국회운영을 탐닉해온 우리 정치권의 행태에 비쳐보면 한숨이 나올 덕목이다. 정치권은 각 정당이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는 등 뜻밖이었던 4·13총선 결과의 충격에서 급속도로 벗어나고 있다. 3당 체제 구축이라는 상황이 강제한 측면이 없지 않지만 정치권을 관통하고 있는 으뜸 화두는 `협치(협력정치)`다. 오랜 세월 투쟁적 협상에만 몰두하던 우리 정치권이 과연 모범적인 협치를 수월하게 이뤄낼 것인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린다.총선 이후 새누리당은 정진석 당선자를 새 원내대표로 선출했다. 정 원내대표는 선출과정에서 당·청관계의 재정립을 선제적으로 강조했으나, 친박의 전폭적인 지지를 업었다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의구심을 아주 털어내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4·13총선 직후 석고대죄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새누리당의 모습에서 선연한 반성의 이미지를 인식하지는 못한다. 새누리당의 계파전쟁은 불안정한 휴화산으로 비쳐진다.원내 1당 등극이라는 뜻밖의 선거결과에 달뜬 더불어민주당은 예상대로 주류들이 신속히 `친노본색`을 드러내면서 김종인 대표를 몰아내려는 이른바 `토사김팽(兎死金烹)` 폭풍을 겪었다. 몇 달 더 대표직에 머무르게 하는 것으로 어물쩍 타협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문재인 원톱`체제 구축이 끝난 분위기다. 김종인 대표가 누차 부르짖던 `운동권 행태 청산`도 진작 물 건너간 것으로 읽힌다.총선에서 의외의 짭짤한 성과를 거둔 국민의당은 오너 격인 안철수 공동대표의 구설수를 중심으로 지지도 폭락이라는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호남 석권을 바탕삼아 3당의 입지를 확보한 국민의당은 그게 아니어도 정체성에 대한 불안정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형편이다. “교육부를 없애버리자”거나 양적완화와 관련한 박근혜 대통령 폄훼발언 등 예상을 벗어나는 안철수 대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어이가 없다.국민들은 지난달 선거전에서 각 정당과 정치인들이 내놓은 약속들을 낱낱이 기억한다. 추악한 계파다툼으로 선거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가 여론의 뭇매에 무릎을 꿇던 새누리당의 읍소, `친노 패권주의 청산`이라는 카드로 과감한 혁신을 약속하며 국민들을 한사코 꼬드기던 더불어민주당의 변신술을 기억한다. 호남 민심을 파고들며 `새 정치`의 가능성을 맹약했던 국민의당의 호소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뒤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국민들의 온갖 기억을 허무하게 한다. 계파갈등 추태를 뼛속깊이 반성한다던 새누리당의 처신에 대오각성의 징후는 흐릿하다. 당내 패권주의를 청산하고 합리적 진보로의 정책지향점 변경을 선언했던 더불어민주당의 최근 흐름은 뻔뻔하기만 하다. 이념적 좌표조차 오락가락하는 국민의당을 이끌고 있는 안철수 대표의 정치행태에 `새 정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마치 사기를 당한 듯한 기분에 빠져드는 국민들이 늘고 있다. 정치권이 `선거가 끝나면 표심을 뭉개버리는` 토사민팽(兎死民烹) 관행에서 벗어났다는 징조는 없다. 정치꾼들은 아마도, 국민들이 조만간 자기들의 추태들을 깡그리 망각할 것이라고 믿고 있음이 분명하다. 정치권은 과연 원만한 협치의 틀을 만들어낼 것인가. 새로 뽑힌 3당 원내대표들은 진정한 협치의 본질이 `양보(讓步)`에 있다는 진리를 절절히 깨닫고 있기는 할까. 정치권이 적대감을 일소하고 왕성한 소통을 펼치는 `최고의 협상`으로 국민들의 피폐한 삶을 개선시켜 주길 거듭 소망한다.

2016-05-10

TK정치 `제3의 길` 주도해야

▲ 안재휘 논설위원토니 블레어 전 영국총리는 1998년 3월 프랑스 하원 연설에서 `제3의 길(The Third Way)`이라는 개념을 언급해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 새로운 이념 모델은 블레어의 정책 브레인인 앤서니 기든스가 자신의 저서 `좌우를 넘어서`에서 처음 제시했다. `제3의 길`은 전후 세계정치를 주도해왔던 전통적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극복하자는 `실용주의적 좌파노선`으로서 1960년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래 정치적 상상력을 가장 많이 자극해온 소중한 깨우침이다. 지난 4·13총선을 통해 유권자들이 갈라 준 한국의 정치지도는 지금까지의 정치적 사고방식(思考方式)의 혁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뉘앙스가 일치하지는 않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대로 `3당 체제`를 엄명한 민심의 저변에는 오랫동안 극한대결을 추동해온 양당제도에 대한 반성이 오롯이 존재한다. 그동안 숱한 질타에도 불구하고 철옹성처럼 지켜온 정치인들의 고질적 구태들을 완전히 바꾸라는 마지막 경고인 것이다.선거결과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두 명(이정현·정운천) 당선되고, 보수의 핵 대구에서 더불어민주당 후보(김부겸)와 진보성향 무소속 후보(홍의락)가 당선된 것은 결코 가벼이 여길 사변(事變)이 아니다. 양쪽에서 두 명씩, 네 사람의 당선에는 숫자의 많고 적음을 훌쩍 뛰어넘는 시대적 상징이 깃들어 있다. 이제야말로 동서로 나뉘어 이성을 꽁꽁 묶어둔 채 지속해온 찬성을 위한 찬성, 반대를 위한 반대의 아귀다툼으로부터 놓여나야 한다.정치인들은 이제 다수의 힘으로 승자독식(勝者獨食)의 미개한 권력을 휘두르려는 의도 자체를 싹 버려야 한다. 국민들은, 정책에 따라서 과감하게 양보하고 배려하는 정치를 펼치지 않는 정치세력에게는 즉각 등을 돌리겠다는 사인을 보냈다. 국민들은 이제 제아무리 뜻이 좋은 일이라도 `죽어라 싸우다가 혼자 마음대로`하는 정치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내린 셈이다.TK정치의 딜레마는 오랫동안 한 정당에만 지속해온 짝사랑의 관성에서 비롯된 혼란 언저리에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TK유권자들의 전폭적 지지는 정치인 `박근혜`를 대통령까지 올려준 원동력이다. 그러나 그 무조건적 지지는 결국 `친박·진박` 정치 인사들을 온통 오만방자의 늪에 빠트린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병폐로 작동하고 말았다. `친박`의 이름으로 추구하는 정치행위가 급격히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마당에 TK정치는 시대정신을 충실히 반영하고, 선진정치를 열어가기 위한 파격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됐다. TK정치인들은 패거리정치에 길들여진 구닥다리 행동양식부터 깨끗이 털어내야 한다. 목전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근시안적 행태를 지속해왔던 관성으로부터 아주 벗어나야 한다.TK정치는 이제 국민들이 원하는 `제3의 길`을 찾아내어 이 나라 정치의 중심역할을 계승해야 한다. 더 이상 `꼴통보수`라는 명예롭지 못한 비아냥에 애써 귀 닫은 채 `묻지마 지지`의 덫에 발목을 내주어서는 안 된다. 상식과 합리적 판단의 근거가 좀 더 폭넓게 공유될 수 있도록 자유로운 담론들이 지역사회에 출렁거리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의 아니게 굳어온 몹쓸 선입관과 고정관념들부터 말끔하게 깎아내는 일이 필요하다. TK정치는 보수정치세력의 진화를 위한 통 큰 `빅 텐트` 설치에 앞장서야 한다. 과거의 쓰레기통 엎어놓고 지나간 잘잘못만 시시콜콜 따지는 행태, 국민의 생사를 좌우할 수도 있는 정책과 법안들을 놓고 바꿔먹기에만 열중하는 정치협잡을 쓸어내야 한다. 생산성 빵점짜리 세금낭비의 상징으로 허풍허세만 탐닉하는 저질국회를 혁신해내야 한다.혹시나 지난 2009년 대구시와 광주시가 `달구벌`과 `빛고을`두 도시의 옛 이름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달빛동맹`에 꽉 막힌 정국을 뚫어낼 강력한 힌트가 있는 것은 아닐까.

2016-05-03

`차악(次惡)`들의 민심 농락

▲ 안재휘 논설위원4·13총선 결과를 `새누리당 참패`로 읽는 것은 백번 옳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압승`으로 읽는 것은 숫자의 환상에 빠진 오독(誤讀)이다. 20대 국회의원선거는 썩은 음식재료만 진열해놓은 악덕 식품가게의 독점 바겐세일이었다. 가게에 들어간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신선한 재료를 발견할 수 없었다. 재료를 꼭 사야할 형편인 사람들은 가장 나쁜 물건을 버리는 일에 주력해야만 했다. 밖에서 가게를 들여다보다가 살 만한 상품이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아예 문을 열지 않았다. 아주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지만, 선거가 끝난 다음 벌어지는 현상은 참으로 가관이다. 자중지란에 빠졌다가 민심으로부터 몽둥이뜸질을 당한 새누리당은 벌을 서는 상황에서도 눈알 굴리며 서로 옆구리 찌르고 정강이 걷어찰 궁리에 골몰하고 있다. 민초들을, 금세 다 잊어버리고 자기들 호각소리대로 따라 움직이는 들쥐처럼 여겨온 그들의 뇌리엔 미구에 세간의 원성이 아주 사라지리라는 어림수가 차지한 꼴이다. 마땅한 선택지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뽑아준 유권자들의 고뇌를 벌써 망각한 것인가.더불어민주당은 빌려 쓴 칼잡이의 토사구팽(兎死狗烹) 문제를 놓고 신경전이 한창이다. 더민주당은 `경제민주화`라는 화려한 깃발을 든 우익 개혁용병 김종인을 데려다가 칼자루 들려주어 국민들을 홀리는데 성공했다. 총선결과로 드러난`제1당`이라는 풍성한 소출을 보자마자 친노(親 노무현)·친문(親 문재인)으로 통칭되는 대주주가 김종인의 지휘봉을 빼앗자고 바짝 나선 상황이다. `패권주의 청산` 약속을 믿고 표를 준 지지자들은 철저히 농락당한 바보신세가 될 처지에 놓여 있다.양대 정당의 케케묵은 `카르텔정치`에 신물이 난 많은 유권자들은 제3당의 역할에 희망을 걸고 국민의당을 밀었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창당 초기 세력확대를 위해 받아들인 운동권출신 인사들의 돌출행태로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다. 새 정치의 실현을 믿었던 유권자들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 적폐타파 청문회`를 부르대는 천정배 공동대표의 낡은 정치공세에 경악한다. 세간의 관심은 여전히 청와대에 쏠려 있다. 총선참패 성적표를 받아들고도 변화된 모습을 시원하게 보여주지 못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여론은 좀처럼 호의적이지 않다. 3년 만에 이뤄지는 중앙언론사 편집·보도국장들과의 만남이 실패로 판명된 통치스타일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특별한 목적 없이 만나는 허심탄회한 `소통 행보`를 비능률로만 인식해온 박 대통령의 불통 고질병이 이번에는 정말 개선될 것인지가 관심사다.꽉 막힌 정치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때로 발칙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벌써부터 정치권 뒷마당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새누리당 탈당`과 `연립정부 수립` 같은 묘방(妙方)들이 회자된다. 제3당으로서 입지를 굳힌 국민의당 내부에서도 `연립정부`이야기가 불거져 나온다. 아직은 소설 같은 이야기이지만 `영남` 기반의 새누리당과 `호남` 기반의 국민의당이 각자의 정당구조를 유지하면서 연정을 통해 활로를 여는 것이 지역대결 구도를 깨는 새로운 창조정치의 단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최선(最善)`도 없고 `차선(次善)`도 못 찾아서 하는 수 없이 찍어준 `차악(次惡)`들이 드러내기 시작한 어지빠른 오만방자 행태들이 또 다시 정치환멸을 보태고 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엎드리고, “새 정치 펼치겠습니다” 손가락 걸고, “패권정치 안 하겠습니다” 철석같이 약속한지 고작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부터 구태(舊態)를 드러내는 것인가. 20대 총선 당선자들은 이 설익은 나르시시즘(Narcissism·자아도취)의 미몽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을 조금이라도 존중한다면 옷깃을 여미고 반성하는 시간을 더 지속하는 것이 맞다. 유권자들의 귀에는 아직, 절박했던 그 다짐들이 생생하다.

2016-04-26

`뺄셈정치`의 저주

▲ 안재휘 논설위원노론당파의 옹위를 받아 왕좌에 오른 영조(英祖)는 집권초기 탄생의 비밀과 이복형인 선왕 경종의 급서(急逝)에 연루됐다는 풍설에 끊임없이 시달렸다. 그런데 등극 3년차인 1727년 영조는 우군인 노론을 전격 실각시키고 소론을 전면에 등용하는 정미환국(丁未換局)을 단행해 판을 완전히 뒤엎었다. 소론과 남인세력 일부가 함께 일으킨 이듬해 무신봉기(일명 `이인좌의 난`)때도 영조는 노론이 아닌 소론당파 장수들을 토벌군 지휘부에 임명하는 `신(神)의 한 수`를 구사해 길이 남을`탕평`역사의 기반을 다졌다.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난 20대 총선 직후 진행된 리얼미터의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전주보다 8.1%p 하락한 31.5%로 나타나 취임 이후 최저점을 찍었다. 새누리당의 지지율 역시 전주대비 7.3%p 폭락한 27.5%를 기록해 30.4%를 나타낸 더불어민주당에게 1위 자리마저 내줬다. 국민의당 지지도 역시 23.9%로 치솟아 새누리당 턱밑에 다다랐다.세상 그 어떤 일도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4·13총선 참패로 귀결된 정부여당의 참화는 집권 이후 끊임없이 자행해온 `뺄셈정치`의 산물이다. 그동안 언론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지독한 `불통`의 관성에 묻혀 오만방자의 극단을 치닫는 어리석음을 줄기차게 질타했다. 이번 총선참패는 `친박` 패거리가 이를 외면하고 `권력`에 취하여 옹졸한 사심정치를 거듭해온 업보다.집권당의 참패를 놓고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가 빈대도 못 잡고 초가삼간만 태운 격”이라는 통렬한 비판이 나돈다. 선거 도중 `친박 대권후보`라던 오세훈 후보가 고배를 마신 경우를 사례로, 앞으로도 친박의 의중이 실린 그 어떤 작위(作爲)도 민심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마저 쏟아진다.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 내린 징벌은 `회초리질` 정도가 아니라 `몽둥이질`이었다.안타까운 것은 그리 모진 몽둥이 뜸질을 당하고도 새누리당이 오만방자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탈당해 무소속으로 당선된 정치인들의 복당문제를 놓고 또다시 쩨쩨한 시비가 난무한다. 선거를 지휘했던 원내대표를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하는 뻔뻔함도 드러냈다. 불길 속에 활활 타고 있는 집을 외면한 채 서로 멱살을 잡고 집문서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추한 몰골이다.총선 닷새 만에 드디어,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관련 첫 언급이 나왔다. 박 대통령은 18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자리에서 “국민의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며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집권여당 참패의 으뜸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비판이 만연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의 미지근한 태도가 민심에 올바로 부응하고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뺄셈정치`의 저주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덧셈정치`보다 더 좋은 비방(秘方)은 없다. 내년 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전이 이미 시작된 마당에 새누리당이 지금 당파싸움 습성을 잘라내지 못하면 정권 재창출은 공염불이 될 게 뻔하다. 10년 넘게 악화시켜 온 친박-비박 갈등구조를 말끔히 청산하지 않는 한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에는 미래가 없다. 민주주의가 만개하는 빅 텐트(Big Tent)를 치고, 새로운 희망을 가꿔내야 한다.천한 무수리 출신의 어머니 몸에서 태어난 영조는 피비린내 나는 사색당파 암투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왕이 된다. 사도세자의 비극을 비롯해 사가(史家)들의 날선 비난이 있기는 하지만 그는 탕탕평평(蕩蕩平平)의 지혜를 발휘해 무려 52년 동안이나 왕좌를 지켰다. 긴 세월 임금노릇을 이어간 영조가 부단히 민심을 거스르지 않으려는 노력을 했다는 기록은 적지 않다. 새를 때려서 노래 부르게 할 수는 없다. 제아무리 큰 권력도 정치인들을 때려서, 국회를 때려서, 백성을 때려서 박수를 치게 만들 수는 없다.

2016-04-19

`집토끼`들의 반란

▲ 안재휘 논설위원토끼는 고전설화나 동화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이솝은 우화 `토끼와 거북`에서 토끼를 오만하고 어리석은 동물로 등장시키지만 `겁 많은 토끼와 개구리`에서는 맹수 공포에 찌든 나머지 자살하려고 연못으로 몰려갔다 놀라서 달아나는 개구리들을 보고 용기를 얻는 지혜로운 존재로 풍자한다. 토끼는 대체로 유순하고 깨끗하며 귀엽고 예쁘고 나약한 존재의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다.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정치인들은 선거판에서 유권자들을 `토끼`에 비유하곤 한다. `집토끼 단속`이라느니 `산토끼 사냥`이라느니 하는 말을 쓴다. 워낙 예민하여 작은 소리에도 쏜살같이 달아나기 십상인 기질이 유권자의 성향과 비슷하기 때문에 붙인 별칭이기도 할 것이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20대 총선전을 치르는 과정에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등 거대정당들은 소위 `집토끼`들의 반란으로 애를 먹고 있다.새누리당은 공천과정에서 불거진 `막장공천`논란으로 심장부인 TK(대구경북)지역에서 이상기류에 휘말려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좀처럼 청산이 안 되는 친노패권주의의 덫에 걸려 갈팡질팡하다가 급기야 분당사태까지 빚으며 혼란을 겪었다. 더민주당은 호남민심을 되잡으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정권교체의 새로운 대안`을 표방하고 나선 국민의당 쓰나미에 휩쓸려 좀처럼 맥을 추지 못하고 있는 양상이다.사실 유권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인들이 입줄에 올리는 `토끼`표현은 온당치 못한 별명이다. 특히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호남의 지지자들을 `집토끼`라고 지칭하는 것은 다분히 모욕적이다. 우리에 가둬놓은 존재들이니 무슨 짓을 해도 어쩌지 못할 것이라는 방자한 인식의 틀을 대변한다. 선거 때만 넙죽 엎드려 “주인으로 받들겠다”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하고, 당선증만 거머쥐면 곧바로 고약한 갑(甲)질노릇을 일삼는 게 그들의 속성 아니던가.새누리당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주연의 `막장공천` 칼춤으로 촉발된 대구 총선은 끝까지 화젯거리다. 대구 유권자들의 노여움을 좀처럼 씻기 힘들어서인지 새누리당 후보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사죄문`을 읽었다. 정(情)에 약한 토끼들의 본성을 또다시 흔들어보려는 작심일 것이다. 은퇴한 노정객 박찬종은 한 방송에 나와 이렇게 비판했다. “용서를 빌어야 할 내용이 `공천잘못`이라면 사죄가 아니라 `사퇴`하는 게 맞지 않나요?”공당(公黨)의 잘못된 공천으로 후보자가 된 사람들이 엎드려서 빌어야 할 원죄란 무엇인가. 그 잘못을 광정할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또다시 `권력의 칼`을 쥐게 해달라고 엎드리는 행위는 과연 합리적인가. 서청원 최고위원은 새누리당 후보들이 엎드려 사죄문을 읽은 직후에 대구에 찾아와 “피해자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외쳤다. 대구민심의 혼돈은 최저점을 찍은 사전선거 투표율이 여실히 반증한다.20대 총선 선거판에서 일어나고 있는`토끼`들의 반란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유권자들은 지금 터무니없는 지역감정의 포로가 돼 어떤 깡패 짓을 하더라도 용서하고 권력을 갖다 바치는 `집토끼`취급에 넌더리가 났다. 나라 곳간이야 거덜나든 말든 온갖 감언이설로 표 구걸에 나선 정치인들의 후안무치한 언행에 `산토끼`들도 단단히 뿔이 났다. 완강한 카르텔을 무기로 공고한 권력을 탐닉하는 패거리정치를 향해 레드카드를 내밀고 있다.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에서 유권자는 결코 `토끼`라고 일컬어져서는 안 된다. 정치인들이 `토끼`가 되고, 유권자가 `호랑이`로서의 존엄을 인정받는 나라가 참 민주국가다. 이번 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을 힘없는 `토끼`로 무시하면서 무단히 `호랑이`노릇을 해오던 인사들부터 가려내야 한다. TK선거 결과가 전국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최소한,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는 끈질긴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가 관전 포인트다. TK유권자들은 살아있는가.

2016-04-12

`카르텔 정치`의 종언(終焉)

▲ 안재휘 논설위원중국 당나라 태종 때 간의대부(오늘날 감사원장 격) 위징(魏徵)은 최고 권력자인 황제에게 무려 300번이나 목숨을 걸고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를 외쳤다. 위징의 깐깐한 간언에 분노한 태종은 수없이 “끌어내어 참하라”고 소리쳤지만, 곧바로 명을 거두곤 했다. 위징은 어느 날 황제에게 자신을 `충신(忠臣)보다는 양신(良臣)으로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태종이 그 까닭을 묻자 위징은 이렇게 대답한다.“충신은 자신과 가족과 가문이 풍비박산되며 군주 역시 악인으로 낙인찍혀 나라가 결국 멸망합니다. 하지만 양신은 살아서는 명성을 얻고 죽어서도 대대손손 번창하며 군주 역시 태평성대를 누려 나라의 종사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훗날 당 태종은 고구려 침략에 나섰다가 안시성 전투에서 무참히 패퇴한 뒤 “위징이 살아있었으면 나한테 이런 걸음을 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魏征若在,不使我有是行也)”이라며 그의 부재를 한탄하기도 했다.20대 총선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혼전 양상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나타난 가장 특이한 현상은 한국정치사를 완강히 지배해온 `카르텔 정치`가 민심의 저항에 부딪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카르텔 정치`에 찌들어있는 한국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지역대결 구도다. 호남은 `위험한 진보`의 진원지로, 영남은 `수구꼴통`의 근거지로 서로 낙인찍어 놓고 선동가 중심으로 패 갈라 감정의 골을 거듭 후벼파는 정치가 지속돼왔다.`카르텔 정치`의 또 다른 적폐는 소수의 명망가들이 작당하여 세력을 만들고, 누구든 거기에 줄을 잘 서야 두고두고 권력을 거머쥘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우리 정치권에는 민심을 정치에 정직하게 반영하는 기능을 익힌 민생 정치인들이 드물다. 시위대 한 복판에서 거친 목소리로 살아온 운동가이거나, 소위 전략공천을 통해 반짝 영입된 `줄 잘 서고 말 잘 듣는 기술자들`이 주류다.패거리정치·패권정치·보복공천·조폭공천…오늘날 골칫거리가 된 모든 구닥다리 행태들은 `카르텔 정치`의 악취 나는 부산물들이다. 친노 패권주의에 볼모잡혀 있던 호남이 안철수 신당인 `국민의당` 출현 이후 요동치고 있다. 친박 핵심들의 눈꼴 신 막장공천을 지켜보던 대구·경북 민심도 진동하고 있다. 특정 정치이념이나 명망가에 의해 휘둘리기만 하던 국민들이 비로소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한 것이다.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는 패권·패거리정치의 특성이다. 마치 조직폭력단처럼, 권력자의 판단이 아무리 틀렸어도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 다른 생각을 말하면 곧바로 배신자가 되어 내침을 당한다. 협량한 권위주의가 집단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그렇게, 소속정당의 정책이나 지도자의 언행에 쓴소리를 하는 것을 `배신`으로 몰아 때리는 만행 풍토를 그대로 두고 무슨 수로 선진 민주정치를 구현할 것인가.공자는 `공자가어`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간언하는 방법을 5가지로 분류해 설명한다. 궤변으로 군주를 깨닫게 하는 휼간(譎諫), 꾸밈없이 간하는 당간(戇諫), 자신을 낮추면서 간하는 항간(降諫), 거리낌 없이 간하는 직간(直諫), 완곡한 표현으로 빗대어 풍자해 간하는 풍간(諷諫)이 그것이다. 공자는 이 가운데 풍간을 가장 이상적인 간언으로 꼽았다. 국운을 해치는 육사신(六邪臣)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간언의 가치를 논한 공자의 지혜가 새롭다.`권위주의`를 청산하는 것이 참다운 권위를 세우는 지름길이라는 역설을 기억해야 할 때다. 이번 총선이 대한민국의 고질적 `카르텔 정치`의 종언을 고하는 의식이었으면 좋겠다. 충신을 넘어 양신의 길을 가고자 기꺼이 직언의 칼날 위에 올라섰던 위징은 황제 앞에서 임금과 백성의 관계를 이렇게 풍간한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과 같습니다. 물은 능히 배를 실을 수 있으나, 또한 배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습니다. (君爲舟 民似水 水能載舟 亦能覆舟)”

2016-04-05

패거리정치, TK민심을 학대하다

▲ 안재휘 논설위원`가장 좋은 것은 백성들이 임금이 있다는 사실만 아는 것이고, 그 다음에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며, 그 다음에는 두려워하는 것이고, 가장 나쁜 것은 임금을 모욕하는 것이다. (太上下知有之, 其次親譽之, 其次畏之, 其下侮之)` 노자(子) 도덕경 17장에 나오는 말이다. 신문·라디오뉴스와 영화관 `대한늬우스`로 인해 지도자의 존재를 매일 각인하며 자란 세대에게 3천여 년 전 초나라 현인의 지혜는 경탄스럽다. 여야 정치권이 바야흐로 20대 총선전쟁 출정채비를 모두 마치고 출발선에 섰다. 각 당은 후보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온갖 잡음들을 씻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정치인들이 숱하게 맹세했던, 그리고 국민들이 학수고대했던 `공천혁명`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 공천은 여전히 사천(私薦)·학살·패거리·보복·엿장수·조폭·차도살인(借刀殺人)이라는 오욕의 수식어들을 벗어나지 못했다.선거결과와 상관없이 20대 국회의 풍토는 넉넉히 가늠이 되고도 남는다. 당선증을 거머쥔 거개의 국회의원들은 임기 첫날부터, 한 번 더 해먹으려면 누구에게 어떻게 줄을 서야 할지를 연구할 것이다. 힘 센 정치인들은 패거리를 키우고 지키기 위해 술수 짜내기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들의 뇌리 속에 `국가를 위한 무구한 헌신` 따위는 희미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침 내년 말 대선(大選)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 개연성은 더욱 높다.친박 핵심의 `미운 놈 쳐내기` 공작으로 시작된 새누리당 대구지역 공천은 막판 당 대표의 `옥새파동`을 거쳐 동구을 지역구 `무공천`이라는 기형적인 결론을 도출해냈다. 보수정당의 정통 심장부에서 벌어진 추악한 집안칼부림으로 처참히 찢긴 쪽은 몇몇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가장 치명적인 피해는 지역민들이 입었다. 건전한 토론은커녕, 가족들에게마저 속내를 꽁꽁 숨겨야 하는 참담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정치인이든 아니든, TK(대구경북)지역에서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기원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컷오프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자들은 선거사무소에 붙은 박 대통령 사진을 떼지 않겠단다. 새누리당 공천을 받은 사람들이 굳이 그 사진을 떼라고 부르대는 모습은 후안무치한 야박이다. 선거 전략의 일환이겠지만, 무소속 당선자들의 재입당 문제를 놓고 “어림없다”고 손사래 치는 모습 또한 끔찍한 살풍경이다.이래저래 TK유권자들은 괴롭다. 공감하기 힘든 `미워해야 할 이유`를 들어 `미움`을 강제하는 야멸찬 정치권력 또한 `미워할 수 없는 존재`일 때 백성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은 차라리 `고문(拷問)`이다. 이른바 `진박(眞朴)` 사람들은 소속정당 대표를 PK(부산경남) 패권주자로 몰아 때리며 민심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무소속후보들을 PK 주자의 졸개쯤으로 매도하여 소지역주의를 폭발시키려는 심산인 듯하다. 미상불, 20대 총선 대구 선거판은 참혹한 `유권자 학대극장(虐待劇場)`이다. 사리사욕에 찌든 패거리정치인들이 지역민심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형국이다. 동향동문 동기들을 갈라놓고, 사촌팔촌 인척들의 인심을 흩어놓고 있다. 선거 이후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혹독한 후유증 따윈 안중에도 없다. 공천파동을 만들면서 던진 독설들이 하나 같이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아이러니를 국민들은 이미 다 알건만….새누리당 `상향식 공천` 당론에 동참했던 뭇 정치인들의 뒤집어진 삿대질이 무상하다. 사소한 허점을 파고들어 궤변으로 당헌당규를 뒤엎은 모사꾼들이, 약속을 지키려 애쓴 대표에게 “주도면밀하지 못했다”고 던지는 뒤늦은 비판은 야비한 조소(嘲笑)다. 대한민국은 지금 초나라의 현인 노자가 제시한 4단계의 국가수준 어디쯤에 와 있는가. 결코 미워해서는 안 될 지역인재들에 대해 `묻지마 증오`를 강요받고 있는 TK민심은 이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옳은 것인가.

2016-03-29

TK유권자, 공천 심판해야

▲ 안재휘 논설위원`달이 태양을 가리면, 민(民)의 광채는 졸(卒)로 퇴색한다. 때문에 그 나라와 누리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를 새삼 묻게 된다. 나라와 권력은 민을 위해서 있다는 것만으로는 모자란다. 나라와 권력 그 자체가 민의 것이라야 한다.` 동아일보 편집국장을 지낸 언론인 김중배(金重培)가 펴낸 `민(民)은 졸(卒)인가`라는 평론집 서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김 선배는 엄혹한 시절을 어렵게 살아낸 많은 기자들의 표상이었다.`막장 드라마`라고 불리며 온 국민을 `정치 넌더리` 속으로 몰아넣던 여야의 20대 총선 공천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새누리당 TK(대구 경북)지역의 공천이 이렇게 전국적인 관심사가 됐던 적은 없었다.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현직의원들에 대한 섭섭함을 표출한 이래 TK지역 공천은 예측불허의 혼돈 속으로 몰려갔다. 지역에 몰아친 세찬 바람은 민심을 누더기로 만들어가며 갈등을 양산해왔다.`진박 마케팅`이라는 희한한 전략을 통해 TK지역 공천을 장악하려던 친박 핵심의 전략은 아무래도 큰 성공을 거둘 수는 없을 것 같다.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 이한구 위원장이 논란의 중심인 유승민 의원에게 거듭 `자진사퇴`를 압박하는 양상은 `박심`과 `민심`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된 우스꽝스러운 행태다. 악역을 맡아 득의양양 휘둘러오던 `컷오프` 칼춤을 우뚝 멈추고 딴 소리를 거듭하는 모습은 상식에 와 닿지 않는다.새누리당과 더불어 국민들의 뇌리에서 좀처럼 떠나지 않는 단어들이 있다. `상향식 공천`, `공천혁명`, `전략공천 종언` 등등의 문구들이다. 그러나 이한구 공관위는 지역구 253개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08개(43%)를 단수·우선추천지역으로 정했다. 내용적으로 일부 친박계 핵심들은 본선으로 직행한 반면, 여론조사에서 강세를 보였던 주요 범 비박계는 경선조차 못치르고 `컷오프` 당했다.새누리당은 이 같은 이율배반적인 결과에 대해서 두고두고 추궁받을 것이다. 김무성 대표가 부르짖던 `공천혁명`은 처참한 실패로 돌아갔다. 당내 역학관계에서 불리했던 김 대표의 형펀을 국민들은 다 안다. 국회에서 다수를 장악한 집권여당이 오랫동안 공언해온 약속을 그렇게 스스로 허망하게 깨부수었는데도 그냥 넘어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만 우두커니 남아 있다.TK지역 20대 총선은 속속 `새누리당 후보 대 무소속 후보`의 대결구도가 형성돼가고 있다. 많으면 10곳 안팎에서 새누리당의 하향공천에 불복한 여권 정치인들이 결전을 벼르고 있는 형국이다. 보수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이 되는 TK지역 특성 때문에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당연한 귀결이다. 정당의 공천과정이 투명하지 못하고 공정성이 심히 훼손됐을 때 유권자들이 직접 그 당부(當否)를 가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이제 전 국민의 이목은 민심을 들쑤셔왔던 새누리당의 공천행태를 TK지역 유권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비록 그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현존하는 지역 정치인 중 `박근혜정부`의 성공을 훼방 놓으려는 사람은 없다. TK총선에서 형성되는 표심에는 후보자들의 역량을 견주는 평점에 더해 새누리당의 공천에 대한 엄정한 평가가 오롯이 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셈이다.21세기 대명천지에 감히 백성의 뜻, 민주주의의 `태양`을 가리려는 `달`은 과연 누구인가. 나라와 권력의 주인이 `국민`임을 망각하고 민심을 오독(誤讀)한 정치세력은 어느 쪽인가. 유권자들은 두 눈 부릅뜨고 `진짜배기`를 찾아내야 한다. 특정세력에 대한 찰나의 충신이 아닌, 국가와 지역의 미래에 대한 영원한 충신이 누구인지를 밝혀내야 한다. TK지역을 대표해, 터럭만큼의 사심도 없이 나랏일을 맡아 몸을 던져 일할 참 일꾼이 누구인지를 기필코 가려내야 한다.

2016-03-22

`컷오프`와 `공천학살`

▲ 안재휘 논설위원조선을 망국으로 몰아넣은 지독한 당파싸움은 피비린내 나는 사화(士禍)들을 낳았다. 역모조작과 궤변으로 왕을 꼬드겨 반대파를 몰살시키려는 사악한 정치집단이 존재했고, 그런 흐름을 왕권강화에 써먹은 교활한 군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참화였다. 천재 학자요 대표적인 북벌론자였던 백호 윤휴가 당쟁에 몰려 사약을 받으면서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왜 죽이는가?”라고 한탄했다는 야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4월13일로 예정된 20대 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정치권의 권력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컷오프`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학살극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먼저 시작했다. 야당 불모지 대구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홍의락을 `컷오프` 명단에 넣은 것이 김부겸의 잠룡 부상(浮上)을 차단하려는 음험한 암수로 해석되면서 의혹을 양산하고 있다. `점령군 사령관` 소리를 듣는 김종인 대표의 지휘 아래 더불어민주당은 거침없는 `전략공천` 행군을 이어가고 있다.엉큼한 장난을 예고하는 염치없는 으스댐과 연막탄 매연이 가득하던 새누리당 공천무대 위에는 드디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칼춤이 시작됐다. 여당 의원들이 이한구 위원장 주변에서만 북적대는 국회 본회의장 장면은 때마다 차도학살(借刀虐殺)의 참극을 빚어낸 우리 공천문화의 천박성을 대변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과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공천 역시 육참골단(肉斬骨斷), `논개작전(論介作戰)`의 사술이 얼비친다.`민주화`를 품지 않는 정치권의 `물갈이론`은 사기다. 지난 총선들이 그랬듯이, 권력을 잡은 측이 칼잡이를 고용한 뒤 수상한 교체지수 꼬리표를 달아 `컷오프`라는 꼼수로 정적을 쳐내는 `물갈이`는 저열한 민심현혹이다. 지난날의 공천이 `민주화 혁명`에 다가가기는커녕 말 잘 듣는 내편 `붕어`들만 골라 썩은 어항에 집어넣은 어리석은 `붕어갈이`에 불과했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불편한 진실이다. `컷오프` 또는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의 `공천학살`이 바로 한국정치 `썩은 물`의 오염원이다. 이를 국민들에게 `물갈이`라고 왜곡선전하는 것은 낯 두꺼운 국민모독이다. 작금 자행되고 있는 `공천학살극`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2008년과 2012년의 가혹한 `붕어갈이`가 18대국회와 19대국회의 성공을 견인했다는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그때 자기들이 무더기로 갈아 넣은 붕어들을 지금 와서 모개로 퇴짜 놓는 모순은 도대체 어떻게 변명되는가.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낯선 인사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칼자루를 잡고 대한민국 정치를 들었다놨다하는 현실이 우스꽝스럽다. 그들이 마치 염라대왕이라도 된 듯이 `조자룡 헌 칼 쓰듯이` 공천여부를 갈라내는 양상은 분명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려 낙점을 갈망하는 뭇 정객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명예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다가 우리 정당정치가 이토록 치욕스러운 퇴행 몰골을 면치 못하는지 한숨이 절로 난다. TK(대구·경북)지역의 공천이 초미의 관심사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해온 대로 충격적인 결과가 빚어질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추후 한국 정치지형에서 냉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역사는 작위를 주도한 사람들의 만행에 결코 영원히 동조하지는 않는다. TK정치는 이제, 지금껏 감당해온 한국정치의 중심기둥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 기로에 서 있다.`공천혁명`을 고대하는 국민 여망을 끝내 묵살하고 구태로 돌아간 여야 정치권은 과연 이번 4·13총선에서 유권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악착같은 역모조작과 궤변으로 왕의 칼을 빌려 동량(棟梁)들을 무수히 참살했던 조선의 추악한 당쟁사화 관성이 도무지 멈춰지지 않는 어불성설의 현실이 안타깝다. `공천 바꿔야 정치 바뀐다`는 경험명제는 정녕 짓밟히고 마는가.

2016-03-08

`이한구의 난(亂)?`

▲ 안재휘 논설위원우리가 배우고 익힌 역사는 반쪽 승자의 역사다. 1948년 7월 17일에 제헌헌법이 시행되었으니,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역사는 고작 70년도 채 되지 않는다. 역사를 파고들다보면 진실은커녕 사실에조차 근접하지 못한 대목이 적지 않다는 깨달음을 갖게 된다. 특히, 생사여탈권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던 절대군주에 대한 복종여부를 기준하여 충역(忠逆)을 나눈 가치매김을 그대로 믿는 것은 아무래도 중대한 잘못이지 싶다.요즘 정치권 돌아가는 모습은 정상적인 이성으로는 도무지 해석이 불가하다. 낡은 이념갈등과 인물 중심의 패거리 정치가 뒤죽박죽이다. 격앙과 오기와 사리사욕이 뒤범벅이 되어 원칙도 의리도 논리도 없이 조변석개(朝變夕改)로 무차별 섞이고 충돌한다. 유권자를 속이기 위한 정치꾼들의 온갖 요설이 난무하지만, 제아무리 그럴싸한 췌사(贅辭)를 늘어놓아도 국민들은 오직 치졸한 `밥그릇 싸움` 파열음으로 들을 따름이다.새누리당은 극심한 분열상 속에 자파(自派)에 유리한 권력지도를 만들기 위한 기고만장이 지속되고 있다. 새누리당 안에서 `이한구의 난(亂)`이라고 성토되는 신음이 깊다. 공천관리위원장 자리를 꿰찬 이 의원이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김무성 대표와 맞짱을 뜨는 모습이 시나브로 연출되고 있는 형편이다. 위원장 완장을 앞세워 공천권을 지배하려는 그의 속내가 어디에 닿아있는지 알 사람은 이미 다 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경제민주화` 카드를 들고 박근혜 후보를 도왔던 김종인 교수를 구원투수로 영입한 더불어민주당의 행태는 이 나라 정당사가 얼마나 날탕인지를 새삼 돌이키게 한다. 놀라운 것은 김종인 단일지도체제 이후 장기간 답보상태에 머물던 문재인 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의 국민지지도가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앞뒤가 안 맞는 희한한 변조를 거듭하고 있는 민심의 요동은 참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라는 중립지대 민심을 잘 담아낼 것인가 주목됐던 `국민의 당` 역시 결국 잡탕밥을 지어가는 형국이다. 굳은살이 박이도록 시련을 견뎌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려는 의지란 무던히도 없어 보이는 안철수의 요령부득이 안쓰럽다. 극단으로 나뉜 이념 스펙트럼을 다 소화해야 할 아찔한 숙제를 어쩔 것인지 궁금하다. 두 패로 나뉘어 민심을 어지럽혀온 양당 패권정치의 꼴불견 혁파는 여전히 버거운 과제다.도그마(Dogma)적 칼질공천을 장담하는 이한구의 결기는 성공할 것인가. 대구 수성갑 선거구에 출마한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지난 2004년 17대 총선 때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아 당 대표의 공천포기마저 유도해내는 냉혹한 혁신공천을 일궈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차떼기 당` 오욕 속에 치러진 과거의 경우와 판이하기 때문에 이한구 위원장의 논리엔 무리가 있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새누리당은 이 위원장의 주장대로 실질적 `전략공천` 방식의 공천이 집행될 경우 일어날 후폭풍을 고민해야 한다. 유권자들은 당헌·당규에 명시된 `상향식 공천`으로 공천혁명을 완수하겠다던 호언이 새빨간 거짓말이 아니었는지를 따져 묻게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김종인 대표의 우클릭 발언을 묵인하는 친노 주도세력들의 비굴한 인내를 `보수표심 도둑질` 협잡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제대로 된 역사공부는 역사 속 인물과 사건을 시대적 가치에 대입하여 재해석하는 단계에서 완성된다. 오직 왕에 대한 충성 여부를 잣대로 충역을 판별해 기록한 역사는 온전한 역사가 아니다. 임금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에 충성한 인물만이 진정한 충신이다. `난(亂)`으로만 기록된 실패한 봉기를 허술히 보는 것도 얕은 깨우침이다. 일각에서 `이한구의 난`으로 불리는 새누리당 공천은 진정한 충(忠)으로 가고 있는가. 여야를 막론하고, 유권자들을 어수룩한 `봉(鳳)` 취급하면서 무한 모독하고 있는 측은 과연 누구인가.

2016-02-23

`개성공단` 잔혹사(殘酷史)

▲ 안재휘 논설위원개성공단이 끝장났다. `가동중단`이라고 쓰지만 대다수 국민들은 `끝장났다`로 읽는다. 지난 2004년 12월에 본격 가동돼 만 11년이 넘도록 `남북교류의 상징이요, 평화통일의 희망`이라고 일컬어지던 모델하우스가 우여곡절 끝에 결국 파장을 치고 말았다. 박근혜정부의 전면 가동중지 결정을 놓고 정치권은 또다시 상반된 반응을 내놓으며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적극 찬성하는 반면, 야당 정치인들은 `결정적 패착`이라고 물어뜯고 있다. 개성공단은 경기도 개성시 봉돌리 일대 9만3천㎡(2만8천여 평) 면적에 조성된 공업단지다. 지난 2000년 6·15공동선언 이후 추진된 남북경제협력사업의 하나로 체결된 `개성공업지구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가 공단조성의 단초가 됐다. 북한의 근로자철수 조치로 2013년 4월8일부터 9월15일까지 가동이 중단된 바 있지만, 연간 생산액이 2014년 4억7천만 달러, 2015년 1~11월 5억1천500만 달러에 이른다.김대중 전 대통령이 기획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완성한 개성공단은 한반도 평화를 전제로 한 하나의 가설이었다. 의심스러운 구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남북한 지역 상호조성이 아닌, 북한지역에만 일방적으로 국내자본을 투자하는 것이 안전한지에 대한 의문도 있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참았다. 국민들의 인내에는 `평화통일`의 염원이 담겨 있었고, 북한의 선의를 신뢰해온 진보정권의 설득도 작용했다.그러나 북한은 지난 2006년 10월 9일 제1차를 시작으로 4차례의 핵실험과 함께 미사일 발사실험을 거듭했다. 그럴 적마다 우리는 거액의 달러자금이 흘러들어가는 개성공단의 적절성 여부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김대중·노무현의 `햇볕정책`은 실패했다. 아니 상대방의 외투를 벗겨버리겠다는 의도가 뻔히 드러나는, `햇볕정책`이라는 이름의 대북정책은 시작부터 이미 실패를 잉태하고 있었다.`햇볕정책`은 남한과 국제사회를 상대로 약속 뒤집기를 밥 먹듯 해온 거대 사이비종교집단 북한정권의 `맛있는 먹잇감`이었다. 북한은 핵을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다며 “만약 북한이 핵을 개발한다면 내가 책임지겠다”던 김대중도, “북이 달라는 대로 다 해주어도 남는 장사”라던 노무현도 이젠 이 세상이 있지 않다. 진정성 여부는 모르겠으되, 이쯤 되면 그들의 가설이 틀렸다는 것만큼은 최소한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현실은 정반대로 돌아간다. 개성공단 가설의 준 책임자격인 문재인은 이 사태와 관련 “박근혜정부는 경제에 이어 안보와 외교에서도 무능을 드러냈다”며 `정권 때리기`만 지속하고 있다. 그는 나아가 “북한이 개성공단 임금으로 벌어들이는 건 고작 1억 달러정도다. 개성공단 폐쇄로 북한 핵무기 자금줄을 끊는다는 것은 애초에 말이 되지 않는다”고 어쭙잖은 역성까지 들고 있다.1억 달러가 `고작`이라니, 문재인은 아무래도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이는 돈을 등하굣길에 불량배들에게 해코지 당하지 말라고 아이들 호주머니에 넣어주는 상납금 정도로 생각하는 게 분명하다. 그런 그가 최근 차기 대통령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는 통계가 아찔하다. 만약 북한이 개성공단에 전기를 넣고, 오랫동안 기술이 숙련된 5만여 근로자들을 부려 자체가동하기라도 한다면 저 윤똑똑이들 목소리는 더 높아질 게 뻔하다. 전쟁은 절대로 안 된다. 하지만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전쟁을 막을 수 없다. 평화를 스스로 지키려는 의지가 없는 자에게 평화는 거저 오지 않는다. 언제나 사생결단(死生決斷)으로 나오는 주린 늑대 같은 북한에 제대로 맞서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이상 겁쟁이 돼지로 살아서는 안 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체 대표들의 망연자실한 표정이 안타깝다. 연전 개성공단을 방문했을 적에 보았던, 선한 눈빛으로 묵연히 일하던 북한 근로자들의 모습이 눈앞에 삼삼하다.

2016-02-16

`박(朴)타령`이 기가 막혀

▲ 안재휘 논설위원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문재인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을 데려다가 기념촬영을 하고, 안철수의 측근은 몰래 녹음한 안 의원과 이희호 여사와의 대화내용을 언론에 흘렸다. 대구에서는 자칭 진박(眞朴) 몇 명이 따로 모여서 마치 신당창당이라도 한 듯 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잇달아 나타나는 퀴퀴한 영상들은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착각마저 들게 한다.상식과 체면에 기초하지 않은 행동들이 빈발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미 20대 총선은 불이 붙었다. 예선이 곧 본선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TK(대구·경북)지역은 진작부터 총선 한복판에 돌입해 있다. 후보들은 각종 연고를 끌어다대며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낸다.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 보증수표 삼아 권력을 쟁취하려는 발싸심들은 거의 용광로 수준이다.`친(親) 박근혜계`를 뜻하는 `친박`이라는 용어는 어느새 고전(古典)이 됐다. 원박·탈박·월박·짤박·구박·신박을 거쳐 용박·가박·진박·진진박… 거의 날만 새면 한 개씩 늘어나는 형국이다. 진박 감별사를 자처하는 요인(要人)까지 나서면서 TK총선은 한 편의 유치한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처럼 희화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그러나 선거란 민초들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냉엄한 절차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TK지역의 총선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는지를 매의 눈으로 톺아보는 일은 천번만번을 거듭해도 모자람이 없다. 달아오르고 있는 새누리당 경선절차가 과연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구조인가 여부를 정밀한 저울에 달아보는 것 또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이미 본선에서의 치열한 격전이 예고된 일부 지역구도 있지만, TK총선은 대개의 경우 새누리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가능성이 폭발하는 특별한 구조다. 결국 경선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될 여지가 내재돼 있는지가 경계점이다. 와중에 벌써 경선을 포기하고 본선에서 겨뤄보자고 탈당하는 후보가 나오기 시작한 건 불길한 징조다.감독에게 충성하는 선수가 경기를 잘 한다는 보장이 결코 없음에도 한국스포츠는 오랫동안 파벌주의 복마전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조선을 말아먹은 당파싸움의 이면에도 당수(黨首)에게 충성하는 아첨꾼들만을 중용한 망국적 폐해가 누적돼 있었다. 특정 정치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은 애국심이나 개인적 역량과 반드시 동일할 수가 없다.TK총선에서 유권자들이 감당해내야 할 개혁의 사명은 중요하고도 깊다. 후보자들의 역량가늠이 야릇한 `박타령`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의 점지(點指) 여부만을 따져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강박하는 정치역학은 명백한 구태(舊態)다. 공천 후보들을 맹목적으로 찍을 수밖에 없는 지역정당 구조의 선거는 선거구민들이 후보들의 됨됨이를 견줘볼 공간을 박탈하는 치명적인 하자를 내재한다.지역 유권자들은 TK총선에 나선 후보자들에게 정말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 뒷배를 봐줄 `배경`자랑 말고, 여전히 낙후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역경제 문제를 해결할 비전은 있으신가. 먹고 살 걱정을 덜어줄 비책, 악화일로의 실업 문제를 풀어낼 묘방은 무엇인가. 이 나라 정치의 심장부인 TK지역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슨 역할을 해나갈 작심이신가. 개인 영달을 위해서 호가호위(狐假虎威)에 급급하다는 샛눈을 막아낼 논리는 든든하신가.흥부놀부전에서 부러진 제비 다리를 진정한 측은지심으로 고쳐준 흥부는 보은(報恩)의 대박을 터뜨린다. 그러나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분질러놓고 치료를 해준 놀부는 복수(復讐)의 쪽박을 찬다. 누가 흥부인지, 누가 놀부인지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누가 대박을 터트릴 것인지, 누가 쪽박을 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유권자들의 이성을 우습게 여기는 `박타령`은 결단코 정직한 실력이 아니다.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2016-02-02

정의화에게 `국회의장`을 묻다

▲ 안재휘 논설위원국회선진화법은 축구경기에서 골키퍼만이 아닌 모든 선수가 다 손으로 공을 잡을 수 있도록 허용한 웃음거리 경기규칙 같은 `돌연변이` 법규다. `당론투표` 전통이 금과옥조처럼 지켜지고 있는 나라에서, 어느 당도 점유하지 못한 2/3이상이나 3/5이상의 의결정족수를 적용한 것은 실질적으로 `만장일치제법`으로 작동되고 있다. 아테네 고대민주주의 이래 민주주의국가에서 철칙으로 지켜져 온 과반다수결 원칙을 깬 것이다.19대 국회 후반기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이 때 아닌 동네북 신세다. 특히 친정인 여당으로부터 `목에 걸린 생선가시`, `하늘에서 떨어졌느냐`는 둥 뭇매질을 당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을 국회법 제85조의 규정에 명시된 `국가비상사태의 경우`로 해석해 직권상정을 강박하던 새누리당은 다시 국회법 87조를 편법적으로 활용해 `재적의원 과반수가 본회의 부의를 요구하는 경우`를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에 추가하는 대안을 만들어 제안했다.정 의장은 “잘못된 법을 고치는데 또 다른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며 거부하는 대신 중재안을 제시했다. 25일 발표된 정의화 의장의 중재안은 상임위 단계에서 `재적의원 60% 이상 요구`로 돼있는 신속처리 안건 상정요건을 `과반 요구`로 완화하고, 지금까지 `상원` 노릇을 해온 법사위의 월권을 제한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일단 국회선진화법의 맹점을 제대로 분석하고 올바른 대안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19대 국회는 발의된 법안 1만 5천여 건 가운데 최저수준인 12% 정도만 최종 가결시켜 선진화법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적나라하게 입증했다. 결국 `동물국회`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식물국회`를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 셈이다. 선진화법은 모든 국회의원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또한 애국적이라는 소박한 낭만주의와 아마추어리즘이 저지른 중대과실이다.국회의장을 희생양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해보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정치권은 국회 수장을 더 이상 모욕하는 언동을 멈춰야 한다. 편법과 변칙을 강요하면서 윽박지르기보다는 헌정사에 두고두고 씹힐 악역 감행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그의 고뇌를 이해해야 한다. 더욱이 정 의장은 처음부터 국회선진화법에 반대하면서 `19대 국회가 무기력한 국회가 될 것`이라는 정확한 예견까지 내놓았던 정치인 아니던가.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오늘날의 정치세력과 국회는 선진화법을 소화할 능력이 전혀 안 되는 수준이다. 지금처럼 정부여당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딴죽을 걸어 못하게 해야 자기 패들에게 이익이라는 천박한 의식이 야권을 지배하는 한 더욱 그렇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선진화법 때문에 선진화법의 합의개정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20대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19대 국회에서 반드시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힌 정 의장의 진정성을 믿는다. 기왕에 절박한 심정으로 합리적인 중재안을 내놓고 `임기 내 개정`이라는 시한까지 정했다면 국회의장이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국회 운영규칙을 한 번도 단독처리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회의 전통도 중요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국회를 방치하고 떠나는 것은 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이제 정의화 의장의 혁명적인 용단이 필요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야당이 끝내 응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이 찾아낸 국회법 87조의 묘수를 사용해서라도 악법을 고쳐내야 한다. `편법`을 썼다는 비난과 오명보다도, 불치병에 걸린 국회를 수술하는 일이 훨씬 더 가치가 높다. 저명한 외과의사 정의화의 집도가 정말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국회의장`은 게임규칙이 잘못된 줄 알더라도 경기를 진행하기만 하면 그만인 축구경기의 심판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에 무겁게 드리운 `국회선진화법`의 저주를 풀어낼 사명이 그의 손에 달려있다.

2016-01-26

`새누리당`이 안 보인다

▲ 안재휘 논설위원섭공이 “정치란 무엇입니까” 하고 묻자 공자가 대답한다. “정치란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기뻐하고, 먼 데 있는 사람들은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다.(葉公問政 子曰, `近者說, 遠者來`)”- 요즘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면서 문득 논어 제13편 16장에 나오는 공자의 말씀이 떠올랐다. 수년 만에 다시 정치권은 `영입`이라는 구실로 `양자(養子)정치` 혹은 `데릴사위 정치`에 미쳐 있다. 자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친자식들이 수두룩한데도 믿을 만한 씨알을 찾지 못하여 바깥에서 적자(適者)를 꿔다 쓰려는 심산들인 것이다.친자식들을 불신하는 당 지도부가 잘못인지, 신뢰할만한 적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더 문제인지는 새삼스럽게 논란할 의미가 없다. 물을 열심히 긷다가 물독을 깬 일꾼은 일꾼으로 치지 않고, 능력이야 검증이 됐든 안 됐든 패거리에 줄 선 새 인물만 탐닉하는 유권자들의 이상한 습성 또한 이 나라 정치의 고질병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를 놓고 쏟아지는 여론에는 부정적인 평가가 즐비하다. 일부 `대통령의 노동법 양보에 노동계가 응답해야 한다`는 논지도 있지만, 대다수가`위기론은 부각됐지만 해법은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야당과의 소통`을 거듭 주문하는 따분한 목소리도 있고, `총선 이야기 좀 그만 하시라`는 듣기 민망한 비판도 있다.정말 심각한 문제는 새누리당에 있다. 총선이 코앞인데, 새누리당이 여론무대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다. 저잣거리와 언론에는 하루 종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벌이는 경쟁 이야기만 쏟아진다. 드물게 나오는 새누리당 소식이란 쩨쩨한 계파 간 공천 샅바싸움 잡음뿐이다. 나라야 어찌되건, 정치수준이야 뭐가 되건 공천권만 더 움켜쥐면 만사형통이란 배짱인 듯하다.민심을 움직일 합리적이고 참신한 정치혁신안을 내놓고 시대정신을 충실히 대변해도 시원찮을 판에 부정적인 이미지만 보태는 새누리당의 행태에는 또다시 오만방자(傲慢放恣)의 그림자가 얼비친다. 어설픈 `험지출마론`은 곧바로 `상향식 공천`원칙과 충돌하면서 전략부재의 허점만 입증하고 말았다. TK지역에 불붙인 `진실한 사람` 논란은 새누리당의 심장부를 초라한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 그러는 동안 야권은 분당이네 창당이네 컨벤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대권주자 지지도에서도 문재인과 안철수가 엎치락뒤치락 수위를 다투는 상황을 만들며 역동성을 키워가고 있다. 여권의 젊은 피 이준석이 “진짜 당 꼴이 말이 아니다”라는 자탄을 앞세워 페이스북에 올린 `용기도, 배려도, 바른 소리도, 똑똑한 사람도 없는` 새누리당 모습과는 대조적이다.새누리당은 지금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기뻐하게 하는 정당인가. 혹여 권력을 한 움큼이라도 더 움켜쥐려고 가까운 사람들끼리 서로 머리채를 쥐어뜯기만 하는 무리는 아닌가. 먼 데 있는 사람들이 제 발로 찾아오고 그들을 반겨주는 정당인가. 혹시 제 발로 찾아오는 인재들마저 밥그릇 안 뺏기려고 문전박대하고 망신이나 주는 집단은 아닌가.박 대통령이 드디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자신의 역할과 여의도 정치에 대한 회의감 그 끝에 닿은 모습이다. 대한상공회의소 등이 추진 중인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천만 서명운동에 동참하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참으로 씁쓸하게 들린다. 어쩌다가 이 나라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는지 착잡하기 그지없다.인재를 찾으러 다닌다고 보따리장사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는 정치지도자들을 바라보노라면 한숨이 난다. 공자의 말씀처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누구나 기쁘게 하고 좋은 사람들을 저절로 찾아오게 만드는 감동적인 정치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국민들이 날마다 정치를 걱정하는 이 기막힌 참담을 종식시킬 묘책은 정녕 없는 것인가.

2016-01-19

북핵 대응, 또 `언 발에 오줌 누기`인가

▲ 안재휘 논설위원철없는 옆집아이가 점점 더 고약한 무기를 만들어내며 협박을 일삼고 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른 이웃들에게 일러바치는 고자질뿐이란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야기다. 저들은 한사코 `수소폭탄`이라고 욱대기고 우리는 자꾸만 `그냥 핵폭탄`이라고 해석한다. `핵폭탄`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터무니없는 착각마저 횡행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매번 그랬다. 북한문제에 관한 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희망사항을 과학적 분석인 양 떠들어댄다. 북한 지도자를 우스꽝스런 삐에로로 만들어놓고 나서는 희한한 자위에 빠진다. 정말 위험한 것은 북한은 절대로 전쟁을 못 일으킬 것이고, 설사 일으킨다 해도 한반도에서는 핵을 쓰지 않는다고 터무니없이 낙관하는 일이다.이번 북한의 4차 핵실험 상황에 관한 많은 발언 중에서 “우리가 졌다”는 한 마디보다 더 압축적인 표현은 없다. 국정원장의 그 한 마디를 놓고 흥분하는 윤똑똑이 정치인들의 속내는 뻔하다. 또 누군가를 희생양 삼으려는 비겁한 심리가 발동했을 것이다. 져놓고도 이겼다고 말하는 후안무치보다는 “졌다”고 시인하고 다시 시작하는 편이 백번 더 나은 것 아닌가.북한의 전략은 철저하게 `채찍`과 `당근` 병용이다. 앞에서는 대화에 응하면서 뒤로는 핵무기 개발에 국력을 몽땅 쏟아 붓는다. 반면에 우리는 허구한 날 `채찍만 쓰자`느니 `당근만 쓰자`느니 해법을 놓고 집안싸움만 해왔다. 그러니 질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또 졌다”라고 말할 기회란 이제 영영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왜? 그 때는 이미 모두 멸망하고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이번에도 똑같은 말다툼만 벌이는 여야 정치권의 대응을 지켜보자니 기시감의 피로에 빠진다. `핵무장론`을 들고 나온 여당에 야당은 영락없이 무차별 도끼질이다. 극좌세력들이 `핵무장론`에는 번번이 쌍심지를 켜는 논리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저들이 왜 이 문제에는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고 미군은 집에 가라고 해야 한다`고 부르대지 않는지 도통 모르겠다.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무장 추진 의지는 대단했었다. 1971년 미국이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미군 7사단의 철수를 추진하자 핵무기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프랑스와 극비리에 핵 재처리 시설과 기술공급 계약까지 감행했었다. 미국 CIA 등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10·26 비극 이전까지 비밀 핵개발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돼있다.불길한 예감대로 중국이 초기 비판을 접고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단지 필요에 의해서 우리와 친목을 유지할 뿐, 중국이 끝내 북한을 놓지 않으리라는 진단은 여전히 상수(常數)다. 남북문제에 관한한 중국은 우리에게 영원히 안과 밖이 따로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존재다. 자주적 대북지렛대가 전무한 현실 속에서 지금은 북핵 대응카드 모두를 꺼내놓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때다.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도 무감각해진 우리 국민들의 차분한 반응은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마저 `양치기 소년`교훈의 역설에 걸려들어 그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어영부영하면서 다가올 총선에만 정신이 팔려있는데, 이건 아니다. 나라의 존폐가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위정자들이 정녕 이래도 되는가.집안 한쪽에서 불이 났는데, 머지않아 화마가 온 집을 다 집어삼킬 지도 모르는데 가족들은 양푼을 쓸 것인가 세숫대야를 쓸 것인가 입씨름만 계속하고 있는 한심한 꼴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핵무장론도 좋고 대화론도 좋다. 국제공조의 확대를 통한 해결방안 마련도 절대 필요하다. 이번에는 뭐든 다 들고 나가 이 불을 기필코 꺼야 한다. 북한의 기세에 단 한 치도 밀리지 않으려고 애쓰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상같은 결기와 강단이 새삼 그리워진다.

2016-01-12

`지방분권형 개헌`, 이번 총선에서 불붙여야

▲ 안재휘 논설위원프랑스 정부는 지난 연말 `국가비상사태`와 관련한 헌법 개정안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의 끔찍한 `파리 연쇄테러`를 교훈으로 테러범에 대한 구체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담고 있다. 올랑드 정부가 내놓은 개헌안은 올 2월초부터 논의될 예정인데, 일부 인권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체 분위기는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새해 벽두에, 흥미로운 개헌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떴다. 한 중앙언론이 현역 국회의원 1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개헌` 관련 설문조사에서 85.2%인 139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국회의원은 24명 14.7%에 불과했다. `찬성` 의원들의 정당별 점유율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48.2%, 46.0%로서 차이가 없었다.개헌 추진시기를 묻는 질문에 `찬성` 의원들(139명) 중 71.2%(99명)가 `20대 총선 이후 19대 대선 전`을 주장했다. `2017년 19대 대선 이후`라는 응답은 18.7%(26명)였다. 또 `찬성` 의원들 중 46명(33.0%)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했고, 외교·안보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의원은 27명(19.4%)이었다.역대 국회의장들을 비롯해 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나서서 `개헌` 목소리를 낸 지는 오래 됐다. 현행 헌법은 소위 `직선제 개헌`으로 불리는 지난 1987년 9차 개헌의 산물이다. 다시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된 감격 때문에 안 보여서 그렇지, 법조문의 `부실`을 지적한 옳은 비판들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우리 헌법은 권력구조는 물론이고, 국민 기본권 규정에 대해서 허점이 많다. 특히 현행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지방자치` 부분의 두루뭉술한 명문은 심각한 문제점이라는 비평들이 쏟아져 왔다. 헌법에는 지방자치 규정이 달랑 2개항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부분 법률에 위임하고 있어 중앙정부에 칼자루를 다 쥐어주고 있다.지방자치의 요체인 자치입법권·자주재정권이 원천봉쇄되는 상황에서 지방자치의 전향적 발전은 요원하다. 중앙집권적 사고방식에 절어있는 중앙정부 구성원들은 지방자치의 확대를 기득권 상실의 위태만으로 체감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부족한 능력을 핑계로 통제의 수단들을 연일 고안해내고, 권한을 무참히 휘두른다.지난해 지방자치 20주년을 결산하면서 지역의 정치인과 행정가, 언론인들은 두텁고도 질긴 중앙집권주의의 벽에 낙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방자치`의 정신을 헌법에다가 구체적으로 못 박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방정부를 하부기관으로나 여기는 중앙정부의 인식과 관행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철옹성이다.개헌논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다른 한 언론은 새해 여론조사에서 개헌은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 때 공약으로 제시해 차기 정부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이 41.1%로 가장 많이 나왔다는 민심을 전하고 있다. 개헌논의는 최소한 2년 정도는 걸린다는 것이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경우에서 입증되고 있다.국민들의 삶이 다양해지고 이해관계가 첨예해진 지금 30년 가까이나 손을 안 댄 낡은 헌법을 그냥 두는 것은 썩은 대들보와 서까래를 방치하고 무심히 사는 어리석음과 같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테러범을 처리하는 문제까지 헌법에 담으려는 프랑스의 예에서 보듯이, 필요한 시대적 가치는 헌법에다 세세히 담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20대 총선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역 예비후보들에게 `지방분권형 개헌` 의지를 묻고 싶다. 선거 때 잠깐 표만 구걸해보자고 하는 입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지방분권을 위해 치열하게 싸울 용의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아니, 이 나라 민주화의 가장 뜨거운 소명인 `지방분권형 개헌`을 위해 혼신을 불사르는 진짜 투사가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2016-01-05

`안철수 신당`이 수상하다

▲ 안재휘 논설위원이념이 정당의 색깔을 대변하는 미국이나 영국의 정치와 달리 한국정치의 키워드는 `패거리`다. 우리 정치사는 이승만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패거리정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는 정치뉴스 역시 정책 이야기가 아니라, 친노계·친이계·친박계 등 패거리정치 동향에 흥미를 보태는 관성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이같은 특성은 우리 정치인들을 움직여온 가장 큰 요소는 사뭇 정책이 아닌 `공천권`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정치권력의 한 복판에 군림하는 주군(主君)에게 행여 밉보이기라도 하는 날엔 단박에 `공천장`이 찢어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정치생명을 이어가는 필수조건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20대 총선을 저만치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새정연을 탈당해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오랫동안 균열 조짐을 보이던 정치판이 드디어 진동을 시작했다. 작금의 요동만으로는 대지진으로 번져 정치지형을 크게 바꿔낼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다가오는 내년 총선의 지형이 결코 과거와 꼭 같지는 않으리라는 예측만은 가능하다.리얼미터가 지난 24일 공개한 지지율 여론조사결과에서 새누리당은 37.8%, 새정치연합은 21.9%를 기록했고, 아직 탄생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이 19.5%로 새정연의 턱밑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도 안철수 의원은 16.3%로 폭등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17.6%, 새정연 문재인 대표의 16.6%를 바짝 따라붙는 추세를 보였다.안철수 의원의 발언을 분석해보면, 그가 새누리당과 새정연이 방심하고 있는 중도성향 민심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신당의 기조와 관련해 “낡은 진보와 수구보수 대신 `합리적 개혁노선`을 정치의 중심으로 세우겠다”고 밝혔다.이런 와중에 새누리당은 공천문제를 둘러싼 갑론을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180석 이상 확보론`까지 언급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행태는 야권분열에 힘입은 낙승(勝)을 예단한 여파로 유추된다. 하지만 출렁대기 시작한 정치바다가 결코 새누리당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할 것 같지만은 않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득표결과를 반추해보면 더욱 그렇다.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지역구 득표에서 진보야권(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에 12만2천440표를 뒤졌다.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에서도 84만 표가 모자랐다. 정당득표율로 대비해보면 보수와 진보는 48% 대 48%로 팽팽했다. 새누리당을 지지한 표심은 어디까지나 야당들이 덜 미더워서 돌려 찍은 차선의 기표였다는 해석이 타당한 것이다. 안철수 신당이, 진영논리에 갇혀 주야장천 격돌만 계속하는 기성정치권에 질려있는 중도개혁 성향의 지지층을 제대로 아우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게다가 인물과 정책으로 어느 정도 신뢰감만 확보한다면 태풍의 핵으로 비약할 수도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연이 지금처럼 혁신을 외면하고 패거리 구태정치를 지속할 경우 상황이 급반전될 개연성이 순간 높아진 것이다.야권분열이 집권당에 유리한 국면인 것은 기본적으로 맞다. 그러나 호남의 반문(反문재인)정서가 수도권으로 번져 중도신당으로 쏠려갈 경우, 아니라도 고전(苦戰)상황인 새누리당으로서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만약 패거리정치의 사욕들을 큰마음으로 제어하지 못하고 이판사판 내홍으로까지 치달아간다면 새누리당은 스스로 감당키 어려운 위기국면을 맞을 지도 모른다.`안철수 신당`이 수상하다. 새누리당과 새정연의 급소를 찔러가고 있다. 골통 정당들이 수렴하지 못하는 비판적 중도민심의 여백들을 공략목표로 삼고 있음이 뚜렷하다. 새누리당은 지금 야권분열을 희희낙락하며 밥그릇다툼에 함몰될 때가 아니다. `이익은 한 사람을 움직이고, 대의(大義)는 무리를 움직인다`는 고전적 금언을 되새겨보기를 진심으로 권면한다.

2015-12-29

`뻥 축구`와 전략공천

▲ 안재휘 논설위원대한민국의 축구역사는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이전과 이후로 나눠 기록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2002월드컵 4강 신화보다도 더 소중한 것은 따로 있다. 그것은 우리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줄곧 `뻥 축구`로 남우세를 당해온 원인을 정확하게 알아냈다는 사실이다. 히딩크는 명성이 아닌 실력과 상태만으로 선수를 뽑았다. 운동복을 빠트리고 연습장에 나온 한 스타플레이어를 그가 끝내 외면한 일화는 유명하다.뿐만이 아니었다. 히딩크는 포지션별로 선수들을 복수로 선발해 공정하면서도 혹독한 경쟁을 시켰다. 내부긴장 강화로 실력향상은 물론이고 주전선수 부상에도 대비했다. 그는 `경쟁이 없으면 경쟁력도 없다`는 진리를 철저하게 신봉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수십 년 고질적 병폐였던 축구계 파벌주의를 얼씬도 못하게 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훈련을 실시한 것이 월드컵 4강 달성의 진짜 비결이었던 것이다.새누리당이 공천특별기구를 구성하고 내년 4월 치러질 20대 총선의 준비 작업을 본격화했다. 새누리당 공천을 둘러싸고 당 안팎에서는 `험지출마론` `전략공천``우선추천``계파안배` 등의 낯익은 용어들이 산발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전략공천`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반대파를 숙청한 치졸한 당쟁참사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몹시도 따가웠던 모양이다.대신 새누리당은 지난해 2월 개정된 당헌 103조의 규정을 구실로 `전략공천`이라는 말을 슬며시 `우선추천`이라는 말로 바꿨다. 워낙 교졸한 말장난으로 국민들 판단력을 마비시키는 일에 이골이 난 정치인들이라지만, 국민들 귀에는 `둘러치나 메치나 마찬가지`인 궤변으로 들려온다. 용어 하나 슬쩍 바꿔 입에 물고서는 또다시 낯 뜨거운 학살을 음모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거둬지지 않는다.사실 `전략공천`이라는 본질적 개념은 선거에서 대단히 유효한 작전용어다. 여권 일각에서 이어지고 있는 `험지 출마론`이야말로 전략공천의 정확한 의미에 맞닿는 아이디어다. 총선은 의회민주주의를 하는 나라의 권력지도를 만드는 최고의 결전장이다. 의석 하나하나가 정당의 미래 정치력과 직결된다. 한 자리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이기는 게임`을 시도해야 한다.김무성 대표가 “전략공천은 없다”는 공언을 거둬들였다는 뉴스는 없었다. 그런데 새누리당 공천특별위원장인 황진하 사무총장은 “대구·경북(TK)도 우선추천 지역으로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선투표제 역시 “최고위원회의 제안일 뿐 도입이 확정된 건 아니다”라고 밝혔다. 공천작업을 막 시작한 새누리당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종의 변화 조짐을 느끼게 하는 발언이다.하지만, 황 사무총장의 발언을 당헌 규정에 맞춰보면 어긋난 부분이 확연히 드러난다. 당헌에 명시된 `우선추천` 조건은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의 추천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역`과 `공모에 신청한 후보자가 없거나, 여론조사 결과 등을 참작하여 추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지역` 두 가지로 한정돼 있다. 어디에다 꿰어 맞춰 봐도 TK지역은 해당사항이 없다.말이 공천이지, 실상은 본선이나 다름없는 새누리당의 TK공천은 4월 총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집권당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예고편이다. TK공천을 얼마나 공평무사하게 치러내느냐 하는 성적표는 곧 새누리당의 미래를 결정짓는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불편부당한 민주적 공천절차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저급한 파벌주의를 일체 배격하고, 치열한 경쟁으로 진정한 경쟁력을 키워 대한민국의 축구 위상을 몇 단계 끌어올린 히딩크의 성공열쇠를 우리 정치권이 반추해볼 가치는 이미 충분하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패거리정치의 볼모가 되어 유치한 `뻥 정치`로 국민 골칫거리로 남아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2015-12-22

`만장일치제` 덫에 걸린 불량국회

▲ 안재휘 논설위원신라시대 화백회의(和白會議)는 진골 이상의 20여명 귀족들이 참여해 국가 중대사를 의논하던 최고 의사결정기구였다. 국가형태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던 시대에 경주를 중심으로 한 연맹왕국 사로국(斯國) 6개 촌락의 대표들이 모여 중대사를 논하던 남당(南堂)제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화백회의는 의사결정 방식이 `만장일치제(滿場一致制)`였다는 점에서 후세 사학자들과 정치가들에게 큰 관심을 끈다. 그런데 놀랍게도, 21세기 대한민국 국회에서도 내용상 `만장일치제`가 운영되고 있다. 그 어떤 법안도 소속의원 전원 또는 100%에 준하는 찬동의사가 발현되지 않으면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는다. 무슨 엉뚱한 소리냐고 할 지 모르지만, 근년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행태를 보면 `우리 국회가 만장일치제를 택하고 있다`는 단정은 부인하기가 어렵다. 바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다.국회선진화법은 지난 2012년 5월 2일 국회본회의를 통과해 19대국회부터 3년여 적용되고 있는 현행 국회법이다. 그 이전 오랫동안 우리 국회의사당은 늘 꼴불견 격투기나, 낯 뜨거운 날치기가 벌어지는 추태 현장이었다. 바로 그 검은 역사를 종식시키고자 만든 법이 국회선진화법이다. 그러나 이 법은 마치 `경유엔진`차에다가 무식하게 `휘발유`를 주유하고 냅다 달리려고 하는 자동차처럼 만성적인 `정치고장(政治故障)`의 원천이 되고 말았다.국회선진화법 실시는 전혀 신사적이지도 않고, 도덕적이지도 않은 정치풍토를 간과한 치명적인 실수다. 정치가 선진화된 다음에나 비로소 선용될 고상한(?) 법 장치를 성급하게 만들어 적용한 것이다. 흡사,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은 항암제를 환자에게 마구 투여한 과오와도 같다. `예산안 법정시한 준수`와 `몸싸움 근절`만 지키는데 유효할 따름, 의회민주주의의 건강성을 모두 망가뜨리는 새로운 암종(癌腫)으로 발전했다.현행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장의 쟁점법안 직권상정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쟁점법안에 대한 안건 조정도 위원회 재적의원 3분의 2이상이 찬성해야 가능하다. 신속처리 대상 안건의 지정 역시 재적 5분의 3이상의 찬성을 요한다. 얼핏 보았을 때는, 법률안에 대해서 국회의원들이 각자 소신껏 표결에 응하기만 한다면 긴요한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그러나 이 대목에 결정적 함정이 있다. 우리 국회는 유사 이래 쟁점법안 처리에 있어서 국회의원의 소신투표가 제대로 보장된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것이 아무리 민생을 위해서 절박한 법안이라고 해도 쟁점법안은 무조건 여야 협상의 흥정거리로 전락한다.올 11월 30일 현재 국회 의석분포는 총원 294명에 새누리당 157석(53.4%), 새정치민주연합 127석(43.2%), 정의당 5석(1.7%), 무소속 5석(1.7%)이다. `당론투표` 방식이 철칙으로 지켜지고 있는 완고한 정치풍토에서 아무리 계산기를 두드려 봐도 어느 한 편이 3분의 2가 되거나, 5분의 3이 될 확률은 제로(0)다. 그러니, 선진화법의 의결방식은 형식상 `특별정족수제도`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만장일치제`로 작동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소수`의 어깃장에 `다수`가 형편없이 끌려 다니고 있는 몰골이 오늘날 대한민국 국회의 자화상인 것이다. 이 골칫거리를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은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하는 것 하나 뿐이다. 국회는 하루빨리 과반수를 의결조건으로 하는 절대다수결(Absolute majority)을 회복해야 한다. `만장일치제`덫에 걸린 `불량국회`가 갈 길 바쁜 박근혜정부의 발목을 틀어잡고 있다. 원인을 뻔히 알면서도, 여당의 `무기력`과 야당의 `몽니정치`를 어쩌지 못해 애태우는 박 대통령의 모습이 안타깝다. 규모도 아주 작고, 현안도 극소수였던 신라 화백제도의 `만장일치제`는 어디까지나 역사 속의 화석일 따름이다.

2015-12-15

TK정치권, `공천혁명` 선도해야

▲ 안재휘 서울본부장내년 4월 총선이 가시권에 들기 시작한 요즘 TK(대구·경북)정치권에 `낙하산 비상령`이 내렸다. 현역 국회의원들과 지역에서 붙박이로 살면서 텃밭을 가꿔온 정치인재들은, 불쑥불쑥 나타나 입지(立志)를 외치는 새로운 인물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전면 물갈이`설에 현역의원들이 벌벌 떨고 있다는 말도 나돌고, 이미 누군가 내정돼 사실상 게임이 끝났다는 확인불가의 예단도 시시때때 돌출한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 출마하려는 인재들이 많다는 것은 축복이다. 눈치를 보아야 할 요인들이 없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민주화를 추구해온 나라에서는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의 출마선언 러시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요인들이 있다. 일부 인사들 주변에서 직·간접적으로 풍겨나는 `전략공천` 냄새 때문이다. “만약 경선하라고 하면 집에 가겠다”며 농반진반(半眞半) 자신의 낙점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측도 있다.TK지역에 나타난 이런 퇴행적 현상은 가뜩이나 침체된 지역정치의 앞날에 심각한 먹구름이다. 중진을 키우지 않는 풍토 때문에 TK정치인들이 어쩌면 향후 10년 이상 중앙정치권에서 고전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판이다. 여의도 정치를 조금이라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정치가 얼마나 난해한 고차방정식인지, 경륜이 아니면 헤쳐 나갈 수 없는 복잡다단한 전문 영역인지를 잘 안다.물론, 중진들만이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여의도에 머물면서 사리사욕 챙기는 기술만 늘리는 고약한 정치인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엉터리 정치인들을 솎아 내거나, 바른 인재를 등용시키는 모든 일은 이제 국민이 직접 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선진 민주주의의 요체다.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상향식 공천`을 완성시키는 일이야말로 이 나라 민주화의 남은 핵심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집권과정이 `쿠데타`였다”며 끝내 낮추어 밟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그는 민족의 배고픔을 해결해준 영웅으로 깊이 각인돼 있다. 박 전 대통령만큼 `결과`가 `과정` 의 논란을 넘어서는 지도자도 드물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박 전 대통령의 통치에 엄청난 `혁신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혁신을 주도하는 세력이 권력중심을 점유하는 것은 현대정치의 중요한 특성이다. 지역정치의 위상도 마찬가지다. 어느 지역의 `혁신성` 수준이 정치지형 형성의 최대변수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혁신의식`의 실천은 총칼보다 훨씬 덜 위험하고 훨씬 더 위력적이다. TK정치가 이 나라 정치의 중심에서 여전히 구심동력을 발휘하고자 한다면 이번 기회에 반드시 `공천혁명`을 선도하는 전범(典範)을 보여야만 한다.영·호남에서 여전히 운위되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이 참이라면, TK지역에서는 이미 20대 총선이 시작된 셈이다. 대한민국 정치사 주역들을 줄줄이 배출해온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국 그 어느 지역보다도 모범적인 `상향식 공천`을 실천해야 한다. 경쟁을 두려워하는 인재들이 중앙정치권에서 경쟁력을 갖기 원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다름 아니다.낙하산을 타고 오건, KTX를 타고 오건 지역 정치권에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몰려드는 것은 나쁠 이유가 없다.하지만, 특정 정치지도자의 완장을 차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려는 의식을 갖고 덤벼드는 행동은 이 시대에 결코 맞지 않다. 우리 정치는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축인 TK정치가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뚜렷한 비전을 들고 공정한 경선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그렇게 함으로써 TK정치가 왜 이 나라 정치의 견인차인지를 명명백백 입증해야 한다. 집권당 새누리당 중앙당사에는 오늘도 `새누리당의 새로운 길, 공천권을 국민에게`라는 대형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2015-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