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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민심` 오판(誤判) 말아야

등록일 2015-02-24 02:01 게재일 2015-02-2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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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서울본부장

우리 역사상 최악의 전쟁참화(戰爭慘禍)였던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589년, 정세를 살피기 위해 통신사로 왜국에 갔다 온 정사 황윤길(黃允吉)과 부사 김성일(誠一)은 조정에 정반대의 복명을 한다. 황윤길은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듯하다. 항구마다 즐비한 배들은 결코 어선이 아니고, 풍신수길(豊臣秀吉)의 눈에도 광채가 보였다”고 보고했다. 김성일은 “히데요시의 얼굴은 원숭이 같고 눈은 쥐와 같았으며, 생김새도 변변치 못하니 두려울 것이 못 된다”고 아뢰었다.

당시 동인(東人)들이 장악했던 조정은 같은 당파인 김성일의 낙관론을 채택했다. 한 나라를 나란히 보고 온 두 사람이 서로 완전히 다른 보고를 한 것은 관점이 워낙 달랐기 때문에 빚어진 차이가 아니었다. 서인(西人)이었던 황윤길과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떠나기 전에 이미 자기들이 무엇을 보든 다른 이야기를 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전사 7만 명, 민간인 사상자 15만 명을 포함해 수십만의 인명피해와 함께 농경지가 3분의1이나 파괴되어 전 국토가 쑥대밭이 됐던 비극을 생각하면 통탄해 마지 못할 어리석은 당쟁이었다.

설 연휴를 마치고 여의도로 복귀한 여야 정치권이 듣고 온 `민심`을 털어놓으며 이런저런 `주장`들을 만들어 붙이고 있다. 여야 정치인들 입에서 한결같이 나오는 공통된 단어가 `경제`인 것을 보면 다들 그래도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으로 여론을 잘못 청취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정치인들은 “지방은 경제가 워낙 안 좋으니 먹고사는 문제, 자식들 취업 문제를 좀 해결해달라”, “먹고 살기 힘들다”, “경제가 악화됐다”, “경제를 살려 달라”는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해법을 놓고 여야가 추구하고 있는 길은 아직도 많이 다르다. 입법전쟁에 돌입한 양측의 입장은 당장 관련법안 처리 문제에서부터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회에 계류 중인 경제활성화 관련 법안을 하루빨리 처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설 연휴 직후 열린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지난해 어렵사리 통과된 부동산 3법을 `퉁퉁 불어터진 국수`에 비유하며 국회의 늑장처리를 에둘러 비판했다.

정부·여당이 조기통과에 애면글면하고 있는 11개 경제활성화 관련법에 대해 새정치연합의 입장은 완강하다. 특히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5개 법안에 관해서는 여전히 `절대불가`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이들 5개 법안에 대해서 “도저히 경제살리기법이라 말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까지 언급하며 철벽방어선을 치고 있는 상황이다. 옛날처럼 여당의 독자 해결공간이 결코 여유롭지 않은, 달라진 국회환경 속에서 정부·여당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애타는 목마름으로 `살려 달라`고 외치고 있는 국민들을 수술대 위에 눕혀놓고, 같은 병증을 확인하기까지 한 여야 두 의사(醫師)가 각기 판이하게 다른 치료법을 놓고 극한대립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라면 과장일까. 혹여, 턱밑까지 지지율을 올려붙인 야당입장에서 정부여당이 좀 더 죽을 쑤길 기대하고, 필요이상으로 어깃장을 부리는 부분은 없을까. 또는 여당이 모든 잘못된 책임을 야당에게 전가하기 위해서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민초들은 이것저것 마음의 병마저 더해가고 있다.

동인 김성일은 파쟁(派爭)에 휘둘려 왜국의 관백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모습과 전쟁준비의 낌새를 맑은 눈으로 살펴보고 오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그는 서인 황윤길과 다른 주장을 펼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절반쯤은 오감을 낭비했을 지도 모른다. 역사는 백성들의 혼란과 민심이반을 두려워한 선조(宣祖)의 비겁한 오판이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나라를 위해서도, 또는 자신의 당파를 위해서도 민심을 결코 오판하거나 더 이상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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