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제의 기본적인 원리는 급속히 분열 또는 증식하는 특징을 지닌 암세포를 찾아 파괴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몸에서 정상적으로 빠르게 증식하는 특성을 가진 세포에도 항암제가 영향을 미치면서 부작용이 생기게 된다. 항암제의 부작용은 대개 일시적으로 발생했다가 빨리 사라지지만, 심장이나 폐, 콩팥, 생식기관에 손상을 준 경우에는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수상한 봄이 오고 있다. 아직 임기가 3년이나 남은 대통령에게 `퇴진하라`는 전단지가 전국 길거리에 산발한다. 야당의 한 최고위원은 마치 고질병 들린 사람처럼 연일 품격을 내팽개친 언사를 흩뿌려 `싸가지 없는 진보`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와중에, 한 얼치기 직업 진보운동가가 행사장 밥상머리에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게 칼질을 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발생했다.
우려했던 대로 정치권에서는 `종북몰이`논쟁이 요동치면서 갈등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사건이 발생하자, 여권 지도자들은 곧바로 이 사건을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고 규정했다. 여당은 한 발짝 더 나가 “범인 김기종 씨가 어엿한 시민운동가로 행세한 데는 야당 의원들과의 교류가 한몫했다”면서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산된 위헌 정당 통합진보당이 국회에 발을 들여놓은 계기도 야권의 `묻지마 연대`때문”이라고 목청을 돋웠다.
새정치연합은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듯 `비겁``치졸`이라는 단어까지 동원하며 발끈하고 나섰다. 야당은 “제1야당이 종북 숙주이면 야당과 늘 국정을 놓고 대화하고 협상하는 자신들의 정체는 무엇인가”라고 개탄했다. 새정치연합은 여당의 공세를 “종북으로 장사를 해서 많은 이득 보고, 종북이란 말로 긴장을 강화하려는 의도”라고 되잡아 치기 시작했다.
낡은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이슈가 나올 때마다 반복되는 이 같은 케케묵은 멱살잡이 한 귀퉁이에서 북한의 주장이 개그처럼 등장했다. 주한 미국대사를 습격한 사건을 `종북세력의 테러`라고 규정하는데 대해 북한 대남기구인 조국평화 통일위원회는 “미제의 전쟁 책동을 반대하는 행동이 테러라면 안중근 등 반일 애국지사들의 의거도 테러라고 해야 하느냐”는 어처구니없는 비유법을 썼다.
정치권 `종북`논란의 핵심에는 4월 총선을 겨냥한 복잡한 셈법이 얽혀 있다. 초대형사건이 어떤 변수로 작동할 것인지를 놓고 보수와 진보정치 두 세력이 각기 다른 산술법을 동원하며 아전인수를 꾀하는 전통적인 정쟁에 몰두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반공 이데올로기`에 민감한 우리 국민들의 정서를 자극하고픈 유혹에 흔들릴 테고, 새정치연합은 사태가 일단 불리한 변수임을 인정하면서 화려한 `뒤집기`를 꿈꿀 것이다.
선거를 앞두고 일어난 큼직한 사건들이 대세를 가름한 사례는 적지 않다. 그러나 이제 그런 현상을 어떤 패턴으로 일반화하는 것은 어리석은 편견이다. 때때로 `역풍`이라는 괴물을 만나 예상이 완전히 뒤집힌 일들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테러를 놓고 정치적인 계산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위험하다. 지난 번 통진당 사태에서 보듯이 대한민국에서 `종북`세력을 더 이상 용인해서는 안 된다는 폭넓은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자유 대한민국의 악성 종양인 `종북주의자`가 문제라면 그것을 가려내어 격리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해야 한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종북몰이`가 정적을 탄압하는데 눈이 어두워서 억울한 희생자를 양산하는 `매카시즘`으로 번지는 부작용을 방치하는 일은 더더욱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미 세계의 정치사가 증명하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결코 이기는 길도 아니다. 부작용을 제어할 방안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면, 항암제를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이치를 생각해야 한다. `종북세력`을 제대로 일소하기 위해서는 부작용이 최소화된 표적항암제 같은 신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