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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의 리더십`이 안 보인다

등록일 2015-06-30 02:01 게재일 2015-06-3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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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서울본부장
▲ 안재휘 서울본부장

제아무리 훈육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체벌에는 감정이 개입된다`는 것이 체벌반대 이론의 핵심이다. 한동안 꾸지람을 하다가 “한마디도 안 하는 거 봐라”하면서 역정의 강도를 높이고, 아이가 뭐든 말을 하면 “뭘 잘 했다고 말대답이냐”고 머리를 쥐어박는다. 도대체 어쩌라는 것인지 아이는 안으로 깊숙이 멍들어간다.

임기 반환점을 저만큼 앞둔 박근혜정부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MERS)이라고 불리는 괴질이 박 대통령을 막다른 골목으로 그악스럽게 몰아넣던 끝이다. 정부의 시행령까지 의회가 일일이 참섭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정부와 국회는 물론, 집권당내 계파들이 제각각 사생결단에 접어들었다.

`역사에 가정(假定)은 없다`는 말은 이미 지나간 일을 놓고 `만약에`라고 말하는 일의 무망함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인간은 `만약에`라는 방식의 생각과 반성을 통해서 미래의 실패를 줄이는 지혜를 갖고 있다. 박 대통령의 악전고투를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지난 2년여 세월 속에 아쉬움이 많다.

박근혜정부가 만약, 여야가 흔쾌히 받아들일 인물을 첫 총리로 뽑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박 대통령이 낡은 수첩을 찢어버리고 탕탕평평의 인사로 `새 시대`를 활짝 열었으면 어떻게 되어갔을까. 이념의 잣대를 와작 부러뜨리고 합리적인 문제의식과 시대정신을 가진 인사들을 적극 발탁하여 줄기차게 개혁인사를 단행했다면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물론 정권 핵심들의 불만을 들어보면 수긍이 가는 측면이 없지는 않다. 야당이 지난 대선 후 `불복(不服)`의 카오스에 갇혀 일삼아온 딴죽놀음을 진작 접고 좀 더 성숙한 파트너의 모습을 보였으면 어땠을까. 일각이 여삼추인 민생법안마저 볼모잡아 소걸음을 거듭하는 구태정치를 혁파했으면 어떠했을까. 정권의 허물을 씹기보다는 정책대안을 놓고 머리를 맞대는 선진정치의 모습을 구사했으면 또 얼마나 바뀌었을까.

막장으로 치닫는 외눈박이 좌파 지식인들의 `박근혜 물어뜯기`는 점점 신랄해지고 있다. “나쁜 정치엔 능하지만, 좋은 통치에 무능하다.”, “난 옳고,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으로 여긴다.”…공당의 지도부인 야당의 인사마저 욱하는 심사를 가누지 못하고 저급한 언어를 동원해 거듭 막말을 뱉어내는 대목은 더 문제다.

5년 임기의 절반을 헤아리는 시점에서 여전히 `불통` 문제가 박근혜 리더십의 으뜸허물로 지적되는 것은 비극이다. 지도자가 어떤 `소통 능력`을 갖느냐 하는 것은 그 자신의 정치는 물론 나라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다. 그토록 오래 박 대통령을 향해 `불통`을 꼬집고 `소통`을 주문해온 온갖 여론들의 핵심을 청와대가 올바로 감지하고 있다는 증거는 아직 없다.

걸핏하면 청와대 참모들만 탓하는 친박 핵심들의 변명은 바른 어법이 아니다. 반대파든 누구든 만나서 경청하는 일에 대통령보다 더 힘센 자리는 없으련만, 도통 그렇게 하지 못하는 원인부터 풀어내야 한다. 국민들은 지금, 불러서 듣고 전화로 듣고 정무비서관을 시켜서 들을 수 있는 대통령이 왜 그리 하지 못하는지 그 진짜 이유를 궁금해 한다.

정치권에는 지금 편협한 `감정`에 사로잡혀 체벌을 남용하는 비정한 어른의 어리석음이 난무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 야당과 정부여당, 정권과 여야 지도부, 각 당내 정파들이 귀 닫고 제 말만 외치며 서로 뺨을 후려치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이다. 만일 이 모든 소용돌이가 정치고수들의 권력쟁패를 위한 의도된 게임이라면 민초들에게 큰 죄를 짓는 것이다.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꼴로 피폐해져가는 민생은 도대체 어찌하라는 장난질인가. …어쨌든, 이 수치스러운 혼돈으로부터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길은 하나 뿐이다. 경청하는 `소통`의 길, 그 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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