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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유승민을 위한 `변명`

▲ 안재휘 서울본부장`양약고어구충언역어이(良藥苦於口忠言逆於耳)`라는 말이 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오는 이 구절은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고하는 말은 귀에 거슬린다`는 뜻이다. 흔히 사용하는 `입에 쓴 약이 명약(名藥)`이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작심 비판을 기점으로 정점을 향해 치달아오른 청와대-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갈등을 놓고 대구·경북의 민심이 큰 걱정에 휩싸였다. 박 대통령이 옳다느니, 유승민이 옳다느니 여론도 갈리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폴스미스가 대구 동구을 주민 1천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유 원내대표의 사퇴 반대가 51.1%, 찬성 45%로 나왔다는 자료도 발표됐다.박근혜 대통령이 비판한 대로 `유 원내대표가 자기이익과 자기 정치를 했다`는 응답은 38.6%인 반면, `개인이익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았다`는 답변이 50.3%로 조사됐다. 하지만, 사실상 어떤 응답이 좀 더 나왔느냐 하는 얘기는 의미가 없다. 지역 출신의 걸출한 정치인들끼리 앙앙불락하게 된 현실 자체가 이미 재앙이다.유승민은 대구·경북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힘든 낭중지추(囊中之錐)의 인물이다. 그의 명민함과 곧바른 기질은 정치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귀한 자질이다. 지난 2월초 여당의 새 원내대표로 당선됐을 때, 지역민심의 기대가 컸던 것도 일찍이 유승민의 높은 역량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그런 유승민이 불과 5개월여 만에 백척간두 위태로운 꼭대기에 올라섰다. 그 이유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그의 송죽같이 꼿꼿한 `선비기질`에서 기인한다. 오늘날 그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청와대와의 불협화음 폭발지점은 4월 8일 그가 국회에서 한 `대표연설`이었다. 그는 이 연설에서 서슴없이 역린(逆鱗)을 건드렸다.연설에서 유승민은 “134.5조원의 공약가계부를 더 이상 지킬 수 없다”면서 `새누리당의 반성`을 과감하게 말했다. 또 “지난 3년간 예산 대비 세수부족은 22.2조원”이라면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고백했다. 특히 경제전문가로서 “성장잠재력과 상관없는 단기부양책이 아니라 사회적 대타협에 필요한 곳에 예산을 써야 한다”는 주장도 폈다.유승민은 이 연설에서 평소 자신이 갖고 있던 소신과 함께 새누리당이 펼쳐가야 할 `개혁적 보수`의 지향점을 일목요연하게 펼쳐보였다. 이 연설은 보수 새누리당의 변혁을 바라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고, 이례적으로 야당까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청와대만은 유승민의 생각을 용인할 의지가 전혀 없었던 듯하다.개혁적 보수의 소신을 가진 집권당 원내대표의 가치는 무엇보다도 극좌 진보세력의 예봉을 무디게 하는데 있다. 새누리당 지지표의 확장성을 높인다는 장점도 있다. 자존심 높은 경제전문가로서 소신을 과감히 말하는 유 원내대표의 희망 속에는 새누리당이 지향해야 할 궁극적 목표들이 오롯이 존재한다.의원총회에서 선출된 원내대표를 청와대에서 찍어내게 되는 불합리를 넘어서, 유승민이 원내대표 직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는 현상은 새누리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의 한계를 드러내는 불행한 일이다. 물론, 옳고 그름을 떠나 유승민이 자신의 구상을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다소 현실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난 권력 테크닉의 문제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승자가 남을 수 없는 이상한 게임의 끝에서 허탈에 빠질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것 같다. 이번 사태로 여러 정치 지도자들의 이미지에 `협량(狹量)`의 문신이 남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원조 친박 한선교 의원이 쓴 “10여명의 `우리만이 진짜 친박`이라는 배타심이 지금의 오그라든 친박을 만들었다. `오직 나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친박`이 지금의 소수(少數) 친박을 만들었다”는 자성록이 새삼 눈에 띈다. `양약고어구충언역어이(良藥苦於口忠言逆於耳)`의 교훈을 되새겨야 할 지도자들이 너무 많다.

2015-07-07

`경청의 리더십`이 안 보인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제아무리 훈육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체벌에는 감정이 개입된다`는 것이 체벌반대 이론의 핵심이다. 한동안 꾸지람을 하다가 “한마디도 안 하는 거 봐라”하면서 역정의 강도를 높이고, 아이가 뭐든 말을 하면 “뭘 잘 했다고 말대답이냐”고 머리를 쥐어박는다.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아이는 안으로 깊숙이 멍들어간다. 임기 반환점을 저만큼 앞둔 박근혜정부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이라고 불리는 괴질이 박 대통령을 막다른 골목으로 그악스럽게 몰아넣던 끝이다. 정부의 시행령까지 의회가 일일이 참섭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정부와 국회는 물론, 집권당내 계파들이 제각각 사생결단에 접어들었다.`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는 말은 이미 지나간 일을 놓고 `만약에`라고 말하는 일의 무망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인간은 `만약에`라는 방식의 생각과 반성을 통해서 미래의 실패를 줄이는 지혜를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의 악전고투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지난 2년여 세월 속에 아쉬움이 많다.박근혜정부가 만약, 여야가 흔쾌히 받아들일 인물을 첫 총리로 뽑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박 대통령이 낡은 수첩을 찢어버리고 탕탕평평의 인사로 `새 시대`를 활짝 열었으면 어떻게 되어갔을까. 이념의 잣대를 와작 부러뜨리고 합리적인 문제의식과 시대정신을 가진 인사들을 적극 발탁하여 줄기차게 개혁인사를 단행했다면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물론 정권 핵심들의 불만을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 야당이 지난 대선 후 `불복(不服)`의 카오스에 갇혀 일삼아온 딴죽놀음을 진작 접고 좀 더 성숙한 파트너의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일각이 여삼추인 민생법안마저 볼모잡아 소걸음을 거듭하는 구태정치를 혁파했으면 어떠했을까. 정권의 허물을 씹기보다는 정책대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선진정치의 모습을 구사했으면 또 얼마나 바뀌었을까.막장으로 치닫는 외눈박이 좌파 지식인들의 `박근혜 물어뜯기`는 점점 신랄해지고 있다. “나쁜 정치엔 능하지만, 좋은 통치에 무능하다.”, “난 옳고,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으로 여긴다.”…공당의 지도부인 야당의 인사마저 욱하는 심사를 가누지 못하고 저급한 언어를 동원해 거듭 막말을 뱉어내는 대목은 더 문제다.5년 임기의 절반을 헤아리는 시점에서 여전히 `불통` 문제가 박근혜 리더십의 으뜸허물로 지적되는 것은 비극이다. 지도자가 어떤 `소통 능력`을 갖느냐 하는 것은 그 자신의 정치는 물론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그토록 오래 박 대통령을 향해 `불통`을 꼬집고 `소통`을 주문해온 온갖 여론들의 핵심을 청와대가 올바로 감지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걸핏하면 청와대 참모들만 탓하는 친박 핵심들의 변명은 바른 어법이 아니다. 반대파든 누구든 만나서 경청하는 일에 대통령보다 더 힘센 자리는 없으련만, 도통 그렇게 하지 못하는 원인부터 풀어내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 불러서 듣고 전화로 듣고 정무비서관을 시켜서 들을 수 있는 대통령이 왜 그리 하지 못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궁금해 한다.정치권에는 지금 편협한 `감정`에 사로잡혀 체벌을 남용하는 비정한 어른의 어리석음이 난무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 야당과 정부여당, 정권과 여야 지도부, 각 당내 정파들이 귀 닫고 제 말만 외치며 서로 뺨을 후려치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다. 만일 이 모든 소용돌이가 정치고수들의 권력쟁패를 위한 의도된 게임이라면 민초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꼴로 피폐해져가는 민생은 도대체 어찌하라는 장난질인가. …어쨌든, 이 수치스러운 혼돈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길은 하나 뿐이다. 경청하는 `소통`의 길, 그 길밖에 없다.

2015-06-30

`공천` 바꿔야 `정치` 바뀐다

▲ 안재휘 서울본부장“20억 달라고 하더라.” “30억 갖다 바쳤다더라.” “10억 갖다 주고 공천 내락 받았는데, 다음 날 되돌려주기에 왜 그러나 했더니 그 밤에 20억 들고 와서 거래한 작자가 있었다더라.” “조작된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로 공천신청 후보를 농락했다더라.” “나눠먹기 결정을 위해 계파 수장들이 명단 들고 회동했다더라.” …정치인 공천 흑역사(黑歷史)는 화려하다. 공천을 놓고 벌어진 뒷거래 천태만상은 낙천 인사들의 상상력까지 보태지면서 긴 세월 정치권 뒷담화의 베스트셀러로 회자돼 왔다. 정치권을 움직이는 많은 변수 중에서 `공천권`만큼 드라마틱한 요소는 없다.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거개의 현상을 들여다보면, `공천권`이 지렛대로 작동하지 않는 일이 거의 없다. 세력이 충돌하는 것도, 이합집산을 자극하는 진동도 모두 `공천권`이라는 결정적인 변수를 기저로 하고 있다. `공천`은 정치권력을 거머쥐는 첫 단추이자, 패거리정치의 주춧돌이다. `공천 문화`가 어떤 양상을 띠느냐 하는 것은 곧 정치수준의 바로미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한껏 예민해지고 있는 가운데, 집권 새누리당이 먼저 `공천개혁`의 칼을 뽑았다. 새누리당은 `국민공천 테스크포스(TF)`를 만들어 앞장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일찌감치 `오픈프라이머리`를 공천개혁 카드로 내세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의지는 어느 때보다도 강력해 보인다. 국민공천 TF 팀장을 맡은 강석호 제1사무부총장은 “여당 단독으로라도 추진 가능한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배수진을 쳤다.카운트파트너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뜨뜻미지근한 태도는 어쨌든 이변이다. 새정연의 이 같은 처지는 활화산 조짐을 멈추지 않고 있는 계파갈등이 그 원인으로 지목된다. `오픈프라이머리`라는 이름의 개혁 선명성을 무기삼아 당권을 장악해온 친노세력에 대한 비노·반노의 정서를 감안한 반응으로 읽힌다. 일부 중진들은 노골적으로 “새정치연합은 `오픈프라이머리`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단을 내놓기도 한다.그동안의 역사가 그래왔기 때문이긴 하지만, 시중에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공천개혁`의지를 못미더워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대개는 어차피 새정연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론을 전제한다. `오픈프라이머리`는 여야 합의가 없으면 사실상 도입할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전략적으로 큰소리쳐보는 것이리라는 해석인 것이다. 막상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나 다름없는 선거전이 다가오면 드세질 전략공천의 유혹을 끝내 외면할 수 없으리라는 예측도 나온다.일단 집권당에서 `공천개혁`카드를 먼저 들고 나온 이상 내년 총선에서 각 정당의 `공천`양태가 표심의 변수로 떠오를 공산이 커졌다. 유권자들이 어느 정당이 케케묵은 공천부조리를 더 많이 걷어냈는지를 살필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다. 20대 총선을 `개혁공천`의 원년으로 삼기 위해서 정치권이 추구해야 할 공천은 어떤 것일까. 어떤 절차로 어떤 인재를 당의 후보로 내세워야 유권자들이 지지를 보내줄 것인가. 해답은 그 동안 횡행해왔던 불합리한 공천의 반성에서 찾아야 한다.일단 `국민공천`이라는 이름으로 공천작업의 뼈대를 세운 새누리당의 전략은 적절해 보인다. 돈 공천·패거리 나눠먹기 공천·지연(地緣) 공천·학연(學緣) 공천 등의 대표적인 부조리를 근절하는 데는 `오픈프라이머리`보다 더 좋은 방책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함정은 있다. 100% 국민공천은 정당의 존재이유를 깡그리 부정하는 선택이 된다. 허술하면 반대자들의 `역선택` 장난이 개입될 여지도 있다. 후보난립으로 변별력이 흐릿해질 우려도 존재한다. 이 모든 약점을 극복하고, 공명정대한 절차에 따라 튼실한 인재들을 선별해낼 묘수를 찾아내야 한다. `공천`이 바뀌지 않는 한 `정치`는 결코 바뀌지 않는다.

2015-06-16

`메르스` 움켜쥐고 대권놀음?

▲ 안재휘 서울본부장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진보 야권의 정서를 대변하거나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논객이다. 그는 지난 4일 SNS에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파문과 연계해 안철수 의원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자신의 `상품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내가 안철수 의원이라면 방역복과 마스크를 장착하고 정부 방역센터와 주요 병원을 돌겠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의료적 무능`을 질타하겠다. 이어 종합대책방안을 제출하겠다” 조 교수는 지난 4.29재보선 참패로 난관에 봉착한 새정치민주연합를 살려낼 밭갈이농사의 쟁기잡이 적임자로까지 거론됐던 인물이다. 그가 국민적 재앙인 `메르스`를 대권놀음의 소재로 써먹어야 한다고 둔 훈수는 제아무리 냉정한 지식인의 관조적 이론이라고 해도 얄미운 구석이 있다. 안철수 의원은 이에 대해 “메르스가 정치적 이슈가 되는 걸 막아야 한다. 지금은 사태 수습이 먼저다. 어떻게 하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온 국민이 메르스 공포와 혼란의 와류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메르스가 삽시간에 괴물이 되어 마치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것처럼 위세를 떨치는 양상이다. 정부 대응의 무능을 놓고 지난 해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에 빗대어 쏟아내는 비난이 적지 않다. 무엇을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머뭇대면서 왁자지껄한 여론의 모다깃매를 줄창 맞고있는 정부에 대체 무슨 속사정이 있는 걸까?현대국가에서 정부는 재앙발생에 어떤 대응을 펼치든지 뒷말을 듣게 돼 있다. 정부가 먼저 호들갑을 떨면 `과잉대응`이라고 힐난할 것이고, 조금만 느슨하면 `늑장대응`이라고 아우성치게 돼 있다. 메르스 파문은 우리가 겪었던 여러 전염병과는 좀 더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병원관계자들이나 의학전문가들은 “위험도는 2정도밖에 안 되는데, 국민들의 공포는 8까지 가 있다”고 설명한다.여러 상황을 유추하면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경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처럼 활기를 띨 기미를 살짝 보이고 있는 경제상황에 찬물을 들이붓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정부의 고민 속에 깊숙이 박혀있는 것이다. 사방에서 정부의 굼벵이 대응을 맹비판해도 쉽사리 `과잉대응`으로 갈 수 없는 합리적인 이유는 분명히 있다.요 며칠 사이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일 메르스 긴급점검회의에서 “문제점을 확실하게 점검을 하고 그 다음에 현재의 상황, 그리고 대처 방안에 대해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진단을 한 후에 그 내용을 국민들께 알려야 한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정부쪽에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경제적 타격에 대한 고민은 훨씬 더 깊어보였다.정부가 머뭇대는 사이에 곧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특유의 쇼맨십까지 동원하며 틈새를 물어뜯고 나섰다. 박 시장은 4일 늦은 밤 긴급브리핑을 열고 “메르스에 감염된 의사 A씨가 지역 재건축조합 총회와 병원 심포지엄 등 행사에 수차례 참석해 시민 1천565명과 접촉했다”고 까발렸다. 7일에서야 메르스 관련 병원 이름을 공개한 정부에 앞질러 한 방 먹인 것이다.박원순 시장의 액션은 마치 시민운동가의 행보를 연상시켰고, 대권잠룡이 날린 회심의 일격으로 읽혔다. 안철수 의원에게 “방역복과 마스크를 장착하고 병원을 돌아치라”는 꼼수를 훈수한 조국 교수의 언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를 놓고 `나라 경제`걱정에 막혀 소걸음을 걷고 있는 정부의 처사는 답답하다. 하지만, 더 분통 터지는 일은 그런저런 속사정 다 알면서도 정부에 한방 먹일 궁리에만 빠진 대권잠룡 또는 훈수꾼들의 언행이다. 얄팍한 정치공학에 빠진 일부 지도층,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가슴 무너지는 사람 적지 않으리라.

2015-06-09

`끼워팔기`정치 논란

▲ 안재휘 서울본부장시장 질서를 지키는 중심법인 공정거래법은 `사업자가 거래상대방에 대하여 자기의 상품 또는 용역을 공급하면서 정상적인 거래관행에 비추어 부당하게 다른 상품 또는 용역을 자기 또는 자기가 지정하는 사업자로부터 구입하도록 강제하는 행위`를 거래강제(끼워팔기)로 규정해 강력하게 규제한다. 물론 끼워파는 상품(주상품)과 끼워팔리는 상품(부상품)이 독립적 효용을 가지고 있고, 개별적으로 구입이 가능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 결합상품, 1+1(원 플러스 원)이라는 이름을 활용하여 시장판에서 변칙적인 끼워팔기가 자행되는 경우는 있지만, 안 팔리는 물건을 잘 팔리는 물건의 구매옵션에 함부로 넣는 것은 일단 금지행위다. 이따금씩 주상품 시장에서 지배력(시장점유율)을 가진 자가 저지르는 끼워팔기 편법이 아주 사라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독점상품을 가지고 벌이는 수퍼갑질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일도 한두 번이 아니다.`집안싸움 소리가 담을 넘어가면 집구석이 망한다`는 옛말이 있다. 작금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벌이고 있는 당-청 갈등양상을 보노라면 위태위태하다. 아무래도 오래 전부터 말썽을 부려온 당-청 간 채널 고장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한 게 분명하다. 제아무리 개선을 요구해도 안 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약으로도 안 되고 수술로도 못 고칠 만큼 고질화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정치쟁점을 놓고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는 정치인들은 `합의`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협상이 끝나고 났을 때 `칭찬` 들을 가능성이 희박한 역할에 대한 부담감이 워낙 크다보니 상대측 진영이 아닌, 자기 진영에 더 신경이 쓰이는 게 당연지사일 것이다. 그래서 야당은 협상에서 끼워팔기에 천착한다. 국회선진화법 족쇄에 단단히 옭힌 여당도 언제부터인가 `끼워팔기`식 쟁점타결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여야는 지난 주 `행정입법이 상위 법률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국회가 판단하면 정부에 수정·변경을 요구할 수 있고, 정부는 그 사항을 처리하고 결과를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규정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합의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위헌`논란이 일고 있는 이 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법이 시행될 경우, “정부의 기능이 마비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 박 대통령의 시각이다.사태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을 보면 우리 국회가 그 동안 얼마나 몰상식한 메커니즘 속에서 `끼워팔기`정치의 폐해를 방치해왔는지 여실히 증명된다. `위헌`논란이 일고 난 뒤에야 법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이 법리를 제대로 검토할 시간이 없었다는 얘기가 잇달았다. 논쟁은 다시 `강제성`여부를 놓고 여야가 다투는 형태로 변질되고 있다. 청와대도 강제성이 있지 않다면 탈출구를 열 수 있다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법률 하나를 놓고 벌이는 우왕좌왕 좌충우돌을 바라보는 민초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저 윤똑똑이들, 국민 여럿 죽어나자빠질 지도 모를 위험한 법률안을 오밤중에 `끼워팔기`식으로 처리해놓고 뒤늦게 `강제성` 여부 샅바싸움이나 하면 어떡하나 잠 못 이루지는 않을까. 공무원 연금개혁안 처리를 둘러싸고 국민연금, 기초연금, 세월호특별법, 복지부장관 해임 카드를 거쳐 국회법 개정안까지 +α로 들고 나와 집권당을 가지고 논 야당의 끈덕진 발목잡기가 놀랍다.그러나 정작 더 큰 본질적 문제는 당-청 간 불협화음이다. 아니, 빵점짜리로 증명되고 있는 당-청간의 정무기능이다. 번번이 버스 지나간 뒤에 손사래치고 얼굴 붉히는 청와대도 문제고, 고장 난 채널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방치하다가 판판이 손발 못 맞추고 삑사리를 내는 새누리당도 문제다. 이 사람들 정말 한 패가 맞는지 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집안싸움 소리가 담을 넘어가면 집구석이 망한다`는 옛말, 결코 빈말 아니다.

2015-06-02

상주(喪主)들의 `행패`

▲안재휘서울본부장조선시대 피비린내 나는 당파싸움의 단초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거기에는 뜻밖으로 왕실의 예절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한 예송(禮訟)논쟁이 있다. 왕이 죽었을 때 대비가 상복을 1년 간 입어야 하는지, 3년 동안 입어야 하는지 따위를 놓고 다투다가 파가 갈렸다. 상대방을 역모(逆謀)로 엮어 몰살을 꾀하는 극단으로까지 치달았던 사색당파 분열이 그렇게 `예절에 대한 사소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허탈한 기록이다. 훈신·척신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또는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일으킨 사화(士禍)의 역사는 실로 끔찍하다.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 1504년의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 등을 통해 자행된 신진 사림(士林)의 말살은 극심하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일이 적절치는 않겠지만,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하들의 엉큼한 궤변을 이용하거나 멍청하게 놀아난 왕들의 처신은 더욱 기가 막힌다.정치권에 때 아닌 `예의`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통합`을 부르짖으며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겪고 있는 수난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 전 광주에서 열린 5·18 추모식에서 김무성 대표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함께 욕설·물세례 봉변을 당했다. 추모식장이 상가(喪家)와 동일할 수는 없지만, 검은 넥타이를 매고 치르는 한 그 예의는 상가의 그것과 같게 하는 것이 맞다.광주에서의 볼썽사나운 추태는 5·18 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가 여의도로 찾아와 새누리당 김 대표에게 사과하는 절차로 그나마 위안의 여지를 남겼다. 행사를 주관한 사람들이 참석자들 모두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23일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인 노건호 씨가 봉하마을에서 치러진 아버지의 6주기 추도식에서 참배객으로 찾아간 새누리당 김 대표에게 악담을 퍼붓는 해괴한 일이 발생했다.노건호 씨는 유족인사 형식을 빌려 김 대표 면전에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반성도 안 했다”는 등 힐난하다가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하시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날 추도식장에서 새정연 김한길 의원은 “쓰레기”라는 비난을 받았고, 천정배 의원은 “배신자” 욕설을 들었다. 새정연 박지원 의원도 듣기 거북한 비판을 견뎌야 했다. 찾아온 추도객을 향해 물병을 팔매질하는 친노 지지자들의 격노는 도를 넘은 행패 그 자체였다.노무현정부 시절 노사모 회장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배우 명계남의 노건호 역성들기는 친노의 저질 선동정치를 다시 한 번 떠오르게 한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김무성 대표가) 사전 협의도 없이 언론에 먼저 흘리고 경찰병력 450명과 함께 쳐들어왔다”고 허위 충동질을 감행했다. 그의 언행은 오래 전부터 정치권에 회자되고 있는 `싸가지 없는` 진보의 퇴행적 정치문화에 대한 혐오를 되씹게 한다.찾아온 참배객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부 친노 세력의 망발은 평생을 통합을 위해 외치고 실천하며 살다 간 정치인 노무현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설사 행사에 참여하기 전에 충분히 논의하는 절차가 다소 미흡했다 하더라도 찾아온 추모객에게 봉변을 가하는 행위는 국가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진보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고종석 작가는 “노건호 씨의 분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선친의 비극적 죽음에 자신을 포함한 가족과 측근들 책임은 조금이라도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 추도식에 찾아온 손님 앉혀놓고 악다구니를 쓴 상주에게 오히려 찬사를 보내는 바보들, 그 덜빠진 외눈박이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고 안타깝다. 제삿날의 상주는 `죄인`처럼 겸손할 때 비로소 아름답다.

2015-05-26

`의회주의`와 `합의의 덫`

▲ 안재휘 서울본부장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는 가능한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 좋다. 심리적으로 보다 평온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치유에 훨씬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처치하는 일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환자가 하자는 대로만 했다가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응급환자에 대한 처치는 어디까지나 의료진의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처방에 신속하게 따르는 것이 정답이다.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벌인 협상이나 결과물을 보면 흡사 환자 눈치만 보다가 뜬금없는 방향으로 치료법을 내놓은, 이상야릇한 처방차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듯이 이 문제는 여야 정파의 이익을 떠나 국가 미래의 존망을 결정할 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독특한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 정치권은 이 과제를 사뭇 정략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해왔다.여야 정치권이 막판에 `공무원연금` 합의안에 `국민연금`문제를 슬쩍 집어넣은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측면이 짙어 보인다. 혹자들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내용 자체에 미흡함이 많으니, 국민들의 관심을 돌려세워 놓고 슬며시 넘어가려는 꼼수 아니냐는 해석조차 내놓는다. 여야 정치권이 뒤늦게 “합의가 중요하다”는 강변만 되뇌고 있으니 의아할 따름이다.정말 해괴한 사태는 어렵사리 본회의를 열고도 국회 각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마친 57개 민생법안 중 달랑 3개 법안만 의결하고, 황급히 막을 내린 12일의 국회다. 여당은 본회의를 앞두고 주요 민생법안 전자서명을 끝내 거부한 이상민 법사위원장의 월권행위를 집중 성토했고, 이 위원장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3개 법안만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먼저)해 놓고, 저급한 행태를 보인다”고 반격했다.입만 열면 짜 맞춘 듯이 `민생`을 합창해온 여야 정치인들이 막상 본회의 판을 벌이면서까지 엇박자를 내는 꼴에 국민들은 또 한번 부글부글 `정치혐오`의 진저리를 덧냈을 것이다. 쉰일곱 그릇 밥상 다 차려놓고 부엌문 걸어 잠근 야당위원장도 얄밉지만, 뒷문으로 찾아가 세 그릇만이라도 내달라고 하소연해놓고 뒤늦게 부아를 터트린 여당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어쩌다가 우리 정치가 이토록 짜증을 부르는 저질 개그판을 못 면하고 있는지…….`국민연금 개혁`부대조건이 달린 엉뚱한 협의로 갈 수밖에 없었던 공무원연금 합의안의 모순이나, 상임위·법사위 다 통과한 민생법안들 찬장에 가둬놓고 조리실 문 닫아 잠근 채 몽니를 부리는 희한한 사태의 저변에 `의회주의`의 본질을 망가뜨리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의 망령이 있다. `의회주의` 또는 `의회정치`란 국가의 최종적인 정치적 결정이나 법률의 제정을 의회에서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행하는 정치방식 및 그 입장을 뜻한다.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공화국의 의사결정 방식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엄청난 시행착오와 진통을 겪었다. 우리가 끝내 `다수결`을 선택한 것은 결코 그것이 지고지순한 방식이어서가 아니다.세상에는 그 어떤 정책도 완전무결한 것이 없기에, 어떻게든 결정을 미룰 수가 없을 때 최선책으로 쓰도록 마련해낸 것이 `다수결`의 지혜인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권이 `합의의 덫`미몽(迷夢)에 갇혀 허우적대는 한, 사리에 맞지 않는 요상한 정치행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공무원연금 개혁`이나, `민생법안`들은 결코 시간을 더 끌어도 되는 만성질환이 아니다. 그야말로 앰뷸런스를 타고 국회의사당 수술실에 도착한 응급환자들이나 마찬가지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다루는 정치인들이 `공무원 노조` 눈치나 보고 있는 것은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있는 응급환자에게 처치법을 물어보는 어리석은 돌팔이 놀음과 다르지 않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 모두를 보고 묵묵히 나아가는 뚝심 정치가 그립다.

2015-05-19

정치개혁, 청와대 `액션 플랜` 있나

▲ 안재휘 서울본부장성완종 사태 이후 분출된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개혁`열망은 폭발을 잠시 미룬 휴화산이다. 다만 잠복해 있을 뿐 현재진행형이라고 보는 것이 맞다. 4.29재·보선이 집권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다음 새누리당은 매사 신중한 모습인 반면, 야당 새정치연합은 선거패배 책임소재를 놓고 내분양상으로 치달으면서 `봉숭아학당`이라는 조롱이 빗발친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이 정치권 부패를 의심하는 국민들의 매운 눈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성완종 리스트 충격파를 거슬러 `정치개혁` 의지를 강력 표명함으로써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성완종 사태와 같은 비극의 단초를 전직 대통령들의 수상한 특별사면에서 찾는 듯한 언급도 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최근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를 통해서 국민의혹을 해소하고 우리 사회와 정치권이 윤리적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만들어나갈 각오”라는 수준까지 나아가고 있다.애초 성완종 사태로 인해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을 때, 몇몇 전문가들의 입에서는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나왔다. 뭔가 좀 할 만하면 발목 잡는 일이 불거지곤 해온 박근혜 대통령에게 어쩌면 좋은 반전의 기회가 올 수 있으리라는 노회한 분석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정치권 개혁`이라는 강한 작심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후속 움직임은 없다. 오히려 대통령의 어법이 `유체이탈화법`이라거나, 내용이 `시사평론` 수준이라는 이죽거림마저 나오기 시작했다.청와대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만한 `액션플랜(실행계획)`을 전혀 갖고 있지 않을 가능성마저 왕왕 점쳐진다. 국면전환을 위한 시간벌기 정도의 마인드를 갖고 그저 `검찰`의 입만 쳐다보는 것은 아니냐는 어림도 없지 않다. 박 대통령에 거는 국민들의 여전한 기대를 헤아린다면, 청와대가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국민들의 열망은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 적힌 사람들을 어찌하느냐의 수준에 머물러 있지 않다.민초들의 정치권에 대한 인식은 시중에 떠도는 개그프로그램의 콩트 제목처럼 `도찐 개찐` 딱 그 양상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정치인들의 구시대적 행태는 차이가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정치개혁이란 곧 정치문화의 개혁이다. 오랫동안 관행으로 굳어져 온 온갖 불합리와 비이성적인 정치풍토를 쇄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수많은 구악(舊惡) 고질병들을 고쳐내는 감격을 말한다.작금의 불법정치자금 의혹 사태를 보며 전문가들은 백가쟁명을 쏟아내고 있다. 10만 원 이상 기부자의 명부를 공개하자, 대선자금 문제는 후보가 모두 책임지도록 하자, 불법선거자금 연루자는 사면을 금지하자…여러 이야기들이 나온다. 모두 필요한 담론이긴 하다. 하지만, 정말로 몇몇 제도 정비만으로 우리가 원하는 정치개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또 다른 차원의 혁신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정치권에서는 각종 선거를 비롯한 정치행위에 들어가는 비용에 대한 자기합리화 마인드가 존재한다. 선관위에 신고하는 금액이 실제 비용일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국민도 없다. 그런 차원에서, 정치자금 문제로 곤욕을 치르는 상대방을 야멸치게 물어뜯는 뭇 정치인들의 행태는 참으로 위선적이다. 정치인들에게 팽배한`돈을 많이 쓰는 후보가 유리하다`는 굳건한 믿음은 또 어쩔 것인가.결국은 참다운 의미에 있어서의 `정치개혁`은 불법자금을 만진 정치인 몇 사람 잡아넣고 망신 주는 일로 다 해결될 과제가 아니다. 진솔한 `고해(告解)`가 전제되지 않는 정치개혁은 겉으로 드러난 상처에 소독약이나 바르는 이벤트에 불과하다. 더욱이 `내편`은 적당히 봐주고, `상대편`만 잡도리하는 `개혁`이 무슨 효험을 남길 것인가. 박 대통령의 흉중에 육참골단(肉斬骨斷 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다)의 결기가 있지 않다면 지금 온 국민들이 염원하는 진정한 `정치개혁`은 또다시 공염불이 되고 말 것이다.

2015-05-12

`오리발` 공화국

▲ 안재휘 서울본부장1519년 조광조(趙光祖)를 비롯한 사림파 명현(名賢) 70여 명이 사사(賜死)된 끔찍한 기묘사화(己卯士禍)는 `주초위왕(走肖爲王)` 네 글자가 새겨진 나뭇잎 하나에서 시작됐다. 폭군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조선 11대 왕 중종(中宗)은 개혁사상가 조광조 등 사림파 신진사류를 국정에 중용한다. 사림파는 각종 개혁안과 함께 반정 과정에서 공을 세운 적이 없는 일부 훈구파 사대부들의 공훈 삭제를 주장해 파장을 일으켰다. 위기의식을 느낀 훈구파의 중심 홍경주(洪景舟)는 자신의 딸인 희빈 홍 씨와 짜고, 나뭇잎에 꿀로 `조 씨가 왕이 된다`는 뜻인 네 글자를 써서 벌레가 갉아먹게 한다. 반정으로 왕좌에 오른 중종의 트라우마를 정확하게 겨냥한 술수였다. 궁녀가 가져 온 나뭇잎을 본 왕은 대노하게 되고, 훈구파는 마치 확인사살을 하듯 사림파를 역모로 얽어 낱낱이 고변한다. 권력의 핵심에서 위세를 떨쳐온 훈구파에 의해 사림파 이상주의자들은 처참하게 무너진다.`성완종 리스트`로 시작된 정치권의 혼란이 좀처럼 갈피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끊임없는 `네 탓` 공방의 와중에 리스트에 오른 일부 인사들은 쓰잘 데 없는 자충수로 자살골을 넣고 있는 양상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말처럼 `올무`에 걸린 신세들이 무리한 몸부림으로 스스로 목줄을 죄고 있다는 혹평까지 나온다. 이래저래, 해외순방에서 돌아온 박 대통령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부질없는 얘기일지 모르지만, 이완구 총리에서부터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 홍문종 의원 등 `성완종 리스트`에 이름이 오른 사람들의 대응이 좀 더 달랐더라면 어땠을까 아쉬운 대목이 있다. 이완구 총리의 경우, 애초 “(성 전 회장과) 소원하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년 반 사이 23차례나 만난 것으로 적혀 있는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가 발견되면서 이 총리의 패는 형편없이 꼬이기 시작했다.선거사무소에 들러 현금 3천만 원을 전달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금방 드러날 사실관계를 지나치게 부정하다가 의혹을 키웠다. 김기춘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경우도 “비서실장이 된 이후로 그를 만난 적도 없다”던 말 한마디가 자승자박의 올무가 되어버렸다. 사건이 진실게임 양상으로 전개될 경우, 대중들의 판단 추(錘)는 거짓말쟁이에게 무조건 불리하게 기운다. `내일 밝혀지더라도 오늘은 부인하라`는 한국 정치판의 생존금언이 무색해진 판국이다.비겁한 오리발들이 난무하고 있다. 검찰의 수사를 `표적사정`으로 인식한 고인은 이 나라 정치권 한복판에 친박 핵심들만을 노린 `표적리스트` 폭탄을 투척하고 사라져갔다. 느닷없이 이름 적혀 공개된 사람들은 악착같이 손사래를 친다. 고인이 오랜 세월 여야 정·관계 사방팔방에 로비를 해온 것이 명약관화한 마당에 여당 정치인들은 자기 이름이 나올까 전전긍긍이고, 야당 정치인들은 수사확대를 `물 타기`라며 극구 비난한다.문제의 핵심은 고인으로부터 부적절한 금품을 받았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성완종 리스트`가 나왔을 때 “자주 만났다”고 인정하고 “잘 안다”고 고백하고 “그러나 금품을 수수한 적은 결단코 없다”고 주장했다면 사태가 이처럼 험악하게 전개되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나올 적마다 일순 온 나라가 `오리발 공화국`이 되어 국민들의 실망과 고통을 덧내는 이 참담한 노릇을 언제까지 참고 보아야 할 것인가.박 대통령에게 이제 퇴로는 없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 그나마 기회를 아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정도(正道)로 가야 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용단도 필요할 것이다. 썩은 물이 질퍽한 정치권 시궁창을 어떻게 하면 1급수 맑은 도랑으로 뒤집어낼 것인가를 숙고해야 한다. `주초위왕(走肖爲王)` 따위의 수작질이 가능하지 않은 세상에서 더 이상 용서해도 괜찮은 위계(僞計)는 없다.

2015-04-28

`정치개혁` 말고 다른 길 있나?

▲ 안재휘 서울본부장“붕당의 폐해가 요즈음보다 심한 적이 없었다. 근래에 와서 인재의 임용이 당목(黨目)에 들어있는 사람만으로 이루어지니, 이러한 상태가 그치지 않는다면 조정에 벼슬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 …그 죄의 가볍고 무거움을 헤아려 이조(吏曹)가 탕평의 정신으로 수용하도록 하라.” 조선 21대 왕 영조가 즉위하자마자 내린 탕평의 교서는 권력을 독점하려는 노론(論) 세력과 혁명을 꿈꾸던 소론(少論) 세력 모두의 야욕을 꽁꽁 묶었다. 선왕 경종에 대한 독살설까지 퍼져 정국이 뒤숭숭하던 위태로운 상황에서 영조의 탕평 교서는 회심의 일격이었다. 영조는 자신의 등극으로 노론 천하가 되리라던 모든 예측을 깨고 소론 거두 이광좌(李光佐)를 중용하는 등 의외의 인물들을 기용했다. 등극 4년차에 전국의 소인과 남인 세력이 조직을 규합하여 일으킨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노론이 아닌 소론 세력으로 막아내는 묘수를 구사하기도 했다. 그 용의주도함은 세월을 넘어 감탄을 자아낸다.이른 바 `성완종 리스트`사건이 정치권을 뒤덮으면서 정국은 바야흐로 `시계제로`상태다. MB정부 기획사정이 단박에 박근혜 정부 `자해사정`으로 반전됐다는 풍자까지 나오고 있다. 4.29 재보선이 닥쳐오면서 여당은 전전긍긍이고, 야당은 연일 `심판론`에 불을 댕기며 부채질에 열심이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여파를 길게 끌어갈 조짐이고, 검찰수사 또는 새로운 폭로의 유탄이 어디로 튈지 가늠조차 안 되는 형편이다.`성완종 리스트` 파문 속에서 가장 난감한 쪽은 아무래도 청와대가 아닐까 싶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래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시간을 견뎌왔다. 취임초 인사문제로 인한 혼란이 끊이지 않더니, 숨을 좀 돌릴 만하니까 `세월호 침몰`이라는 대참사가 터졌다. 대형 참변의 여진을 가까스로 추스르고 근근이 집권 2기 집행부를 꾸려 새 출발을 시작한 찰나에 또다시 `성완종 리스트`라는 충격적인 사태가 발생했다.많은 사람들이 박 대통령의 `불운`을 말한다. 오비이락이든 뭐든 좀 제대로 달려갈 만하면 발목이 콱 잡히고 마는 연속적인 혼란을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요소들을 모두 감안한다고 해도, 박근혜정부가 출범 이후 탕탕평평(蕩蕩平平)하면서 대의를 확대재생산하지 못하고 세력을 오그라뜨린 허물이 자꾸만 되새겨진다. 지독한 불통의 늪에서 대로(大路)를 닦아내지 못한 역정이 정녕 아쉽기만 하다.`성완종 리스트` 사태를 만난 정치권은 사뭇 당당하지 못하다. 조금이라도 의혹을 받을 처지에 있는 정치인들은 벙어리 냉가슴이고, 다른 의원들도 대개는 행여 `의리 없는 인간` 취급받을까 걱정인 표정이다. 이런저런 눈치 안 보고 모질게 떠드는 사람들은 단골 등장해온 저격수 몇 사람뿐이다. 답답한 것은, 모두가 파당적 시각과 이기적인 가치기준에 갇혀 민심을 정직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맞닥뜨린 대형 악재를 딛고 박근혜정부가 새로운 정치지평을 열어갈 묘책은 무엇일까.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맑은 판단을 올바로 읽고 그 뜻을 받드는 길밖에 없다. 국민들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정치개혁`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고 싶어 한다. 고 성완종 회장이 죽음 길에서 이를 갈며 남긴 메모지를 살생부로 놓고 사정(査正)을 한정하는 것은 결코 바른길이 아니다. 시작은 그렇게 하되, 예외를 두지 말고 제대로 해야 한다.박근혜정부로서는 고해성사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보장해 읍참마속(泣斬馬謖)하고, 철두철미한 정치개혁을 단행하는 중대결단 밖에 없다. 친박이 어쩌고, 친이가 어쩌고 하는 소아병적인 붕당의식부터 버려야 한다. 탕탕평평(蕩蕩平平)의 감격은 아직 시효가 남아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정치구조 개혁을 하라는 하늘의 계시”라는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의 말에 공감한다. 위기는 곧 기회다.

2015-04-21

`썩은 어항` 다시 보기

▲ 안재휘 서울본부장“인간 개개인은 얼마든지 도덕적일 수 있어도 그런 개인들이 모여 집단이 되면 전혀 다른 특성, 즉 집단으로서의 이익을 추구하는 새로운 논리와 생리를 갖게 됨으로써 사회는 비도덕적이 된다.” 미국의 신학자이자 정치학자인 라인홀드 니부어(Reinhold Niebuhr)는 1932년에 출간한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이렇게 역설했다. 니부어는 이성과 과학의 시대에 팽배해있던, 나른한 낙관주의에 도전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치권에 전대미문의 `성완종 리스트` 핵폭탄이 터졌다. 자원외교 비리의 요인(要人)으로 떠올라 검찰수사 그물에 단단히 얽혀들어 쩔쩔매던 그는 구명(救命)을 위해 몸부림치다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선택하고 말았다. 북한산에서 목을 맨 그가 죽기 직전 모 언론사 부장과 주고받았다는 50여 분간의 통화내역과, 주머니에 남긴 메모지 한 장이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그의 메모는 박근혜 대통령 핵심 친박 정치인들을 집중적으로 정확하게 겨냥하고 있다.부정한 금품수수를 둘러싼 정치권의 `리스트` 파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민심을 허탈의 늪으로 밀어 넣는 이 같은 추태만상에 국민들은 넌더리가 나 있다. 정치권 안팎에는 벌써부터, 리스트 내용의 진위여부를 비롯하여 `카더라` 뜬소문이 태산처럼 쌓이고 있다. 고인이 생전에 무려 150여명의 정치인들에게 150억 원 이상의 금품을 제공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어딘가에 그 목록이 시퍼렇게 살아있으리라는 추측도 나돈다.꽤 많은 정치인들이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으리라는 짐작도 있다. 성 전 회장이 주머니 속에 남긴 마지막 메모지에는 구명호소를 외면한 유력 정치인들에 대한 원망과 한이 서려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중퇴의 학력으로 일평생 용의주도한 처세술을 발휘해 큰 기업을 일궈낸 그가 남긴 종이쪽지 한 장에 휘둘려, 한 순간 허청거리는 우리 정치권의 연약한 군상이 초라하다.`성완종 리스트` 파문은 우리 정치권이 여전히 `비정상`의 그늘에서 온존하고 있음을 의심케 한다. 그간 불법 정치자금에 정치생명을 의탁하다가 수상한 타협 한 번으로 정계를 아주 떠난 인물이 적지 않다. 그러나 온당치 못한 자금거래로 법정에 섰던 여러 정치인들이 불사조처럼 정치적 사면을 받고 다시 정치일선에서 활약하고 있기도 하다.정치권 혼탁에 대한 논란이 있을 적마다 `물갈이론`이 떠오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공천혁명이네, 선거혁명이네 하면서 변화를 외쳐왔고, 실질적으로 정치권에 새 인물들이 다수 영입된 것도 사실이다. 안타까운 일은, 돌아보면 기대한 만큼 성공을 거두었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 동안 혹시 혼탁한 어항의 물은 그냥 둔 채로 애꿎은 금붕어들만 자꾸 갈아댄 어리석음을 범한 것은 아닐까.우리 정치권이, 아니 우리 사회가 여전히 부정부패가 들춰져 남우세를 당한 범법자에 대해 `잘못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고 `재수 없이 걸려든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한, 누군가가 `리스트`에 이름 석 자가 올라 완전히 망가지는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항의 썩은 물을 갈기 위한 노력을 등한히 한 일에 대한 처절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드러난 비리부정을 도려내는 일만으로는 제대로 된 물갈이가 될 수 없다는 진실이 증명되고 있는 지도 모른다.악마는 `쾌락`을 팔고, 천사는 `행복`을 판다는 말이 있다. 금품이라는 달콤한 유혹과의 음험한 악수 한 번으로 인생을 망치고, 나라의 기강을 어지럽히는 참상일랑 제발 좀 그만 보았으면 좋겠다. 니부어는 “정의를 위한 인간의 능력이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나 불의를 향하는 인간의 성향은 민주주의를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만든다”고 말했다.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한 나날이다.

2015-04-14

정치개혁, 더 `큰길`로 가라

▲ 안재휘 서울본부장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의 대구 인기가 여전한 모양이다. 예단할 수는 없지만, 내년 총선에서 또 한번 관심을 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절치부심 끝에 전남 순천·곡성을 지역구로 국회에 입성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당내에서 여전히 큰 목소리를 낸다. 많은 식자들이 김부겸·이정현 두 사람의 도전을 입줄에 올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사람의 고난은 모순된 정치제도 때문에 겪는 애꿎은 시련에 불과하다. 정치권이 불문율처럼 지켜오고 있는 `승자독식` 구조가 역사적으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했던 과도기적 상황에서 승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일은 개발 효율성을 떠받치는 훌륭한 제도적 장치였다. 목표를 세우고, 하루빨리 성과를 거둬야 했던 구조에서 `승자독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사장시키는 정치구조로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가 어려운 세월이 됐다.지난해 10월 30일 헌법재판소가 현행 선거구별 인구편차 3대1 구조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고 2대1이하로 바꾸라고 결정한 이후, 국민들은 정치개혁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헌재의 결정은 꾸준히 제기돼온 개헌론을 비롯한 정치개혁 의제들을 하나씩 기억하도록 하는 부수효과를 파생하고 있다.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의 개헌의견도 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치관계법(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개정의견도 있다.헌법개정자문위는 지난해 4월 2일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임기를 6년 단임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의 분권형 대통령제와 국회 양원제를 주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 자문의견을 발표했다. 자문위의 의견은 의심 없이 유지돼 온 강력한 대통령중심제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중요한 관점을 던진다. 이제 지도자 한 사람의 만기친람 방식으로 통치하기에는 국가의 볼륨과 다양성이 엄청나게 비대해졌음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선관위가 지난 2월 24일 발표한 정치관계법(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개정의견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및 석패율제 도입, 지구당 부활, 총·대선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 도입 등 메가톤급 정치이슈들이 포함돼 있다. 선관위 개정의견은 51%가 100%의 권력을 독점하는 현재의 `승자독식` 권력구조에 핵심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적극 반영한다. 하지만, 제기된 개혁의견들을 놓고 각 정당들은 당리당략만 셈하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유·불리만 따지고 있다.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달 2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견 지역언론인모임인 `세종포럼`초청토론에서 “우리 사회가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가려면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석패율제 등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소선거구제로는 안 된다. 51과 49가 대립하고, 51%가 다 먹으려고 하는데서 갈등이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소수의견 존중을 위해 교섭단체 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0석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중·대선거구제를 희망하는 국민여론을 뒷받침하는 조사결과도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49%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했고, 32%가 현행 소선거구제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기왕에 시작된 정치개혁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가 감동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지기를 소망한다. 당리당략이나 사리사욕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 다양해진 국민여망을 신실히 소화하고, 여태껏 이 나라 대한민국을 골병들게 만든 배타적 지역주의를 일소할 묘책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고민했으면 좋겠다. 기왕에 바꿔야 한다면, 과감하게 혁신하는 것이 옳다. 제2의 김부겸·이정현이나 고대하는 소극적인 정치행태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중·대선거구제, 석패율제를 통해 건강한 다당제를 견인해내는 것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올바른 개혁의 길이다.

2015-04-07

박정희·리콴유의 `유산`

▲ 안재휘 서울본부장정치인들은 코너에 몰렸을 때 국면전환을 꾀하거나, 신념을 고수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는 말을 왕왕 쓴다. 우리 정치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물론이고, 전·현직 유력 정치인들 치고 이 표현을 동원하지 않은 인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빈번했다. 민주화시대가 도래한 이후 이 언급은 더욱 잦았다. 다들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다`고 같은 말을 하는데, 정작 가는 길은 사뭇 다르니 정말 헷갈린다. 왜 그럴까. 현대정치에 있어서 `국민`이라는 용어만큼 복잡한 해석을 요하는 정치적 췌사(贅辭)는 없을 것이다. 어떤 때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그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영악한 정치인들은 `나를 지지하는 국민`이라고 써야 될 말을 그냥 `국민`이라고 쓴다. 듣는 이들로 하여금 마치 절대다수의 여론이 그런 것처럼 헛갈리게 하기 위한 꼼수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만 보고 가겠다`는 말은 참으로 애매한 포퓰리즘 언어다.무려 31년 동안 싱가포르를 철권통치로 다스렸던 리콴유(李光耀) 전 총리가 세상을 떠났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나라 수반들이 장례식에 참석했고, 싱가포르 국민의 4분의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조문했다고 하니, 가히 그 명망을 가늠할 만하다. 물론 리콴유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판자들은 그의 업적에 `싱가포르가 소규모의 도시국가이기 때에 그런 정치가 성공했으리라`는 가설을 덧씌우곤 한다.리콴유의 통치이념은 박정희 대통령의 그것과 흡사하다. 특히 `경제부흥`에 통치행위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인권신장 등 나머지 가치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한 대목은 분리하기 어려울 만큼 유사성을 갖는다. 리콴유의 강력한 리더십은 `검소``청렴``겸손` 같은 자기관리 이미지에서 나온다. 그는 마지막 유언조차 인근 주민들의 번거로움을 우려해 “내가 세상을 떠나면 살던 집을 헐어 버려라”고 남겼다.리콴유가 만들어낸 `싱가포르 모델`은 중국이 공을 들여 배운 것을 비롯하여 전 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과 `새마을 운동`이 아직까지 저개발국가에서 연구하는 모델이 되고 있다는 점과도 많이 닮았다. 1979년 최측근에게 시해당한 박정희 대통령과 달리 리콴유는 개인주의가 팽배한 싱가포르 국민들을 철권통치로 장악하여 세계 최고 반열의 선진국을 만들어놓고, 1990년 은퇴하여 천수를 누렸다.세계적 정치위인(政治偉人) 박정희와 리콴유가 남기고 간 유산은 무엇일까. 한때 아시아 4마리의 용이라 비유되던 4국 중 두 나라를 통치했던 그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 분열과 해태(懈怠)를 철두철미 틀어막고, 굶주림을 해결하면서 미래를 그려냈다는 사실이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철권통치가 불러올 비난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역사를 보고 비전을 만들었고, 투철하게 밀어붙였다.아버지와 유사한 정치적 평가를 받고 있는 리콴유 상가에 다녀온 박근혜 대통령의 조문은 매우 특별했을 것 같다. 박 대통령은 리콴유의 서거 소식을 듣고 발 빠르게 `직접조문`을 결정한 뒤 싱가포르로 날아가 조문록에 `우리시대의 기념비적인 지도자였다. 그의 이름은 세계사의 페이지에 각인돼 영원히 남을 것`이라고 적었다.박정희와 리콴유는 난세를 일궈 나라와 국민의 눈부신 미래를 창출해낸 걸출한 지도자들이었다. 그들은 `국민만 바라보고 간다`는 얄팍한 포퓰리즘을 탐닉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역사를 통찰하는 예지와, 시대를 꿰뚫어본 눈이 있었다. 그들의 치열한 삶과 죽음은, 모름지기 나라의 지도자들이라면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원대한 청사진을 들고 꿋꿋이 나아가야 한다는 교훈을 웅변하고 있다.

2015-03-31

`사드(THAAD)` 딜레마

▲ 안재휘 서울본부장1636년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에 쫓겨 인조(仁祖) 임금과 함께 남한산성으로 피신한 백관들은 주화파(主和派)와 척화파(斥和派)로 나뉘어 충돌했다. 주화파는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려다가 망하는 것보다는 청과 화친을 맺어 나라를 보존해야 한다”는 논리였고, 척화파는 “2백년 넘게 쌓아온 명나라와의 신의를 저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싸워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인조는 삼전도(서울 송파구 삼전동)로 나아가 청태종 홍타이지 앞에서 땅바닥에 이마를 짓찧으며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올리는 역사적 참변을 겪게 된다. 사드(THAAD,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문제가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미국은 북한의 핵무기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해서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는 문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북한이 미 본토까지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와 핵실험 따위로 위협의 수위를 높여가자 지난 2013년 괌에 사드 포대를 처음으로 배치했던 미국이 북한 핵공격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고 나선 것이다.이 문제에 대해서 가장 먼저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측은 중국이다. 중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가 중국의 미사일 전력을 무력화시킬 것”이라며 공개적인 반대의사를 끈질기게 표명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사드를 한국에 배치하려는 이유가 북한의 핵 위협 때문이라는 것을 뻔히 알 것이다. 북한에 대해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중국이 도발에 대한 결정적인 역할이나 근본해법은 내놓지 않고 무례한 주장을 하는 것은 전혀 이치에 닿지 않는다.정치권 여론은 영락없이 `찬-반`으로 나누어지는 기미다. 새누리당은 유승민 원내대표가 찬성당론을 서서히 모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문재인 대표는 사드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해 “진정한 주권국가라고 자부하기에 부끄럽다”고 언급했다. 유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표가 한 말씀이 사드 도입에 반대하는 새정치연합 의원들의 의견을 대변하고 반대의 뜻을 밝힌 것인지 분명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다그치고 나섰다. 여야가 미구에 또다시 한판 붙을 기세다.사드의 효용성에 대한 논란도 있다. 사드가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방식의 핵폭탄 대응책이라면 한반도 배치가 우리의 안보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의문이 있다. 미국본토나 최소한 일본의 핵안보를 위해서라면 모를까 한국의 핵안보와는 근본적으로 연관성이 없다는 주장이다. 정말 그렇다면, “한반도 배치하 사드에 대해서 우리나라가 비용을 부담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는 자주국방네트워크 신인균의 주장은 백번 옳다.사드 배치문제에 대해서 답을 찾아가는 방식에는 두 가지 원칙이 준수돼야 한다. 첫 번째는 자주적인 판단으로 결론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 두 번째는 철저하게 군사적인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방부 김민석 대변인이 정례브리핑을 통해 “주변국이 우리의 국방안보 정책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밝힌 것은 적절하다. 정치권이 이 문제를 이념대결의 정쟁거리로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을 치는 것은 온당치 않다.청나라 무력에 쫓겨 남한산성에 갇힌 처지에서도 `친명(親明)`과 `친청(親淸)`의 당색을 드러내며 갈팡질팡 당쟁 추태를 보인 379년 전 치욕의 역사를 거울삼아야 한다. 세상물정, 주변국 정보에 눈이 어두워 임진왜란에서 그렇게 당하고도, 청나라에 또 다시 참괴한 봉변을 당한 그 역사를 되새겨야 한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척화파(斥和派) 김상헌이 볼모잡혀 청나라로 떠나면서 읊었다는 애달픈 시구가 문득 떠오른다.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 / 고국산천을 등지고자 하랴마는 / 세월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2015-03-24

박근혜정부 2기 내각의 `성공조건`

▲ 안재휘 서울본부장국내외를 불문하고 대통령선거는 치열하다. 대선은 한 당파의 명운을 좌우하는 전면전이라는 차원에서 `신사도(紳士道)`가 강조되는 스포츠정신에 빗대어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후보뿐만이 아니라, 특정 잠룡 뒤에 줄을 선 적잖은 정치지망생들에게는 운명을 가름할 필생의 결전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은 내용적으로 `신사도`와 거리가 먼 대선은 크고 작은 여진(餘震)을 남긴다. 그 여진을 슬기롭게 다스리는 것은 오롯이 정치지도자들의 몫이다.하염없이 추락하던 박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도가 설 연휴를 기점으로 상승기운을 얻고 있다. 42.8%를 찍으며 올 들어 첫 40%대에 올라섰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오랫동안 불통 이미지를 씻어내지 못해온 박 대통령에 대해 한때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던 적극지지층이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 속에 관심과 애정을 신집하고 나선 형국이다. 리퍼트 미 대사가 칼질을 당하면서 불거진 `종북 논란`도 하나의 외생변수라는 분석이다.박근혜정부는 과연 성공한 정권으로서의 족적을 남길 수 있을까? 먼먼 우회로를 거쳐서, 2기 내각을 근근이 꾸린 지금에서야 비로소 성패의 분기점에 선 것 같다. 인사실패를 거듭하면서 얻은 값진 깨달음의 결과물로 나타난 정치인들의 무더기 내각수혈은 그야말로 비장한 최후의 결단으로 읽힌다. 때마침, 수족관을 휘저으며 뭇 어류들을 긴장시키는 작은 상어처럼, 유승민 원내대표가 새로운 당·청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국정의 중심축을 집권 새누리당이 어느 정도 장악해가는 모습도 나쁘지 않다. 박 대통령이 지난 연초 기자회견에서 보여준 변화의 기미가 하나하나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여느 대통령들이 그랬던 것처럼, 대선승리 이후 무한히 부풀어 오르던 `만기친람`의 권력욕심을 과감하게 덜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짧은 재임기간 중 좌충우돌하다가 말 수도 있다. `경제 살리기`를 국정 최고의 화두로 삼은 대목이야말로 의미 있는 변화다.그러나 그것만으로 정말 일정부분 물음표를 달고 있는 민심을 온전히 되돌려 세울 수 있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박근혜정부에게 걸고 있는 `혁신`에 대한 기대는 언제고 폭발할 수 있는 중요한 뇌관을 품고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 민생정책혁신위원회가 대선공약 점검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는 소식은 신선하다. 지금쯤은 못 지킬 것은 못 지키겠다고 하고, 바꿀 것은 바꾸고, 지킬 것은 언제까지 하겠다고 쌈박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혁신`은 박 대통령이 끝까지 놓아서는 안 되는 핵심 정책기조다. 나머지 버거운 약속들은 웬만하면 버리거나 역할분담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맞다.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속설이 여전히 대중의 정서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혁신`의 이미지를 아주 상실한다면 치명적인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다가올 내년 총선은 물론 다음 대선까지도 아주 쭉정이농사로 만들 공산이 커진다.통일문제는 치밀하게 대응하고 준비하되, 공적을 욕심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한국정치사의 뼈아픈 교훈이다. 국민들에게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몰려서는 결코 안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키워드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족적에 힌트가 있다. 당대의 수많은 원성과, 후대의 소나기 비판을 딛고도 국민들 가슴에 꿋꿋이 `존경`의 뿌리를 남긴 그 메커니즘을 살피는 것이 첩경이다.100년 뒤를 그려야 한다. 후세 사람들이 대통령 박근혜를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하고 말할 것인지를 충분히 상상하는 것이 옳다. 이완구 국무총리와 역할을 분담하여 혁신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나쁘지 않지만, 그것이 대선 여진으로 말미암은 권력 패거리들의 유치한 당쟁으로 비쳐지는 일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모처럼 `소통`하는 모습을 흔연히 연출하고 있는 박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더 열고, 더 만나야 한다.

2015-03-17

`종북몰이`와 `항암제`

▲ 안재휘 서울본부장항암제의 기본적인 원리는 급속히 분열 또는 증식하는 특징을 지닌 암세포를 찾아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빠르게 증식하는 특성을 가진 세포에도 항암제가 영향을 미치면서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항암제의 부작용은 대개 일시적으로 발생했다가 빨리 사라지지만, 심장이나 폐, 콩팥, 생식기관에 손상을 준 경우에는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수상한 봄이 오고 있다. 아직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에게 `퇴진하라`는 전단지가 전국 길거리에 산발한다. 야당의 한 최고위원은 마치 고질병 들린 사람처럼 연일 품격을 내팽개친 언사를 흩뿌려 `싸가지 없는 진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 얼치기 직업 진보운동가가 행사장 밥상머리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칼질을 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우려했던 대로 정치권에서는 `종북몰이`논쟁이 요동치면서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자, 여권 지도자들은 곧바로 이 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여당은 한 발짝 더 나가 “범인 김기종 씨가 어엿한 시민운동가로 행세한 데는 야당 의원들과의 교류가 한몫했다”면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위헌 정당 통합진보당이 국회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도 야권의 `묻지마 연대`때문”이라고 목청을 돋웠다.새정치연합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듯 `비겁``치졸`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하며 발끈하고 나섰다. 야당은 “제1야당이 종북 숙주이면 야당과 늘 국정을 놓고 대화하고 협상하는 자신들의 정체는 무엇인가”라고 개탄했다. 새정치연합은 여당의 공세를 “종북으로 장사를 해서 많은 이득 보고, 종북이란 말로 긴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되잡아 치기 시작했다.낡은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슈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이 같은 케케묵은 멱살잡이 한 귀퉁이에서 북한의 주장이 개그처럼 등장했다.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사건을 `종북세력의 테러`라고 규정하는데 대해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 통일위원회는 “미제의 전쟁 책동을 반대하는 행동이 테러라면 안중근 등 반일 애국지사들의 의거도 테러라고 해야 하느냐”는 어처구니없는 비유법을 썼다.정치권 `종북`논란의 핵심에는 4월 총선을 겨냥한 복잡한 셈법이 얽혀 있다. 초대형사건이 어떤 변수로 작동할 것인지를 놓고 보수와 진보정치 두 세력이 각기 다른 산술법을 동원하며 아전인수를 꾀하는 전통적인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민감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고픈 유혹에 흔들릴 테고, 새정치연합은 사태가 일단 불리한 변수임을 인정하면서 화려한 `뒤집기`를 꿈꿀 것이다.선거를 앞두고 일어난 큼직한 사건들이 대세를 가름한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이제 그런 현상을 어떤 패턴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편견이다. 때때로 `역풍`이라는 괴물을 만나 예상이 완전히 뒤집힌 일들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테러를 놓고 정치적인 계산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난 번 통진당 사태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에서 `종북`세력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자유 대한민국의 악성 종양인 `종북주의자`가 문제라면 그것을 가려내어 격리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종북몰이`가 정적을 탄압하는데 눈이 어두워서 억울한 희생자를 양산하는 `매카시즘`으로 번지는 부작용을 방치하는 일은 더더욱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미 세계의 정치사가 증명하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이기는 길도 아니다. 부작용을 제어할 방안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면, 항암제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이치를 생각해야 한다. `종북세력`을 제대로 일소하기 위해서는 부작용이 최소화된 표적항암제 같은 신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2015-03-10

지상파 광고총량제, 남의 쪽박 깨는 `폭거`

▲ 안재휘 서울본부장“형제의 배가 항구에 도착하도록 도와주고 살펴보라. 그러면 당신의 배도 무사히 항구에 도착해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힌두교 속담의 한 대목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삶, 최소한 형평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자세야말로 성숙한 한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임을 깨닫게 된다. 무릇 한 국가가 펼쳐가는 정책에 있어서야 두 말할 나위가 있을까. 계층·직군·산업에 대해서 결코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권한을 위탁한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은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 방송광고정책 개정안이 연일 비판받고 있는 가운데, 전국 주요 일간신문사와 통신사 47개사로 구성된 한국신문협회가 `반대`를 결의했다. 신문협회는 “광고총량제 시행은 방통위라는 한 부처의 시행령에 불과하지만 일간신문, 지상파, 유료방송, 잡지 등 국내 미디어 전체에 지각 변동을 가져올 중대한 변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신문협회는 그 동안 반대성명, 공개질의, 정책당국자 면담 등을 통해 꾸준히 `반대`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광고총량제는 광고 유형별로 시간·횟수를 제한하는 현 방식과 달리 전체 광고시간만 제한하는 제도다. 현재 지상파는 시간당 최대 6분까지 광고할 수 있으나 총량제가 도입되면 평균 9분, 최대 10분 48초까지 할 수 있어 유료방송보다 더 많은 광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지상파는 간접·가상·중간광고 도입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시청자는 인기프로그램 한 편을 보기 위해 엄청난 불편을 겪게 되고, 시청권마저 위협받게 된다.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광고총량제`가 도입될 경우 광고주의 81.7%가 신문, 유료 방송 등 타 매체 광고비를 줄여 지상파 광고비로 충당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신문업계의 연간 광고물량에 대입해 보면 1천억~2천800억원의 신문광고비가 지상파로 옮겨가 신문광고 매출의 10~20%가 줄어든다. 최대 4천억~5천억원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끔찍한 관측도 있다. 국내 미디어산업의 한 축인 신문산업의 존립기반이 흔들려 초토화될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방통위에 대한 적격성 시비도 있다. 정부당국은 “소양강댐은 평소 댐 관리소장이 관리하지만,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 수 있는 `방류` 문제는 결정할 수 없다”는 신문협회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방통위가 문화체육관광부·미래창조과학부 등 관계 부처와 긴밀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 추진자가 누구인지, 그 목표와 의도마저도 석연치 않은 상태에서 `지상파의 배만 불려 주는 밀실담합`이라는 힐난까지 받고 있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국가의 방송광고정책은 매체 간 균형발전, 형평성, 타 매체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결정돼야 한다. 2013년 기준 전체 방송광고 시장에서 무려 60%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지상파의 방만 경영은 눈 감은 채, 정부가 방통위를 내세워 광고 퍼주기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날로 가파르게 기울어져가는 운동장 낮은 곳에서 박박 기고 있는 중소·영세 방송사업자의 생존 기반을 말살하고, 나날이 어려움이 더해가는 신문산업을 낭떠러지로 밀어내는 국가정책은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자신들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도 지상파 방송이 과욕을 부리는 일은 자제되어야 한다. 정책을 다루는 정부당국 역시 관련 산업을 파괴하고 쪽박을 깨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어떤 정책을 궤변으로 포장해 밀어붙이는 것은 금단의 선을 넘는 폭거다. 방통위는 목적지에 친구들이 함께 도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잘 조성해야 할 것이다.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다.

2015-03-03

`설 민심` 오판(誤判) 말아야

▲ 안재휘 서울본부장우리 역사상 최악의 전쟁참화(戰爭慘禍)였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589년, 정세를 살피기 위해 통신사로 왜국에 갔다 온 정사 황윤길(黃允吉)과 부사 김성일(誠一)은 조정에 정반대의 복명을 한다. 황윤길은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듯하다. 항구마다 즐비한 배들은 결코 어선이 아니고, 풍신수길(豊臣秀吉)의 눈에도 광채가 보였다”고 보고했다. 김성일은 “히데요시의 얼굴은 원숭이 같고 눈은 쥐와 같았으며, 생김새도 변변치 못하니 두려울 것이 못 된다”고 아뢰었다. 당시 동인(東人)들이 장악했던 조정은 같은 당파인 김성일의 낙관론을 채택했다. 한 나라를 나란히 보고 온 두 사람이 서로 완전히 다른 보고를 한 것은 관점이 워낙 달랐기 때문에 빚어진 차이가 아니었다. 서인(西人)이었던 황윤길과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떠나기 전에 이미 자기들이 무엇을 보든 다른 이야기를 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전사 7만 명, 민간인 사상자 15만 명을 포함해 수십만의 인명피해와 함께 농경지가 3분의1이나 파괴되어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됐던 비극을 생각하면 통탄해 마지 못할 어리석은 당쟁이었다.설 연휴를 마치고 여의도로 복귀한 여야 정치권이 듣고 온 `민심`을 털어놓으며 이런저런 `주장`들을 만들어 붙이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 입에서 한결같이 나오는 공통된 단어가 `경제`인 것을 보면 다들 그래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으로 여론을 잘못 청취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치인들은 “지방은 경제가 워낙 안 좋으니 먹고사는 문제, 자식들 취업 문제를 좀 해결해달라”, “먹고 살기 힘들다”, “경제가 악화됐다”, “경제를 살려 달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그러나 해법을 놓고 여야가 추구하고 있는 길은 아직도 많이 다르다. 입법전쟁에 돌입한 양측의 입장은 당장 관련법안 처리 문제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을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설 연휴 직후 열린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난해 어렵사리 통과된 부동산 3법을 `퉁퉁 불어터진 국수`에 비유하며 국회의 늑장처리를 에둘러 비판했다.정부·여당이 조기통과에 애면글면하고 있는 11개 경제활성화 관련법에 대해 새정치연합의 입장은 완강하다. 특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5개 법안에 관해서는 여전히 `절대불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이들 5개 법안에 대해서 “도저히 경제살리기법이라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까지 언급하며 철벽방어선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옛날처럼 여당의 독자 해결공간이 결코 여유롭지 않은, 달라진 국회환경 속에서 정부·여당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애타는 목마름으로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는 국민들을 수술대 위에 눕혀놓고, 같은 병증을 확인하기까지 한 여야 두 의사(醫師)가 각기 판이하게 다른 치료법을 놓고 극한대립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라면 과장일까. 혹여, 턱밑까지 지지율을 올려붙인 야당입장에서 정부여당이 좀 더 죽을 쑤길 기대하고, 필요이상으로 어깃장을 부리는 부분은 없을까. 또는 여당이 모든 잘못된 책임을 야당에게 전가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초들은 이것저것 마음의 병마저 더해가고 있다.동인 김성일은 파쟁(派爭)에 휘둘려 왜국의 관백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모습과 전쟁준비의 낌새를 맑은 눈으로 살펴보고 오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서인 황윤길과 다른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절반쯤은 오감을 낭비했을 지도 모른다. 역사는 백성들의 혼란과 민심이반을 두려워한 선조(宣祖)의 비겁한 오판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나라를 위해서도, 또는 자신의 당파를 위해서도 민심을 결코 오판하거나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2015-02-24

정치권의 `감정조절장애` 증후군

▲ 안재휘 서울본부장불가에서 일컫는 업(業)이란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 또는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를 말한다. 몸으로 짓는 업을 신업(身業), 말로 짓는 업을 구업(口業), 생각으로 짓는 업을 의업(意業)이라 하여 3업(三業)이라고 한다. 선도 악도 아닌 무기업(無起業)은 과보를 이끄는 힘이 없지만, 일상을 통하여 선악의 업을 쌓으면 그것이 업인(業因)이 되어 생생하게 업과를 받는 것으로 돼 있다. 정치권에서 구업이 자주 요동치는 것은 아무래도 `말`이 정치행위를 가능케 하는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말의 자유`야말로 민주국가에서 정치를 꽃피우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정치인들은 말로 일어서고 말로 상대방을 무너뜨리고 동지들을 규합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많은 정치인들이 잘못된 `혀 놀림`한 번 때문에 망하고 사라져간다는 사실이다.천신만고 끝에 새 재상 자리를 꿰찬 이완구 신임 국무총리의 인준과정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지명 이후 쉽게 국회동의를 받으리라던 예상을 깨고, 여지없이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세언(世諺)에 딱 맞게, 이완구 총리의 지난 몇 며칠은 악몽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혹자들은 약혼기간이 너무 길면 탈이 나기 쉽다더니 정말 그렇다는 빗댐도 내놓는다. 막판에 그를 칭칭 옭았던 변수는 기자들 앞에서 긴장을 풀고 내던진 몇 마디의 말이었다.알려진 낱낱의 상황들을 재구성해보면, 그날 그 자리에서 이완구 지명자가 했다는 말들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좋은 분위기 속에 젊은 기자들 앞에서 제아무리 위세를 떨고 싶은 흥취가 치솟아 올랐더라도 그렇지, 그가 내뱉은 말들은 도를 넘었다. 도대체 무슨 흥분이 `전화 한 통화로 방송국 토론패널을 빼버리게 만들었다`는 이상한 으스댐으로까지 나아가게 만들었을까. 오랜 세월 권력 안에서 성공을 일궈낸 큰 성취의 끝자락에서 잠시 평정심을 아주 내려놓았던 것은 아닐까.전당대회를 막 끝낸 새정치연합의 집안 꼴을 살펴보면 더욱 가관이다. 최고위원 대열에 오른 정청래 의원의 오만방자한 구업이 하늘을 찌른다. 그는 자신의 혓바닥 안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을 히틀러 묘소로 둔갑시키고,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를 정신 나간 유태인으로 변질시켜 모욕을 자아냈다. 그의 험구는 남의 당 대표의 행동까지도 무차별적으로 깔아뭉개면서 분별심을 완전히 잃은 분노조절장애 현상마저 보이고 있다.최전선에서 늘 갈등의 곡괭이를 휘둘러온 그는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당히 2위 득표의 저력을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를 향해서는 `두 얼굴의 사나이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 `진정성 결핍증을 앓고 있는 양심불량자`, `참 얼굴 두껍다`라는 막말을 들이댔다. 문제는 정청래 의원의 원색적 표현들이 결코 실수로 해석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는 확신범(?)이다.그의 언행에 대해 네티즌들은 역사책에서나 나옴직한 `정청래의 난()`이라는 명칭까지 붙여주고 있다. 정청래의 행동은 마케팅 이론에서 역설의 효과를 노리는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이나 타깃 마케팅(Target marketing)을 떠오르게 한다.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막스 베버 (Max Weber)는 정치지도자의 3대 덕목으로 열정, 책임감, 균형적 판단을 들었다. 오늘날 정치인이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덕목은 `뻔뻔함`이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한 대한민국 정치는 결코 선진화될 수 없다. 천지를 진동하는 구업을 넘어 가까스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반열에 오른 이완구 총리나, 막말퍼레이드로 인해 안팎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는 정청래 의원 모두에게 테레사 수녀의 충고를 들려주고 싶다. `혀의 침묵을 지켜라.`

2015-02-17

`김무성` 대 `문재인`

▲ 안재휘 서울본부장지난 2012년 9월 17일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대선후보는 현충원을 찾아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정신만 이어 받겠다”면서 끝내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흘 뒤인 20일 안철수 후보는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을 포함한 전직 대통령 묘역을 모두 참배했다. 당시 인터넷을 비롯한 언론에서는 문재인 후보의 협량(狹量)이 단연 화젯거리였다. 그렇게 편협한 도량으로 무슨 대통령을 꿈꾸느냐는 힐난이 많았다. 전당대회에서 어렵사리 당권을 거머쥔 문재인 대표가 9일 현충원을 찾아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묘역까지 참배한 일을 놓고 새정치연합이 시끌시끌하다. 전당대회에서 갓 선출된 정청래 최고위원은 방송에 나와 “백범 김구의 묘소, 그리고 박정희 정권에 사법살인 당한 대구 평화공원에 누워계신 인혁당 애국열사 이런 분에 대한 묘소 참배가 우선”이라며 문 대표를 겨냥했다. 새로 뽑힌 5명의 최고위원들이 문 대표와의 동행을 결국 거부한 것을 보면 착잡한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한 정치인이 대권을 거머쥐기까지 겪는 여정을 되짚어 보면 인간의 의지만으로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절절이 깨닫게 된다. 주인공의 전후좌우에서 우연과 필연들이 교직하며 일으키는 숱한 사건사고들이 어쩌면 그렇게 절묘하게 되어갔는지 신기한 구석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비마다 발휘되는 주연배우의 판단과 선택에는 남다른 예지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큰 지도자는 하늘이 낸다`는 말은 딱 맞는 말이다.이 나라 정치의 큰 산맥을 형성하는 근원은 TK로 표현되는 대구·경북과 PK로 표현되는 부산·경남이다. 고비마다 영남지역에 뿌리를 둔 인재들이 역사의 물줄기를 갈랐고, 영남지역의 민심이 국민들의 정서를 결정해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그게 왜 그랬는지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존재하겠지만, 일단 남다른 열정으로 세력을 장악하는 힘이 강한 인재들이 영남지역에서 많이 배출됐다는 주장에 가장 큰 힘이 실린다.새해 들어 PK출신의 김무성 대표와 문재인 대표가 정치권 여야 진영의 앞머리에 말고삐와 지휘봉을 잡고 서서 진두지휘를 하게 됐다. 대권잠룡 반열에 올라 연일 국민지지율의 파동을 타는 두 사람의 정치겨룸이 새 정치지도를 장식하는 가장 큰 변수로 작동하게 된 것이다. 싫든 좋든, 당분간 우리는 김무성-문재인 두 사람의 영남출신 정치인의 영향력 아래에서 나라의 미래를 고민하고 설계하면서 선택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증세 없는 복지`의 이상을 대선공약 맨 앞자리에 내놓았던 박근혜정부는 불과 집권 2년 만에 야릇한 자기모순에 빠져들고 있다. 정부는 `증세가 없다`고 우기고, 국민들은 `이미 증세가 시작됐다`고 여기는 어간(於間)에 정치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형국이다. 시나브로 팽창하고 있는 `복지정책 전반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깨달음마저 부인하기는 어려운 형편까지 온 것 같다. 여야 정치권이 국민들에게 풀어줘야 할 가장 큰 매듭도 결국은 이 언저리에서 시작될 조짐이다.어찌됐든, `김무성`과 `문재인`의 대권 레이스는 도량(度量)의 크기를 드러내는 대목에서 본격적으로 가르마를 탈 것이다. 김무성 대표는 새해 첫날에 현충원을 찾아 “다 품어야 한다”며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차례로 참배했다. 김무성이 극우에 발목 잡혀 품 너비를 한껏 좁히고 나아간다면 미래가 어두워질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문재인이 극좌에 허리띠를 잡힌 채 `전면전`운운하며 쌈닭 전략으로 일관한다면 더 큰 희망을 일구어내기 힘들 것이다. 문재인의 이승만·박정희 대통령 묘역 참배를 씹어대는 극좌인사들이, 지난 2011년 12월 17일 북한 김정일이 사망했을 때 “조문을 해야 한다”고 우겼던 바로 그 사람들이 아니길 바랄 따름이다.

2015-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