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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상실`의 저주

등록일 2016-07-19 02:01 게재일 2016-07-1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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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br /><br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중국 진나라 효공(孝公) 시대의 명재상 상앙은 법을 제정해놓고 공포를 미뤘다. 나라에 대한 백성들의 불신이 깊었기 때문이었다. 상앙은 3장(약 9m) 높이의 나무를 남문 저잣거리에 세우고 “북문으로 옮기는 사람에게 십금(十)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아무도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상앙은 다시 “오십금을 주겠다”고 상금을 올렸다. 이번에는 옮기는 사람이 있었다. 상앙은 즉시 오십 금을 주어 백성들의 불신을 씻어냈다.

중요한 것은 다음 대목이다. 새로운 법이 공포되고 1년이 지나자, 그 부당함을 호소하는 자가 1천 명이 넘었다. 이때 태자가 법을 위반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상앙은 법에 따라 태자를 가르치는 대부(大傅)를 처형했다. 다음날부터 백성들은 법을 철저하게 준수했다. 10년이 지나자, 백성들은 법에 매우 만족했고 나라의 질서가 바로잡혔으며 천하통일의 기반이 다져졌다. 잘 알려진 사목지신(徙木之信)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다.

예상했던 대로다. 지난 15일 성주군청 앞에서 총리와 국방장관이 해괴한 봉변을 당한 불상사 한가운데에 헌재 결정으로 해산된 통진당 인사들이 참여한 민중연합당 조직원이 끼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전자파로 인해 주민들은 암에 걸리고, 여성은 불임이 되고, 기형아가 태어나고, 꿀벌이 사라져 참외가 수정되지 않고…` 무단히 번져나간 괴담의 진원지도 불문가지다.

국민들의 정서를 어지럽히지 않는 소통의 행정으로 나랏일을 원만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정부를 애써 두둔할 생각은 없다. 매사를 온 나라가 들썩거리도록 시끄럽게 밀고 가는 서투름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성주군청 앞의 불상사 그 안에 일부 불순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면죄부가 될 수도 없다. 정말 건강한 행정이라면 결코 그런 극소수의 불온세력이란 발붙일 여지를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병증을 올바로 진단하기 위해서는 선입관이 일체 배제된 맑은 눈이 필요하다. 적군과 무력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방장비를 배치하는데 지역민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는 억지주장이 통용되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있나. `바른 말`을 삼키고만 있는 지역정치인들의 처세는 `선도 기능`을 상실한 한국정치의 참상을 대변한다. 제아무리 여론에 따라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는 형편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싶다.

건듯하면 국사(國事)를 놓고 선동정치가 발동하고 국민들이 휘둘리는 이유를 정확하게 짚어내야 한다. 2008년 광우병 파동이 대표적인 전례다. 불순세력의 못된 괴담장난질에 놀아난 한 방송사의 헛발질로 증폭된 광우병 파동은 내용부터 허무맹랑했다. 그 얼마전에 치러진 18대 대선에 대한 불복심리의 발로였다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간악한 도전이었다. 문제의 핵심은 그 어불성설의 장난질을 끝까지 냉엄하게 단죄하지 않은 데에 있다.

광우병 사태의 중심에서 민심현혹의 지렛대 역할로 천문학적 국력낭비를 주도했던 선동전문가들은 그 이후에도 득의양양했다. 미국 쇠고기를 먹고 광우병에 걸린 사례가 전무함에도 완장 갈고 명찰 바꿔가며 제주해군기지 반대, 밀양 송전탑 반대 소용돌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궤변장사를 해왔다. 정부는 물론 이 땅의 지식인들 모두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선동가들에게 터무니없이 너그럽다.

사드배치를 놓고 일어나는 모든 불협화음은 `신뢰상실`의 부메랑이요, `불신`의 저주다. 소통을 확대하고 약속을 지키며 자신의 허물이 드러났을 때는 가차없이 스스로 종아리를 치는 것 외에 다른 해법은 없다. 상앙의 지혜로 위정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질서가 잡힌 진나라의 풍경을 사기(史記) `상군열전(商君列傳)`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길에 떨어진 물건은 줍지 않았고, 산에는 도적이 없었다. 또 집집마다 풍족하고 사람마다 넉넉하였다. 나라를 위한 싸움에는 용감하였으며, 개인의 싸움에는 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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