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옆집아이가 점점 더 고약한 무기를 만들어내며 협박을 일삼고 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다른 이웃들에게 일러바치는 고자질뿐이란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야기다. 저들은 한사코 `수소폭탄`이라고 욱대기고 우리는 자꾸만 `그냥 핵폭탄`이라고 해석한다. `핵폭탄`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터무니없는 착각마저 횡행한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매번 그랬다. 북한문제에 관한 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희망사항을 과학적 분석인 양 떠들어댄다. 북한 지도자를 우스꽝스런 삐에로로 만들어놓고 나서는 희한한 자위에 빠진다. 정말 위험한 것은 북한은 절대로 전쟁을 못 일으킬 것이고, 설사 일으킨다 해도 한반도에서는 핵을 쓰지 않는다고 터무니없이 낙관하는 일이다.
이번 북한의 4차 핵실험 상황에 관한 많은 발언 중에서 “우리가 졌다”는 한 마디보다 더 압축적인 표현은 없다. 국정원장의 그 한 마디를 놓고 흥분하는 윤똑똑이 정치인들의 속내는 뻔하다. 또 누군가를 희생양 삼으려는 비겁한 심리가 발동했을 것이다. 져놓고도 이겼다고 말하는 후안무치보다는 “졌다”고 시인하고 다시 시작하는 편이 백번 더 나은 것 아닌가.
북한의 전략은 철저하게 `채찍`과 `당근` 병용이다. 앞에서는 대화에 응하면서 뒤로는 핵무기 개발에 국력을 몽땅 쏟아 붓는다. 반면에 우리는 허구한 날 `채찍만 쓰자`느니 `당근만 쓰자`느니 해법을 놓고 집안싸움만 해왔다. 그러니 질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또 졌다”라고 말할 기회란 이제 영영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왜? 그 때는 이미 모두 멸망하고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똑같은 말다툼만 벌이는 여야 정치권의 대응을 지켜보자니 기시감의 피로에 빠진다. `핵무장론`을 들고 나온 여당에 야당은 영락없이 무차별 도끼질이다. 극좌세력들이 `핵무장론`에는 번번이 쌍심지를 켜는 논리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저들이 왜 이 문제에는 `우리도 핵무기를 만들고 미군은 집에 가라고 해야 한다`고 부르대지 않는지 도통 모르겠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핵무장 추진 의지는 대단했었다. 1971년 미국이 `닉슨 독트린`에 따라 주한미군 7사단의 철수를 추진하자 핵무기 개발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프랑스와 극비리에 핵 재처리 시설과 기술공급 계약까지 감행했었다. 미국 CIA 등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은 10·26 비극 이전까지 비밀 핵개발을 멈추지 않은 것으로 돼있다.
불길한 예감대로 중국이 초기 비판을 접고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단지 필요에 의해서 우리와 친목을 유지할 뿐, 중국이 끝내 북한을 놓지 않으리라는 진단은 여전히 상수(常數)다. 남북문제에 관한한 중국은 우리에게 영원히 안과 밖이 따로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존재다. 자주적 대북지렛대가 전무한 현실 속에서 지금은 북핵 대응카드 모두를 꺼내놓고 원점에서 재검토할 때다.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살면서도 무감각해진 우리 국민들의 차분한 반응은 한편으로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마저 `양치기 소년`교훈의 역설에 걸려들어 그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으로 어영부영하면서 다가올 총선에만 정신이 팔려있는데, 이건 아니다. 나라의 존폐가 걸린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위정자들이 정녕 이래도 되는가.
집안 한쪽에서 불이 났는데, 머지않아 화마가 온 집을 다 집어삼킬 지도 모르는데 가족들은 양푼을 쓸 것인가 세숫대야를 쓸 것인가 입씨름만 계속하고 있는 한심한 꼴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핵무장론도 좋고 대화론도 좋다. 국제공조의 확대를 통한 해결방안 마련도 절대 필요하다. 이번에는 뭐든 다 들고 나가 이 불을 기필코 꺼야 한다. 북한의 기세에 단 한 치도 밀리지 않으려고 애쓰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추상같은 결기와 강단이 새삼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