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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음서제(蔭敍制)` 논란

등록일 2015-08-25 02:01 게재일 2015-08-2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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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서울본부장
▲ 안재휘 서울본부장

마르크스의 `자본론`보다 약 100년 앞서 1753년에 나온 장 자크 루소(Rousseau)의 `인간 불평등 기원론`은 부(富)의 불평등에서 시작, 힘의 불평등을 거쳐 `최강자의 법`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 역사과정을 명쾌하게 논증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인류의 성공작이지만 `상대적 평등`에 대한 고질적 약점이 있다. 공산주의가 치명적인 오류를 드러내며 지구상에서 소멸돼가는 시점에서도 이 `불평등` 약점은 여전히 미완의 숙제로 남아 있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는 천부인권(天賦人權)적 `절대적 평등` 사상은 불평등의 급류에 찌들어 살던 인류를 크게 각성했다. 그러나 절대적 평등 이론은 머지않아 개인능력의 차이와 사회적 격차가 빚어내는 상대적 불평등의 문제점을 노정한다.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동등한 조건을 창출해줌으로써 국민들이 실질적으로 균등한 지위에 설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 평등`의 가치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소중해지고 있는 이유는 충분하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자녀취업 특혜 의혹에 휩싸이면서 `현대판 음서제(蔭敍制)` 논란이 일고 있다.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 자격을 딴 국회의원 자녀들이 아버지의 `후광`으로 원하는 자리를 차지했다는 내용이다. 새정치연합 윤후덕 의원은 딸이 LG디스플레이 변호사 채용에 지원하는 과정에서 대표이사에게 청탁했다는 것이고, 새누리당 김태원 의원은 아들의 정부법무공단 변호사 취업이 특혜였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 논란은 2017년 폐지 예정인 사법시험 존치 논란으로 번지면서 사법연수원 출신 기성 법조인들과 로스쿨 간의 `진영 싸움`으로 비화하는 양상이다.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로스쿨이 `음서제`로 이어지는 현상이 나타난 만큼 사법시험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다. 이에 대해 전국 25개 로스쿨 학생들과 관계자들은 “(음서제 논란은) 로스쿨과 아무 관계가 없다. 철저하게 개인의 도덕성에 관한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지역균형발전과 법률서비스의 전국 확대, 다양한 전공·경험을 통한 법률서비스 질 향상이라는 로스쿨제도의 취지는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러나 한 해 등록금이 웬만하면 2천만 원이 훌쩍 넘는 엄청난 학비에 대한 문제제기는 여전히 살아있다. 입학단계부터 판사와 검사 선발에 이르기까지 그 기준과 방식이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도 문제다. 로스쿨 입학에 실패한 사람들도, 판검사 임용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구조적 `불평등` 개연성을 높이고 있는 `불투명`을 분노하고 있다.

졸업까지 최하 4천여만 원에서 최고 7천여만 원의 학비를 조달할 경제적 능력이 안 되는 인재들은 근접조차 못하는 현 로스쿨제도는 기본적으로 `평등`의 틀을 벗어난다. 게다가 입학은 물론 판·검사 선발시험의 성적마저 비공개로 처리한다 하니 권력층 아버지를 둔 졸업생들은 매운 눈을 피하기 어렵게 돼있다. 국가차원에서 충분한 장학금을 지원해 누구든 실력 있는 인재들의 입학과 수학을 보장하는 한편, 학사 및 성적관리를 사법고시 수준만큼 투명하게 해야 한다.

고관대작들이 그들의 지위를 자자손손 세습하려는 욕구 충족의 편법적 장치인 음서제는 조선의 또 하나 음습한 망조(亡兆)였다. 조선 후기 공신 혹은 현직 당상관의 자제로 과거에 응하지 않고 등용된 음관을 기록한 음보(蔭譜)에 무려 1천235명이나 등장하는 걸 보면 당시 잘 난 조상을 둔 덕에 벼슬살이를 한 사람이 얼마나 흔했는지를 알 수 있다. 적어도 우리는 그런 어리석은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진정으로 평등한 세상이란, 격차가 기회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환경 아래에서는 결코 달성되지 않는다. “네 아버지가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주눅이 들어 꿈을 접어야 하는 젊은이들이 존재하는 나라를 더 이상 대물림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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