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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오프`와 `공천학살`

등록일 2016-03-08 02:01 게재일 2016-03-0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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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조선을 망국으로 몰아넣은 지독한 당파싸움은 피비린내 나는 사화(士禍)들을 낳았다. 역모조작과 궤변으로 왕을 꼬드겨 반대파를 몰살시키려는 사악한 정치집단이 존재했고, 그런 흐름을 왕권강화에 써먹은 교활한 군주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참화였다. 천재 학자요 대표적인 북벌론자였던 백호 윤휴가 당쟁에 몰려 사약을 받으면서 “나라에서 유학자를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왜 죽이는가?”라고 한탄했다는 야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4월13일로 예정된 20대 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정치권의 권력다툼이 점입가경이다. `컷오프`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학살극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먼저 시작했다. 야당 불모지 대구에서 출마를 준비하던 홍의락을 `컷오프` 명단에 넣은 것이 김부겸의 잠룡 부상(浮上)을 차단하려는 음험한 암수로 해석되면서 의혹을 양산하고 있다. `점령군 사령관` 소리를 듣는 김종인 대표의 지휘 아래 더불어민주당은 거침없는 `전략공천` 행군을 이어가고 있다.

엉큼한 장난을 예고하는 염치없는 으스댐과 연막탄 매연이 가득하던 새누리당 공천무대 위에는 드디어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의 칼춤이 시작됐다. 여당 의원들이 이한구 위원장 주변에서만 북적대는 국회 본회의장 장면은 때마다 차도학살(借刀虐殺)의 참극을 빚어낸 우리 공천문화의 천박성을 대변한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과 마찬가지로 새누리당 공천 역시 육참골단(肉斬骨斷), `논개작전(論介作戰)`의 사술이 얼비친다.

`민주화`를 품지 않는 정치권의 `물갈이론`은 사기다. 지난 총선들이 그랬듯이, 권력을 잡은 측이 칼잡이를 고용한 뒤 수상한 교체지수 꼬리표를 달아 `컷오프`라는 꼼수로 정적을 쳐내는 `물갈이`는 저열한 민심현혹이다. 지난날의 공천이 `민주화 혁명`에 다가가기는커녕 말 잘 듣는 내편 `붕어`들만 골라 썩은 어항에 집어넣은 어리석은 `붕어갈이`에 불과했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불편한 진실이다. `컷오프` 또는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의 `공천학살`이 바로 한국정치 `썩은 물`의 오염원이다. 이를 국민들에게 `물갈이`라고 왜곡선전하는 것은 낯 두꺼운 국민모독이다. 작금 자행되고 있는 `공천학살극`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2008년과 2012년의 가혹한 `붕어갈이`가 18대국회와 19대국회의 성공을 견인했다는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그때 자기들이 무더기로 갈아 넣은 붕어들을 지금 와서 모개로 퇴짜 놓는 모순은 도대체 어떻게 변명되는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낯선 인사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칼자루를 잡고 대한민국 정치를 들었다놨다하는 현실이 우스꽝스럽다. 그들이 마치 염라대왕이라도 된 듯이 `조자룡 헌 칼 쓰듯이` 공천여부를 갈라내는 양상은 분명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 앞에 머리를 조아려 낙점을 갈망하는 뭇 정객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명예심은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다가 우리 정당정치가 이토록 치욕스러운 퇴행 몰골을 면치 못하는지 한숨이 절로 난다. TK(대구·경북)지역의 공천이 초미의 관심사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해온 대로 충격적인 결과가 빚어질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그러나 그 결과는 추후 한국 정치지형에서 냉엄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역사는 작위를 주도한 사람들의 만행에 결코 영원히 동조하지는 않는다. TK정치는 이제, 지금껏 감당해온 한국정치의 중심기둥 역할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닌가 기로에 서 있다.

`공천혁명`을 고대하는 국민 여망을 끝내 묵살하고 구태로 돌아간 여야 정치권은 과연 이번 4·13총선에서 유권자들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21세기 대명천지에, 악착같은 역모조작과 궤변으로 왕의 칼을 빌려 동량(棟梁)들을 무수히 참살했던 조선의 추악한 당쟁사화 관성이 도무지 멈춰지지 않는 어불성설의 현실이 안타깝다. `공천 바꿔야 정치 바뀐다`는 경험명제는 정녕 짓밟히고 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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