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이 가시권에 들기 시작한 요즘 TK(대구·경북)정치권에 `낙하산 비상령`이 내렸다. 현역 국회의원들과 지역에서 붙박이로 살면서 텃밭을 가꿔온 정치인재들은, 불쑥불쑥 나타나 입지(立志)를 외치는 새로운 인물들 때문에 신경이 곤두서 있다. `전면 물갈이`설에 현역의원들이 벌벌 떨고 있다는 말도 나돌고, 이미 누군가 내정돼 사실상 게임이 끝났다는 확인불가의 예단도 시시때때 돌출한다.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에 출마하려는 인재들이 많다는 것은 축복이다. 눈치를 보아야 할 요인들이 없어졌다는 반증이기도 해서 민주화를 추구해온 나라에서는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최근의 출마선언 러시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요인들이 있다. 일부 인사들 주변에서 직·간접적으로 풍겨나는 `전략공천` 냄새 때문이다. “만약 경선하라고 하면 집에 가겠다”며 농반진반(半眞半) 자신의 낙점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측도 있다.
TK지역에 나타난 이런 퇴행적 현상은 가뜩이나 침체된 지역정치의 앞날에 심각한 먹구름이다. 중진을 키우지 않는 풍토 때문에 TK정치인들이 어쩌면 향후 10년 이상 중앙정치권에서 고전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판이다. 여의도 정치를 조금이라도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정치가 얼마나 난해한 고차방정식인지, 경륜이 아니면 헤쳐 나갈 수 없는 복잡다단한 전문 영역인지를 잘 안다.
물론, 중진들만이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여의도에 머물면서 사리사욕 챙기는 기술만 늘리는 고약한 정치인들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엉터리 정치인들을 솎아 내거나, 바른 인재를 등용시키는 모든 일은 이제 국민이 직접 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선진 민주주의의 요체다. 가장 민주적인 방식으로 `상향식 공천`을 완성시키는 일이야말로 이 나라 민주화의 남은 핵심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두고 “집권과정이 `쿠데타`였다”며 끝내 낮추어 밟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그는 민족의 배고픔을 해결해준 영웅으로 깊이 각인돼 있다. 박 전 대통령만큼 `결과`가 `과정` 의 논란을 넘어서는 지도자도 드물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박 전 대통령의 통치에 엄청난 `혁신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혁신을 주도하는 세력이 권력중심을 점유하는 것은 현대정치의 중요한 특성이다. 지역정치의 위상도 마찬가지다. 어느 지역의 `혁신성` 수준이 정치지형 형성의 최대변수라는 것은 이미 충분히 입증되고 있다. `혁신의식`의 실천은 총칼보다 훨씬 덜 위험하고 훨씬 더 위력적이다. TK정치가 이 나라 정치의 중심에서 여전히 구심동력을 발휘하고자 한다면 이번 기회에 반드시 `공천혁명`을 선도하는 전범(典範)을 보여야만 한다.
영·호남에서 여전히 운위되는 `공천이 곧 당선`이라는 말이 참이라면, TK지역에서는 이미 20대 총선이 시작된 셈이다. 대한민국 정치사 주역들을 줄줄이 배출해온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전국 그 어느 지역보다도 모범적인 `상향식 공천`을 실천해야 한다. 경쟁을 두려워하는 인재들이 중앙정치권에서 경쟁력을 갖기 원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다름 아니다.
낙하산을 타고 오건, KTX를 타고 오건 지역 정치권에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몰려드는 것은 나쁠 이유가 없다.
하지만, 특정 정치지도자의 완장을 차고 호가호위(狐假虎威)하려는 의식을 갖고 덤벼드는 행동은 이 시대에 결코 맞지 않다. 우리 정치는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축인 TK정치가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뚜렷한 비전을 들고 공정한 경선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TK정치가 왜 이 나라 정치의 견인차인지를 명명백백 입증해야 한다. 집권당 새누리당 중앙당사에는 오늘도 `새누리당의 새로운 길, 공천권을 국민에게`라는 대형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