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지상파 광고총량제, 남의 쪽박 깨는 `폭거`

등록일 2015-03-03 02:01 게재일 2015-03-03 19면
스크랩버튼
▲ 안재휘 서울본부장

“형제의 배가 항구에 도착하도록 도와주고 살펴보라. 그러면 당신의 배도 무사히 항구에 도착해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힌두교 속담의 한 대목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함께 살아가는 이들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삶, 최소한 형평성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자세야말로 성숙한 한 인간이 가져야 할 태도임을 깨닫게 된다. 무릇 한 국가가 펼쳐가는 정책에 있어서야 두 말할 나위가 있을까. 계층·직군·산업에 대해서 결코 편파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은 권한을 위탁한 국민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은 `지상파 광고총량제 도입` 방송광고정책 개정안이 연일 비판받고 있는 가운데, 전국 주요 일간신문사와 통신사 47개사로 구성된 한국신문협회가 `반대`를 결의했다. 신문협회는 “광고총량제 시행은 방통위라는 한 부처의 시행령에 불과하지만 일간신문, 지상파, 유료방송, 잡지 등 국내 미디어 전체에 지각 변동을 가져올 중대한 변수”라고 지적하고 있다. 신문협회는 그 동안 반대성명, 공개질의, 정책당국자 면담 등을 통해 꾸준히 `반대`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

광고총량제는 광고 유형별로 시간·횟수를 제한하는 현 방식과 달리 전체 광고시간만 제한하는 제도다. 현재 지상파는 시간당 최대 6분까지 광고할 수 있으나 총량제가 도입되면 평균 9분, 최대 10분 48초까지 할 수 있어 유료방송보다 더 많은 광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게다가 지상파는 간접·가상·중간광고 도입까지 추진하고 있다. 이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시청자는 인기프로그램 한 편을 보기 위해 엄청난 불편을 겪게 되고, 시청권마저 위협받게 된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상파 광고총량제`가 도입될 경우 광고주의 81.7%가 신문, 유료 방송 등 타 매체 광고비를 줄여 지상파 광고비로 충당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신문업계의 연간 광고물량에 대입해 보면 1천억~2천800억원의 신문광고비가 지상파로 옮겨가 신문광고 매출의 10~20%가 줄어든다. 최대 4천억~5천억원이 빠져나갈 것이라는 끔찍한 관측도 있다. 국내 미디어산업의 한 축인 신문산업의 존립기반이 흔들려 초토화될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방통위에 대한 적격성 시비도 있다. 정부당국은 “소양강댐은 평소 댐 관리소장이 관리하지만, 서울을 물바다로 만들 수 있는 `방류` 문제는 결정할 수 없다”는 신문협회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방통위가 문화체육관광부·미래창조과학부 등 관계 부처와 긴밀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 추진자가 누구인지, 그 목표와 의도마저도 석연치 않은 상태에서 `지상파의 배만 불려 주는 밀실담합`이라는 힐난까지 받고 있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국가의 방송광고정책은 매체 간 균형발전, 형평성, 타 매체에 미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결정돼야 한다. 2013년 기준 전체 방송광고 시장에서 무려 60%의 점유율을 갖고 있는 지상파의 방만 경영은 눈 감은 채, 정부가 방통위를 내세워 광고 퍼주기에 나서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날로 가파르게 기울어져가는 운동장 낮은 곳에서 박박 기고 있는 중소·영세 방송사업자의 생존 기반을 말살하고, 나날이 어려움이 더해가는 신문산업을 낭떠러지로 밀어내는 국가정책은 결단코 용납될 수 없다.

자신들의 건강한 미래를 위해서도 지상파 방송이 과욕을 부리는 일은 자제되어야 한다. 정책을 다루는 정부당국 역시 관련 산업을 파괴하고 쪽박을 깨는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은 어떤 정책을 궤변으로 포장해 밀어붙이는 것은 금단의 선을 넘는 폭거다. 방통위는 목적지에 친구들이 함께 도착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잘 조성해야 할 것이다.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도 있다.

안재휘 정치시평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