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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朴)타령`이 기가 막혀

등록일 2016-02-02 02:01 게재일 2016-02-02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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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문재인은 고 김대중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을 데려다가 기념촬영을 하고, 안철수의 측근은 몰래 녹음한 안 의원과 이희호 여사와의 대화내용을 언론에 흘렸다. 대구에서는 자칭 진박(眞朴) 몇 명이 따로 모여서 마치 신당창당이라도 한 듯 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잇달아 나타나는 퀴퀴한 영상들은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상식과 체면에 기초하지 않은 행동들이 빈발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미 20대 총선은 불이 붙었다. 예선이 곧 본선일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TK(대구·경북)지역은 진작부터 총선 한복판에 돌입해 있다. 후보들은 각종 연고를 끌어다대며 젖 먹던 힘까지 다 짜낸다. 박근혜 대통령을 당선 보증수표 삼아 권력을 쟁취하려는 발싸심들은 거의 용광로 수준이다.

`친(親) 박근혜계`를 뜻하는 `친박`이라는 용어는 어느새 고전(古典)이 됐다. 원박·탈박·월박·짤박·구박·신박을 거쳐 용박·가박·진박·진진박… 거의 날만 새면 한 개씩 늘어나는 형국이다. 진박 감별사를 자처하는 요인(要人)까지 나서면서 TK총선은 한 편의 유치한 슬랩스틱 코미디(Slapstick comedy)처럼 희화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선거란 민초들의 삶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의 향배를 결정하는 냉엄한 절차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TK지역의 총선이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는지를 매의 눈으로 톺아보는 일은 천번만번을 거듭해도 모자람이 없다. 달아오르고 있는 새누리당 경선절차가 과연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는 구조인가 여부를 정밀한 저울에 달아보는 것 또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미 본선에서의 치열한 격전이 예고된 일부 지역구도 있지만, TK총선은 대개의 경우 새누리당의 공천만 받으면 당선가능성이 폭발하는 특별한 구조다. 결국 경선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될 여지가 내재돼 있는지가 경계점이다. 와중에 벌써 경선을 포기하고 본선에서 겨뤄보자고 탈당하는 후보가 나오기 시작한 건 불길한 징조다.

감독에게 충성하는 선수가 경기를 잘 한다는 보장이 결코 없음에도 한국스포츠는 오랫동안 파벌주의 복마전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조선을 말아먹은 당파싸움의 이면에도 당수(黨首)에게 충성하는 아첨꾼들만을 중용한 망국적 폐해가 누적돼 있었다. 특정 정치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은 애국심이나 개인적 역량과 반드시 동일할 수가 없다.

TK총선에서 유권자들이 감당해내야 할 개혁의 사명은 중요하고도 깊다. 후보자들의 역량가늠이 야릇한 `박타령`에 가려져서는 안 된다. 박 대통령의 점지(點指) 여부만을 따져서 유권자들의 지지를 강박하는 정치역학은 명백한 구태(舊態)다. 공천 후보들을 맹목적으로 찍을 수밖에 없는 지역정당 구조의 선거는 선거구민들이 후보들의 됨됨이를 견줘볼 공간을 박탈하는 치명적인 하자를 내재한다.

지역 유권자들은 TK총선에 나선 후보자들에게 정말 묻고 싶은 것들이 많다. 뒷배를 봐줄 `배경`자랑 말고, 여전히 낙후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역경제 문제를 해결할 비전은 있으신가. 먹고 살 걱정을 덜어줄 비책, 악화일로의 실업 문제를 풀어낼 묘방은 무엇인가. 이 나라 정치의 심장부인 TK지역의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슨 역할을 해나갈 작심이신가. 개인 영달을 위해서 호가호위(狐假虎威)에 급급하다는 샛눈을 막아낼 논리는 든든하신가.

흥부놀부전에서 부러진 제비 다리를 진정한 측은지심으로 고쳐준 흥부는 보은(報恩)의 대박을 터뜨린다. 그러나 제비 다리를 일부러 분질러놓고 치료를 해준 놀부는 복수(復讐)의 쪽박을 찬다. 누가 흥부인지, 누가 놀부인지 아는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누가 대박을 터트릴 것인지, 누가 쪽박을 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유권자들의 이성을 우습게 여기는 `박타령`은 결단코 정직한 실력이 아니다. 왜들 이러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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