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노무현, 김무성, 서청원, 이인제, 손학규, 이재오, 김문수, 맹형규, 김기춘, 정병국…. 오래도록 정치뉴스를 장식해온 기라성 같은 정치인들의 이름이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YS(김영삼 前 대통령)에 의해 정계의 문을 열거나 길을 닦은 인물들이라는 점이다. YS는 인재를 발굴하고 적재적소에 쓰는 용인술(用人術)의 달인이었다. 반세기 넘도록 한국정치를 움직였던 거산(巨山) YS가 영면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의 치열한 물밑전쟁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겉으로는 온갖 명분을 내놓고 있으나, 내용은 공천권을 놓고 벌이는 뜨거운 `밥그릇싸움`이다. 여당에서 잠복상태에 놓인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이슈가 야당에서 설설 끓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수십 명 의원들 요구에 의해 `오픈프라이머리` 정책의총을 연데 이어 격론을 거듭하고 있다. 혁신위의 `현역 20% 공천배제` 규정이 암초다.
새누리당은 김무성 대표가 내놓은 `공천관리위원회` 조기구성안에 대해 친박 좌장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크게 반발해 회의장을 박차고 나오는 충돌을 빚었다.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 두 사람은 `공천룰 특별기구` 구성에 공감했지만, 인선문제를 비롯해 합을 맞춰야 할 대목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정치권 안팎에는, 공천권을 둘러싼 친박(親박근혜계)과 비박(非박근혜계)의 대전(大戰)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는 전망이 진작부터 나돈다.
한국정치에는 집권계파가 공천권의 칼자루를 휘둘러 당내 정적을 무참히 잘라내는 `공천학살`의 역사들이 존재한다. 노골화되고 있는 공천전쟁 이면에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학살 트라우마`에서 발원된 공포가 있다. 새누리당에서 공천문제를 다투고 있는 김 대표와 서 최고위원은 함께 공천학살을 당한 쓰라린 이력을 공유하고 있다. 새정연에도 집권계파에 의해 중진을 포함해 다수의 정치인들이 모개로 `작두질`당한 기록이 있다.
`오픈프라이머리`는 특정 계파에 의해 당내 정치인들이 집중적으로 공천배제를 당해온 뼈아픈 경험 끝에 나온 차선책(次善策)이다. 정당정치를 퇴보시키고 기득권자에게 유리하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오픈프라이머리`가 꾸준히 국민들의 관심을 끌고, 정치권에서 토론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공천권을 무기로 특정 정파를 무참히 끊어 내거나, 더러운 거래에 악용하는 추태를 숱하게 목격해왔기 때문이다.
날마다 비상(非常)이었을 권위주의정권 치하에서 훌륭한 인물을 찾아서 정확하게 역할을 찾아 맡기는 일에 뛰어났던 YS의 직관은 놀라운 재능이었다. 엄혹한 환경에서 투쟁을 해야 했던 시대에 YS식 인재발탁과 `전략공천`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화가 크게 진전된 시절에도 케케묵은 `보스정치`의 인재등용 관행을 지속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한 정당 안에서 분파하여 밥그릇 놓고 죽고살기로 싸우는 일은 이제 멈춰야 한다.
`오픈프라이머리`의 가치를 존중하는 여론 저변에는 `정치사유화(政治私有化)`에 대한 거부감과 함께 민주주의에 대한 만만찮은 자부심이 있다. 민심은 지금, 굳이 `오픈프라이머리`가 아니라 하더라도 어느 정당이 상향식 공천을 실현하는지를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다.`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에 자기사람 심는 공천은 시대에 맞지 않는 `사천(私薦)`에 불과하다.
1994년 대만에서 만든 `포청천`이라는 TV드라마에서 중국 송나라 명판관 포증(包拯)은 황족까지도 사악한 범죄를 찾아내어 용(龍)작두·호(虎)작두·개(犬)작두로 가차없이 처단해, 온갖 모순 속에 사는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다. 2016년 총선을 앞두고, 많은 정치인들이 억울하게 `개작두질`을 당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갇혀 있다. 포증은 결코, 명백한 범죄자가 아닌 정적을 향해 “작두를 열라”고 명하지 않았다. `화합`과 `통합`을 당부한 YS의 유지를 되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