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는 가능한 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주는 것이 좋다. 심리적으로 보다 평온한 상태에서 치료를 받는 것이 치유에 훨씬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앰뷸런스에 실려 응급실에 도착한 환자를 처치하는 일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환자가 하자는 대로만 했다가는 오히려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응급환자에 대한 처치는 어디까지나 의료진의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처방에 신속하게 따르는 것이 정답이다.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를 놓고 여야가 벌인 협상이나 결과물을 보면 흡사 환자 눈치만 보다가 뜬금없는 방향으로 치료법을 내놓은, 이상야릇한 처방차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듯이 이 문제는 여야 정파의 이익을 떠나 국가 미래의 존망을 결정할 변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독특한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 정치권은 이 과제를 사뭇 정략의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해왔다.
여야 정치권이 막판에 `공무원연금` 합의안에 `국민연금`문제를 슬쩍 집어넣은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측면이 짙어 보인다. 혹자들은 공무원연금 개혁안 합의내용 자체에 미흡함이 많으니, 국민들의 관심을 돌려세워 놓고 슬며시 넘어가려는 꼼수 아니냐는 해석조차 내놓는다. 여야 정치권이 뒤늦게 “합의가 중요하다”는 강변만 되뇌고 있으니 의아할 따름이다.
정말 해괴한 사태는 어렵사리 본회의를 열고도 국회 각 상임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의결을 마친 57개 민생법안 중 달랑 3개 법안만 의결하고, 황급히 막을 내린 12일의 국회다. 여당은 본회의를 앞두고 주요 민생법안 전자서명을 끝내 거부한 이상민 법사위원장의 월권행위를 집중 성토했고, 이 위원장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3개 법안만 (처리)해달라는 요청을 (먼저)해 놓고, 저급한 행태를 보인다”고 반격했다.
입만 열면 짜 맞춘 듯이 `민생`을 합창해온 여야 정치인들이 막상 본회의 판을 벌이면서까지 엇박자를 내는 꼴에 국민들은 또 한번 부글부글 `정치혐오`의 진저리를 덧냈을 것이다. 쉰일곱 그릇 밥상 다 차려놓고 부엌문 걸어 잠근 야당위원장도 얄밉지만, 뒷문으로 찾아가 세 그릇만이라도 내달라고 하소연해놓고 뒤늦게 부아를 터트린 여당도 우습긴 마찬가지다. 어쩌다가 우리 정치가 이토록 짜증을 부르는 저질 개그판을 못 면하고 있는지…….
`국민연금 개혁`부대조건이 달린 엉뚱한 협의로 갈 수밖에 없었던 공무원연금 합의안의 모순이나, 상임위·법사위 다 통과한 민생법안들 찬장에 가둬놓고 조리실 문 닫아 잠근 채 몽니를 부리는 희한한 사태의 저변에 `의회주의`의 본질을 망가뜨리고 있는 `국회선진화법`의 망령이 있다. `의회주의` 또는 `의회정치`란 국가의 최종적인 정치적 결정이나 법률의 제정을 의회에서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행하는 정치방식 및 그 입장을 뜻한다. `다수결의 원리`가 민주공화국의 의사결정 방식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엄청난 시행착오와 진통을 겪었다. 우리가 끝내 `다수결`을 선택한 것은 결코 그것이 지고지순한 방식이어서가 아니다.
세상에는 그 어떤 정책도 완전무결한 것이 없기에, 어떻게든 결정을 미룰 수가 없을 때 최선책으로 쓰도록 마련해낸 것이 `다수결`의 지혜인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권이 `합의의 덫`미몽(迷夢)에 갇혀 허우적대는 한, 사리에 맞지 않는 요상한 정치행태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민생법안`들은 결코 시간을 더 끌어도 되는 만성질환이 아니다. 그야말로 앰뷸런스를 타고 국회의사당 수술실에 도착한 응급환자들이나 마찬가지다. 공무원연금 개혁을 다루는 정치인들이 `공무원 노조` 눈치나 보고 있는 것은 숨이 꼴깍꼴깍 넘어가고 있는 응급환자에게 처치법을 물어보는 어리석은 돌팔이 놀음과 다르지 않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 모두를 보고 묵묵히 나아가는 뚝심 정치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