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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화에게 `국회의장`을 묻다

등록일 2016-01-26 02:01 게재일 2016-01-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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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국회선진화법은 축구경기에서 골키퍼만이 아닌 모든 선수가 다 손으로 공을 잡을 수 있도록 허용한 웃음거리 경기규칙 같은 `돌연변이` 법규다. `당론투표` 전통이 금과옥조처럼 지켜지고 있는 나라에서, 어느 당도 점유하지 못한 2/3이상이나 3/5이상의 의결정족수를 적용한 것은 실질적으로 `만장일치제법`으로 작동되고 있다. 아테네 고대민주주의 이래 민주주의국가에서 철칙으로 지켜져 온 과반다수결 원칙을 깬 것이다.

19대 국회 후반기 수장인 정의화 국회의장이 때 아닌 동네북 신세다. 특히 친정인 여당으로부터 `목에 걸린 생선가시`, `하늘에서 떨어졌느냐`는 둥 뭇매질을 당하고 있다. 작금의 상황을 국회법 제85조의 규정에 명시된 `국가비상사태의 경우`로 해석해 직권상정을 강박하던 새누리당은 다시 국회법 87조를 편법적으로 활용해 `재적의원 과반수가 본회의 부의를 요구하는 경우`를 국회의장 직권상정 요건에 추가하는 대안을 만들어 제안했다.

정 의장은 “잘못된 법을 고치는데 또 다른 잘못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며 거부하는 대신 중재안을 제시했다. 25일 발표된 정의화 의장의 중재안은 상임위 단계에서 `재적의원 60% 이상 요구`로 돼있는 신속처리 안건 상정요건을 `과반 요구`로 완화하고, 지금까지 `상원` 노릇을 해온 법사위의 월권을 제한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일단 국회선진화법의 맹점을 제대로 분석하고 올바른 대안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19대 국회는 발의된 법안 1만 5천여 건 가운데 최저수준인 12% 정도만 최종 가결시켜 선진화법의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적나라하게 입증했다. 결국 `동물국회`를 종식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식물국회`를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 셈이다. 선진화법은 모든 국회의원들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또한 애국적이라는 소박한 낭만주의와 아마추어리즘이 저지른 중대과실이다.

국회의장을 희생양으로 만들어서 자신들의 책임을 모면해보겠다는 심산이 아니라면, 정치권은 국회 수장을 더 이상 모욕하는 언동을 멈춰야 한다. 편법과 변칙을 강요하면서 윽박지르기보다는 헌정사에 두고두고 씹힐 악역 감행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 그의 고뇌를 이해해야 한다. 더욱이 정 의장은 처음부터 국회선진화법에 반대하면서 `19대 국회가 무기력한 국회가 될 것`이라는 정확한 예견까지 내놓았던 정치인 아니던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밝힌 것처럼 오늘날의 정치세력과 국회는 선진화법을 소화할 능력이 전혀 안 되는 수준이다. 지금처럼 정부여당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딴죽을 걸어 못하게 해야 자기 패들에게 이익이라는 천박한 의식이 야권을 지배하는 한 더욱 그렇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선진화법 때문에 선진화법의 합의개정은 요원한 것이 현실이다.

20대 총선 불출마 선언과 함께 19대 국회에서 반드시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힌 정 의장의 진정성을 믿는다. 기왕에 절박한 심정으로 합리적인 중재안을 내놓고 `임기 내 개정`이라는 시한까지 정했다면 국회의장이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국회 운영규칙을 한 번도 단독처리하지 않은 대한민국 국회의 전통도 중요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국회를 방치하고 떠나는 것은 더 불명예스러운 일이다.

이제 정의화 의장의 혁명적인 용단이 필요한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 야당이 끝내 응하지 않는다면, 새누리당이 찾아낸 국회법 87조의 묘수를 사용해서라도 악법을 고쳐내야 한다. `편법`을 썼다는 비난과 오명보다도, 불치병에 걸린 국회를 수술하는 일이 훨씬 더 가치가 높다. 저명한 외과의사 정의화의 집도가 정말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국회의장`은 게임규칙이 잘못된 줄 알더라도 경기를 진행하기만 하면 그만인 축구경기의 심판이 아니다. 대한민국 국회에 무겁게 드리운 `국회선진화법`의 저주를 풀어낼 사명이 그의 손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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