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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喪主)들의 `행패`

등록일 2015-05-26 02:01 게재일 2015-05-2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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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서울본부장

조선시대 피비린내 나는 당파싸움의 단초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거기에는 뜻밖으로 왕실의 예절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한 예송(禮訟)논쟁이 있다. 왕이 죽었을 때 대비가 상복을 1년 간 입어야 하는지, 3년 동안 입어야 하는지 따위를 놓고 다투다가 파가 갈렸다. 상대방을 역모(逆謀)로 엮어 몰살을 꾀하는 극단으로까지 치달았던 사색당파 분열이 그렇게 `예절에 대한 사소한 견해 차이`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허탈한 기록이다.

훈신·척신들이 권력을 잡기 위해, 또는 권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일으킨 사화(士禍)의 역사는 실로 끔찍하다. 1498년(연산군 4)의 무오사화, 1504년의 갑자사화,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 1545년(명종 즉위년)의 을사사화 등을 통해 자행된 신진 사림(士林)의 말살은 극심하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판단하는 일이 적절치는 않겠지만,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신하들의 엉큼한 궤변을 이용하거나 멍청하게 놀아난 왕들의 처신은 더욱 기가 막힌다.

정치권에 때 아닌 `예의`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통합`을 부르짖으며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여기저기 다니면서 겪고 있는 수난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얼마 전 광주에서 열린 5·18 추모식에서 김무성 대표는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와 함께 욕설·물세례 봉변을 당했다. 추모식장이 상가(喪家)와 동일할 수는 없지만, 검은 넥타이를 매고 치르는 한 그 예의는 상가의 그것과 같게 하는 것이 맞다.

광주에서의 볼썽사나운 추태는 5·18 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가 여의도로 찾아와 새누리당 김 대표에게 사과하는 절차로 그나마 위안의 여지를 남겼다. 행사를 주관한 사람들이 참석자들 모두의 일거수일투족을 완벽하게 통제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23일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아들인 노건호 씨가 봉하마을에서 치러진 아버지의 6주기 추도식에서 참배객으로 찾아간 새누리당 김 대표에게 악담을 퍼붓는 해괴한 일이 발생했다.

노건호 씨는 유족인사 형식을 빌려 김 대표 면전에서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반성도 안 했다”는 등 힐난하다가 “정치, 제발 좀 대국적으로 하시라”고 비아냥거렸다. 이날 추도식장에서 새정연 김한길 의원은 “쓰레기”라는 비난을 받았고, 천정배 의원은 “배신자” 욕설을 들었다. 새정연 박지원 의원도 듣기 거북한 비판을 견뎌야 했다. 찾아온 추도객을 향해 물병을 팔매질하는 친노 지지자들의 격노는 도를 넘은 행패 그 자체였다.

노무현정부 시절 노사모 회장으로 유명세를 떨쳤던 배우 명계남의 노건호 역성들기는 친노의 저질 선동정치를 다시 한 번 떠오르게 한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김무성 대표가) 사전 협의도 없이 언론에 먼저 흘리고 경찰병력 450명과 함께 쳐들어왔다”고 허위 충동질을 감행했다. 그의 언행은 오래 전부터 정치권에 회자되고 있는 `싸가지 없는` 진보의 퇴행적 정치문화에 대한 혐오를 되씹게 한다.

찾아온 참배객에게 행패를 부리는 일부 친노 세력의 망발은 평생을 통합을 위해 외치고 실천하며 살다 간 정치인 노무현의 정신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설사 행사에 참여하기 전에 충분히 논의하는 절차가 다소 미흡했다 하더라도 찾아온 추모객에게 봉변을 가하는 행위는 국가의 미래를 망가뜨리는 어리석은 짓이다. 진보 칼럼니스트이기도 한 고종석 작가는 “노건호 씨의 분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선친의 비극적 죽음에 자신을 포함한 가족과 측근들 책임은 조금이라도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 추도식에 찾아온 손님 앉혀놓고 악다구니를 쓴 상주에게 오히려 찬사를 보내는 바보들, 그 덜빠진 외눈박이들이 아직 우리 주변에 적지 않다는 사실이 놀랍고 안타깝다. 제삿날의 상주는 `죄인`처럼 겸손할 때 비로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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