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 태종 때 간의대부(오늘날 감사원장 격) 위징(魏徵)은 최고 권력자인 황제에게 무려 300번이나 목숨을 걸고 `그것은 아니 되옵니다`를 외쳤다. 위징의 깐깐한 간언에 분노한 태종은 수없이 “끌어내어 참하라”고 소리쳤지만, 곧바로 명을 거두곤 했다. 위징은 어느 날 황제에게 자신을 `충신(忠臣)보다는 양신(良臣)으로 살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태종이 그 까닭을 묻자 위징은 이렇게 대답한다.
“충신은 자신과 가족과 가문이 풍비박산되며 군주 역시 악인으로 낙인찍혀 나라가 결국 멸망합니다. 하지만 양신은 살아서는 명성을 얻고 죽어서도 대대손손 번창하며 군주 역시 태평성대를 누려 나라의 종사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훗날 당 태종은 고구려 침략에 나섰다가 안시성 전투에서 무참히 패퇴한 뒤 “위징이 살아있었으면 나한테 이런 걸음을 하게 하지는 않았을 것(魏征若在,不使我有是行也)”이라며 그의 부재를 한탄하기도 했다.
20대 총선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혼전 양상이 깊어지고 있다. 이번 총선을 치르면서 나타난 가장 특이한 현상은 한국정치사를 완강히 지배해온 `카르텔 정치`가 민심의 저항에 부딪쳐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카르텔 정치`에 찌들어있는 한국정치의 가장 큰 폐해는 지역대결 구도다. 호남은 `위험한 진보`의 진원지로, 영남은 `수구꼴통`의 근거지로 서로 낙인찍어 놓고 선동가 중심으로 패 갈라 감정의 골을 거듭 후벼파는 정치가 지속돼왔다.
`카르텔 정치`의 또 다른 적폐는 소수의 명망가들이 작당하여 세력을 만들고, 누구든 거기에 줄을 잘 서야 두고두고 권력을 거머쥘 수 있는 구조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우리 정치권에는 민심을 정치에 정직하게 반영하는 기능을 익힌 민생 정치인들이 드물다. 시위대 한 복판에서 거친 목소리로 살아온 운동가이거나, 소위 전략공천을 통해 반짝 영입된 `줄 잘 서고 말 잘 듣는 기술자들`이 주류다.
패거리정치·패권정치·보복공천·조폭공천…오늘날 골칫거리가 된 모든 구닥다리 행태들은 `카르텔 정치`의 악취 나는 부산물들이다. 친노 패권주의에 볼모잡혀 있던 호남이 안철수 신당인 `국민의당` 출현 이후 요동치고 있다. 친박 핵심들의 눈꼴 신 막장공천을 지켜보던 대구·경북 민심도 진동하고 있다. 특정 정치이념이나 명망가에 의해 휘둘리기만 하던 국민들이 비로소 고개를 갸우뚱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는 패권·패거리정치의 특성이다. 마치 조직폭력단처럼, 권력자의 판단이 아무리 틀렸어도 토를 달아서는 안 된다. 다른 생각을 말하면 곧바로 배신자가 되어 내침을 당한다. 협량한 권위주의가 집단의 분위기를 지배한다. 그렇게, 소속정당의 정책이나 지도자의 언행에 쓴소리를 하는 것을 `배신`으로 몰아 때리는 만행 풍토를 그대로 두고 무슨 수로 선진 민주정치를 구현할 것인가.
공자는 `공자가어`에서 신하가 임금에게 간언하는 방법을 5가지로 분류해 설명한다. 궤변으로 군주를 깨닫게 하는 휼간(譎諫), 꾸밈없이 간하는 당간(戇諫), 자신을 낮추면서 간하는 항간(降諫), 거리낌 없이 간하는 직간(直諫), 완곡한 표현으로 빗대어 풍자해 간하는 풍간(諷諫)이 그것이다. 공자는 이 가운데 풍간을 가장 이상적인 간언으로 꼽았다. 국운을 해치는 육사신(六邪臣)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간언의 가치를 논한 공자의 지혜가 새롭다.
`권위주의`를 청산하는 것이 참다운 권위를 세우는 지름길이라는 역설을 기억해야 할 때다. 이번 총선이 대한민국의 고질적 `카르텔 정치`의 종언을 고하는 의식이었으면 좋겠다. 충신을 넘어 양신의 길을 가고자 기꺼이 직언의 칼날 위에 올라섰던 위징은 황제 앞에서 임금과 백성의 관계를 이렇게 풍간한다. “임금은 배요, 백성은 물과 같습니다. 물은 능히 배를 실을 수 있으나, 또한 배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습니다. (君爲舟 民似水 水能載舟 亦能覆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