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안철수 신당`이 수상하다

등록일 2015-12-29 02:01 게재일 2015-12-29 19면
스크랩버튼
▲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이념이 정당의 색깔을 대변하는 미국이나 영국의 정치와 달리 한국정치의 키워드는 `패거리`다. 우리 정치사는 이승만에서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패거리정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문과 방송을 장식하는 정치뉴스 역시 정책 이야기가 아니라, 친노계·친이계·친박계 등 패거리정치 동향에 흥미를 보태는 관성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이같은 특성은 우리 정치인들을 움직여온 가장 큰 요소는 사뭇 정책이 아닌 `공천권`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정치권력의 한 복판에 군림하는 주군(主君)에게 행여 밉보이기라도 하는 날엔 단박에 `공천장`이 찢어질 위기에 처하게 된다. 주군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정치생명을 이어가는 필수조건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20대 총선을 저만치 앞두고 안철수 의원이 새정연을 탈당해 신당 창당을 선언하면서, 오랫동안 균열 조짐을 보이던 정치판이 드디어 진동을 시작했다. 작금의 요동만으로는 대지진으로 번져 정치지형을 크게 바꿔낼 것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다가오는 내년 총선의 지형이 결코 과거와 꼭 같지는 않으리라는 예측만은 가능하다.

리얼미터가 지난 24일 공개한 지지율 여론조사결과에서 새누리당은 37.8%, 새정치연합은 21.9%를 기록했고, 아직 탄생하지도 않은 안철수 신당이 19.5%로 새정연의 턱밑에 다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선주자 지지율에서도 안철수 의원은 16.3%로 폭등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17.6%, 새정연 문재인 대표의 16.6%를 바짝 따라붙는 추세를 보였다.

안철수 의원의 발언을 분석해보면, 그가 새누리당과 새정연이 방심하고 있는 중도성향 민심을 정확하게 노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신당의 기조와 관련해 “낡은 진보와 수구보수 대신 `합리적 개혁노선`을 정치의 중심으로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런 와중에 새누리당은 공천문제를 둘러싼 갑론을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모습이다. `180석 이상 확보론`까지 언급하고 있는 새누리당의 행태는 야권분열에 힘입은 낙승(勝)을 예단한 여파로 유추된다. 하지만 출렁대기 시작한 정치바다가 결코 새누리당에게 그렇게 호락호락할 것 같지만은 않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 득표결과를 반추해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지역구 득표에서 진보야권(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에 12만2천440표를 뒤졌다. 비례대표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에서도 84만 표가 모자랐다. 정당득표율로 대비해보면 보수와 진보는 48% 대 48%로 팽팽했다. 새누리당을 지지한 표심은 어디까지나 야당들이 덜 미더워서 돌려 찍은 차선의 기표였다는 해석이 타당한 것이다. 안철수 신당이, 진영논리에 갇혀 주야장천 격돌만 계속하는 기성정치권에 질려있는 중도개혁 성향의 지지층을 제대로 아우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게다가 인물과 정책으로 어느 정도 신뢰감만 확보한다면 태풍의 핵으로 비약할 수도 있다. 새누리당과 새정연이 지금처럼 혁신을 외면하고 패거리 구태정치를 지속할 경우 상황이 급반전될 개연성이 순간 높아진 것이다.

야권분열이 집권당에 유리한 국면인 것은 기본적으로 맞다. 그러나 호남의 반문(反문재인)정서가 수도권으로 번져 중도신당으로 쏠려갈 경우, 아니라도 고전(苦戰)상황인 새누리당으로서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만약 패거리정치의 사욕들을 큰마음으로 제어하지 못하고 이판사판 내홍으로까지 치달아간다면 새누리당은 스스로 감당키 어려운 위기국면을 맞을 지도 모른다.

`안철수 신당`이 수상하다. 새누리당과 새정연의 급소를 찔러가고 있다. 골통 정당들이 수렴하지 못하는 비판적 중도민심의 여백들을 공략목표로 삼고 있음이 뚜렷하다. 새누리당은 지금 야권분열을 희희낙락하며 밥그릇다툼에 함몰될 때가 아니다. `이익은 한 사람을 움직이고, 대의(大義)는 무리를 움직인다`는 고전적 금언을 되새겨보기를 진심으로 권면한다.

안재휘 정치시평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