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정부는 지난 연말 `국가비상사태`와 관련한 헌법 개정안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의 끔찍한 `파리 연쇄테러`를 교훈으로 테러범에 대한 구체적이고 강력한 조치를 담고 있다. 올랑드 정부가 내놓은 개헌안은 올 2월초부터 논의될 예정인데, 일부 인권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체 분위기는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새해 벽두에, 흥미로운 개헌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떴다. 한 중앙언론이 현역 국회의원 16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개헌` 관련 설문조사에서 85.2%인 139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필요하지 않다`고 답한 국회의원은 24명 14.7%에 불과했다. `찬성` 의원들의 정당별 점유율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48.2%, 46.0%로서 차이가 없었다.
개헌 추진시기를 묻는 질문에 `찬성` 의원들(139명) 중 71.2%(99명)가 `20대 총선 이후 19대 대선 전`을 주장했다. `2017년 19대 대선 이후`라는 응답은 18.7%(26명)였다. 또 `찬성` 의원들 중 46명(33.0%)은 `대통령 4년 중임제`를 선호했고, 외교·안보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 담당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의원은 27명(19.4%)이었다.
역대 국회의장들을 비롯해 여야 유력 정치인들이 나서서 `개헌` 목소리를 낸 지는 오래 됐다. 현행 헌법은 소위 `직선제 개헌`으로 불리는 지난 1987년 9차 개헌의 산물이다. 다시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대통령을 뽑게 된 감격 때문에 안 보여서 그렇지, 법조문의 `부실`을 지적한 옳은 비판들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우리 헌법은 권력구조는 물론이고, 국민 기본권 규정에 대해서 허점이 많다. 특히 현행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지방자치` 부분의 두루뭉술한 명문은 심각한 문제점이라는 비평들이 쏟아져 왔다. 헌법에는 지방자치 규정이 달랑 2개항에 불과하다. 그나마 대부분 법률에 위임하고 있어 중앙정부에 칼자루를 다 쥐어주고 있다.
지방자치의 요체인 자치입법권·자주재정권이 원천봉쇄되는 상황에서 지방자치의 전향적 발전은 요원하다. 중앙집권적 사고방식에 절어있는 중앙정부 구성원들은 지방자치의 확대를 기득권 상실의 위태만으로 체감한다. 지방자치단체의 부족한 능력을 핑계로 통제의 수단들을 연일 고안해내고, 권한을 무참히 휘두른다.
지난해 지방자치 20주년을 결산하면서 지역의 정치인과 행정가, 언론인들은 두텁고도 질긴 중앙집권주의의 벽에 낙망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지방자치`의 정신을 헌법에다가 구체적으로 못 박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지방정부를 하부기관으로나 여기는 중앙정부의 인식과 관행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철옹성이다.
개헌논의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다른 한 언론은 새해 여론조사에서 개헌은 `2017년 19대 대통령선거 때 공약으로 제시해 차기 정부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응답이 41.1%로 가장 많이 나왔다는 민심을 전하고 있다. 개헌논의는 최소한 2년 정도는 걸린다는 것이 세계 여러 나라들의 경우에서 입증되고 있다.
국민들의 삶이 다양해지고 이해관계가 첨예해진 지금 30년 가까이나 손을 안 댄 낡은 헌법을 그냥 두는 것은 썩은 대들보와 서까래를 방치하고 무심히 사는 어리석음과 같다.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테러범을 처리하는 문제까지 헌법에 담으려는 프랑스의 예에서 보듯이, 필요한 시대적 가치는 헌법에다 세세히 담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20대 총선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역 예비후보들에게 `지방분권형 개헌` 의지를 묻고 싶다. 선거 때 잠깐 표만 구걸해보자고 하는 입 발린 소리가 아니라, 지방분권을 위해 치열하게 싸울 용의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아니, 이 나라 민주화의 가장 뜨거운 소명인 `지방분권형 개헌`을 위해 혼신을 불사르는 진짜 투사가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