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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움켜쥐고 대권놀음?

등록일 2015-06-09 02:01 게재일 2015-06-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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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서울본부장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진보 야권의 정서를 대변하거나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논객이다. 그는 지난 4일 SNS에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파문과 연계해 안철수 의원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자신의 `상품성`을 높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내가 안철수 의원이라면 방역복과 마스크를 장착하고 정부 방역센터와 주요 병원을 돌겠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의 `의료적 무능`을 질타하겠다. 이어 종합대책방안을 제출하겠다”

조 교수는 지난 4.29재보선 참패로 난관에 봉착한 새정치민주연합를 살려낼 밭갈이농사의 쟁기잡이 적임자로까지 거론됐던 인물이다. 그가 국민적 재앙인 `메르스`를 대권놀음의 소재로 써먹어야 한다고 둔 훈수는 제아무리 냉정한 지식인의 관조적 이론이라고 해도 얄미운 구석이 있다. 안철수 의원은 이에 대해 “메르스가 정치적 이슈가 되는 걸 막아야 한다. 지금은 사태 수습이 먼저다. 어떻게 하면 사태를 수습할 수 있을지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온 국민이 메르스 공포와 혼란의 와류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메르스가 삽시간에 괴물이 되어 마치 대한민국을 집어삼킬 것처럼 위세를 떨치는 양상이다. 정부 대응의 무능을 놓고 지난 해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에 빗대어 쏟아내는 비난이 적지 않다. 무엇을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머뭇대면서 왁자지껄한 여론의 모다깃매를 줄창 맞고있는 정부에 대체 무슨 속사정이 있는 걸까?

현대국가에서 정부는 재앙발생에 어떤 대응을 펼치든지 뒷말을 듣게 돼 있다. 정부가 먼저 호들갑을 떨면 `과잉대응`이라고 힐난할 것이고, 조금만 느슨하면 `늑장대응`이라고 아우성치게 돼 있다. 메르스 파문은 우리가 겪었던 여러 전염병과는 좀 더 다른 양상을 띠고 있긴 하다. 그럼에도 병원관계자들이나 의학전문가들은 “위험도는 2정도밖에 안 되는데, 국민들의 공포는 8까지 가 있다”고 설명한다.

여러 상황을 유추하면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신중한 접근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경제`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모처럼 활기를 띨 기미를 살짝 보이고 있는 경제상황에 찬물을 들이붓는 일이 벌어질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정부의 고민 속에 깊숙이 박혀있는 것이다. 사방에서 정부의 굼벵이 대응을 맹비판해도 쉽사리 `과잉대응`으로 갈 수 없는 합리적인 이유는 분명히 있다.

요 며칠 사이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일 메르스 긴급점검회의에서 “문제점을 확실하게 점검을 하고 그 다음에 현재의 상황, 그리고 대처 방안에 대해 적극적이고 분명하게 진단을 한 후에 그 내용을 국민들께 알려야 한다”고 또렷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정부쪽에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렇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경제적 타격에 대한 고민은 훨씬 더 깊어보였다.

정부가 머뭇대는 사이에 곧바로 박원순 서울시장이 특유의 쇼맨십까지 동원하며 틈새를 물어뜯고 나섰다. 박 시장은 4일 늦은 밤 긴급브리핑을 열고 “메르스에 감염된 의사 A씨가 지역 재건축조합 총회와 병원 심포지엄 등 행사에 수차례 참석해 시민 1천565명과 접촉했다”고 까발렸다. 7일에서야 메르스 관련 병원 이름을 공개한 정부에 앞질러 한 방 먹인 것이다.

박원순 시장의 액션은 마치 시민운동가의 행보를 연상시켰고, 대권잠룡이 날린 회심의 일격으로 읽혔다. 안철수 의원에게 “방역복과 마스크를 장착하고 병원을 돌아치라”는 꼼수를 훈수한 조국 교수의 언질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국민의 생명이 걸린 문제를 놓고 `나라 경제`걱정에 막혀 소걸음을 걷고 있는 정부의 처사는 답답하다. 하지만, 더 분통 터지는 일은 그런저런 속사정 다 알면서도 정부에 한방 먹일 궁리에만 빠진 대권잠룡 또는 훈수꾼들의 언행이다. 얄팍한 정치공학에 빠진 일부 지도층, 그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가슴 무너지는 사람 적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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