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김부겸의 대구 인기가 여전한 모양이다. 예단할 수는 없지만, 내년 총선에서 또 한번 관심을 끌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절치부심 끝에 전남 순천·곡성을 지역구로 국회에 입성한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은 당내에서 여전히 큰 목소리를 낸다. 많은 식자들이 김부겸·이정현 두 사람의 도전을 입줄에 올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사람의 고난은 모순된 정치제도 때문에 겪는 애꿎은 시련에 불과하다.
정치권이 불문율처럼 지켜오고 있는 `승자독식` 구조가 역사적으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했던 과도기적 상황에서 승자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일은 개발 효율성을 떠받치는 훌륭한 제도적 장치였다. 목표를 세우고, 하루빨리 성과를 거둬야 했던 구조에서 `승자독식`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수의 의견을 묵살하고 사장시키는 정치구조로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가 어려운 세월이 됐다.
지난해 10월 30일 헌법재판소가 현행 선거구별 인구편차 3대1 구조에 헌법불합치 판정을 내리고 2대1이하로 바꾸라고 결정한 이후, 국민들은 정치개혁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헌재의 결정은 꾸준히 제기돼온 개헌론을 비롯한 정치개혁 의제들을 하나씩 기억하도록 하는 부수효과를 파생하고 있다. 국회의장 직속 헌법개정자문위의 개헌의견도 있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정치관계법(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개정의견도 있다.
헌법개정자문위는 지난해 4월 2일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고 임기를 6년 단임으로 하는 `이원집정부제`의 분권형 대통령제와 국회 양원제를 주 내용으로 하는 헌법개정 자문의견을 발표했다. 자문위의 의견은 의심 없이 유지돼 온 강력한 대통령중심제가 시대에 맞지 않다는 중요한 관점을 던진다. 이제 지도자 한 사람의 만기친람 방식으로 통치하기에는 국가의 볼륨과 다양성이 엄청나게 비대해졌음을 인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관위가 지난 2월 24일 발표한 정치관계법(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등) 개정의견에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및 석패율제 도입, 지구당 부활, 총·대선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 도입 등 메가톤급 정치이슈들이 포함돼 있다. 선관위 개정의견은 51%가 100%의 권력을 독점하는 현재의 `승자독식` 권력구조에 핵심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적극 반영한다. 하지만, 제기된 개혁의견들을 놓고 각 정당들은 당리당략만 셈하고, 정치인들은 자신의 유·불리만 따지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지난달 2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견 지역언론인모임인 `세종포럼`초청토론에서 “우리 사회가 분열이 아닌 통합으로 가려면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석패율제 등이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고 밝혔다. 정 의장은 “소선거구제로는 안 된다. 51과 49가 대립하고, 51%가 다 먹으려고 하는데서 갈등이 시작된다”고 덧붙였다. 소수의견 존중을 위해 교섭단체 요건을 현행 20석에서 10석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중·대선거구제를 희망하는 국민여론을 뒷받침하는 조사결과도 있다. 지난해 11월 19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응답자의 49%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했고, 32%가 현행 소선거구제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왕에 시작된 정치개혁에 대한 정치권의 논의가 감동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지기를 소망한다. 당리당략이나 사리사욕의 범주를 완전히 벗어나, 다양해진 국민여망을 신실히 소화하고, 여태껏 이 나라 대한민국을 골병들게 만든 배타적 지역주의를 일소할 묘책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고민했으면 좋겠다. 기왕에 바꿔야 한다면, 과감하게 혁신하는 것이 옳다. 제2의 김부겸·이정현이나 고대하는 소극적인 정치행태를 지속할 이유가 없다. 중·대선거구제, 석패율제를 통해 건강한 다당제를 견인해내는 것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올바른 개혁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